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아름다운 불교의례 ]
용상방 ❶ 대중이 다 시켜주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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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2:41 / 조회231회 / 댓글0건본문
안거安居 철의 선방에는 큼지막한 용상방龍象榜이 걸려 있다. 선방 스님들은 전국의 각지에서 참선 정진을 위해 한시적으로 모였으니, 석 달 동안 함께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대중생활의 화합과 규율이 중요하다. 이에 대중의 소임을 정하여 각각의 직책과 법명을 적은 것을 용상방이라 부른다. 큰방에 당당하게 걸린 용상방은 선방 대중생활의 여법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부처를 이루리라 발심한 용상들
용상방을 구성하는 가장 큰 목적은,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소임을 한눈에 파악하여 안거를 날 때까지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원이 많든 적든 선방 구성원은 빠짐없이 소임을 맡는 것이 규율이니, 용상방은 안거 대중의 전체 명단을 소임에 따라 분배한 것이기도 하다.

‘용상龍象’이란 물과 뭍의 으뜸이 되는 용과 코끼리를 뜻한다. 용맹정진하는 수행자들을 용상에 비유하여 천하를 아우르는 영장靈長의 표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선방을 ‘선불장選佛場’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송광사 대방에 용상방 대신 ‘사자좌목獅子座目’이라고 쓴 것도, 부처님을 사자에 비유하듯이 사자는 모든 동물을 조복시키는 권능과 위엄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에 1946년 가야총림 방장으로 추대된 효봉曉峰 스님은 방함록 서문에서, “사자의 힘줄과 코끼리의 힘으로 판단하여 지체함 없이 한칼로 두 동강을 내야 한다.”라며 용맹정진을 당부하였다. 송광사 보성菩成 스님 또한 “생사를 벗는 일대사에 투신한 출격 장부들은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용상들”이라 하였다. 모두 부처를 이루리라 일대 발심한 출가수행자의 충만한 기개를 느끼게 한다.
안거를 맺는 것을 결제結制, 푸는 것을 해제解制라 하니 안거의 용상방을 ‘결제방結制榜’이라고도 부른다. 안거뿐 아니라 큰 법회나 수륙재·영산재 등의 재회에서도 용상방을 짜서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둔다. 목적은 같지만 모임의 성격이 다르니, 안거 선방에 거는 용상방과는 소임이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다.

한철 안거를 위해 머물고자 하는 선방에 허락을 얻게 되는데, 이를 ‘방부 들인다’, ‘입방한다’라고 표현한다. ‘방부·입방’은 모두 선방의 용상방·결제방에 대중명단으로 든다는 뜻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방榜에 이름을 붙여[付] 선방 대중이 되는 것을 ‘방부榜付’라 하고, 방목에 이름이 들어가니 ‘입방入榜’이라 부른다. 입방을 선방에 들어간다는 뜻에서 ‘입방入房’이라고도 쓰나, 윤창화 선생의 지적처럼 일관된 의미로 보아 ‘入榜’이 더 맞는 표현인 셈이다.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으면 선방에 방부를 들일 수 있게 되니, 처음 용상방에 기재된 자신의 법명을 보며 예비 스님들은 더없이 감격스러웠다. 행자시절 발우공양 뒷바라지로 찬상을 나르던 본절 대방에 가사·장삼을 갖추고 입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때의 입방入房이 행자로서 들어갈 수 없었던 대방의 일원이 되는 통과의식이라면, 안거의 입방入榜은 스스로 선방을 택하여 선배 수행자들과 나란히 부처님이 되기 위해 본격적인 수행에 드는 것이라 하겠다.
방목에 이름 붙여 대중이 되다
대중생활에 필수적인 것은 규칙과 업무분장이다. 부처님 당시 승가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하나씩 만들기 시작한 규범이 거대한 율장律藏을 이루었고, 안거 철에 많은 대중이 모이자 필요한 소임을 하나씩 정하기 시작하였다.

안거는 범어로 ‘바르시카varsika’라 하는데, 이는 ‘우기雨期’라는 뜻을 지녔다. 인도에서는 몬순기에 접어들면 많은 비가 내려서, 수행자들은 석 달간 승원이나 동굴 등에 머물며 수행에만 전념토록 한 것이다. 폭우로 인해 탁발이 힘들뿐더러, 우기에는 벌레들이 땅 위로 나오니 이때 바깥출입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생명을 밟아 살생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여름철 안거를 우안거雨安居라 불렀다.
부처님은 뜻을 함께하는 비구들이 모여 안거 정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중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들 자신에게 일깨워 주었다. 이에 어느 날 제자들에게 ‘대중이 시켜주는 공부’에 대해 질문하여, 아난존자阿難尊者가 ‘공부의 반은 대중이 시켜준다’라고 하자, 부처님은 ‘반이 아니라 대중이 다 시켜주는 것’이라 하였다.

고려의 야운野雲 스님 또한 「자경문自警文」에서, 훌륭한 뜻을 지닌 이들과 함께 수행하는 대중생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다.
솔밭 속의 칡은 곧게 나서 천 길도 솟을 수 있고
띠풀 속의 나무는 석 자를 면하지 못하게 되리니
松裏之葛 直聳千尋
茅中之木 未免三尺
출가 대중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비록 덩굴식물인 칡이라도 소나무 숲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주변의 영향으로 곧게 자라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소인배들과 함께 있으면 비록 나무라 하더라도 풀 속에 서 있는 듯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되리라 하였다.
그러니 선방 스님들은 용상방에 오른 대중이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요, 나태함이 없는 서로의 용맹정진이 수행의 동력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중과 함께 정진할 수 있는 것을 더없이 큰 복으로 여겼다.
중국불교에 와서 남방에 없는 삼동결제三冬結制라는 개념이 생겨나, 하안거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석 달간 동안거에 들고 있다. 대승불교권의 선방문화는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懷海 스님이 8세기에 선종 총림의 문을 처음 열면서 갖추어 나갔다. ‘대중생활의 규범인 청규’와 ‘총림 운영에 필요한 직책’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간 것이다.
당시는 방부·입방을 ‘괘탑掛搭’이라 하였다. 괘탑이란 발우 걸망을 건다는 뜻으로, 대방의 정해진 자리에 걸망을 걺으로써 대중생활의 자격이 주어짐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에서도 1930년대까지 괘탑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다가, 어느 시기부턴가 방부·입방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장선사 당시 안거에 소임별 대중명단을 붙이면서 이를 ‘집사단執事單’ 등이라 부르다가, 남송 후기 원나라 무렵에 ‘용상방’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옛 스님들은 용상방을 쓸 때 마지막 부분에 거북 ‘귀龜’ 자를 커다랗게 썼다. 용龍과 귀龜는 한옥의 상량문上樑文에서 흔히 드러나는데, 상서로운 동물을 앞세워 삿된 기운을 멀리하고 복을 부르는 의미와 함께, 모두 물을 상징하니 화재를 예방하는 상징성이 두루 담겨 있다. 따라서 방문 제목인 ‘용상방’과 거북을 양쪽에 배치함으로써 용과 거북이 짝을 이루는 길상과 신성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짐작된다.
어산 어장인 동희스님은 행자 시절에, 경필을 맡은 스님이 커다란 붓으로 먹을 찍어서 거북 형상으로 ‘귀’ 자를 쓰는 모습이 신기하였다. 거북 머리에서 시작하여 둥근 등의 사각 문양과 네 발을 만든 다음, 길게 늘어뜨린 꼬리까지 붓을 떼지 않고 단숨에 그려내곤 한 것이다. 이에 눈여겨보았다가 스님 또한 종이에 연습해 보곤 하였다.
근래 신촌 봉원사와 양주 청련사의 안거 대방에서 거북을 그린 용상방을 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송자방誦字榜도 커다랗게 걸렸는데, 송자방은 안거 때 중요한 절차에서 소리할 내용을 써두는 방이다. 두 곳 모두 송자방에는 ‘용’ 자를 써두어 용상방의 ‘귀’ 자와 짝을 이루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은 태고종 사찰을 중심으로 전승되며, 스님들의 해학이 돋보이는 문화이다.
방부 들이기
선방에서 한철 수행하려면 머물고자 하는 사찰에 방부를 들여야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방부 허락이 쉽지 않았다. 결제 대중으로 동참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통과의식이 따른 것이다.
손님을 맞는 지객知客에게 방부를 청하면, 대개 방사가 좁다거나 인원이 찼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면 선객禪客은 순순히 포기하지 않고 삼일 정도 그곳에 머물면서 일반대중과 같이 생활하였다. 어느 사찰이든 객승客僧으로 삼일 정도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선객은 이 기간에 예불이든 공양이든 모범을 보이면서 근기를 드러내고, 지객은 주변 의견을 들어가면서 이를 지켜보다가 대중으로 받아들여도 될 만할 때 승낙하였다.

그뿐 아니라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찰 살림이 궁핍하여, 선방이든 강원이든 그곳에 머물려면 자비량自費糧으로 자신의 식량을 가져가야 했다. 이에 석 달 치 쌀을 준비해서 방부 들이고, 한철 수행을 마치면 틈틈이 탁발로 다음 결제 식량을 장만하는 것이 해제 철의 주요 임무였다. 이불 보따리에 좌복과 비누까지 싸 가야 했으니, 법의와 발우 정도만 걸망에 넣고 떠나는 오늘날의 단출한 입방에 비하면 여러 관문이 있었던 셈이다.
입방을 정하는 시기 또한 근래에는 대폭 앞당겨졌다. 안거 중에 다음 철의 방부를 들이는 문화가 자리 잡아, 하안거·동안거 해제를 열흘 정도 앞두고 일찌감치 입방을 청하게 된다. 전화로 신청하고, 해제 직후 선방에 가서 방부 인사를 드리고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다. 결제 3일 전쯤 선방에 가서 도량을 청소하며 결제에 대비하고, 결제 전날 저녁에 전 대중이 대방에 모여서 용상방 소임을 짜게 된다.
예전에는 커다란 한지를 이어 붙여 철마다 용상방을 새로 구성하였다. 붓으로 소임을 크게 쓴 다음, 각 직책 아래 법명을 한지에 작게 적어 붙이는 방식이다. 근래에는 나무판을 만들어 두고 소임을 직접 쓰거나 한지로 써 붙여서, 용상방 틀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선방이 많다. 철마다 바뀌는 법명만 새롭게 붙여서 번거로움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봉원사·청련사처럼 소임 아래 붙이는 법명에 오색 종이를 사용하는 이채로운 용상방도 있다.
용상방을 작성할 때 본채에 상주하는 사판事判 스님은 동쪽에서부터 쓰고, 참선을 위해 찾아온 선방의 이판理判 스님은 서쪽에서부터 순서대로 쓰는 게 관례이다. 따라서 용상방의 양쪽부터 높은 소임에서 시작하여 중앙으로 갈수록 낮은 소임이 오게 된다. 대방의 자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북쪽에 해당하는 불단을 마주하여 동쪽을 청산靑山, 서쪽을 백운白雲이라 부른다. 상주승은 ‘산처럼 자리를 지킨다’ 하여 청산이라 하고, 체體에 해당하는 동쪽에 앉는다. 또한 한철 정진을 위해 찾아온 선객은 ‘구름처럼 머묾이 없다’ 하여 백운이라 하고, 용用에 해당하는 서쪽에 앉는 것이다.
출가자의 수가 점차 줄어드니, 안거 선방에 방부 들이는 선객의 수도 그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출가자 감소와 나란히 선객들의 안거 정진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한 번 안거에 들어 철마다 연속으로 선방을 지키는 구참 선객들이 많아, ‘세 철 정도 나면 방부를 빼도록 하는 삼진아웃제’를 고민하는 선방도 있다. 일 년의 반을 하안거·동안거로 정진하는 선객들이 서로 만나면, 가장 먼저 ‘다음 철엔 어느 선방에서 날 것인지’ 묻곤 한다. 구도의 일념으로 선방을 찾아 전국을 유행遊行하는 출가자의 면모가 ‘백운白雲’이라 할 만하다.
여름·겨울의 결제가 ‘공부 철’이라면, 봄·가을의 해제 기간은 ‘산철’이라 부른다. 맺은[結] 경계를 풀었으니 산철은 ‘풀고 흩어진다[散]’라는 의미로 새기는 듯하다. 산철에도 좌선 수행의 고삐를 놓지 않고 안거에 드는 선객들이 있어 이를 ‘산철 결제’라 한다. 불영사 천축선원에서는 산철의 봄안거·가을안거를 ‘산중결제’라 부르며 수행 열기가 뜨겁다. 이처럼 산철결제·산중결제 하는 선방이 드물어 방부 들이기가 본철보다 힘들다고 하니, 선방 승려들의 수행 열기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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