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 속 세상, 세상 속 화엄 ]
붓다, 빛으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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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스님 / 2025 년 9 월 [통권 제149호] / / 작성일25-09-04 14:40 / 조회23회 / 댓글0건본문
밤하늘 남쪽 깊은 은하수 속, 용골자리 성운은 거대한 빛의 요람처럼 숨 쉬고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적외선 눈은 그 안에서 막 태어난 별들의 울음과 죽음을 준비하는 거대한 별의 고요한 숨을 동시에 포착했다. 300광년에 이르는 이 거대 성운은 빛과 어둠, 창조와 소멸이 얽혀 있는 우주의 아틀리에이다.
빛으로 드러낸 부처님의 세계
먼지기둥과 가스의 파도는 항성풍에 깎이고 밀려나며, 마치 새로운 세상을 조형하는 조각가의 손길처럼 형태를 바꾼다. 그 빛은 수천 년을 달려와 우리의 눈 속에 작은 우주를 새기고, 우리는 그 빛 속에서 태어남과 사라짐의 순환을 본다. 수십억 년 전 출발한 빛이 지금 우리의 망막에 닿아, 존재했는지조차 몰랐던 은하의 탄생을 장엄하게 펼쳐 보인다. 그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압도적인 시간과 공간의 규모에 잠시 말을 잃는다.
이처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밤하늘의 가장 깊은 곳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경이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여기, 그보다 더 심원하고 광대한 차원에서 우주의 실상을 드러내는 빛이 있다. 80권 본 『화엄경』의 두 번째 품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에서 여래의 미간 백호白毫에서 발하는 한 줄기 빛, ‘일체보살지혜광명一切菩薩智慧光明’이다.

앞선 「세주묘엄품」이 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고 장엄한 주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면, 「여래현상품」은 그 모든 현상의 근원으로 시선을 돌린다. 바로 깨달은 자, 여래(Tathāgata)의 내적 경지이다. 경전은 여래께서 깊은 삼매, ‘찰나제불경계신통刹那諸佛境界神通’에 드셨다고 묘사한다. 이는 찰나의 순간에 모든 부처님의 경계와 신통을 남김없이 체득하는, 시공을 초월한 깨달음의 상태이다.
그리고 이 삼매의 힘으로 미간에서 빛을 발한다. 이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다. 그것은 ‘지혜의 빛’이며, 온 우주법계를 남김없이 비춘다. 중요한 것은 이 빛이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실상實相을 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제임스 웹 망원경이 이미 존재하던 태초의 은하를 우리 눈앞에 ‘현상現相’시키는 것처럼, 여래의 지혜 광명은 이 세계가 본래부터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고, 서로서로 비추며, 하나의 거대한 생명 그물로 짜여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처님은 누구십니까?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은 『80화엄경』의 제2품으로, 「세주묘엄품」에서 펼쳐진 화엄 회상의 장엄한 무대 위에서 본격적인 법문이 시작되는 첫 장면이다. 이 품의 제목 그대로 ‘여래께서 그 모습을 드러내시는’ 장엄한 서사가 펼쳐진다. 보리도량菩提道場에 계신 부처님 앞에는 보현보살을 비롯한 무수한 보살들과 「세주묘엄품」에서 등장했던 모든 신중이 모여 있다.
이들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오른 존재들이지만, 더 깊은 깨달음을 갈구하며, 또한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부처님께 법을 청하고자 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그들은 입을 열어 직접 묻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으로 간절히 40가지 질문을 품는다. 이 40가지 질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부처님의 과덕果德, 즉 깨달음을 이루어 얻은 성스러운 덕성과 능력에 관한 20가지 질문이 있다. 이를테면, “무엇이 부처님의 지위입니까? 무엇이 부처님의 경계입니까? 무엇이 부처님의 가지加持입니까? 무엇이 부처님의 유지遊止입니까? 무엇이 부처님의 신통입니까?” 등등이다. 이들은 부처님이라는 존재의 본질과 능력, 그 경지의 실상을 알고자 한다.

이어서 보살의 인행因行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 수행 과정에 관한 20가지 질문이 따른다. “어떻게 보살은 부처님의 공덕을 성취합니까? 어떻게 보살은 제불諸佛과 동등해집니까? 어떻게 보살은 제법諸法을 관찰합니까?” 이는 깨달음에 이르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과 과정을 묻는 것이다. 놀랍게도 세존께서는 이 모든 마음의 질문을 다 아시면서도 단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대신 곧바로 면문치간面門齒間, 즉 입과 가지런한 치아 사이와 미간백호眉間白毫, 양 눈썹 사이의 희고 부드러운 털에서 헤아릴 수 없는 광명을 놓으신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아홉 번의 방광 중에 첫 번째 방광이다. 면문치간의 빛이 올바른 가르침을 상징한다면 미간백호의 빛은 궁극적인 지혜를 상징한다.
이 광명의 이름은 ‘변조여래경계광명遍照如來境界光明’으로, 부처님의 경계를 두루 비추는 빛이라는 뜻이다. 이 빛은 무수한 색깔과 무수한 형태로 변화하며 시방의 모든 세계를 남김없이 비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광명 속에서 무수한 보살들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그들은 연화대에 앉아 있으며, 각각이 또다시 광명을 놓아 온 우주를 비춘다. 이는 마치 거울이 거울을 비추듯, 빛이 빛을 낳고, 그 빛이 다시 빛을 낳는 무한한 광명의 연쇄를 보여준다. 화엄의 중중무진重重無盡 법계가 빛으로 표현되는 순간이다. 이 광명을 본 보살들은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여래현상품」은 이렇게 질문과 침묵, 빛과 찬탄이라는 독특한 구조로 전개된다. 이는 『화엄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즉, 궁극적 진리는 언어와 논리를 초월하며, 직접적인 체험과 직관을 통해서만 온전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방광은 단순한 신비적 현상이 아니라, 깨달음의 본질이 빛처럼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편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주적 교감이다.
부처님 몸은 온 법계에 충만하시다
부처님 몸 법계에 가득하시어[佛身充滿於法界]
모든 중생 앞에 널리 나타나시네[普現一切衆生前]
인연 따라 감응하여 두루 미치지 않음 없건만[隨緣赴感靡不周]
언제나 이 보리좌에 머물러 계시네[而恒處此菩提座]
「여래현상품」을 대표하는 이 게송은 법신法身과 보신報身·화신化身의 관계, 즉 진리와 현상의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첫 구절의 ‘부처님 몸[佛身]’은 형상을 가진 육신이 아닌, 우주 전체에 편재하는 진리 그 자체로서의 법신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텅 비어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가득 채우는 근원적인 실체다.

두 번째 구절은 이 추상적인 진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보편적인 진리의 빛이 모든 중생 앞에 차별 없이 “널리 나타난다[普現]”. 이는 진리가 그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어 모든 존재와 관계 맺고자 하는 능동적 속성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 구절은 그 ‘나타남’의 방식을 구체화한다. “인연 따라 감응하여[隨緣赴感]” 나타난다는 것은, 중생의 근기와 필요에 따라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응답한다는 뜻이다. 이는 일방적인 현현이 아닌, 지극한 자비에 기반한 맞춤형 소통이다.
하지만, 이 모든 역동적인 활동 속에서도 네 번째 구절은 이 모든 변화의 근원인 법신은 “언제나 이 깨달음의 자리[菩提座]에 머물러 있다.”라고 선언한다. 이는 현상계에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나면서도, 그 본질인 진리는 결코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 게송은 「여래현상품」 전체의 서사 구조를 꿰뚫는 열쇠와도 같다. 그 구조가 ‘부처님께서 깊은 삼매에 드시고(원인), 그 힘으로 지혜의 빛을 발하여(작용), 온 세상의 실상이 드러난다(결과)’는 장엄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게송은 이 서사를 화엄의 핵심 교리인 체體·상相·용用의 틀로 완벽하게 재해석한다. ‘언제나 이 보리좌에 머무신다’라는 구절은 움직이지 않는 본체[體]이자 이 모든 현상의 근원인 법신의 경지를, 나머지 구절들은 그 본체가 자비의 빛이라는 작용[用]을 통해 중생 앞에 다양한 모습[相]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노래한다.
결국 이 게송은 ‘삼매에 들어 빛을 발했다’라는 하나의 사건을, ‘고요한 본질은 그 작용과 둘이 아니다[體用不二]’라는 심오한 철학적 원리로 승화시키며, 「여래현상품」의 구조적 깊이와 완성도를 더하는 것이다. 이러한 화엄의 지혜는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우리 안에도 본래 고요하고 청정한 법신의 성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나만의 안락과 평화를 위해 가둬두는 것은 화엄의 길이 아니다. 그 내면의 빛을 타인을 위해, 세상을 위해 ‘인연 따라 감응하여[隨緣赴感]’ 기꺼이 드러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화엄의 보살이 된다. 나의 재능, 나의 시간, 나의 공감을 사용하여 지금 내 앞의 존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바로 ‘보리좌에 머물면서도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는’ 현대적 실천이다.
우주배경복사와 법신의 빛
현대 천문학은 우리에게 놀라운 화엄적 진실을 살짝 비춰준다. 과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에 따르면,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대폭발(Big Bang)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폭발이 남겨놓은 빛의 여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를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라고 부른다.
이 빛은 방향에 상관없이 거의 완벽하게 균일하며, 하늘의 어느 곳을 향하든 존재한다. 그것은 태초의 흔적이자 우주의 근원적 속성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빛 속에 살고 있다. 「여래현상품」의 지혜 광명은 이 우주배경복사와 절묘하게 닮았다. 여래의 본질인 법신法身(Dharmakāya)은 형상도 없고, 태어남도 없으며,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모든 곳에 두루하다.

우주배경복사가 우주의 물리적 근원을 증명하듯, 여래의 빛은 모든 존재의 근원적 실상, 즉 공空하면서도 연기緣起하는 법성의 세계를 드러낸다. 이 빛이 비치자, 시방의 모든 세계가 낱낱이 드러난다. 나의 세계 속에 너의 세계가 있고, 과거의 세계가 현재의 세계를 비추며, 저 멀리 이름 모를 보살의 정진이 바로 지금 여기 나의 깨달음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 빛은 ‘차별’이 없다. 선한 자와 악한 자, 성인과 범부, 미세한 먼지와 거대한 수미산을 똑같이 비춘다. 그 빛 아래서 나의 작은 세계는 사실 무한한 다른 세계와 연결된 하나의 그물코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다른 세계에서는 무엇이 다르게 보이는지, 나의 무심한 행동 하나가 저 멀리 다른 존재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보게 된다. 나의 좁은 소견과 이기심이라는 렌즈를 버리고, 여래의 보편적인 지혜 광명으로 세상을 비춰보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나와 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진정한 의미의 자비가 싹틀 수 있다. 이렇게 붓다는 빛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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