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존 쉘비 스퐁,경전의 문자주의를 넘어선 신학자
페이지 정보
오강남 / 2025 년 9 월 [통권 제149호] / / 작성일25-09-04 15:36 / 조회47회 / 댓글0건본문
심층 종교의 길을 밝혀준 사람들 9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신학자들로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를 강조하는 폴 니터(Paul F. Knitter), 그리스도교를 인습적 그리스도교와 새롭게 등장하는 그리스도교로 나누고 새롭게 등장하는 그리스도교는 어떤 모습인가를 쉽게 풀어서 제시하는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지 말고 그 본뜻을 찾아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보여주는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이 있습니다. 앞의 두 신학자는 필자가 쓴 『예수는 없다』에 소개했기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고 스퐁 신부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자 합니다.
생애
스퐁 신부는 1931년 6월 16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샤로트에서 출생했습니다. 성공회 신부가 되겠다는 목적으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버지니아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에 있는 몇몇 성공회 교회에서 목회를 한 후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뉴저지 주 뉴와크의 성공회 주교로 봉사하고 은퇴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기회 닿을 때마다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 예일, 하버드, 에든버러,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은퇴 후에는 하버드 대학교 초빙 교수로 강의하는 것을 비롯해 세계 곳곳 500개 이상의 대학교에서 강연도 하고, 잡지에 기고도 하고, TV의 여러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그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스퐁 신부에게 영향을 준 멘토들 셋이 있었는데, 그중 둘이 가장 중요했다고 합니다. 그중 첫째가 영국 성공회 주교로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약학을 강의하고 1963년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라는 책을 써서 그리스도교계에 돌풍을 일으킨 존 A. T, 로빈슨(John A. T. Robinson)으로 1983년 그가 죽을 때까지 그를 멘토와 친구로 모셨습니다.

스퐁 신부에게 영향을 준 또 한 사람은 영국 버밍엄 대학 신약학 교수로서,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선언한 마이클 더글라스 굴더(Michael Douglas Goulder)였습니다. 그에 의해서 마태복음의 기록이 예수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 유대교 회당 달력의 순서에 따라 씌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스퐁 신부가 『성경』 문자주의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런 탈문자주의는 스퐁 신부의 저술 전반에 걸친 기본 전제가 되었습니다.
스퐁 신부는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책 속표지에 그의 저술 목록이 있는데, 모두 25권이 나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생애에서 “이것이 마지막 책”이라고 하면서 쓴 책만도 다섯 권입니다. 그에 의하면 2018년에 출판된 책은 정말로 마지막 책이라고 했습니다. 2016년 9월 10일 아침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회복되어 걸을 수도 있고 손으로 글을 쓸 수도 있었지만 그 글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2021년 90세로 타계하였습니다.
그가 쓴 저술 중 많은 책이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번역된 책 가운데 몇 가지만 예거하면,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 『성경을 해방시켜라』, 『예수를 해방시켜라』, 『성경과 폭력』, 『영생에 대한 새로운 전망』,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 등입니다.
신학적 입장
그의 신학적 입장을 철저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 책들을 다 섭렵해야 하겠지만 그의 기본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쓴 세 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여기서는 이 세 권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첫째는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입니다.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 -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로 번역되어 2018년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발행했습니다. 이 책은 『요한복음』 해설서입니다. 스퐁 신부 스스로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을 여섯 가지로 요약해 놓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했다고 하는 말씀, 등장인물의 대부분, 그리고 기술된 사건들 대부분은 역사적인 것과 상관없이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특히 신이 인간의 몸을 쓰고 세상에 왔다고 하는 이른바 수육受肉 혹은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 교리가 현재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로 받들어지고 있고, 이런 교리의 근거를 요한복음에서 찾는데, 스퐁 신부에 의하면 이런 교리가 요한복음 저자의 본래 의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이 말하려고 하는 진짜 메시지는 무엇인가? 스퐁 신부는 이 책의 부제에 나타난 것처럼 요한복음은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기본 메시지는 ‘신비주의’라는 것입니다. 스퐁 신부는 자신이 이런 신비주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자 “갑자기 요한복음이 내 앞에 유대교 신비주의의 작품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요한복음의 예수는 외계에서 온 방문자가 아니라 새로운 신 의식(God consciousness)을 경험한 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비주의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신과 나와 우리 모두가 ‘하나됨’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제가 늘상 강조하는 종교의 심층 차원입니다. 스퐁 신부에 의하면 요한복음의 예수는 “그가 제공하는 하느님과의 하나됨이 인간의 가장 깊은 배고픔을 충족시키고 인간의 가장 깊은 목마름을 풀어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계속 이런 하나 됨(oneness)을 강조하는 말이 나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10:3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둘째 책의 제목은 Biblical Literalism: A Gentile Heresy-A Journey into a New Christianity Through the Doorway of Matthew's Gospel입비다. 한국어 제목은 본래 제목과 좀 다르게 『유대인 예배력에 따른 예수의 의미, 마태복음』입니다. 기본 요지는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위해 쓰여졌기에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미드라쉬(midrash)’ 기법으로 쓰인 문서라는 것입니다.
미드라쉬 기법이란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옛이야기를 빗대어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이 잘 아는 출애굽 이야기에 모세가 이집트에서 태어났을 때 이집트의 바로 왕이 히브리인 가정에서 태어난 모든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모세는 살아나 ‘자기 백성들의 구원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마태복음 저자는 예수가 태어났을 때도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예수는 이집트로 피난 가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당시 아이들이 죽었느냐 하는 역사적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수도 모세와 맞먹을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유대인 특유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이야기가 문자적 사실이 아니라 예수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데, 2세기 중반부터 예수공동체에 유대인이 점점 사라지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공동체의 주류가 되면서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모두 문자 그대로 역사적인 사실로 믿는 문자주의적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지난 2천년 가까이 이방인들이 저지른 이단설에 ‘포로Gentile captivity’가 되어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대속代贖 신앙은 복음서를 문자적으로 읽었을 때 나온 오류라고 강조합니다. 마치 “호랑이 담배 피울 때”라고 하면 한국인들은 그것이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금방 알아듣지만 외국인이라면 “한국에는 호랑이가 담배 피울 때가 있었구나!”하고 오해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스퐁 신부는 단언합니다. “교회에서 성경 문자주의를 분명히 배격하지 않으면 그것은…그리스도교 신앙을 죽이고 말 것이다.”
셋째 책 영어 제목은 Unbelievable: Why Neither Ancient Creeds Nor the Reformation Can Produce a Living Faith Today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들: 어찌하여 옛 신조나 종교개혁이 오늘날 산 신앙을 이루어 내지 못하는가’ 쯤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스퐁 신부의 마지막 책이 된 이 책은 그가 필생을 거쳐 가르쳐 온 것들을 요약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퐁 신부에 의하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주로 교회의 ‘권위와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무엇을 믿을까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왜 개혁해야 하는가? 근본 이유는 ‘경험과 설명’이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질이라는 병을 앓는 사람의 경험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것에 대한 설명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쓰인 1세기에는 그것이 ‘귀신이 들린 것’이라 설명했지만 21세기에는 ‘뇌세포의 전기적 화학작용’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이처럼 같은 경험을 두고도 『성경』에 나오는 설명들은 고대 사회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엄청난 지식을 축적한 21세기 현대인들은 이런 옛 설명 대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어
스퐁 신부는 그리스도교 교리 중에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것 12가지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1. 신관, 2. 예수 그리스도, 3. 원죄, 4. 동정녀 탄생, 5. 기적, 6. 대속 신학, 7. 부활, 8. 승천, 9. 윤리관, 10. 기도, 11. 사후 생명, 12. 보편주의.
지면 관계상 이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못하지만 결국 지금 교회에서 정통으로 받들고 있는 이런 교리들을 철저하게 재검토해서 문자적이고 표면적 뜻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의미있는 심층적 차원의 뜻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퐁 신부가 쓴 책 중 많이 알려진 것의 제목이 말해주듯,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불교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여 경전의 문자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비교적 약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탈문자주의 경향을 타산지석으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아무튼 오늘을 향한 스퐁 신부의 힘찬 메시지는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종교인이라면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법안문익의 생애와 일체현성一切見成의 개오
중국선 이야기 54_ 법안종 ❶ 중국은 당조唐朝가 망한 이후 북방에서는 오대五代가 명멸하고, 남방에서는 십국十國이 병립하는 오대십국의 분열기에 들어서게 되었고, 이 시기에 남방에…
김진무 /
-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오래전 이런저런 일로 서울을 오르내릴 때, 조계사 길 건너 인사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 이층집 벽면에 벽을 가득히 타고 올라간 꽃줄기에 주황색 꽃잎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
원택스님 /
-
검선일여劍禪一如의 주창자 다쿠앙 소호
일본선 이야기 21 일본 역사의 특이점은 1192년 가마쿠라 막부로부터 1868년 메이지 혁명에 이르기까지 무사의 통치가 장기간 이어졌다는 점이다. 왕이 존재함에도 …
원영상 /
-
붓다, 빛으로 말하다
밤하늘 남쪽 깊은 은하수 속, 용골자리 성운은 거대한 빛의 요람처럼 숨 쉬고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적외선 눈은 그 안에서 막 태어난 별들의 울음과 죽음을 준비하는 거대한 별의 고요한 숨을 …
보일스님 /
-
‘마음 돈오’와 혜능의 돈오견성 법문
보리달마菩提達磨는 인도에서 건너와 중국에 선법禪法을 전한 초조로 알려져 있다. 이후 중국 선종은 『능가경』에 의거하는 달마-혜가慧可 계열의 선 수행 집단인 능가종楞伽宗, 선종의 네 번째 조사[四祖]…
박태원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