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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조동종 교화의 원천 가산 조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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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0:48  /   조회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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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선 이야기 20   

 

선사들은 때로 조사의 가르침에 기반하면서도 대승 정신의 하나인 방편을 통해 민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도 한다. 고원한 가르침이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 듯이 서서히 대중의 마음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불 일체승의 대원칙을 확립한 도겐의 법을 계승하되 교단의 지속성을 고민한 가산 조세키(峨山紹碩, 1276∼1366)가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 가산파야말로 조동종이 들불처럼 확산되는 일본화의 플랫폼을 확립했다. 실제로 그의 문하야말로 조동종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단편적으로 그다지 많지 않다.

 

가산의 깨달음

 

가산은 16세에 비예산 천태종에서 보살계를 받았다. 22세 때인 1297년 교토에서 케이잔 조킨(瑩山紹瑾)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2년 뒤에 대승사로 갔다. 그 자리에서 케이잔은 “너는 우리 종宗의 법기다. 옷을 바꾸어 선에 귀의하라. 노모에 대한 세속의 책임을 어려워 말라. 상나화수商那和修 존자는 염부제를 버리고 우리 종에 들어왔다. 어찌 작은 일로써 대법도를 그르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상나화수가 재산을 버리고 아난의 제자가 된 예를 들어 선종을 위해 일할 것을 권한 것이다. 

 

사진 1. 가산 조세키(峨山紹碩, 1276∼1366)의 정상頂相. 총지사 조원祖院 소장.

 

1301년, 케이잔이 물었다. “달이 두 개 있는 것을 아는가?” 이 해답을 구하기 위해 밤을 새워 좌선하는 중 깊은 적정에 들어 물아를 모두 잊었다. 가산의 귀에 케이잔이 낸 탄지彈指(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는 것, 선방에서 다양한 신호의 의미로 쓰임) 일성이 들리는 순간, 몰록 큰 깨달음을 얻었다. 케이잔은 인가를 내렸다. 하나는 하늘에 빛나는 달, 또 하나는 스스로 빛나는 자성을 일컫겠지만, 이는 철저한 체험의 영역에 속하므로 해석에 의지해서는 참된 경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른 기록에는 ‘양미순목揚眉瞬目’에 대한 문답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한다. 이는 약산유엄과 마조도일의 문답이다. 양미순목은 『벽암록』 제3칙 ‘마조馬祖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에도 나오며, 고려 혜심이 엮은 『선문염송집』 324칙이기도 하다. 약산은 석두희천에게 3승 12분교에 대해 대략은 알고 있지만 ‘직지인심 견성성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가르침을 청했다. 석두는 “이렇다고 해도 안 되고, 이렇지 않다고 해도 안 되니, 이렇다 하건 이렇다 하지 않건 모두 안 된다. 이럴 때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자 약산은 생각에만 몰두했다. 석두는 약산이 인연이 아닌 것 같아 강서의 마조에게 가보라고 했다.

 

약산이 마조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라고 하며,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라고 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라는 말이 옳고,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깜박이라는 말이 틀리다.”라고 하자 단박에 깨달음을 얻었다. 마조가 “어떤 도리를 얻었는가?”라고 묻자 약산은 “제가 석두의 말을 들었던 그 순간은 마치 모기가 무쇠소에 올라탄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미조는 “그대는 이미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으니 마땅히 잘 지키도록 하라.”고 했다. 가산은 한순간도 어김없이 대지를 휘젓고 천지에 가득 찬 불법의 기틀을 깨달은 것이다.

 

제도濟度의 삶

 

1321년 케이잔의 법을 잇고 영광사의 수좌에 임명되었다. 이어 총지사 2대 주지가 되었다. 가산의 문하에는 인재가 몰려들었다. 25철哲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제자들이 뒤를 이었다. 이중 특히 5철에 해당하는 타이겐 소신(太源宗眞)은 보장원普藏院, 쯔겐 자큐레이(通幻寂靈)는 묘고암妙高庵, 무탄 소칸(無端祖環)은 통천암洞川庵, 다이테츠 소레이(大徹宗令)는 전법암傳法庵, 짓포 료수(實峰良秀)는 여의암如意庵의 탑두塔頭 사원을 열었다. 총지사 주지는 이 5원 주지를 윤번으로 했다.

 

사진 2. 가산도峨山道. 영광사에서 총지사까지 가는 52km의 산길.

 

가산은 1340년에는 영광사 주지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는 매일 영광사의 새벽 일과를 마치면, 52km의 산길을 아침 일과를 위해 총지사를 향해 걸어갔다고 한다. 이 산길을 가산도峨山道라고 부른다. 총지사에서는 대비다라니를 한 음씩 길게 읽는 ‘대진독大眞讀’이라는 독송법이 있는데 이는 영광사에서 오는 가산을 기다리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가산은 수험도修験道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본다. 수험도는 고대 산악신앙이 불교와 습합된 것으로 자연과의 일체를 수행의 정점으로 삼고 있다. 이는 가산이 민간신앙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사진 3. 수험도修験道를 수행하는 모습. 사진: 류코쿠대학.

 

가산파는 조동종이 지방으로 확산해 가는 최일선의 역할을 했다. 17세기 초엽, 각 선원을 총괄하는 전국의 승록 사원 60여 개는 전부 가산파의 총지사 말사였다. 1664년 도쿠가와 막부는 전국의 다이묘(大名, 지역의 영주)에게 사사부교(寺社奉行, 종교행정기관)를 자신들의 영지에 설치하여 기독교인을 색출하도록 했다. 전국 6만 4천의 정촌町村에 있는 사원에서는 그 절의 신도임을 증명하는 사원증문寺請証文과 호적에 해당하는 종지인별장宗旨人別改帳을 작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에 대응할 만한 사원이 없었다. 이에 각종 사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한 세기가 지난 1785년, 조동종 사원은 약 1만 8천여 개에 이르렀는데, 그중 95%가 가산파에 속했다.(圭室文雄, 「근세 가산파의 전개」) 이는 가산의 제자들이 전국으로 분산하여 활약한 결과다. 

 

사진 4. 가산 조세키가 매일 걷던 것에서 유래된 가산도 트레일 라인.

 

가산은 전국에서 인물을 구해 철저한 수행과 점검을 통해 인재 양성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정 기간 주지를 교대하는 윤번제를 실시했다. 이는 물론 케이잔이 교토 5산의 시방주지제를 보고 도입했던 것이다. 일류상승제一流相承制와 비교해 장단점이 있지만 시대를 만나 전국화의 길을 열게 되었다. 총지사 윤주제는 케이잔이 가산의 제자들에게 한정, 우수한 인재를 선정하도록 유언했다. 이에 따라 1362년 영광사의 제도를 모방하여 제자들에게 교대로 주지를 맡도록 했다. 2년 후에는 5년 단위로 주지를 교체하도록 정했다. 총지사의 5원 윤번제는 메이지 유신 후인 1870년에 폐지되었다. 본산에 병합되고, 5원의 말사도 총지사의 직접적인 말사가 되었다. 500년 동안 민주적인 운영과 본사에 대한 경제적인 기반이 되었던 제도였다.

 

가산의 선사상

 

가산 선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참선의 지도 방식에는 간화 혹은 공안 외에도 기관機關(언어나 문자 등에 의해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방편, 예를 들면 5위나 사료간), 선기禪機(순간적인 행동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것, 예를 들면, 방, 할, 권 등)가 있다. 가산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운용했다고 한다. 자료가 흩어져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특히 그의 어록이 담긴 『산운해월山雲海月』에 그의 독자적인 조동5위가 나타난다. 종조 도겐은 조동5위에 대해 ‘호설난설胡説亂説’이라고 비판했지만, 반대로 케이잔은 제자들의 교육 방편으로 이를 사용하고, 가산은 이를 계승하여 본격적으로 활용한다. 

 

사진 5. 목조 가산 조세키 좌상(남북조시대). 영광사永光寺 소장.

 

주지하다시피 조동종에는 정편正偏·공훈功勳·군신君臣·왕자王子의 4종 오위가 있다. 정편 및 공훈오위는 동산양개가, 군신 및 왕자오위는 조산본적이 창안했다. 정편오위正偏五位는 ①정중편正中偏, ②편중정偏中正, ③정중래正中來, ④편중지偏中至, ⑤겸중도兼中到를 가리킨다. 정正은 체體·공空·이理·심성心性·절대絶對로서 능能이고, 편偏은 용用·색色·사事·상대相對로서 소所를 말한다. 본질과 현상의 양자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상즉상입相卽相入한다. 이를 다섯 단계의 깨달음의 경계로 삼는다. 공훈오위는 향向·봉奉·공功·공공共功·공공功功을, 군신오위는 군君·신臣·군향신臣向君·군시신君視臣·군신도합君臣道合을, 왕자오위는 탄생誕生·조생朝生·말생末生·화생化生·내생內生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가산 5위는 조산본적보다는 분양선소의 그것에 가깝다고 한다. 『산운해월』에는 이를 주역의 괘를 사용, 보다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다. ①정중편의 괘는 손巽으로 음의 1효一爻의 위에 양의 2효가 타고 있으며, 진리가 현상과 교섭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②편중정의 괘는 태兌로서 양의 2효 위에 음의 1효가 타고 있으며, 모든 현상에 진리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③정중래의 괘는 대과大過(巽下兌上)로 나타내며, 양이 상하를 음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으로부터 정正이자 절대적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④겸중지의 괘는 중부中孚(兌下巽上)로써 중앙에 음의 2효가 있으며, 상하를 양의 2효가 각각 억누르고 있으므로 편偏이자 상대를 나타내고 있다. ⑤겸중도의 괘는 중리重離(離下離上)로 나타내고, 정과 편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는 현상세계의 절대적 존재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주역의 상징적인 효과를 적절히 활용하는 차원에서 의식의 경지를 설명하는 방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는 정편5위를 평등 가운데의 차별인 정중편, 차별 가운데의 평등인 편중정, 절대적인 진리인 정중래, 차별의 절대인 겸중지, 절대의 융합인 겸중도로 하고 있다. 이는 화엄의 사사무애 법계관과도 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산은 이 5위를 강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좌선을 더욱 중시했다. 그는 “제군이여, 한 사람도 반 사람(세속의 모든 잡사를 던져 버리고 수행에 매진하는 매우 희귀한 인재를 말함)도 좋으니 산간의 조용한 장소에서 좌선을 행하고, 일상의 상대 세계를 벗어나 평등일여의 세계를 관철하기 바란다. 그리고 노납老衲이 제군에게 전한 불법이야말로 진실을 체득하고,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이 일치하여 모든 것이 부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으면 반드시 부처의 힘을 더할 수 있으리라.”라고 설한다. 

 

사진 6. 가산 조세키가 2대 주지를 지낸 총지사摠持寺 조원祖院의 경장經藏.

 

또한 “빈도貧道는 이것을 정도正道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종조 도겐의 지관타좌只管打坐로써 5가의 종풍을 통일하는 전일全一의 불법을 계승하고자 했다. 가산의 5위는 시기상응의 불법을 전개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선기나 공안도 시의적절하게 학인들을 제접하는 데에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좌선이 지향하는 것도 5위의 겸중도에 이르는 것으로 절학무위絶學無爲의 한가한 도인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생불멸의 길

 

사람들은 가산의 공적으로 인해 그를 조동종의 제1조 도겐, 제2조 케이잔에 이어 제3조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그의 일생이 조동종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원오극근의 “살아서도 온전한 기를 드러내고, 죽어서도 온전한 기를 드러낸다[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는 법어를 사용하곤 했다. 또한 『벽암록』 55칙에 나오듯이, 도오가 상갓집에 들러 조문하던 중 점원이 관을 두드리며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라고 묻자, 도오가 “살았어도 말로 못 하며, 죽었어도 말로 못 한다[生也不道 死也不道].”라고 한 법어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의 경지를 설하는 것이다. 빛나는 법신은 고금과 천지를 관통한다. 가산이 지금도 바로 여기 우리들 사이에 숨 쉬고 있음을 누가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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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무, 법명 익선. 일본 교토 불교대학 석사, 문학박사. 한국불교학회 전부회장, 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원광대학교 일본어교육과 조교수. 저서로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공저), 『佛教大学国際学術研究叢書: 仏教と社会』(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일본불교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교훈」 등이 있다. 현재 일본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wonyo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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