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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딱딱 또르르, 딱딱 또르르” 내 생애 두 번째 딱따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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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1 년 10 월 [통권 제102호]  /     /  작성일21-10-05 11:24  /   조회3,92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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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선禪 선과 시 5 / 유정법문 무정법문有情法門 無情法門

 

 

산에 가서 새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즐겁습니다. 가까이에서 새를 직접 본다면 갑절로 즐겁습니다. 오늘은 산행하다가 생애 두 번째로 딱따구리를 만났습니다. 흔한 새라고는 하지만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은 새입니다. 

 

딱따구리를 처음 만난 곳은 30여 년 전 파계사 성전암 산능선입니다. 성전암에서 해우소 뒷편으로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오솔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입니다. 능선 중간쯤에서 “딱딱 또르르, 딱딱 또르르”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죽은 나무 꼭대기 부근에서 새가 부리로 쪼는 소리입니다. 속이 빈 나무가 울림통 구실을 해서 쪼는 소리가 상당히 크게 울렸습니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원줄기 전체가 속이 빈 나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체의 길이가 음의 높낮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피타고라스에게 배웠습니다.

 

 

사진1 팔공산 왕건길 안내석 

 

 

직감적으로 “딱따구리!” 하고 알아봤습니다. 딱따구리도 우리를 봤는지 바로 휘리릭 날아가 버렸습니다. 딱따구리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아쉽게 끝이 났습니다.

오늘 왕건길 대곡지를 조금 지나서 생애 두 번째로 딱따구리를 만났습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있어서 금방 눈에 띄었습니다. 역시 죽은 나뭇가지 구멍을 부리로 쪼고 들락거립니다. 사람이 제법 다니는 길가인데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먹이를 사냥합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딱따구리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꼬리 깃을 나무에 바짝 붙이고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나무를 꽉 잡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딱따구리는 단순한 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딱따구리’ 하면 곧장 만공滿空스님(1871-1946)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 말, 낙선재에서 상궁과 나인들이 수덕사에 와서 만공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만공스님은 후일 수덕사의 제3대 방장이 되는 사미승 진성(원담스님, 1926-2008)을 불러 “거 딱따구리 노래 한 번 불러 보아라.”라고 말합니다. 어린 사미승은 뭣도 모르고 신이 나서 노래합니다.

 

“앞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어”

 

이 노래는 오늘날 <정선 아리랑>의 한 구절입니다만, 상스러운 가사입니다. 대궐에서 나온 상궁과 나인들이 야한 노래를 듣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때 만공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노래는 절 밑에 살고 있는 나무꾼들이 나무를 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얼핏 들으면 상스러운 노래인 것 같지만 노래 속에 만고의 법문이 들어 있소. 뚫려 있는 구멍, 뚫려 있는 이치를 찾는 것이 바로 불법이오. 어리석은 중생들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노예가 되어 뚫려 있는 구멍조차 뚫지 못하고 있지요. 이들이야말로 딱따구리보다 못한 멍텅구리가 아니겠소?”(주1)

 

음담패설을 법문으로 승화시킨 멋진 설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라만상이 다 설법을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당나라 시절의 혜충국사慧忠國師(?-775)입니다. 이를 공안으로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이라고 합니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국사가 답했다. “담과 벽과 기와와 조약돌이니라.”

스님이 물었다. “담과 벽과 기와와 조약돌은 ‘무정’이 아닙니까?”

국사가 답했다. “그렇다.”

스님이 물었다. “무정인데도 해탈법을 설할 수 있습니까?”

국사가 답했다. “항상 설하고 있다. 불처럼 활활 설하여 그침이 없다.”(주2)

 

간결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이 문답은 그대로 한 편의 시입니다. 이처럼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을 직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을 뜨면 보이는 세계는 명백한 세계, 즉 순수 인상의 세계이자 표층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가 전부는 아닙니다. 표면은 항상 더 깊은 실재를 향합니다. 이것이 심층의 세계입니다. 심층의 세계라고 해서 실재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표층에서 벗어나 인상 너머 심층적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사진3. 덕숭산 수덕사 만공스님 부도 

 

 

‘장벽와락墻壁瓦礫’이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언어로 ‘부처님 마음’이라는 비범한 사상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언어로 명료하게 핵심만 이야기하기에 깊은 감동을 전해 줍니다.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 선사는 ‘무정설법’ 공안을 아무리 참구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동산양개는 무정설법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찾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불가의 전통을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해 선생을 찾아다니는 광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위산潙山(771-853) 선사를 찾아가서 문답을 하지만 깨치지 못하자 위산선사가 추천해 준 운암雲巖(782-841)선사를 찾아갑니다. 운암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동산양개가 마지막으로 무정설법의 출처를 묻자 운암은 이렇게 답합니다.

 

 


사진3. 팔공산 왕건길 안내석.

 

양개가 물었다. “무정설법은 출처가 어디입니까?”

운암이 답했다. “『아미타경』에 이르기를 ‘물, 새, 나무, 숲이 모두 다 법문을 한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주3)

 

양개는 이 가르침에서 무정설법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수조수림水鳥樹林이 모두 다 법문을 한다는 운암선사의 말씀은 하나의 경지를 말합니다. 수조수림의 설법을 듣기 위해서는 그 순간 마음이 정지해야 하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미타경』 원문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모든 새들은 모두 아미타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고자 변화하여 나타낸 것이다.”(주4)

 

바로 이 구절에서 출발하여 무정설법이 탄생한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소리를 듣는 것은 청정함을 가져다 줍니다. 새소리를 듣는 그 순간에 돈오頓悟하여 깨달음을 얻은 스님도 적지 않습니다.

『벽암록』을 쓴 원오圜悟(1063-1135) 선사는 닭이 날개 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습니다.(주5) 일본의 잇큐(一休, 1394-1481) 선사는 비와호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까마귀 소리를 듣고 깨달았습니다.(주6) 조선 중기의 서산대사(1520-1604)도 지리산 기슭의 한 마을을 지나다 닭 울음소리를 듣고 깨쳤습니다.(주7)

 

새소리를 듣고 깨닫는 것은 어떤 체험일까요? 새소리를 듣고 생명의 본질인 진여眞如[우주만물의 실체]를 느꼈다는 것이겠지요. 통찰의 순간을 삼매라고도 합니다. 완전히 현존하는 무심의 순간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신성함을 깨닫기 위해서는 현존이 필요합니다. 어떤 중간물도 개입시키지 않고 보고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귀중한 체험입니다. 

 


사진4.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만난 밤나무, 가을이 깊어간다. 

 

새소리를 듣고 깨달은 선사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범부는 그 이야기의 심층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기껏해야 그냥 아는 듯한 기분에 그치고 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좀 더 쉬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새소리를 듣고서 영혼이 활짝 열린 사람들은 서양에도 적지 않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는 150cm 정도의 작은 키에 절름발이이자 유대인인 여성 혁명가입니다. 그녀는 감옥 속에서 삶과 역사와 자연의 섭리를 성찰했습니다. 특히 작은 박새의 숨결에서 삶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마틸다 야코프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제 묘비에는 “zwi-zwi” 두 음절만 적어 주세요. 이 두 음절은 박새가 지저귀는 소리예요.(주8)

“쯔비, 쯔비.” 

슬프고도 아름다운 묘비명입니다. 슬픈 것은 그녀가 ‘감옥’에서 이 편지를 썼기 때문이고, 아름다운 것은 그녀가 자아마저 버릴 정도로 박새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버리면 무無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임을 알게 됩니다.

 

똑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우리는 왜 깨우치지 못하는 걸까요? 어떤 사람은 새 소리가 풍요롭고 의미심장한 것으로 들리는데 우리들에게는 왜 진부하고 하찮은 소리로 들리는 걸까요. 저 역시 오늘 딱따구리 소리를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심층 경계를 본 것은 아닙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과 똑 같은 길이지만 전혀 다른 길입니다. 내려오면서 보니까 밤나무에는 밤이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산길을 걸으면 반드시 자신의 생각을 영글게 만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

(주1.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 2021. 06.09.

(주2.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제13, "僧問。如何是古佛心。國師曰。墻壁瓦礫是。僧曰。墻壁瓦礫。豈不是無情。國師曰。是。僧曰。還解說法否。國師曰。常說熾然。說無間歇。"

(주3.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제13, “師曰。無情說法。該何典教。巖曰。豈不見彌陀經云。水鳥樹林。悉皆念佛念法。”

(주4.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구마라집 역鳩摩羅什譯, “復次舍利佛。彼國。常有種種奇妙雜色之鳥。白鶴 孔雀 鸚鷡 舍利 迦陵頻伽。共命之鳥。是諸衆鳥。晝夜六時。出和雅音。… 是諸衆鳥。皆是阿彌陁佛。欲令法音宣流。變化所作。”

(주5. 『종문무고宗門武庫』, 선림고경총서 25(장경각, p. 46).

(주6. 오쇼, 『법의 연꽃 : 이뀨 一休』, 2012.

(주7. 서산대사가 용성龍城에 사는 벗을 만나러 가는 길에 성촌星村을 지나가다 한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아 두 수의 시를 읊었다. “髮白非心白。古人曾漏洩。今聽一聲鷄。丈夫能事畢。/ 忽得自家處。頭頭只此爾。萬千金寶藏。元是一空紙。”

(주8. 로자 룩셈부르크, 베를린 감옥에서 〈마틸다 야코프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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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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