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및 특별기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깨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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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 2013 년 9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177회 / 댓글0건본문
성철 큰스님이 입적하시고 다비식이 있기까지 이레 동안, 그리고 그 후 사리를 수습하기까지 거의 모든 신문마다 큰스님의 생전의 가르침과 인품이나 일화, 조문객이 운집한 해인사 주변상황을 싣지 않은 날이 없었다. 머나먼 길을 마다않고 다만 기리고 슬퍼하는 마음에서 우러나 운집한 조문객의 수효에 있어서나, 중생들의 마음속에 남긴 빈자리의 크기에 있어서나, 어떤 지도자나 저명인사의 국장이나 사회장도 그만 못하지 않았나싶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그건 내가 나이 들어 선택한 종교이고, 어려서부터 내 심성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친 가정교육은 유교와 불교적인 게 혼합된 것이었다. 쉽게 풀어쓴 불교 경전이나 스님들이 쓴 글을 읽고 마음속 깊이 느끼고 위안을 받은 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글이나 말씀으로 접할 기회는 한 번도 없었다. 멀리서나마 뵌 적도 없고 뵙고 싶다는 엄두를 내본 적은 더군다나 없다. 그 어른이 어쩌다 속세에 내리시는 법어도 너무 어려워 나 같은 사람에겐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기’였다.
오랫동안 만인에 회자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어도 당시에는 너무 쉬워서 오히려 난해한 것 같은 묘한 느낌 때문에 불만스러웠고, 이 어른까지 대중을 우롱하시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까지 받았었다. 당시의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 어른 정도의 거인이라면 간악한 지도층과 소심하고 비열한 대중이 함께 정신이 번쩍 들고 간담이 서늘해질 추상같은 일갈을 내리실 수도 있으리라는 갈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때 그 어른이 대중의 마음에 쏙 드는 법어를 내리셨다면 아마 그 분은 당장 인기인이 되셨으리라. 그리고 우린 인기인을 얻은 대신 큰 어른을 잃었을 테고. 인기인은 쌔고 쌨지만 큰 어른다운 큰 어른을 모시긴 쉽지 않다.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말엔 선동성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가 너무 쉬워서 실망한 게 아니라 선동성이 없어서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쉬운 걸 도리어 어렵고 심오하게 느끼고 싶어 하다가 결국은 각자 자기 나름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대의 혼돈을 비춰보기도 했고, 진실에 입다물어야하는 자신의 왜소함을 돌이켜보기도 했지만 그게 그 법어의 참뜻에 얼마만큼 다가간 것인지 알 길은 없다.
이렇듯 그 어른은 말씀으로 대중을 깨우치기에는 매우 인색한 분이 아니었던가싶다. 그런데도 그 어른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대중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가 입적 후에 여실히 드러났다. 다만 계심으로 큰 산 같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왔을까. 수도자다운 수도자, 지도자다운 지도자, 스승다운 스승, 그 밖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다운’이의 희소성과 ‘다운’이를 모시고 싶은 대중들의 갈망이 합쳐서 그런 힘을 만들어 낸 게 아니었을까. 그 어른의 다비식은 지면이나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러웠다.
육신의 덧없음과 소유의 어리석음을 설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 날까지 일신의 영화와 소유에 집착하게 마련이고, 성직자라해도 그런 인간적인 한계에서 자유로운 분은 흔치않다. 성철 큰스님은 드물게 그런 세속적인 물욕과 명예욕에서 자유로운 삶을 몸소 실천하셨기 때문에 그 분의 육신이 적멸하는 자리 또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깨우침의 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리 신앙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성철 스님의 유골에서 사리가 안 나와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누더기 가사, 검정 고무신, 소박한 필기 도구 등 최소한의 소유만으로도 충분히 큰스님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비의 재가 식자마자 문도스님들이 정성들여 습골을 하며 사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리가 나왔으면 싶었다. 완전한 적멸은 너무 허전하지 않은가. 스님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장엄하게 육신의 허망함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은 중생대로 역시 가시적인 성인의 증표를 갖고 싶은 걸 어쩌랴. 과연 많은 사리가 나왔다니 기뻤지만, “큰 스님이 살아계셨다면 습골하고 사리 숫자를 발표하는 짓을 크게 야단치시고 사리를 뒷산에다 버렸을 것이다”라는 어떤 스님의 전언은 또 얼마나 유쾌한가.
그 말씀은 생전의 큰스님을 친히 모셔본 스님의 말씀이라,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거인의 면모가 약여하나, 큰스님과 일면식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속물스러운 상상력에 의하면 그 많은 사리를 모래알처럼 바라보시며 ‘나는 나요, 사리는 사리라’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 경향신문 1993년 1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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