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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성철스님이 아끼셨던 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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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12 월 [통권 제116호]  /     /  작성일22-12-05 14:28  /   조회2,26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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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이 가장 애독하고 가까이한 책은 어떤 책이었을까? 이것은 나만의 궁금증이 아닐 것이다. 예전 초등학교 시절, 매 학기가 시작될 때 새 교과서를 받으면 그날 집에 가자마자 헌 달력이나 그나마 세월이 좋아졌을 때는 문방구에서 팔던 포장지를 사서 책을 감싸던 때가 있었다. 새 학기 새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스님께서 즐겨 보신 옛 책을 이런 흔적에서 찾아보려 한다.  

 

응병여약應病與藥

 

스님께서 출가 전부터 소장해서 출가 후까지 줄곧 가지고 계셨던 옛 책 가운데 한의서가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편주의학입문編註醫學入門』 등이다. 『동의보감』은 조선시대 의관 허준許浚(1539~1615)이 중국과 조선의 의서醫書를 집대성하여 1610년에 저술한 것으로 목차 2권, 의학 내용 2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학 내용은 「내경편內景篇」(4권)·「외형편外形篇」(4권)·「잡병편雜病篇」(11권)·「탕액편湯液篇」(3권)·「침구편鍼灸篇」(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님은 완질의 25권을 모두 가지고 계셨다.

 

 『동의수세보원』은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으로 나누고, 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는 사상의학四象醫學에 대해 이제마李濟馬(1837~1900)가 1894년에 저술한 의서이다. 스님이 소장했던 책은 1921년 경성 박문서관博文書舘에서 인쇄한 신연활자본과 1942년 함경도 함흥에서 인쇄한 석판본이다. 특히 박문서관본은 겉표지가 한지로 다시 싸여 있으며, 스님의 메모가 책 곳곳에 남아 있다(사진 1).

 

사진 1. 『동의수세보원』 속 스님의 메모.

 

중국 명대 이천李梴이 1575년에 지은 『의학입문醫學入門』은 조선시대 5차례 정도 간행되었다. 스님이 소장한 책은 1818년(순조 18)에 내의원에서 간행한 『편주의학입문』 목판본[무인내국중교개간戊寅內局重校改刊] 19책이다. 국내에서 가장 널리 유통된 판본이다. 스님은 1930년 중국 상해 금장도서국錦章圖書局에서 인쇄한 『편주의학입문』의 석판본도 소장했는데, 필요한 내용별로 다시 묶어 제책해 둘 만큼 관심을 둔 책으로 보여진다. 『편주의학입문』 곳곳에 병기病機와 관련된 내용도 메모되어 있다.

 

한의서를 늘 가까이 두고 보신 만큼 스님은 약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 못지않아 웬만한 병은 처방전을 내려줄 정도였으며, 먼 길 떠나는 도반이나 몸이 약한 제자들의 약도 손수 지어주셨다고 한다. 응병여약이었다. 스님 자신이 어려서 몸이 아팠기도 했지만, 체질과 마음에 따라 생기는 병과 병든 몸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스님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 법대로

 

성철스님은 1947년 가을에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자운, 우봉, 보문스님 등과 함께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 아래 결사를 맺었다. 당시 결사에 동참한 이들이 스스로 지켜야 할 13가지 조항의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었다. 부처님의 계율과 조사 스님들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수행하며, 이외에 어떤 사상이나 제도, 개인적인 사견은 배제한다는 조항을 먼저 밝히고 있다. 신도에게는 재齋를 지낼 때만 지성으로 예배하고 공양물을 낼 수 있게 했다. 스님들은 신도의 보시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과 매일 두 시간 이상 노동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용변과 잠잘 때를 제외하고 여법하게 장삼과 가사를 수의하고, 공양도 정해진 시간에 하며 와발우를 쓰도록 했다. 지켜야 할 의식은 매일 한 차례 능엄대주楞嚴大呪 독송과 초하루와 보름에 보살대계菩薩大戒를 강송講誦하는 것이었다.

 

사진 2. 「실달학원 수행요강」(1964).

 

1964년 성철스님은 서울 도선사에서 청담스님과 승가대학 실현을 위해 실달학원悉達學園을 열고 시행요강을 마련하였다. 이때 마련한 「수행요강修行要綱」(사진 2)도 「공주규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사찰에서 가장 빈번히 간행되었던 불서는 바로 수륙재와 관련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인 결수문結手文과 중례문中禮文의 의식집이었다. 그런데 성철스님의 옛 책 중에는 조선시대 설행했던 수륙재나 의식 관련 불서가 한 책도 없는 것이 주목된다. 

 

성철스님은 일상 의례를 중국 당대의 『백장청규百丈淸規』에서 제시한 방법을 취한 듯하다. 『백장청규』에는 『화엄경』과 『수능엄경』 등 경전을 독송할 것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능엄주와 대비주 등을 외우도록 하고 있다. 선종에서도 참선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과송課誦이 의례와 수행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사진 3. 『선문일송』 앞표지.

 

특히 중국 청대 편찬된 『선문일송禪門日誦』은 매일 독송경전과 그 절차를 기록한 불교의례집으로, 이 책이 간행되면서 중국불교 의례는 한층 정비되고 선종사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파에서 『선문일송』에 근거하여 의식을 행해 오고 있다. 중국에서 주로 유통되고 있는 판본은 1900년 강소성 상주常州 천녕사天寧寺 간행본이다. 성철스님 소장의 『선문일송』 2책은 절강浙江 천동사天童寺원본原本을 금릉각경처에서 중간한 판본이다(사진 3). 특히 이 책 권1 제14장부터 제22장까지 「대불정능엄신주」의 한자 음역 옆에 성철스님이 범자梵字를 한 자 한 자 쓰면서 연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선문일송』은 스님이 대중들을 위한 아비라기도 등 예불문을 정립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수불석권手不釋卷

 

성철스님의 손길이 자주 닿은 불서는 역시 선사들의 어록과 선서禪書였다. 이 책들은 원래 표지 위에 다시 한지로 감싸 두셨다. 내게는 일종의 표식 같아 보인다. 주로 중국 금릉각경처에서 간행된 책이었다. 스님은 한국에서 간행된 책들보다 책 크기가 작고 얇아서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문고본 같은 금릉각경처 책을 선호하셨던 것 같다.

 

금릉각경처 책도 그렇지만 중국에서 만든 대부분의 책은 표지와 인쇄 종이가 한지보다 훨씬 얇은 죽지竹紙라 쉽게 찢어진다. 옛 장서가들이 중국에서 수입해 온 책들을 다시 한지나 비단으로 표지를 개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4. 『단경』.

 

그런데 스님께서 다른 중국서는 두고서 『단경壇經』(사진 4), 『선림돈오입도요문론禪林頓悟入道要門論』, 『균주황벽산단제선사전심법요筠州黃蘗山斷際禪師傳心法要』, 『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 『원오불과선사어록圓悟佛果禪師語錄』, 『선관책진禪關策進』, 『박산화상참선경어博山和尙參禪警語』, 『독대승기신론첩결讀大乘起信論捷訣』 등의 책표지를 한지로 싸 두신 것을 보면 유독 아끼신 책이 분명해 보인다. 

 

성철스님은 책을 읽고 관련된 내용을 별지에 메모하여 책 속에 꽂아 두시기도 했다. 예로 『조론약주肇論略注』와 『육조단경전주六祖壇經箋註』와 같은 책에서 확인된다(사진 5). 『조론약주』는 중국 동진 시대 승조僧肇(384~414)의 『조론』에 대해 명대 감산덕청憨山德淸(1546~1623)이 1617년에 주석한 것으로, 1888년 금릉각경처에서 간행한 책이다.『육조단경전주』는 중국 상해에 의학서국醫學書局을 설립한 근대 중국의 출판인이자 서지학자인 정복보丁福保(1874~1952)가 직접 주석한 것으로, 민국 연간(1918~1923)에 신연활자본으로 간행된 책이다.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성철스님은 법문에서 많은 경론과 어록 등을 인용하셨고, 출처가 정확히 확인되는 책만 해도 『백일법문』에는 80여 종, 『선문정로』에는 88종에 이른다고 한다. 초기불교에서부터 중관·유식·열반·천태·화엄·선 등 불교사상을 설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수많은 책을 철저히 탐독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책을 단순히 인용만 한 것이 아니라 역대 선지식들의 언어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자신의 수행체험을 풀어낸 사실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온다.

 

성철스님은 봉암사 결사에서 ‘부처님 법대로’의 정신과 백일법문에서 ‘불교의 근본정신’을 천명하셨다.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인도에서는 소승과 대승, 중국에서는 선과 교 등 수많은 고승들과 선지식인들이 부처님이 남기신 법에 대한 바른 해석과 그것을 어떻게 깨닫고 실천할지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 5. 『조론약주』 속 승조 관련 메모.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문자향’과 ‘서권기’란 말을 좋아한다. ‘문자향’이란 글자에서 나오는 향기를 말하고, ‘서권기’란 책에서 나오는 기운을 이른다. 하지만 책을 많이 접하고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문자향이 피어나고 서권기가 배어나는 것은 아니다. 옛 선비들은 학식과 인품이 뒷받침되어야 서권기와 문자향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십여 년 동안 많은 불서를 조사했지만, 정작 책 속에 담긴 내용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내 왔다. 책을 모르고 책 이야기를 해 온 지난 과오를 참회하며 이 연재를 마친다.

 

참고문헌

서재영, 「근·현대불교에서 퇴옹성철의 역할과 백일법문의 위치」, 『선학』 48, 한국선학회, 2017.

정영식, 「아시아 근대불교의례와 『선문일송禪門日誦』의 유통」, 『한국사상과 문화』 52,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성철스님의 책을 정리한 공덕을 회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섣불리 시작한 연재였습니다. 제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매달 실감했고, 마감을 누차 넘겨 책 내시는 분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알음알이로 쓴 문장으로 허물이 있었을 겁니다. 모두 참회합니다. 그나마 백련암 장경각에 비장秘藏되어 있던 ‘법계의 보물’을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한 일은 큰 다행이라 생각합니다(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https://kabc.dongguk.edu). 여기까지 제 소임을 갈무리하며 설익은 글을 봐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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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문연구원.
성철스님의 장경각 책이 계기가 되어 「19세기 불서간행과 유성종劉聖鍾의 『덕신당서목德新堂書目』 연구」(2016)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학위 취득. 「해인사 백련암 불서의 전래와 그 특징」(2020), 「조선후기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판본의 성립과정 고찰」(2021) 등 불교서지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crystal07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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