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종교의 심층을 통섭한 참 스승 류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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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5 년 12 월 [통권 제152호] / / 작성일25-12-04 11:05 / 조회20회 / 댓글0건본문
심층 종교의 길을 밝혀준 사람들 12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1890~1981)는 우리나라가 낳은 특출한 종교 사상가입니다. 다석학회 회장 정양모 신부에 의하면, “인도가 석가를, 중국이 공자를, 그리스가 소크라테스를, 이탈리아가 단테를, 영국이 셰익스피어를, 독일이 괴테를, 각각 그 나라의 걸출한 인물로 내세울 수 있다면, 한겨레가 그에 버금가는 인물로 내세울 수 있는 분은 다석 류영모”라고 했습니다.
다석의 삶
영모는 1890년 3월 13일, 서울 숭례문 수각다리 인근에서 아버지 류명근과 어머니 김완전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05년 15세에 개신교에 입문하여 연동교회에 다녔습니다. 1910년부터는 삼일운동의 33인 중 하나가 된 남강 이승훈이 세운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의 초빙을 받아 과학과 수학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오산학교에 미리 와 있던 춘원 이광수를 만나 동료 교사로 함께 지냈습니다.

류영모의 영향 아래 주기철, 함석헌, 한경직 같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류영모 자신은 오산학교를 떠나면서 자기가 오산학교에서 가르치던 그리스도교 정통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리스도교에 입교한 지 7년 만의 일입니다.
1912년 오산학교에서 나와 일본 도쿄 물리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다니다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귀국해 버렸습니다. 예수처럼 참나, 얼나를 깨닫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사는 데 대학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이른 것입니다. 마치 원효가 당나라로 유학 가다가 동굴에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진리를 깨친 후 유학을 포기한 것을 연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1921년 류영모는 오산학교 교장이 되어 봉직하고 있었는데, 일제 당국으로부터 교장 인준을 받지 못해 결국 1년 남짓 머물다가 교장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졸업반 학생이었던 11년 연하의 제자 함석헌을 만나 평생 가장 가까운 사제지간의 연을 맺었습니다. 오산을 떠날 때 배웅 나온 함석헌에게 “내가 이번에 오산에 왔던 것은 함咸 자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던가 봐.”라 했다고 합니다.

서울로 돌아온 류영모는 1928년부터 YMCA 연경반을 지도하기 시작, 1963년까지 약 35년간 계속하였습니다. 『요한복음』 등 그리스도교 경전은 물론 『도덕경』 등 이웃종교의 경전도 강의했습니다.
1937년 겨울 어느 날 《성서조선》 모임에 참석했다가 김교신 등의 간청에 못 이겨 『요한복음』 3장 16절을 풀이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류달영의 보고에 의하면, 류영모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는 말을 하느님이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의 씨앗을 넣어주셨다는 뜻이라고 하고, 사람은 제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의 씨앗을 키워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1941년 크게 깨친 바가 있어 2월 17일부터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을 실행하기로 하고 다음 날에는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해혼解婚을 선언했습니다. “남녀가 혼인을 맺었으면 혼인을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혼이 아니라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오누이처럼 산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해혼을 실행한 것은 ‘홀로’ 은둔 수행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단독자 됨, 홀로 섬, 고독은 종교사를 통해 볼 때 선각자들이 거쳐야 할 운명인 셈입니다.

1943년 음력 설날 류영모는 일식日蝕을 보려고 서울 북악산에 올라갔다가 안개가 온 장안을 덮고 있고 그 위로 아침 해가 불끈 솟는 것을 보았습니다. 솟아오른 태양으로 황금빛이 된 하늘, 안개로 황금 바다를 이룬 땅, 그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유영하다가 허공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가히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하나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류영모 사상에는 삼재가 자주 등장합니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 십자가는 사람(ㅣ)이 땅(ㅡ)을 뚫고 솟아올라 둥글고 원만한 하늘(·)로 통함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풀었습니다.
류영모는 죽기 얼마 전부터 정신을 놓은 상태였습니다. 1980년 아내 김효정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함석헌이 장례를 주재했는데, 류영모는 아내의 죽음을 알지 못한 듯했습니다. 아내가 죽고 6개월 후인 1981년 2월 3일, 류영모는 육신의 옷을 벗고 ‘빈탕한데’에 들어갔습니다. 40년간 하루 한 끼씩 먹고 산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산 기간은 90년 10개월 21일, 날수로 3만3천2백 일이었습니다.
그의 가르침
이제 그의 특별한 가르침 몇 가지만을 예로 들면서 그의 가르침이 세계 종교사에서 심층 종교가 갖는 보편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기로 합니다.
첫째, 하느님은 ‘없이 계신 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류영모는 하느님을 두고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 혹은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와 마찬가지로 ‘있음’과 ‘없음’의 어느 한쪽만의 범주로 제약할 수 없는 궁극실재라 보았습니다. 따라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기에 결국 있음과 없음을 함께 아우르는 말로 ‘없이 계심’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의 실감 나는 우리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삶은 놀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류영모는 삶을 놀이나 잔치로 보았습니다. “이 세상의 일 (…) 잠을 자고 일어나고 깨어 활동하는 것을 죄다 놀이로 볼 수 있다.”, “이 지구 위의 잔치에 다녀가는 것은 너, 나 다름없이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묶고 묶이는 큰 짐을 크고 넓은 ‘한데’에다 다 싣고 홀가분한 몸으로 놀며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당에는 이 몸까지도 벗어버려야 한다. (…) 다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몸이 되어 빈탕한데로 날아가야 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빈탕한데 맞춰 놀이[空與配享]’로 요약합니니다. 하느님이신 공과 더불어 짝을 지어 놀이를 즐긴다는 뜻입니다. 시인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의 마지막 구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를 연상하게 합니다.

셋째, 류영모는 ‘가온 찍기’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입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여기서 ‘ㄱ’은 하늘, ‘ㄴ’은 땅, 그 가운데 찍힌 점 ‘ㆍ’은 사람으로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한 점, 순수한 주체로서의 나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이 순수한 본연의 얼나는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에서도 벗어나고 여기저기라는 공간의 제약에서도 자유로운 존재 자체입니다. 말하자면 ‘영원한 현재(eternal now)’에 머무는 때 묻지 않은 참나를 가리킵니다. 그에게는 ‘오늘’만 있을 뿐인데, ‘오늘’은 ‘오+늘’, ‘오~영원!’입니다.
넷째, ‘죽어서 다시 살다’라는 가르침입니다. 거의 모든 심층 종교에서는 우리의 ‘이기적 자아(ego)’, ’작은 목숨(small life)’, ‘작은 자아(small self)’에서 죽고 큰 ‘목숨(Life)’, 큰 ‘자아 (Self)’에서 새 생명을 얻으라고 가르칩니다. 류영모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몸나, 제나에서 죽고 얼나로 ‘솟남’에 대한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다석 류영모는 모든 것이 “하나로 시작해서 종당에는 하나로 돌아간다[歸一].”고 합니다. 심층 종교의 공통분모 격의 가르침입니다.
여섯째, 예수를 ‘믿는 이’로 본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고치면 ‘예수에 대한 믿음(faith in Jesus)’이 아니라 예수가 가지고 있던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가진 믿음에 따라 십자가에 달린 것같이 우리도 예수의 믿음을 본받아 십자가에 달림이 중요한 것이라 보았습니다.
류영모는 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승천과 재림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가 하늘로 올랐으면 우리도 예수처럼 하늘로 솟아올라야 마땅하거늘 땅에 주저앉아 그의 다시 오심만을 기다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운 님 따라 오르는 것이 옳은 일인데도 오리라 생각하며 그리워하고만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일곱째, 생각과 ‘바탈퇴움’의 가르침입니다. 류영모에게 있어서 ‘생각’은 ‘각을 낳는 행위’, ‘깨침을 얻는 행위’, ‘이기적인 제나에서 참나와 하나 되는 솟남의 행위’를 뜻합니니다. 이것은 내 속에 불이 붙어 옛날의 내가 타고 새로운 내가 탄생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 생각의 불이 타고 있으면 생명에 해로운 것은 나올 수 없다.”, ‘바탈퇴움’, “나무의 불을 사르듯이 자기의 정신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 바탈이 타지 못하면 정신을 잃고 실성失性한 사람이 된다.”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여덟째는 ‘유불도 기독 회통會通’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다석 류영모는 “내가 『성경』만 먹고 사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유교 경전도 불교 경전도 먹는다.”, “예수, 석가는 우리와 똑같다 … 유교, 불교, 예수교가 따로 있는 것 아니다. 오직 정신을 ‘하나’로 고동鼓動시키는 것뿐이다. 이 고동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올려 보낸다.”고 했습니다.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라 하는 종교 전통별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대로 표층 종교냐 심층 종교냐를 따지고, 심층일 경우 그것이 어느 전통이든 모두 우리를 참 하나와 하나 되게 도와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류영모는 참으로 우리에게 표층 종교에서 심층 종교의 가르침으로 발돋움하라고 일러주는 우리의 참된 스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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