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산승이 달빛을 탐내더니
페이지 정보
편집부 / 1997 년 6 월 [통권 제6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10,163회 / 댓글0건본문
이규보(1168-1241)는 고려 사대부 계층을 대표하는 문신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교의 교리를,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진리를 응용하였다. 이규보는 이러한 부류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의 호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하였으며, 수많은 승려와의 교유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의 시 중에서 불교적인 정신세계를 탐색하는 색채가 강렬한 시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詠幷中月
山僧貪月色 산승이 달빛을 탐내어
幷汲一甁中 한 병에 함께 길었네.
到寺方應覺 절에 닿으면 곧 알리라
甁傾月亦空 병을 기울이면 아무 것도 없으리란 것을.
산승은 산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한가로움을 몸소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 한가로운 마음이 어느 한 순간 잠시 우물 속의 달을 보면서 색을 구분하는 분별심이 머리를 내밀었다. 달은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이며, 달빛은 변화되는 존재를 말한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산승이 바라본 달은 본체요 동시에 본성의 자리이다. 반면에 우물의 달빛은 그것의 가시적인 존재에 해당한다. 그 본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인 달빛을 탐하여 그것을 병에다 담아오는 스님이 있다.
그 병 속에 달빛이 없다는 것을 절에 와서야 비로소 알았다. 절은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는 공간적인 의미이며, 절까지 오는 오솔길은 수도하는 시간을 양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병을 기울여 보니 달빛이 없는 즉 본성 또한 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바로 달은 텅 비고, 달빛은 형상이 없고, 병 속의 달빛이 지음이 없다는 것이며, 이것은 마음과 뜻과 식(識)의 세 해탈문을 말한 것이다. 이때 둘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화마가 할퀴고 간 산청에서 방생법회를 봉행하며
2001년에 성철 종정예하의 출생지에 생가를 복원하고 그 앞쪽에는 대웅전을 지었습니다. 경내로 들어오는 입구쪽에는 2층 목조기와집을 지었습니다. 2층 목조건물 1층 기둥은 직경 40cm가 넘는 돌기…
원택스님 /
-
홍성 상륜암 선준스님의 사찰음식
충남 홍성의 거북이 마을에는 보개산이 마을을 수호합니다. 보개산 숲속에는 12개의 바위가 있고 하나하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자락의 끝에는 작은 암자 상륜암이 자리하고 있습니…
박성희 /
-
티베트 난민들의 귀의처 포카라의 빼마찰 싸캬 사원
포카라 근교 햄쟈(Hemja) 마을에 자리 잡은 따시빨켈(Tashi Palkhel) 티베트 난민촌 캠프 위에 자리 잡은 빼마찰 사원은 포카라-안나푸르나 간의 국도에서도 눈에 잘 띈다. 사진…
김규현 /
-
하늘과 땅을 품고 덮다[函蓋乾坤]
중국선 이야기 50_ 운문종 ❺ 문언文偃이 창립한 운문종의 사상적 특질은 ‘운문삼구雲門三句’에 있다고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서는 “소양韶陽(…
김진무 /
-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신록으로 눈부신 5월은 가족의 달이자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달’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어머니 마야부인을 통해 이 세상에 나오셔서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셨는데,…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