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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신심信心이 성지聖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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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19 년 12 월 [통권 제8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34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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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1. 관음보살과 문수보살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如何是佛? 
금사탄 여울가의 마씨 부인 이로다. 金沙灘頭馬郞婦

 

이것은 임제종의 3세인 풍혈 스님의 법문입니다. 어떤 스님이 풍혈 스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님 입니까?” 하니 “금사탄 개울가의 마씨 부인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는 곳[낙처落處], 곧 근본 뜻은 각자가 공부를 하여 확철히 깨쳐서 참으로 자성을 밝혀야 알지 그전에는 모르는 것이니 부지런히 공부할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만 ‘금사탄두마랑부’라는 말의 출처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중국 섬서성에 ‘금사탄’이라는 유명한 강이 있습니다. 당나라 정원(貞元 785-804) 시기,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 천하일색의 여자가 이 강가에 살고 있었는데 사방에서 돈 있는 사람, 벼슬 높은 사람을 비롯하여 온갖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청혼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내 몸은 하나인데 청혼하는 이가 여러 사람이니 내 조건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시집가겠습니다.” 하며 『법화경』 「보문품」을 외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성철 스님과 미당 서정주 시인

 

 

그 이튿날 보니 스무 명이 『법화경』 「보문품」을 하룻밤 사이에 다 외워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강경』을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보니 또 십여 명이나 되어, 이번에는 『법화경』을 다 외워 오라고 했습니다. 『법화경』은 좀 많은데도 사람들은 그래도 이 미인에게 장가들 욕심으로 죽자하고 외웠습니다. 마씨 집 아들, 곧 마랑馬郞이 사흘 만에 다 외고 달려왔습니다. “참 빨리 외셨습니다. 한번 외어 보십시오.” 하니 줄줄줄 다 외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참으로 천하에 좋은 낭군을 찾아다니는 중인데 당신같이 좋은 낭군을 만났으니 이젠 한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시집가겠습니다.”

 

이렇게 결정되어 혼인날을 받고 성례成禮를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가 방으로 들어가자, 잠시 후 축하객들이 채 헤어지기도 전에 신부가 “아이구 배야, 아이구 머리야!” 하더니 갑자기 데굴데굴 구르다가 덜컥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랑은 이 처녀에게 장가들기 위해 밤잠도 안 자고 『법화경』을 외고 또 외었는데 신부가 죽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죽은 여인의 시체가 썩더니 진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천하일색, 그 아름답던 사람의 몸이 금방 오물이 되어 흘러내리니 참으로 흉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만승천자萬乘天子가 좋다 해도 죽어 썩으면 그만이듯이, 아무리 미인이라도 죽어서 썩으니 그만입니다.

 

마랑은 부랴부랴 관을 짜서 여자의 시신을 산에 묻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죽기 전의 그 처녀가 마랑의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자신이 박복하다고 한탄하며 지내던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마랑을 찾았습니다.
“일전에 이곳에서 처녀 한 사람이 죽지 않았습니까, 그 묘소가 어디 있습니까?”

 

묘소로 안내하니 스님이 갖고 있던 석장으로 묘를 탁 치는데, 묘가 둘로 갈라지면서 그 속에 소복하게 쌓여 있는 누런 황금뼈가 보였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죽은 사람인데 석장으로 추켜드니 금쇄골金鎖骨입니다. 뼈 마디마디가 고리가 되어서 머리부분을 드니 발 뒤끝까지 끌려 올라왔습니다. 그때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것을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 처녀가 바로 관세음보살이야. 이곳 섬서성 사람들이 하도 신심이 없어 너희들을 제도하기 위해 관세음보살님이 처녀 몸으로 나투어 온 것 이야. 이 금쇄줄을 봐!”
마랑은 『법화경』을 사흘 만에 다 욀 만큼 영리한 사람이어 곧 그 뜻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내가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구나!’
“이렇게 관세음보살이 좋은 법문을 해주었으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수행하거라!”
이렇게 말하고 그 스님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금사탄두마랑부’이니, 금사탄 개울가의 마씨 부인이라는 뜻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의 고사입니다.

문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관세음보살이 화현化現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의심이 가는 것을 이해가 안 된다고 하여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한다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세인世人에게 나타난 사례는 아주 흔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보타락가산寶陀洛迦山입니다. ‘보타’란 인도말로 ‘희다’는 뜻이고 ‘낙가’는 ‘꽃’이란 말로서 보타락가는 ‘흰 꽃’이란 뜻입니다. 관음도량觀音道場을 백화도량百華道場이라고도 합니다. 보타락가산에 조음동潮音洞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나는 가보지 못하였지만 사진으로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든지 정성껏 기도하면 수시로 관세음보살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성지聖地와 명소가 많지만 돈이 많이 생기는 곳은 보타락가산입니다. 온 천하 신도들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려고 많이 오기 때문입니다.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모여 향을 꽂고 정성껏 기도를 하면, 그 가운데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때로는 법문도 하고 여러 동작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신심이 솟아나 신도들이 돈을 막 쏟아 놓고 갑니다. 그래서 해방 전까지만 해도 보타락가산 절 한 곳에만도 대중스님이 사천여 명 살았습니다. 그리고 신도들이 자꾸 와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후에는 돈을 쏟아 놓고 갑니다.

 

그런데 제일 문제되는 것은 사신공양捨身供養입니다. 관세음보살 친견에 너무 감격하여 ‘이 몸을 관세음보살께 바치겠다’고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몸을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신공양을 못 하도록 관세음보살이 자주 나타나는 주변에는 이리저리 막아서 사람이 죽지 못하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그래도 가끔 사신공양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보타락가산의 관세음 현신現身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보타락가산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금사탄에도 퍽 자주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금사탄두마랑부’라는 이 이야기는 보통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고 선종의 가장 큰 종파인 임제종의 제3세 적손嫡孫인 풍혈 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풍혈 스님이 말씀하신 그 법문의 근본 뜻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부를 하여 확철히 깨치기 전에는 모르는 것으로, 나는 다만 그 연유가 어찌 된 것인가를 말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유명하며 기적적인 법문이 선가에 있습니다. ‘전삼삼前三三 후삼삼後三三’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문은 유명한 『벽암록碧巖錄』 제35칙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문수보살이 말씀하신 이야기입니다.

 

무착문희無着文喜 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중국의 오대산에 갔다가 금강굴 앞에서 웬 영감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영감을 따라가니 아주 좋은 절이 있어 그 절에 들어가 영감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영감이 물었습니다. 

“남방 불법은 어떻게 행하는가[南方佛法 如何住持]?”
“말세 중생이 계행이나 지키고 중노릇합니다[末法比丘 小奉戒律].”
“절에는 몇 사람이나 모였는고[多小衆]?”
“삼백 혹은 오백 명 모여 삽니다[或三百 或五百].”

 

무착 스님도 한마디 묻고 싶었습니다.
“여기는 불법이 어떠합니까[此間如何住持]?”
“범인과 성인이 같이 살고, 용과 뱀이 섞여 살지[凡聖同居 龍蛇混雜].”
“그럼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多少衆]?”
“앞으로도 삼 삼, 뒤로도 삼 삼이지[前三三 後三三].”

 

‘용과 뱀이 섞여 살고 범인과 성인이 같이 산다’는 말은 보통으로 들으면 그저 그런 것 같지만 그 뜻이 깊은 곳에 있습니다. 겉말만 따라가다가는 큰일 납니다. 무착 선사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노인과 작별하고 나와 돌아보니 절은 무슨 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게송을 읊었습니다.

 

시방세계 두루 성스러운 절 廓周沙界聖伽藍
눈에 가득히 문수와 말을 나누나. 滿目文殊接話談.
당시는 무슨 뜻을 열었는지 모르고 言下不知開何印
머리 돌리니 다만 푸른 산 바위뿐이더라. 廻頭只見翠山巖

 

그 후에 또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법문 들은 것이 있습니다. 선문禪門에서 흔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누구나 잠깐 동안 고요히 앉으면 若人靜坐一須臾 

강가 모래같이 많은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낫도다. 勝造恒沙七寶塔. 
보배탑은 끝내 무너져 티끌이 되거니와  寶塔畢境碎微塵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부처를 이루는도다. 一念淨心成正覺

 

이 게송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 출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착문희 선사가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이 ‘직접’ 무착 스님에게 설한 법문입니다. 그러니 관세음보살뿐 아니고 문수보살 같은 그런 대보살들도 32응신만이 아니라 삼백, 삼천, 또 몇 천억 화신을 나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불법을 성취하여 대해탈부사의 경계를 얻을 것 같으면 문수보살도 될 수 있고, 관세음보살도 될 수 있고, 보현보살도 될 수 있으며, 32응신이 아니고 백, 천 화신을 나타내어 자유자재하게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 입니다.

 

문수보살을 보는 가장 유명한 성지가 중국의 오대산인데 그곳에 가서 실제로 친견한 기록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보면 신라시대 자장 스님이 중국에 갔을 때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뒤 스님은 귀국하여 불교를 위해 여러 가지를 하시다가 나중에 태백산 정암사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때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문수보살이 직접 스님을 찾아왔지만 그만 시자들의 실수로 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나타나는가 하면, 노인으로 또는 동자童子가 되어 나타나는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몸을 나투어 중생을 교화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신심이 있고 오대산에 가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면 문수보살을 직접 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대산에 가야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낙가산에 가야만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爲度衆生故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지만 方便現涅槃
내가 실제 죽은 것 아니고 而實不滅道
항상 여기서 법을 설한다. 常住此說法

 

‘상주차설법常住此說法’이라 함은 항상 여기 계시면서 설법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란 시방 세계로서 처처가 ‘여기’입니다. 꼭 영축산만 여기가 아닙니다. 보타산이 어느 곳인가? 사람 사람의 신심이 보타산입니다. 철저한 신심으로 기도를 하면 어디든지 나타납니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는 곳이 보타산입니다. 문수보살 나타나는 곳이 오대산입니다. 오대산이 따로 없고 보타산이 따로 없으니, 사람마다 그 신심에 있습니다. 신심! 오직 신심으로 공부도 기도도 하면, 누구든지 살아서 관음도 문수도 볼 수 있으며 산 부처님도 볼 수 있습니다.

 

2. 농산행

 

일본 비예산比叡山은 천태종 본산으로 여기에 연역사延曆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천태종이 전교傳敎 대사에 의해 그곳에서 개종한 지는 약 1,200년이 되었는데, 1,200년을 계속 내려오면서 12년을 단위로 농산행籠山行이라는 수행을 합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가장 영리하고 가장 신심 있는 사람을 골라서 12년 동안 비예산의 정토원淨土院이라는 절에 앉혀 두고 공부를 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농산행이라고 합니다. 12년 만기가 되기 전에는 절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공부 방법이 1,200년 동안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습니다. 12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 대를 잇고 또 12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기를 100명 째 계속해 온 것입니다.

 

들어가는 첫째 조건은 대승계를 받는 것인데 그때의 계는 부처님에게서 직접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부처님에게서 받느냐 하면 기도를 간절히 하면 부처님께서 나타나 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상瑞相을 본다’는 것입니다. 농산을 할 때는 반드시 기도를 하여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기도하느냐 하면 하루에 삼천 배씩 절을 합니다. 이때 『삼천불명경』이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펴 두고 부처님 명호를 한 번씩 부르며 절을 하는데,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아주 정성껏 해야 하며, 절을 한 번 하고는 가루 향을 한 번씩 사르고 다시 절을 해야 합니다. 아주 천천히 하루종일 스물네 시간 동안 절만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백련암에서 삼천 배 절을 시켜 보면 어떤 사람은 제트기가 날아가듯 빨리 하여 세 시간이나 네 시간 만에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농산행을 할 때는 이렇게 아주 시간을 많이 들여 천천히 절을 하되 부처님께서 직접 나타나서 계를 주기 전에는 그칠 수가 없습니다. 삼천 배를 마치고 나서는 또 쉬는 것이 아니라, 가사 장삼도 벗지 못하며 앉고 눕지도 못하고, 변소 갈 때 이외에는 언제나 장좌長坐, 곧 그대로 앉아 지내며 누워서 자지도 못합니다.

 

2년이든 3년이든 부처님이 나타나서 계를 줄 때까지는 그치지 않고 삼천 배를 하면서 온 정성을 다 바쳐 기도하며 고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몇 달 만에 부처님이 나타나는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3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1,2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농산에 들어가 서 부처님의 서상을 못 본 채 12년 동안 농산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다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몇 해 전에도 12년 동안 농산을 하여 성취한 사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났습니다. 그는 지극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니 부처님이 나타나서 계를 설하더라고 했습니다.

 

 

1970-1971년 경 해인사 벽련암 장경각 앞에서 여러 스님들과 함께 한 성철 스님

 

 

농산행을 할 때는 그 먼저 농산행을 한 사람이 스승이 됩니다. 그것은 실제 부처님에게서 계를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인데, 자신들이 직접 체험했으니 다른 사람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1,200년 동안 농산행을 계속하여 이어 내려왔으니, 농산행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에게서 직접 계를 받는 것 입니다. 이 사실은 한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일본의 모든 불교 단체와 불교도가 다 아는 일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그만이라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못 본다고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눈감은 봉사가, 누군가가 “해가 참 밝고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눈앞이 캄캄하다고 해서 그를 미친놈이라고 욕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나 진리의 눈을 뜨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천태지자天台智者 선사가 혜사 스님을 찾아가서 공부를 하고 바로 깨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영산회상이 엄연부산儼然不散함을 자기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 말은 곧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상주하여 수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법을 설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지 수천 년인데 지금도 영축산에서 법문을 설한다는 말은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세상에 나느니 죽느니 하는 것은 꿈속에 사는 눈먼 중생들이 하는 말이요, 참으로 꿈을 깨어 눈이 뜨이게 되고 귀가 열리면 부처님이 항상 계시면서 법을 설함을 보고 들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다니시며 중생을 구하십니다. 그래서 설사 꿈을 깨지 못한 사람이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을 보려 하면 누구든지 다 볼 수 있는 것이니, 보지 못하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정성이 부족한 탓입니다. 우주 전체의 중생들이 정성만 지극하면 한 날 한 시에 다 같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 정성을 들여 병을 고친 사람, 큰 액난을 면한 사람, 죽을 것을 살아난 사람 등 그 밖의 여러 가지 기적이 수없이 많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신통력 갖추고 具足神通力 

널리 지혜 방편 닦아 廣修智方便
시방 모든 국토에 十方諸國土
어느 곳에든 현신 않는 곳 없다. 無刹不現身

 

달이 뜨면 천 개, 만 개 강에 달 비치듯이[千江有水 千江月], 부처님은 시방세계 어느 곳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현신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아주 돌아가 없어졌으면 모든 기적들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정성을 들여 그 정성의 정도에 따라 가피를 입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모두 꿈속의 중생들이 대하는 부처님이어서 잠깐 동안입니다. 그러나 꿈을 깨어 법法의 눈을 밝게 뜨면 부처님을 항상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것이니 부지런히 공부해서 속히 마음의 눈을 뜰 것입니다.

 

흔히 염기염멸念起念滅하는 것, 곧 생각이 일어났다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생사生死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가 없어졌다 하는데, 이러한 생멸하는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염기염멸하는 그 생각이 없으면 생사도 없습니다. 이것이 철저하여, 제8 아라야식의 근본무명, 무시무명無始無明까지 모두 끊어지면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한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교를 참으로 잘 믿으려면, 불교의 근본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믿어야 합니다. 눈먼 망아지가 요령소리만 듣고 따라가다가는 똥구덩이에 빠지고 흙구덩이에 처박히고 덫에도 걸리고, 심지어는 죽기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 목표는 생사해탈에 있습니다. 해탈이란 일시적인 자유가 아니라 영원한 자유입니다. 영원한 자유라 함은 생전사후生前死後를 통해 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통해 영원히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보기에서도 보았듯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결코 전설이나 신화가 아닙니다. 실제로 영원한 자유가 없다면 굳이 부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욕심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면 아무도 고생하면서 수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자유, 영원한 해탈이 있기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고행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천자天子보다 더 높은 이라도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그만이 아닌 영원한 자유를 구하기 위해 천자도 내버리고 참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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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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