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는 지금]
미얀마 ❶ 재난과 싸우는 미얀마 불교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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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3:04 / 조회405회 / 댓글0건본문
3.28 대지진 이후 미얀마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붕괴 건물의 철거, 수도 시설의 파손으로 인한 식수의 부족, 발전시설의 부족으로 인한 하루 4시간 정도의 제한 송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폭염과 폭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전과 희생. 이것이 현재 미얀마가 맞닥뜨린 재난의 현주소이다. 안타깝게도 미얀마의 정확한 현재 정보는 군부가 통제하고 있는 언론사의 발표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글은 군부의 발표 이외에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의 SNS,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만달레이의 우 딴툰우 씨 가족, 그리고 항상 미얀마 승가의 정보를 제공해 준 익명의 스님과의 SNS 대화와 페이스북 등의 자료를 취합하여 미얀마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미얀마 재난사, 코로나에서 대지진까지
2025년 3월 28일, 미얀마의 고도 만달레이와 사가잉 지역에서 진도 7.7~7.9 규모의 강진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주택과 건물들이 붕괴되었다. 이 대지진은 단지 자연적 충격이 아니라, 지난 6년간 계속된 정치적·사회적 붕괴 위에 얹힌 결정타였으며, 100년 사이 미얀마 사회에 불어닥친 모든 재해 중 가장 큰 재난으로 기록되었다. 이 글은 지난 6년간의 미얀마 재난사를 더듬어 보면서 미얀마의 불교사회 공동체가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 민중과 함께하며 신앙을 넘어선 사회적 치유와 연대로 재난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2020년, COVID-19로 인해 팬데믹이 선언되었다. 코로나 감염으로 사람들이 연이어 죽었으며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마스크와 필수 의약품을 사기 위해 경쟁적으로 줄을 서야 했다. 미얀마의 불교 승가 또한 마찬가지여서 수행자들이 탁발을 나섰지만, 공양은 현저히 줄었으며, 거리 두기 탁발이라는 낯선 형식 속에서 공동체와의 유대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는 미얀마 사회에 정치적 불안정과 폭력을 초래했으며 불교공동체 역시 큰 영향을 받았다. 승려들은 평화시위 참여로 군부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일부 수도원에서는 군부와 그 관계자들에게 복발갈마覆鉢羯磨를 단행함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재조명되었다. 많은 승려들이 거리로 나섰고, 시민불복종운동(CDM)에 동참한 청년 수행자들은 군부에 체포당하거나 암살당했다. 이 시기부터 불교는 단지 신앙의 체계가 아니라, 정치적 윤리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장로 승가와 신진 승가는 사회참여 정도에 대한 입장을 두고 견해가 갈라졌다.

2022년부터 쿠데타 군부와 친민주세력인 PDF(인민방위군) 사이의 본격화된 내전은 미얀마의 경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각 지역의 수도원들은 임시 난민대피소가 되었다.
2023년 내전과 경제 시스템 붕괴로 인한 초인플레이션 속에서 미얀마의 민생은 더욱 피폐해졌다. 수행자들은 발우를 들고 탁발을 이어갔지만,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 공양은 점차 ‘공덕’이 아니라 ‘희생’에 가까워졌다. 2024년엔 전국적인 홍수로 인해 농경지가 침수되고 가옥이 무너졌다. 일부 사찰은 침수되고 불상이 떠내려갔으며, 수행처는 흙더미에 파묻혔다.

그리고 2025년 3월 28일, 규모 7.7의 강진이 만달레이와 사가잉을 강타했다. 이 지진은 미얀마 불교사회를 지탱해 오던 정신적·물질적 기반을 동시에 붕괴시킨 총체적 재난이었다. 5월 24일 군정의 발표에 의하면 지진으로 인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 규모는 아래와 같다.
그러나 이 통계는 정부의 발표이기에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우며 PDF가 장악하고 있는 사가잉 지역의 피해 규모는 일부만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피해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자 중에는 만달레이의 우흘라떼인 수도원에서 빨리어 시험을 보던 승려 270명 중 200명이 시험장의 붕괴로 압사당하였다고 하며, 심지어 진앙지에서 250여km 떨어진 행정수도 네피도의 정부 청사 건물도 붕괴되어 400여 명의 공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재난을 바라보는 공동체의 시각, 업인가 구조인가?
이처럼 연이은 재난을 두고 미얀마 승가의 일부 장로들은 ‘업보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즉 도덕적 퇴락, 수행자의 나태, 신도의 신심 약화가 불러온 대가라는 것이다. 이는 불교적인 인과론과 윤회론에 근거한 해석이지만 오늘날의 복합적 재난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 반면 많은 신진 승려와 도시의 불자들은 “이건 업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반박하고 있다.

즉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위기, 무계획적인 도시화, 군부의 부패 통치, 내전으로 인한 기반 시설의 붕괴 등이 맞물려 지진의 피해를 증폭시켰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 공식 승가기구인 국가승가대장로위원회는 이번 지진 이후에도 구호 계획이나 성명 발표 없이 군부가 주도하는 공식 재건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위계질서와 안정을 중시하며, 군부와의 협력을 통해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군부의 정치적 선전에 이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군부는 이번에 피해를 입은 군경의 가족이나 유관 단체를 우선 지원하고 있다고 하며, 일부 대장로 승려를 중심으로 복구 자금을 배분하여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신진 승가의 승려들은 군부의 폭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피해 복구에 대해 군부의 일방적인 개입보다 지역 공동체 중심의 자율적인 복구와 재가자들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국제 NGO나 재가자 연대와 협력을 통해 복구 활동을 추진하려 한다.

무너진 승원과 파고다, 정신적 기반의 붕괴인가?
이번 대지진으로 천년고도 바간의 불탑군은 파손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가 무너져 대불이 파손된 모습을 목격한 대다수의 미얀마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대불은 마치 살아계시는 부처님을 모시듯 매일 아침 소임을 맡은 승려(Yedaw Sayadaw)가 세안과 양치를 해드리는 미얀마에서 가장 유명한 불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역 공동체의 노력으로 빠른 복구가 이뤄지고 현재 세안의례가 봉행되고 있지만 다른 파고다들은 아직 잔해만 걷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사가잉 지역의 밍군 파고다(Mingun Pagoda), 신뷰메 파고다(Hsinbyume Pagoda)와 인와(Inwa)의 역사적 구조물 중 75%가 손상되었다. 특히 신뷰메 파고다의 경우, 불교 우주론의 수미산과 9산 8해九山八海를 지상에 구현한 파고다로 유명한데 이번 지진으로 반파되었다.
안타깝게도 지진 이후 만달레이와 사가잉 지역에서는 탁발이 사실상 중단되었다고 한다.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신도들이 재난으로 떠난 후 탁발로 유지되던 불교 공동체의 리듬이 일정 기간 끊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만달레이 지역의 상황이 어려운 승려들은 다른 지역 수도원이나 승원으로 분산 수용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양곤 지역의 수도원으로까지 이주하고 있다. 한국 스님의 노력으로 개원한 양곤의 담마마마까 수도원에서는 150여 명의 만달레이 스님들을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후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복구를 위한 불교공동체의 대응
상좌부불교 전통은 일반적으로 수행 중심, 계율 중시, 사회적 중립을 강조해 왔기에 이번 지진을 포함하여 정치적인 문제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지진 이후 많은 승려들이 적극적인 참여불교의 실천자로 변모하고 있다. 이들은 무너진 승원과 수도원의 잔해에서 직접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물론 구호품의 분배, 장례 집전, 난민들을 위한 심리 상담과 아동 교육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재난 이후 미얀마 승가는 수도원과 승원에 이재민 대피소와 무료 급식소를 설치한 후 각지로부터 구호품을 모으고 있으며, 법회를 통해 희생자를 위로하고 있다. 일부 승려들은 지역을 순회하며 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재민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치유 명상을 지도하고 있다. 피해가 적은 승원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학교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임시 교육 공간을 제공하여 학습을 돌보고 있는 등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이번 지진의 진앙지인 사가잉 지역의 경우 피해 상황이나 규모도 막심하다고 생각되나 PDF(인민방위군) 및 소수민족 무장세력이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지역이어서 구조 및 복구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다. 군부는 이 지역에 대한 구조활동이나 재난지원금을 거의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일부 구호물자를 차단하거나 강제 압수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PDF 통제 지역의 불교공동체는 국가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공동체 중심의 복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지진의 재난 속에서도 불교공동체가 이와 같은 구호활동을 벌일 수 있는 것은 미얀마 불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해 온 공덕 추구의 불교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얀마는 아직도 기부지수에서는 전 세계에서 최상위권에 있는 나라이며, 이는 불교의 보시와 나눔에 대한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구를 위한 장비의 부족과 건축 자재의 생산과 보급이 군부의 통제하에 있어 복구 활동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얀마 내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제기구의 관심과 지원도 절실하다. 실제로 INEB(참여불교국제연대)를 비롯하여 인근의 태국, 스리랑카 및 대만과 한국의 불교계와 연대한 국제구호 활동이 진행 중이며, 이는 지역 공동체의 복구와 회복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미얀마의 재난 복구를 위해 국제사회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나아가서 단순한 유적 복구를 넘어, 생존을 위한 지원, 신앙공동체의 회복, 그리고 민중의 안정을 위한 실질적 협력이 절실하다.
현재 미얀마 불교공동체는 무너진 절망의 탑 위에서 희망의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이들은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의례와 실천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도모하고 있다. 대피소가 된 수도원에서는 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의식과 명상 모임이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있으며, 이는 공동체의 정신적 치유에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부 사찰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학교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임시 교육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부터 이어오던 승원교육제도가 그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미얀마에서 무너진 것은 탑이지만, 피어난 것은 새로운 불교의 윤리이며, 이는 참여불교적 실천과 윤리적 자각을 바탕으로 한 재탄생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수행자상에 대한 시각도 ‘정좌하는 자에서 실천하는 자’로 바뀌고 있으며, 사찰은 ‘예불 공간에서 공동체의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불교는 지금, 탑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탑의 잔해 위에서, 자비의 손을 내미는 공동체 속에 존재하고 있다. 수행은 예불이나 고요함보다 더 깊은 곳에서, 고통 속에 실천될 때 더 강하다. 이제 우리는 “불교는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불교는 지금 누구 곁에 서 있는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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