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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믿음의 결핍과 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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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1 년 10 월 [통권 제102호]  /     /  작성일21-10-05 11:26  /   조회3,65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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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102 / 대수번뇌심소1

 

 

 

대체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나약하다. 자신의 생각과 일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말에 자신감이 없고, 하는 일에도 추진력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가 디오도어 루빈은 “믿음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힘”이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믿음이 굳건한 사람은 난관을 만나도 잘 극복해 낸다. 반면 믿음이 결핍된 사람은 의지도 나약하고 삶의 에너지도 빈약함을 볼 수 있다. 이번호에 살펴볼 주제는 바로 믿음과 관련된 불신과 게으름이다.

 

여덟 가지 대수번뇌심소

 

유식唯識에서는 불신과 게으름[해태]을 번뇌로 분류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유식학에서는 일체만법을 오위백법五位百法으로 분류한다. 다섯 가지 대분류 항목인 오위五位는 8개의 심법心法, 51개의 심소법心所法, 11개의 색법色法, 24개의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6개의 무위법無爲法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위 중에서 마음의 작용에 관한 항목을 심소법心所法이라고 하는데, 심소법은 51가지로 분류된다. 이미 고찰한 바 있는 변행심소 5가지, 별경심소 5가지, 선심소 11가지, 번뇌심소 6가지, 수번뇌심소 20가지, 부정심소 4가지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앞으로 살펴볼 내용은 20가지의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에 속한 대수번뇌심소이다. 수번뇌隨煩惱란 ‘수반되는 번뇌’라는 뜻으로 탐貪, 진瞋, 만慢, 무명無明, 견見, 의疑라는 6가지 근본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수번뇌심소는 다시 10가지 소수小隨, 2가지 중수中隨, 8가지 대수大隨로 구분된다.

 

이상과 같은 유식의 복잡한 체계 속에서 대수번뇌심소의 위치를 살펴보면 ‘오위백법 > 심소법 > 번뇌심소 > 수번뇌심소 > 대수번뇌심소’라는 좌표를 갖는다. 8가지의 대수번뇌심소는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혼침惛沈, 도거掉擧, 실념失念, 부정지不正知, 산란散亂이다. 이들 항목 앞에 ‘대大’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번뇌에 물든 마음[染汚心]에는 항상 이들 8가지 번뇌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는 불신과 해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불신, 믿음의 결핍으로 게으름을 낳는 번뇌

 

성철스님은 ‘신심信心이 보타산’이라고 했다.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른 믿음이 있는 곳이 곧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는 보타산이라는 것이다. 종교란 하나의 신념체계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종교에서 모든 권능과 실천은 믿음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믿음이 없다면 어려운 3천배를 한다거나 천일기도 같은 신행을 할 수 없고, 힘들게 모은 재산을 흔쾌히 보시할 수도 없다. 수행을 하고 보시를 행하는 것이 곧 불자의 도리이고, 복덕을 쌓는 것이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이와 같은 어려운 일을 감당해 낸다.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의 으뜸이고 공덕의 어머니[信爲道元功德母]”라고 했다.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도행을 실천할 수 있음으로 믿음은 도의 으뜸이며, 믿음에 기초한 실천으로부터 온갖 공덕이 자라남으로 믿음은 모든 공덕을 낳는 어머니가 된다. 확고한 믿음은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의혹과 주저함을 떨치고 결단을 내리게 하고, 마침내 온갖 선행을 실천하여 공덕을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믿음의 역할이 이렇게 크다면 믿음이 없다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유식에서는 확고한 믿음의 부재로 흔들리는 마음 작용을 ‘불신不信(aśraddhā)’이라고 하는데, 『성유식론』에서는 불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참다운 존재[實] · 덕[德] · 권능[能]에 대해 인정하거나 즐거워하거나 추구하지 않고[實德能不忍樂欲], 마음[심왕]을 더럽히는 것이 본성이다[心穢為性]. 청정한 믿음을 가로막아[能障淨信] 게으름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 작용이다[惰依為業]. 믿지 않는 사람은 게으름이 많기 때문이다[不信者多懈怠].”

 

첫째, 믿음이 없으면 ‘참다운 존재[實]’, ‘덕[德]’, ‘권능[能]’을 인정하거나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깨달음이나 추구해야 할 바른 덕, 그리고 종교적 권능은 모두 믿음을 통해 확립되는 내면의 영역이다. 믿음이 결핍되면 기도에 가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선행을 하면 좋은 과보가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그렇게 되면 신앙심이 있을 수 없고 자연히 보살행과 같은 실천도 나올 수 없다.

 

물론 불신이 초래하는 문제는 비단 종교생활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동체와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불신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불신은 사람 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신은 자신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의 결속을 깨뜨리고,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리는 번뇌가 된다.

 

둘째, 불신은 청정한 믿음을 가로막아[能障淨信] 게으름이 빌붙는 의지처가 된다는 점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믿음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에 불신이 자리 잡으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게 되고,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세월만 낭비하게 된다. 따라서 불신이 깊을수록 실천의지가 꺾이고, 그런 마음에는 게으름만이 자꾸 빌붙게 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불신은 “자성이 혼탁하고[自相渾濁], 심왕과 다른 심소를 혼탁하게 한다[渾濁餘心心所.”라고 했다. 불신은 스스로 확고한 믿음이 결여되어 의지가 명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심리작용까지 혼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아주 더러운 물건[極穢物]이 자신도 더럽고 다른 것도 더럽게 하는 것과 같다[自穢穢他].”라고 비유했다. 냄새나는 오물이 그 자체로도 더럽지만 다른 것도 더럽게 만드는 것처럼 불신도 스스로는 물론 다른 마음 작용까지 부정적 영향으로 오염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소법은 마음[心]에 종속된 것이지만 불신이라는 심소는 자신이 속해 있는 마음 즉 심왕까지 오염시키는 성질[心穢為性]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믿음이 없으면 무엇을 하려는 의지가 사라짐으로 근면이라는 심소를 오염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불신의 역할이 이와 같기 때문에 불신으로부터 게으름을 뜻하는 해태懈怠 심소가 생겨난다.

 

해태, 당장은 편안하나 자신을 망치는 번뇌

 

대수번뇌심소의 두 번째 항목은 해태懈怠(kausīdya) 심소이다. 해태는 ‘게으른 심소’로서 부지런함[勤]의 반대를 뜻한다. 생각이 게으르면 선행을 닦으려 하지도 않고, 악을 방지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수행자의 궁극적 목표인 성불을 향한 수행을 가로 막는 장애가 된다. 『성유식론』에서는 해태懈怠 심소에 대해 “선善으로 악함을 닦고[於善惡品修], 악품을 끊는 일에 대해 게으른 것이 본성이다[斷事中懶惰為性]. 정진을 방해하여 번뇌에 물듦을 키우는 것이 작용이다[能障精進增染為業].”라고 설명했다.

 

선으로서 악한 성품을 닦고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마음의 게으름, 즉 해태 심소이다. 마음이 게으르면 자연히 번뇌가 자라나게 되고, 마음은 그 번뇌에 지배받게 된다. 이처럼 믿음이 부족하면 스스로 마음이 번뇌에 물들고, 다른 심소까지 부정적 영향으로 물들게 만든다.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될 것이라는 불신을 갖고 있으면 고난과 역경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삶은 게으름의 지배를 받게 된다. 나태한 마음으로 살면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어려운 시절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오늘 하루도 성실한 자세로 내일로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불신이라는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스스로 움츠려드는 나태함을 떨치고 삶의 활기를 충전하는 일이다.

 

 


이경미 작.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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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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