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속의 불교 ]
사회진화론과 불교의 충돌 그리고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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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 2025 년 9 월 [통권 제149호] / / 작성일25-09-04 15:50 / 조회62회 / 댓글0건본문
사회진화론이 구한말 지식인 사회에 유입된 경로는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인데, 일본의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와 중국의 량치챠오[梁啓超]의 영향을 크게 입었다. 사회진화론은 한·중·일의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서 서구열강의 부강富强을 이끌어낸 원천으로 인식되어, 19세기와 20세기 초반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중심적 담론이 되었다. 결국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론인 사회진화론이 아시아 3국 지식인에게는 근대화의 지름길을 가르치는 교과서로 인식되었고, 약자인 자신을 강자로 만들기 위한 ‘서구 모방하기’가 개화開化의 핵심적 전략으로 채택된 것이다.

이런 추세는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되어 한일합방 이후 ‘식민지조선’ 시대까지 계속되는데, 한국의 근대사에서는 1900년대의 계몽적 위생학, 1910년 이후의 준비론 사상, 1905년~1910년에 걸친 애국계몽운동기의 국권운동, 1920년대의 민족개조론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우주의 창조자는 이 쓸모없는 계곡들과 그 속의 광물자원을 활용하지 않은 채로 남겨둘 생각이 없으셨다. 그것들은 인류를 위해 보존되어 온 것이므로 누가 활용하든 풍부함과 유익함을 세상에 가져다준다면 그건 인류에게 좋은 것이다.(주1)
서구 문명이 어디에 유입되어 뿌리를 내리든지 그곳은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변모했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메리카 서쪽의 ‘거칠고 파란 많은’ 로키산맥의 대초원은 행복하게 되었다. 태평양 철도가 로키산맥과 알칼리성의 땅의 세이지 브러쉬를 관통한 후, 수백만의 많은 사람의 집들 그리고 인도와 아프리카의 열대 해안들의 많은 곳들이 가장 계몽된 인간들의 거처로 변하였다. 우리는 서구문명화가 아시아 대륙의 모든 구석에 침투하여 창조자의 아름다운 땅을 세계 도처의 그의 사람을 위하여 사용될 때가 오기를 희망한다.(주2)

이 두 논설은 모두 영문판 독립신문 ‘The Independent’에 실린 글인데, 약소국의 자원 착취를 문명국이 행하는 문명화라고 미화하면서 약소국의 식민화는 문명국의 권리라고 말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제국주의적인 힘에 대한 선망을 포함한 것으로 한말 중산 부르주아 계층의 국가관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결국 약육강식은 진화론이라는 자연법칙에 따른 것으로 미화되면서, 심지어는 강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탈마저 문명화의 한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 점은 한말 중인층이 합방 이후 자발적인 친일을 택하거나 윤치호가 독립운동을 비판하고 3·1운동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과 일정한 상관성을 지닌다. 따라서 한일합방의 과정에는 당시 국가의식이 희박한 중산 부르주아 신흥계급의 자발적인 매국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인직이 자진해서 이완용과 일본인 고마츠 미도리(小松綠) 사이에서 합방의 매파 노릇을 한 것도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이인직의 「혈의 누」나 「은세계」에서 나타난 문명관이나 의병운동에 대한 태도 등에서 이런 경향은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회진화론의 유입이 근대 초창기 정신사에 미친 영향은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뿌리 깊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일본과 중국을 통해 받아들인 사회진화론 속에서 개인주의보다는 국가주의나 국가유기체론의 주장을 더 많이 흡수함으로써, 한국의 민족주의는 초기에 이미 생존투쟁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힘을 지향하는 민족주의로 형성된다. 특히, 국권 침탈의 시기를 맞아 저항적 민족주의, ‘자강주의’, ‘자수자양’의 논리는 교육, 제도의 혁신을 통해 강한 국가와 민족을 만들자는 ‘힘의 논리’를 어느 정도는 내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역시 동시대의 중심 담론인 ‘사회진화론’으로부터 전혀 무관할 수는 없었는데, ‘불교유신’의 필요성 자체가 우승열패의 현실에 대응하고자 하는 위기의식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 한용운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제시하는 제도적인 개혁의 방침들에는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대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러한 세태를 무엇보다도 ‘우승열패’가 지배하는 현실로 규정한다.
‘사회진화론’이라는 담론권력과 한용운의 ‘유신’, ‘불교’
근대 초기 지식인 사이의 지배적 담론이었던 사회진화론이 한용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는 『조선불교유신론』(1913)의 곳곳에 보이는 ‘제도’의 개선과 ‘진보’, ‘진화’에 대한 주장의 피력 등에서 간접적으로 그 영향 관계를 추측할 수 있다.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유신維新’이라는 발상 자체가 서구에서 유입되어 들어온 타종교와 서구사상과 철학에 대한 대타의식에서 촉발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이 또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면 칸트, 데카르트, 베이컨 등 서구 사상가의 철학과 불교의 유사성을 비교하는 부분이라든가, 서구 종교의 포교를 세력勢力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 등은 전형적인 진화론의 생존경쟁과 우승열패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자강론自强論’으로 변형된 진화론을 그대로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을 『조선불교유신론』의 저술 과정에서 직접 적용했는지는 쉽게 확인되지 않으나, 진화론의 창안자인 다윈의 이름이 여러 차례 거론된다는 점, 우승열패, 생존경쟁, 진화, 진보 등의 용어가 자주 쓰이는 점도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주3)
일반적으로 개화기 이후, 사회진화론의 도입과정에서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논리는 처음에는 비판적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시대적 대세로 수긍되는 과정을 거쳤고, 반대급부로서 ‘만국공법萬國公法’이나 ‘국제법國際法’에 대한 강한 신뢰를 통해서 우승열패의 현실에서 약자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에는 진화, 진보의 합법칙성에 대한 인식이 곳곳에 보이는 한편 평등주의, 구세주의, 세계주의, 평화주의가 강하게 피력되어 있어 진화론의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를 대세로 받아들이면서도 불교정신을 통해서 그 모순점을 극복하려고 한 흔적이 여러 곳에 보인다.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은 진화론에 대한 주체적 수용의 측면을 여러 곳에서 보여주는데, 특히 유신維新에 대한 생각이나 진화와 진보의 생각에 대한 주체적이고 유연한 적용은 사회진화론의 자연화된 편견과 사이비 과학적 요소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불교사상의 자비나 보시, 약자에 대한 인식과 만유의 인연 사상은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 ‘우승열패’의 현실에 대해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는 사유를 지닌다는 점에서 초창기 불교 지식인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문제적인 면모를 지닌다. 한용운을 비롯한 양건식, 이능화 등이 주장하는 불교의 유신은 이 점에서 ‘우승열패’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공생’과 ‘자비’를 기본으로 하는 불교가 어떻게 제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 것이었다.
사회진화론은 자연상태에서의 적자생존의 원칙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모순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점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서구인은 자신들의 시대가 과학의 시대라는 오만한 자부심으로 인해 자연현상은 곧 사회현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사회 역시 자연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사회진화론을 ‘자연화(naturalization)’시킨다.

‘자연화(naturalization)’되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연이 아닌 대상이나 현상을 자연적인 법칙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런 자연화의 사고는 지배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곤 하는데, 사회진화론은 특권층과 지배계급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빈부의 격차나 인종적 편견 등을 자연법칙에 의거한 당연한 현상, 피치 못할 법칙으로 설명한다.
‘계몽’, ‘개조’, ‘개량’의 모순과 불교개혁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은 불교의 근대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 서구사상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변화된 현실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불교를 건설한다는 취지에서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어느 정도 수용한다. 일반적으로 초창기 근대화 정책과 사상을 대변하는 개화사상이나 계몽주의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교육’이다. 특히 교육제도의 정비는 개화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승려의 교육’ 항목은, 근대적인 교육제도의 틀을 갖추어 승려를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근대화’의 방식을 불교개혁에 적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보통학교와 사범학교 설립의 문제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는 내용은 불교뿐만 아니라 일반 교육제도에도 동시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대저 문명은 교육에서 생기는 것이니, 교육은 문명의 꽃이요, 문명은 교육의 실과라 할 수 있다.”(주4)라는 구절에서, ‘문명文明’이라는 용어는 기본적으로 진화론적 사고를 바탕에 지니고 있는 말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들의 가장 큰 희망이 여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망은 생존과 진화의 밑천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니 만약 희망을 지니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렇게나 게으르게 살아서 그날그날을 편히 지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누가 정신과 육체를 괴롭혀 가면서 일을 하려 하겠는가. 따라서 희망이라는 것이 없으면 사람이건 사람이 아닌 것이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거의 없어질 것이며, 설사 존재한다 해도 황폐荒廢, 음악淫惡에 흘러 전일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을 것이다.(주5)
희망이 생존과 진화의 밑천이라고 할 때, 이 말은 희망이 결국 문명화의 길로 나아가는 원천적 욕구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더구나 진화의 문제를 ‘생존’의 문제와 직결시키는 태도는 ‘적자생존’, ‘도태’의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인데, 희망이 없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절멸의 개념이나 황폐, 음악淫惡에 빠진 도태나 퇴보의 모습 또한 진화론의 영향을 느끼게 한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 진화와 퇴보가 결정된다는 주장은 진화론을 ‘자강론’, ‘자조론’이나 ‘준비론’, ‘실력양성론’으로 변형해서 받아들인 개화기 진화론의 전형적인 주장이다. 특히 진화론의 유입과정에서 량치챠오(梁啓超)의 글이 그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량치챠오를 여러 번 인용하고 있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진화론적 사고가 발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구의 진화론이 우생학적인 발상으로 유전적인 형질에 의해 우수 인종과 열등 인종의 차별 근거를 마련하는 데 반해서, 선험적인 유전인자가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라는 주체적 행동에 의해서 진화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주장한 점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강자가 되는 방법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중국, 조선의 공통점은 진화론을 근대화의 교과서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근대화란, 이 점에서 ‘강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며, 힘을 육성하는 시스템이다. 동아시아 삼국에서 국가주의와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명제가 최대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서구의 진화론이 우생학, 인종학 등 차별을 자연화하고 정당화하는 논리로 차용되었다면 동아시아 삼국은 그 차별화의 논리를 ‘개조’, ‘개량’, ‘개화’라는 ‘문명화의 구호’로 받아들인다.
결국 문명화란 선험적인 우열론, 혈통주의, 인종주의를 환경론, 자조론으로 변형시킨 개념으로 이들 나라에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 점은 신채호, 안창호, 이광수, 주요한 등에게 진화론이나 준비론 사상이 자기변혁을 위한 이론적 지침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동시에 ‘식민주의’의 올가미로 작용하는 이유이다.
<각주>
(주1) The Independent, 1896. 11. 12. 논설.
(주2) The Independent, 1896, 11. 14. 논설.
(주3) 예를 들면, 「사원의 위치」 항목에서 절이 산에 있으면 좋지 않은 이유를 열거하는 중에 두 번째로 거론한 것이 모험적인 사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자신이 꾸었던 꿈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그때 등장하는 인물이 다윈과 나폴레옹이다. 만해와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 험한 파도를 만났으나 다윈과 나폴레옹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고 다윈은 더구나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고 한다. 잠시 후 다윈이 하는 말이 항해를 여러 번 하는 동안 풍랑도 만나고 물에 빠지는 체험을 수차례 했고, 그러고 나니 두려움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지금 내가 바다를 모르고 배를 모르고 나를 모르는 소이所以는 다 무형의 진화進化라 하겠으니 아까 생각한 것도 역시 진화의 이치에 관한 것이었다.”라고 말한다.(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 『한용운 전집 2』, 신구문화사, 1973. p.65).
(주4) 한용운, 앞의 글. p.47.
(주5) 앞의 글.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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