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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거사선]
선교(禪敎)에 통달한 황벽 선사의 아난, 배휴 거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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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  2014 년 4 월 [통권 제12호]  /     /  작성일20-05-29 14:26  /   조회7,19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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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번의 연재에서는 남전 선사와의 ‘유리병 속의 거위’문답을 통해 깨달은 육긍 대부가 은둔하던 남전 선사의 법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호에서는 역시 무명의 선승이었던 황벽 선사의 법을 세상에 드러낸 배휴 거사의 삶과 깨침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신당서(新唐書)』등의 전기에 따르면 배휴(裴休: 797~870)는 맹주(孟州) 제원(濟源)에서 출생하였고, 자는 공미(公美)이다. 진사시험을 치러 현량방정(賢良方正)에 뽑힌 뒤 여러 관직을 거쳐 병부시랑영제도염철전운사, 중서문하평장사, 선무군절도사와 소의(昭義), 하동(河東) 등 여러 곳의 절도사를 역임하였다. 74세로 입적한 뒤에는 태위(太尉)에 봉해졌다. 그는 문장과 해서체 글씨에 능하였으며, 교양이 깊고 성품이 온화하였다. 특히 불교를 공부한 뒤에는 술과 고기를 멀리하고 불경과 선어록을 편찬하고 유명한 서문도 많이 썼다.

 

이처럼 배휴 거사는 학문과 권세를 두루 갖춘 선종의 재가 수행자로서 여러 선사들의 어록에 일화를 남겼고 직접 선어록을 편찬하기도 했다. 특히, 화엄선(華嚴禪)의 대가인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 선사와 황벽희운(黃檗希運: ?∼850) 선사에게 사사하여 두 고승의 저작에 서문을 쓰고, 황벽 선사의 법어집인『전심법요(傳心法要)』를 편찬하였다. 당 무종(武宗)이 일으킨 회창(會昌: 841∼846)의 폐불사건 때는 속세에 숨어 사는 위앙종의 개조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를 위산 동경사(同慶寺)에 모시기도 하였다.

 

『경덕전등록』에 배휴 거사가 황벽 선사를 처음 만나는 선화가 전하는데, 이 일화는 ‘황벽형의(黃檗形儀)’라는 화두가 되어『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등 여러 공안집에 수록되어 있다.

 

상국(相國) 배휴는 하동(河東) 사람인데, 신안(新安) 태수로 있을 때 황벽희운 선사를 우연히 만났다. 황벽 선사는 처음에 황벽산에서 대중을 버리고 대안정사(大安精舍)로 들어가 노역하는 무리들과 섞여 숨어 살고 있었다.

배휴 거사가 절에 도착하여 벽화를 보다가 소임자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의 진영(眞影)입니다.”

“진영은 볼 만한데 고승은 어디 있습니까?”

소임자가 대답을 못하자 다시 물었다.

“이곳에 선(禪) 닦는 사람은 없습니까?”

“요즘에 한 스님이 절에 들어와 막일을 하고 있는데 자못 선승 같은 데가 있습니다.”

공이 모셔오라 하여 황벽 선사가 이르자,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게 마침 한 가지 물을 말이 있는데 스님네들이 말씀을 아끼시니, 대신 한 말씀 해주십시오.”

황벽 선사가 “물으십시오!”하니,

배휴 거사는 앞에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하였다.

선사가 “배휴!”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부르자,

거사가 “예!”하는데,

선사가 “어디 있느냐?”하였다.

거사가 당장에 그 뜻을 깨닫고 마치 상투 속 구슬을 찾은 듯 기뻐하며 말하였다.

“스님께선 진짜 선지식이십니다. 이렇게도 분명하게 법을 보여주시면서 어째서 이런 데 숨어 계십니까?”

배휴 거사는 이때부터 제자의 예를 올리고 다시 황벽산에 머무시기를 청하였다. 거사는 조사의 심법을 훤히 깨치고 교학까지도 두루 꿰었으니, 제방 선사들은 모두 배 상국은 황벽스님 문하에서 헛 나온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배휴 거사 진영

 

이상은『인천보감(人天寶鑑)』에 기록된 황벽 선사와 배휴 거사의 역사적인 만남과 깨침에 대한 기록이다.

 

위 문답에서 배휴 거사가 “진영은 볼 만한데 고승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질문한 것은 ‘형상을 떠난 진짜 고승 즉, 깨달은 사람은 어디 있는가?’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초상화를 남기고 입적하신 고승의 본래면목은 어디 있는가?’하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 절에 본래면목을 깨친 선승이 있는가를 떠보는 공격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선승이 아닌 소임자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대신, 선승의 풍모가 느껴지는 황벽 선사를 모셔온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황벽 선사는 키가 7척, 이마에 육주(肉珠)가 있었으며, 철저하게 세속을 초탈한 천연의 선승이었다.

 

배휴 거사가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자, 황벽 선사는 ‘고승이 바로 여기 있다’고 암시하며, 갑자기 “배휴!”하고 거만한 벼슬아치의 이름을 부른다. 배 상국의 이름을 부른 것은 거사의 ‘본래 주인공〔本來面目〕’을 일깨우는 할(喝)이기도 하다.

 

뜻밖에 이름이 불린 거사는 어떤 생각도 일으킬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예!”하고 대답하고 만다. 생각이 일어나기 전, 거사의 본래면목이 무심(無心)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거사가 낚싯밥을 문 순간, 황벽 선사는 가차 없이 최후의 활인검(活人劍)을 날린다.

“어디 있느냐?”

‘너의 본래의 참나, 불성, 고승은 어디 있느냐?’하는 답을 대신한 활구(活句) 화두를 던진 것이다.

 

이에 배휴 거사는 즉각, 상투 속에 간직되어 있던 보배구슬을 찾은 듯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달았다. 거사가 찾던 진영 속의 고승은 질문하는 거사의 불성이자, 대답하는 황벽 선사의 자성(自性)과 둘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깨닫건, 깨닫지 못하건 누구나 가진 이 본각(本覺)은 시간과 장소, 주관과 객관을 초월하면서도 시방·삼세 어디에서나 늘 함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황벽 선사의 탁월한 지도편달에 성품을 깨친〔始覺〕배휴 거사는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보물을 얻었기에, 황벽 선사를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법을 세상에 드날리게 된다. 『전심법요』의 서문에 따르면, 배휴 거사는 회창(會昌) 2년(842) 종릉의 관찰사로 재임하던 때 황벽 선사를 홍주의 수부(首府)로 모셔다가 용흥사(龍興寺)에 주석하시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도를 물었다. 그 후 완릉(宛陵)의 관찰사로 전출되자 선사를 다시 개원사로 모시고, 거기서도 부지런히 도를 묻고 선사로부터 들은 법문을 기록해 두었다. 이 기록은 10년이 지난 대중(大中) 11년(857)에『전심법요』로 편찬되어, 선종사에 중요한 어록이 되어 오늘날까지 황벽 선사의 선법을 공부하는 지침서가 되고 있다.

 


황벽선사 진영

 

『전심법요』와 다소 중복된 내용이 보이지만, 배휴 거사가 완릉의 개원사에서 문법하던 기록을 기저(基底)로 하여 뒤에 시자 스님들이 엮은『완릉록(宛陵錄)』에 보이는 문답을 통해 거사가 황벽 선사로부터 수법(受法)한 핵심적인 법문을 참구해 보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요 무심(無心)이 도(道)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움직인다든지, 혹은 있고〔有〕, 길고 짧음, 너와 나, 나아가 주체니 객체니 하는 마음이 없기만 하면, 마음이 본래로 부처요 부처가 본래 마음이니라. 마음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의 참된 법신(法身)은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니 부처를 따로 구하려 하지 말 것이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라. 설사 오랜 세월 동안 육도만행(六度滿行)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구경(究竟)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연의 조작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연이 다하면 덧없음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보신과 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요 또한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였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기만 하면 나〔我〕라고 할 것도 없고 또한 남도 없어서 본래 그대로 부처이니라.”

 

여기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할 때의 ‘마음’은 망심(妄心)이 아닌 진심(眞心)을 말한다. 선과 악, 좋고 나쁨, 길고 짧음, 사랑하고 미워함, 너와 나, 주관과 객관 등 일체 시비분별과 망상을 벗어난, 본래부터 ‘나고 죽음이 없는〔不生不滅〕’상주진심(常住眞心)을 말한다. ‘나’와 ‘나의 것’이라고 하는 아상(我相)과 에고(ego)의식이 남아 있는 한 그 어떠한 수행과 노력을 하더라도 조작이요, 언젠가는 무너지고 마는 유위법(有爲法)에 불과하다. 그래서 먼저 무아·무심으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객관세계가 공함)을 증득하고, 나아가 공한 것까지 공해서 안팎이 모두 공한 구공(俱空)의 경지까지 나아가야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각경』에 “무변허공(無邊虛空)이 각소현발(覺所顯發)이라”

하였다. 가없는 허공이 깨달음〔圓覺〕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어디 허공뿐인가.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우주(宇宙)가 이 원각에서 비롯되었다 하는데, 도대체 이 원각이란 과연 무엇인가? 생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으니 각자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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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金聖祐

도서출판 비움과소통 대표. 경북 안동 생(生).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불교신문사에서 취재부 기자 및 차장, 취재부장을 역임. 현재 도서출판 비움과소통 대표와 넷선방 구도역정(http://cafe.daum.net/ kudoyukjung) 운영자로 활동하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법음을 전하고 있다. 저서에『문없는 문, 빗장을 열다』,『선(禪)』,『선답(禪答)』등이 있다. 아호는 창해(蒼海ㆍ푸른바다), 본명은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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