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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햇살 속에서 익어가는 시간, 발효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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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1:46  /   조회50회  /   댓글0건

본문

8월은 발효의 계절입니다. 찌는 듯 무더운 날씨 가운데 발효는 우리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선사합니다. 오늘은 발효가 되어 가는 향기를 맡으며 발효를 이야기해 봅니다. 우리나라 전통 발효음식을 경험하고, 지구 곳곳의 삶과 철학을 함께 나누는 데 발효만큼 귀한 소재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발효醱酵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움직임입니다. 썩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미생물들이 원재료 속의 당, 단백질, 지방 등을 분해하면서 새로운 맛과 향으로 거듭나고 더욱 힘이 센 영양성분으로 승화합니다. 이 과정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자연을 관찰하고 기다리며 터득해 온 지혜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발효를 통해 음식을 오래 보존하면서도 더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우리의 식탁 위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효, 어머니를 그리다

 

발효는 기다림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자기의 때를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인고의 기다림 속에 끝끝내 변화를 이루어냅니다. 햇살과 바람, 계절의 숨결 속에서 묵묵히 익어가는 것들, 그것이 바로 발효의 힘입니다. 발효를 이야기할 때면 어머니의 장독대가 그려집니다. 장독대는 어머니의 우주였습니다. 어머니는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정성 가득한 마음으로 발효를 지켰습니다. 고추장을 뒤적이는 손길, 간장의 색을 살피는 눈빛, 항아리 뚜껑을 열며 하늘을 읽고, 바람을 읽었습니다.

 

사진 1. 죽염으로 만든 참외장아찌.

 

어머니의 섬세한 감각과 정성 어린 마음이 발효를 만들고, 가족을 살리고, 문화를 잇는 힘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손길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긴 어려워도 이치를 깨닫게 했고, 자연의 언어를 읽을 줄 알았습니다. 발효의 계절 속에서 어머니는 더욱 그리운 존재가 되어 갑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도 호박 넝쿨은 장독대를 향해 힘차게 뻗어 갑니다. 올 장마는 짧아서 그런지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습니다. 알맞게 자란 보드란 호박을 따서 어머니가 담가 놓으신 된장 한 숟가락 듬뿍 퍼서 찌개를 끓입니다.

 

<농가월령가> 7월령(양력 8월)을 읽어보면 이보다 바쁘고 고단한 계절이 없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물론 추수의 계절 가을도 무척 바쁘지만 8월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고단함이 배가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1년 중 가장 힘들게 일하는 계절이지만 가장 입맛이 없는 시기이기도 했을 겁니다. 보들보들한 호박을 숟가락으로 뚝뚝 떼면서 늘상 바빴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도마도 채 꺼내기도 전에 호박을 숟가락으로 떠서 된장국을 끓였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만든 음식은 발효를 기반으로 하여, 빠르지만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발효는 기다림의 음식이지만 완성이 된 후에는 효율적인 음식으로 재탄생합니다. 

 

세계의 발효문화

 

동양에는 장이 있고, 서양에는 치즈와 와인이 있습니다. 한국의 된장과 일본의 미소, 중국의 두시장은 모두 콩을 발효시켜 얻은 지혜이며, 그 맛에는 각 나라의 기후와 철학이 스며 있습니다. 프랑스의 치즈,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 인도의 요구르트 다히, 아프리카의 기장 발효음료 포조, 멕시코의 콤부차, 인도네시아의 템페 등 세계 속 발효는 각 지역의 자연과 사람, 전통이 빚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발효는 국경이 없습니다. 언어와 피부색, 기후와 종교가 달라도, 인류는 오래전부터 발효라는 지혜를 공유해 왔습니다.

 

사진 2. 청장으로 만든 표고버섯풋고추조림.

 

그것은 살기 위한 방법이었고, 나아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발효는 단지 음식을 보존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연을 기다리는 마음,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완전함보다 변화와 과정을 사랑하는 철학입니다. 사찰음식이 건강한 음식으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발효음식이기 때문임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계의 발효 문화는 종교, 공동체, 기후와 문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 문화권의 요구르트와 치즈는 기후에 맞춘 생존의 기술이면서도 정결한 삶을 지향하는 종교적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유럽의 포도주와 맥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시간과 역사, 노동과 축제의 총체적 산물입니다. 이처럼 발효는 다름 속에 같음을 보여줍니다. 지역마다 재료와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발효를 통해 생명을 길게 이어가고, 맛을 익히고, 문화를 이어갑니다. 발효가 세계인의 공통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입니다. ‘찬란한 기다림’을 제목으로 발효의 기적을 노래해 봅니다. 

 

사진 3. 된장으로 만든 빡빡장과 두부장.

 

찬란한 기다림

 

발효는 조용한 기적.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예술.

 

부서지고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아로 거듭나는 여정.

 

콩은 구수해지고, 쌀은 달콤해지고,

채소는 살아 숨 쉬고, 과일은 끓어 오르니

서두르지 않는 마음, 기다림을 믿는 마음.

흙내음, 햇살, 바람, 자연의 하모니.

사람과 자연의 가장 오래된 우정.

그 느림을, 그 깊이를, 그 너그러움을

어울렁 더울렁 익어가는 삶의 향기.

 

그 속엔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고,

생명의 힘이 깃들어 있으며,

따뜻한 기억이 배어 있다.

 

한 그릇에 담긴 우주의 질서 앞에

두 손 모으고 천지의 은혜와 

만인의 노고에 깊이 감사한다.  

 

사진 4. 연장아찌. 

 

지구 곳곳의 삶과 철학을 함께 나누는 발효를 노래하며 이번에 소개할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은 여름철 발효음식 가지콩가루찜과 칡순열무김치입니다. 

 

가지 콩가루찜

가지는 슈퍼푸드입니다. 자연이 준 보라색 보약인 가지찜을 만들어 봅니다.

가지에 들어 있는 나스닌 성분은 아주 강력한 항산화제입니다. 또한 혈관기능을 개선하고 혈당 상승속도를 낮춰주는 섬유질이 있어서 당뇨예방과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사진 5. 가지콩가루찜. 

재료

가지 2개, 꽈리고추 30g, 콩가루 3T, 한식 간장 1t, 죽염 1t, 들기름.

 

만드는 법

1. 가지를 모양대로 썰어서 간장과 죽염으로 30분 절여 주세요.

2. 꽈리고추는 손질하여 모양대로 송송 썰어 소금에 살짝 절여 줍니다.

3. 절인 가지와 꽈리고추는 꺼내서 물기를 짜 줍니다.

4. 물기를 뺀 가지에 콩가루를 넣고 골고루 섞어 줍니다.

5. 찜기에 물이 끓으면 콩가루를 묻힌 가지를 올려 5분간 쪄 줍니다.

6. 익은 가지는 꺼내서 꽈리고추와 함께 볼에 담습니다.

7. 들기름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깨소금을 넣어 마무리합니다.

 

TIP.

- 가지는 찐 후 넣게 펴서 한김 나간 후 요리하세요.

- 양념할 때 들기름을 가장 먼저 넣어 버무린 후 간장과 깨소금 순서로 양념해 주세요.


칡순 열무김치

 

재료

칡순, 열무 1단, 감자 2개, 한식 간장, 소금, 사과 1개, 배 1개, 청양고추 3개, 채수(물 1.8리터, 다시마).

 

만드는 법

1. 물 1.8리터에 다시마를 넣어 3~4시간 불려주세요.

2. 열무는 다듬어서 물에 한 번 씻어 주세요. 

3. 큰 양푼에 씻은 열무를 넣고 소금 2/3컵을 나눠서 뿌려 주세요.

4. 열무는 40여 분 절인 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 주세요.

5. 감자는 껍질을 깎아 잘게 썬 후 다시마 우린 물과 함께 끓여 주세요.

6. 감자가 익으면 채에 받혀 곱게 내려주고 감자 채수를 만들어 주세요.

7. 사과, 배는 믹서기로 갈아서 즙을 내줍니다.

8. 청양고추는 어슷 썰어서 준비해 주세요.

9. 물기를 뺀 열무를 볼에 담고 식은 감자 채수와 과일즙을 넣어 주세요.

10. 한식 간장과 죽염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청양고추를 넣어 주세요.

11. 김치통에 칡순을 깔고 김치를 부어 주세요.

 

 사진 6. 칡순열무물김치.

 사진 7. 칡순.

 

TIP.

- 감자 대신에 밀가루 풀을 사용해도 좋지만 여름철 열무김치는 전분이 많이 올라 온 제철 감자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그면 쉽게 상하지 않는다.

- 칡순을 돌돌 말아서 김치통 아래에 깔아 주면 물김치의 향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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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궁중음식문화재단이 지정한 한식예술장인 제28호 사찰음식 찬품장이다.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국임업진흥원,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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