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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도]
컴퓨터를 통해 차를 보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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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09:48  /   조회3,35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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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茶道 13 | 명등계 ① 

 

글감을 고르기 위해 곰곰 삶을 반추할 때가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잘못도 보이고 잘한 일도 보인다. 이번에는 차와 관련된 조금은 의미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90년대 초에 컴퓨터 통신을 통해 차와 관련된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화석 같은 이야기겠지만, 당시 ‘컴퓨터 통신’(주1)은 지금의 SNS를 통한 개인 간의 소통에 다름없었다. 오늘은 컴퓨터 통신으로 소통하며 만들어진 ‘명등계’를 소개해 볼까 하는데, 아마도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최초의 ‘차계’가 아닐까 한다.

우리 역사에서 차와 관련된 ‘계’의 시초는 다산 정약용(주2)에게서 시작한다.

 

다산茶山과 다신계茶信契

 

다산茶山은 1801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사옥에 휘말려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중, 1818년 해배解配가 결정되어 강진을 떠나게 되었다. 이에 제자 18명이 모여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차로 맺어진 계’인 다신계를 만들었다. 그 내용을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유년(1801년) 겨울, 강진에 유배돼 동문 밖 술집에 붙어살았다. 을축년(1805년) 겨울은 보은산방에서 살았으며, 병인년(1806년) 가을에는 이학래의 집으로 옮겨 살았다. 무진년(1808년) 봄부터 다산에서 살았는데, 통틀어 헤아리면 귀향살이 18년에 읍내에서 살기를 8년, 다산에서 10여 년이었다. 처음 왔을 때, 주민들은 두려워하여 문을 찢고 담을 허물며 편안하게 접촉하기를 허락지 않았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이 기피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10년은 다산의 학문이 무르익던 시기였고, 제자들에 대한 교육과 학문적 토론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여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실학 명저는 대부분 이 시기에 남겼다. 차에 관한 저서로 『각다고』(주3), 『여유당전서』(주4)의 차시茶詩, 『아언각비』(주5)의 차조茶條 등의 귀한 저서를 남겼다.

 

“사람이 귀한 이유는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뜻이 있어 모였다가 흩어진 뒤에 서로 잊어버린다면 이는 금수禽獸의 짓이다. 우리들 18명은 1808년 봄부터 1818년에 이르기까지 형이나 동생같이 모여서 글공부를 하였다.”

 

사람이 귀하고 금수와 다른 것을 분명히 하여, 삭막한 삶이 차와 함께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일 년에 두 번, 청명이나 한식날과 국화가 필 때 계원들은 다산에 모여서 모임을 행하며 운자韻字를 내어 부賦나 시詩를 지어 연명으로 적어 유산(주6)에게 보내는 일을 해야 하며, 곡우날 어린 찻잎을 따서 은근한 불에 말려 잎차 한 근을 만들고, 입하 전에 늦차를 따서 떡차 두 근을 만들어 시詩로 쓴 편지와 함께 부치기로 되어 있다.”

 

다산은 이렇게 계원의 실천 사항을 적고 있는데, 다신계는 사제師弟간의 끈을 이어가며, 신의信義를 다지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컴퓨터 통신

 

1994년 새 학기에 필자가 21년간 봉직하던 식품연구원에서 경북 상주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수원에 있는 가족과의 원활한 연락을 위해 컴퓨터 통신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앞선 호에서 언급하였었다.(주7)

 


사진 1. 어두움울 밝히는 지혜의 등불. 

  

PC통신은 전화망을 사용하여 문자, 숫자, 영상, 음성 데이터 등을 전송한다. 개인용 컴퓨터끼리 서로 연결한 통신 형태도 포함되고, 정보 서비스 제공을 위한 호스트 컴퓨터와 통신 장비를 설치하고 여기에 가입한 사람들이 개인용 컴퓨터로 접속하여 이용하는 형태의 전화 회선을 통한 통신 네트워크 서비스다. 이때 통신 회선은 주로 전화 모뎀을 통한 전화 회선이 사용된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1990년대에 게시판과 대화방, 그리고 자료실을 제공하는 PC통신 서비스 회사가 설립되었다. 예를 들면 하이텔(주8), 천리안(주9), 나우누리(주10), 유니텔(주11) 등이 있었다. 그중 가장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것이 하이텔이었다.

 

 

스캔 1. 창립총회 공지문.

 

 

스캔 2. 명등계 창립총회 후기.

 

 

  

하이텔에는 동호회가 아주 활성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1994년 3월 하이텔에 가입하고 처음에는 가족들과 e-mail을 주고받는 것만 하다가 몇 주 지나고 하이텔불교동호회(하불동)에 가입을 하였다. 전화선으로 atdt01410으로 접속하면 하이텔이 연결되고, ‘go bud’를 치면 바로 불교동호회에 접속 되었다. 사이버 세계를 처음 경험하니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불교동호회 게시판의 글들이나 대화방의 대화 내용이 왜곡되어 처음 불교를 접하는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기 쉬운 내용들이어서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당시 대표시삽이 정통 불교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자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로 작정하고 여러 경력을 쌓아, 처음 하나의 게시판을 담당하는 방장이 되고, 여러 방을 담당하는 게시판시삽이 되고, 이어서 게시판 전체를 담당하는 총괄시삽에 이어, 결국 대표시삽 선거에서 이교도와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겨서 최고 책임자인 대표시삽이 되었다.

 

명등계茗燈契 탄생

 

불교와 차가 가까워서인지, 필자가 차를 재료로 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서인지, 차에 대해 묻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차에 대한 관심이 더하여 차 관련 소모임을 신설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 총대를 맨 사람은 이경호(id;pyock)님이었다. 1994년 8월 26일 차를 좋아하는 사람의 모임을 갖고자 발의한 이후 그해 10월 23일 초의선원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용운(주12)스님께서 명등계茗燈契로 이름을 지어주셨으며 초대 유사에 이경호님이 피선되었다(스캔 1).

 

 

사진 2. 명선계 창립 모임 후기.

 

 

이렇게 하여 컴퓨터 통신 불교동호회 내에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모임인 ‘명등계’가 탄생하였다. 용운스님께서 주신 명등계는 한자로는 찻싹 명茗, 등불 등燈, 맺을 계契를 쓴다. ‘차를 좋아하면서 컴퓨터로 인연해서 모인 모임’이라 하여 찻싹 명 자를 쓰고, 부처님의 말씀처럼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는 모임으로 발전하라는 뜻이다. ‘회’라 하지 않고 ‘계’를 쓴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모임인 다신계茶信契처럼 의미 있는 모임이 되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셨다(스캔 2, 사진 1). 계의 규약은 따로 없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으로 다음과 같이 운영되어 오고 있다.

 

명등계는 일반 모임의 회장격인 유사有司와 총무격인 집사執事는 있으되 고정된 회원이 없다. 고정된 회원이 없으니 정기적으로 회비를 납부하지 않고 당일 참가비로 운영한다. 당일 결산하여 부족하면 누군가가 보충을 하거나 조금씩 다시 거출을 하거나, 남으면 모인 장소의 보시함에 넣고 회비를 저축하지 않는다. 참석하여 당일 참가비를 내면 계원이 되지만 다음에 다시 와야 한다는 부담은 전혀 없다. 2개월에 한 번씩 유사와 집사가 장소와 주제를 정하여 오프모임(주13)을 갖는다. 매년 음력 정월에는 새해맞이차회(新年茶會)를 한다. 모임은 당일의 주제에 따라 반시간 전후의 가벼운 강의가 있고, 약간의 질의응답이나 약간의 토론이 있은 후 차를 마시면서 차담을 계속한다.

 


사진 3. facebook 명등계 그룹.


 

하이텔 불교동호회의 명등계가 활성화되고 보니, 2년 후인 1996년 10월 20일 유니텔의 명선계茗禪契가 탄생하게 되었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필자도 창립총회에 동참하였다. 이 자료는 명선계의 초대 유사로 피선된 김상일님의 네이버 블러그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진 2).

 

명등계의 발자취는 창립 당시부터 1997년까지는 정리된 것이 있고, 2001년 10월까지의 모임 후기를 방에 올린 것을 프린트해 놓은 것을 선혜 이영희 님이 보관하고 있어 자세히 알 수 있다(스캔 3).

 

 

스캔 3. 명등계의 발자취.

 

 

KTH에서 서비스해 오던 하이텔과 KT가 운영해 오던 한미르를 2004년 7월에 통합하여 파란(Paran)이 되었다. 이때부터 파란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파란이 되면서 하이텔의 동호회가 그대로 파란으로 다 넘어갔는데, 파란에서 ‘하불동’은 이름을 ‘부처세상’으로 바꾸어 운영을 하였다. 이렇게 포털사이트가 여러 번 변경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명등계는 계속 그 명맥을 이었고, 2013년 8월 27일에 Facebook의 공개 그룹으로 만들어져 81명의 회원이 지금까지도 존속해 오고 있다. 홀로이나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 3).

https://www.facebook.com/groups/forteaman/

 

 

주)

1) 컴퓨터 통신:PC통신(dial-up internet access)은 개인용 컴퓨터(PC)를 다른 컴퓨터와 통신 회선으로 연결하여 자료를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2)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 송보頌甫,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籜翁 등. 가톨릭 세례명 요한.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 출생. 500여 권의 저서를 남긴 조선 후기 실학자.

3) 각다고傕茶考:다산 정약용의 저서 『경세유표經世遺表』 중에서 차茶에 관계된 글이다. 중원에서 시행한 전매제도를 검토하여 논하였음.

4)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다산 정약용의 저술을 정리한 문집으로 154권 76책으로 구성.

5) 『아언각비雅言覺非』:다산 정약용이 지은 나무 이름 따위의 200여 건의 어원 연구서.

6) 유산酉山 정학연丁學淵:1783-1859. 다산 정약용의 아들.

7) 찻잔 속에 달이 뜨네:『고경』 제98호, pp.61-69(2021년 6월).

8) 하이텔HiTEL은 1989년 시작된 케텔KETEL에서 1992년 하이텔로 변경된 컴퓨터 통신의 이름.

9) 천리안, chollian, 千里眼은 1995년에 시작된 (주)미디어로그의 인터넷 포털사이트.

10) 나우누리, nownuri, 1994년에 ㈜나우콤에서 제공하기 시작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11) 유니텔, Unitel은 본래 삼성SDS 산하 서비스로, 1996년부터 지금까지도 PC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곳이며, 1997년 작 영화 ‘접속’에서 한석규와 전도연이 대화하는 채팅방이 바로 유니텔임.

12) 석용운釋龍雲; 1972년 대한불교조계종 대흥사 출가, 1979년 일지암 복원 초대 주지. 1989년 월간 『다담』 발행인, 초의문화재단 이사장, 초의선사 탄생지 복원, 식품명인 47호(초의차, 초의병차). 『한국다예』, 『한국차문화자료집』 등 저서 및 논문 다수.

13) 오프모임; 컴퓨터에 관련된 기기器機들이 중앙 처리 장치와 직결되어 있는 온라인에서의 모임의 반의어로 온라인상이 아닌, 실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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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계간 《차생활》 편집인. (사)설가차문화연구원 이사장, (사)생명축산연구협회 협회장, (사)아시아-태평양 지구생명 환경개선협회 협회장, (사)한국茶명상협회 이사·감사. 현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 『차도학』(국립 상주대 출판부, 2005) 이외 저 역서 다수. 「차의 품질평가」 등 논문 및 연구보고서 10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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