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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일본8- 다카쿠스 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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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승  /  2020 년 8 월 [통권 제88호]  /     /  작성일20-08-28 11:50  /   조회7,36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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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근대불교학은 도쿄 대학에서 인도철학이란 이름의 학문으로 정립되어 다양한 전개가 이루어졌다. 비록 근대기의 불교가 폐불훼석의 불교탄압을 견디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증거로 일본사회에 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알린 것이 근대기 불교학의 모습이었다.  

 

  특히 서구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 불교가 일본사회에 중요한 종교전통이라는 인식을 세운 것도 체계적인 학문적 토대위에 전개된 불교학의 중요한 일면이었다. 근대불교학이 불교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회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데 크게 역할을 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도쿄 대학에서의 학문적 전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불교적 방법론의 전개와 전통적인 불교학의 정초를 닦는 토대가 형성되었다. 

 


다카쿠스 준지로. 

 

  새로운 불교적 방법론은 난조 분유南條文雄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산스크리트문헌을 활용한 비교방법론이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이고 또한 전통적인 불교학은 무라키미 센쇼村上專精에게서 보듯 일본을 비롯해 동양에 전해진 전통적인 한문불교문헌에 의거한 불교학적 토대를 구축한 일이었다. 이러한 불교적 연구 전통이 토대를 구축해 근대불교학은 자국 내에서도 중요한 학문의 전통이 됨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새로운 종교전통으로서 인식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근대불교학이 연구전통을 거듭하는 속에 실질적으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중요한 업적을 올리게 되는데 그 역할의 중심적 축을 담당하는 사람이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 1866-1945, 사진 1)이다. 다카쿠스 준지로는 실제 도쿄 대학에 들어가거나 다닌 적인 없이 일찍 서양에 유학해 인도학과 불교학을 몸에 익혀 돌아와 세계적인 업적을 낸 불교학자이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카쿠스 준지로(이하 다카쿠스로 약칭)는 1866년 현재의 히로시마현에 해당하는 빈고備後 미츠기御調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한학을 배우고 익혀 시경詩經이나 당시唐詩를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15세에 이미 소학교 교원이 되었고, 17세에는 사범학교에 다녔으며, 20세에는 정토진종 서본원사가 세운 교토의 보통교교普通敎校에 들어갔다. 보통교교에서는 특히 영어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고, 재학 중에 한문교사도 역임하였다. 또한 재학 중에 당시 교사나 학생들의 풍기를 바로 세우자는 뜻을 가진 반성회反省會라는 모임에 가담하였고, 해외에 불교를 전하는 구미불교통신사歐美佛敎通信社를 만들어 해외선교회를 발족시켰다고 한다. 1889년 보통교교를 졸업한 다음해 영국으로 유학의 길에 오르게 된다. 

 

  영국의 유학길에는 난조 분유의 소개장을 가지고 옥스퍼드대학의 막스 뮐러 교수를 만나 교수의 권유로 인도학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한다. 옥스퍼드에서는 뮐러 박사의 제자인 윈터니츠에게 산스크리트를 배웠으며, 유학중에 독일, 프랑스 등지의 당시 유명한 인도학자들로부터 배움을 얻을 기회를 가졌다. 특히 독일의 유명한 인도학자로 우파니샤드 전문가였던 폴 도이센을 만나 배웠다. 그것은 후일 일본에서 『우파니샤드 전서全書』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유학중에 난조 분유와 함께 옥스퍼드에 유학했지만 일찍 유명幽明을 달리한 가사하라 켄주(竺原硏壽, 1852-1883)의 유업遺業으로 남아있던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하여 영어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옥스퍼드에서 학사와 석사의 학위를 받고 1897년 32세의 나이로 귀국하였다. 

 

  다카쿠스가 일본에 귀국할 당시 도쿄 대학에는 난조 분유에 의해 개설되었던 산스크리트 강좌가 외국인 교수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다카쿠스의 귀국으로 인해 이 산스크리트 강좌는 다카쿠스가 담당하게 되며, 1899년에는 박언학과(博言學科, 박언학은 후에 언어학으로 개칭) 교수, 1901년에는 범어학梵語學 강좌의 초대 교수로 임명된다. 범어학은 도쿄 대학의 같은 문학부 내에 있던 인도철학과 별도로 설립된 것으로 1904년에는 범문학梵文學으로 바뀌며, 후에는 범어학범문학 등으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이렇듯 다카쿠스의 귀국과 그의 활약으로 도쿄대학 내 범어학은 물론 인도철학도 새로운 활력소를 얻게 되어 그에 의해 1906년 인도철학의 교과목으로 ‘인도철학종교사印度哲學宗敎史’라는 과목이 개설된다. 아마도 이 과목은 인도철학이 당시까지 불교학의 학문적 전통을 잇고 있던 상황에서 인도의 정통철학을 연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이 교과목의 개설 이후 이 과목을 이어받은 기무라 타이켄木村泰賢에 의해 출간된 『인도철학종교사』(1914년 10월 기무라· 다카쿠스 공저)는 베다 이래의 인도 정통철학사상을 원전에 의거해 기술한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저술로 간주된다. 

 

 


대정신수대장경 

 

  다카쿠스에 의해 인도철학이나 범어학은 중요한 진전을 보이며, 그와 더불어 다카쿠스는 남방불교의 불교원전어인 팔리어의 연구에도 크게 열정을 기울여 도쿄 대학에서도 팔리어 강의가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1904년 그가 출간한 『팔리어 불교문학강본佛敎文學講本』은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팔리학 연구서로 간주된다. 다카쿠스는 인도철학과 불교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한다. 더욱이 일본의 근대불교학의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는 3대 업적을 남기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 『우파니샤드 전서』의 출간; (2)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사진 2)의 제작 출간; (3)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 번역 출간이 그것이다.

 

  우파니샤드Upaniṣad는 베다의 끝에 있다는 의미에서 베단타Vedānta라고도 불리는 인도 베다사상의 중요한 내용을 간직한 문헌으로, 인도의 정통철학은 물론 불교사상의 토대가 된 문헌이다. 고대 인도인의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브라흐만이나 아트만과 같은 용어들이 다수의 사상가들에 의해 쓰여져 후대 인도의 모든 철학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 우파니샤드이다.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5세기 불교 흥기 이전에 이미 만들어졌고 이후 시대를 거듭해 다양한 이름의 우파니샤드가 출현하였다. 다카쿠스는 서구 유학 중에 당시 우파니샤드에 관한 최고의 연구자로 간주된 독일의 폴 도이센에게 사사師事할 때 우파니샤드의 중요성을 알았다고 생각된다. 그는 자신의 문하생과 함께 당시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된 우파니샤드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126종의 우파니샤드를 1922-1923년 사이에 전9권의 『우파니샤드 전서』로 출간하였다. 이 작업은 인도 고대 사상의 집성으로 후대 일본의 인도학과 불교학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다카쿠스에 의해 기획되고 실현된 『대정신수대장경』의 출간은 실로 근대불교학의 집성체로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한문불교권의 모든 불교도에게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22년부터 1935년에 걸쳐 전100책으로 출간된 이 대장경은 당시까지 동아시아에서 간행된 모든 대장경을 수집하여 각각의 내용을 대조 교정하여 출간한 것이다. 이 대장경의 편찬방식으로는 (1) 여러 판본들의 엄밀한 교정; (2) 전체적으로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있는 편찬방식; (3) 한문에 대응하는 범어나 팔리어의 용어 대조; (4) 수록 경론의 내용 색인 제작; (5)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고려 등의 다섯 가지의 방침을 정해 편찬에 임했다고 한다. 1917, 1918년경부터 대장경의 출간이 기획된 것 같지만, 기획이나 출간과 관련된 전체적인 일정이나 출간비용 등은 다카쿠스의 책임 아래 진행되었다. 대장경 전체가 출간된 뒤 다카쿠스는 상당한 재정적 부채를 짊어졌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대정신수대장경』의 출간을 완료한 이후 한역대장경만으로는 불교의 온전한 모습을 알 수 없다고 하여 새롭게 기획하고 시도한 일이 『남전대장경』 번역 출간이었다. 당시 다카쿠스의 문하생 48명과 팔리어 연구자가 동원된 이 번역 사업은 1936년 제1권이 출간된 이후 1941년 최종 65권이 발간되었다. 이 『남전대장경』이 출간됨으로서 동아시아 대승불교 전통에서는 소홀해지기 쉬운 초기불교의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불교의 본래 모습에 더욱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남전대장경』의 번역이나 출간의 총체적인 과정도 역시 다카쿠스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카쿠스는 1927년 62세로 도쿄 대학을 퇴임하지만, 재직 중에나 퇴임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오랜 기간 여성교육에 관심을 가져 1924년 무사시노武藏野여자학원을 설립하여 원장으로, 그리고 이 무사시노여자학원이 고등여학교로 바뀐 이후에는 교장으로 역할 했다(후에 무사시노여자대학, 현재 무사시노대학). 잡지 『현대불교現代佛敎』를 비롯한 젊은 여성을 위한 『아카츠키』, 영문판 『영 이스트』 등을 창간하고, 도요 대학東洋大學 학장, 치요다千代田여자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44년 문화훈장을 수여받았고, 1945년 6월 80세로 운명하였다. 

 

  다카쿠스는 32세에 영국유학으로부터 돌아온 뒤 80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인도학과 불교학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유학으로부터 얻은 국제적인 감각은 물론 불교학에 뜻을 둔 그의 열성으로 인해 일본의 불교학은 국제적으로는 물론 국내적으로도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그에 의해 기획되고 수행된 앞서의 3대 업적은 도쿄 대학에 근대불교학의 기치旗幟를 올린 이래 가장 규모가 크고 의미가 깊은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구체적인 업적과 더불어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불교학을 빛낼 제자를 키워낸 것이다. 곧 그의 제자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앞에서 언급한 기무라 타이켄과 우이 하쿠주宇井伯壽를 들 수 있다. 아마도 다카쿠스 본인이 3대 업적을 통해 근대불교학의 학문적 결실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였다면, 기무라와 우이는 다카쿠스의 열정과 노력이라는 영양분을 받고 피어난 꽃과 같이 불교계를 크게 빛낸 학자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근대불교학은 비로소 자국의 불교학자들을 통해 세계에 통하는 불교연구에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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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승
일본 고마자와대학 박사, 전 한국불교연구원 원장, 일본 인도학불교학회 이사, 인도철학회 편집이사, <실담자기초와 망월사본 진언집 연구>(공저, 글익는들, 2004)), <을유불교산책>(정우서적, 2006), <산타라크쉬타의 중관사앙>(불교시대사, 2012)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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