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대화엄사의 약사여래 마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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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5 년 11 월 [통권 제151호] / / 작성일25-11-05 10:12 / 조회13회 / 댓글0건본문
화엄華嚴은 ‘꽃 화華’와 ‘엄숙할 엄嚴’이 만나 이루어진 말로, 온 세상이 한 송이 거대한 꽃처럼 피어나는 진리의 장엄함을 뜻합니다. 직역하면 이러하지만 화엄이라는 말 속에는 존재의 우주적 깊이와 관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깃들어 있습니다. 화엄은 불교 사상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포괄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화엄華嚴’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꽃으로 장엄한다’는 뜻으로, 깨달음의 세계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고, 서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화엄의 사상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라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화엄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이끌려 화엄사 도량을 거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각황전 홍매나무 아래에 서기까지 마법에 걸린 듯 환희로움으로 가득합니다.
조왕님과 공양주
“한 송이 꽃이 피기 위해서는 햇빛과 바람, 흙과 물, 미생물과 계절의 순환이 모두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존재하고, 그 인연의 그물 속에서 서로를 비추며 살아갑니다.” 화엄사에서 공양주 소임을 맡고 계시는 마하연 보살님과의 차담 시간에 들은 귀한 메시지입니다. 수행 음식과 치유 음식을 인생의 화두로 삼아 30년 넘는 세월 동안 실천하고 공부하며 깨닫게 된 주옥같은 말씀들이 선지식의 법문처럼 들리는 순간입니다.
차담을 나누며 마하연 보살님과 마주 앉아 눈빛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깊은 산중의 선방에서 뵈었던 수좌의 눈빛을 보는 듯 그 깊이는 말로 표현이 어렵습니다. 특히나 어머니처럼 푸근한 미소와 친근한 말투가 음식을 맛보기도 전이었지만 이미 맛이 있었고, 이미 건강해짐을 느꼈습니다. 마하연 보살님은 30여 년 동안 공양주 소임을 살면서 절반이 넘는 세월 동안 화엄사 공양간을 지키며 수행하고 계십니다.

문득 조왕님을 떠올리며 마하연 보살님은 화엄사 공양간의 조왕신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양주 보살님과 조왕님은 부엌의 따스한 숨결 속에서 만납니다. 두 분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자비의 손길로 세상을 먹이고 살리는 존재들입니다. 한 분은 수행자의 공양을 책임지는 보살로서 한 그릇 밥 속에 불법의 향기를 담고, 다른 한 분은 집안의 부뚜막을 지키며 모든 생명이 평안하도록 기원을 드립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두 존재의 마음은 한결같이 살림과 자비의 길 위에 함께합니다.
기도하고 먹고 사랑하라
공양주 보살님은 매일 새벽, 첫 물을 데우고 첫 밥을 짓습니다. 그 손끝에는 탐욕도 분노도 없어야 합니다. 오직 정성과 감사만이 깃들어 있습니다. 마하연 보살님이 공양주 소임을 살면서 수없이 지어 왔던 음식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지은 공양이었습니다. 수행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삶 속에서 사부대중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것은 결국 공양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성으로 차린 음식을 통해 수행자의 마음을 돕고, 세상을 맑히는 힘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밥 짓는 일 자체가 보살님에겐 수행이었고, 공양간은 보살님의 불사로 장엄되는 도량이었습니다. 불 위에 솥이 올려질 때마다 자비의 향이 퍼지고, 그 향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안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양을 올렸습니다. 조왕님은 부엌의 신으로서 모든 생명이 의지하는 불의 자리, 그 중심에 계십니다. 불은 음식을 익히고, 생명을 살리고, 때로는 정성을 시험하기도 합니다. 조왕님은 그 불길이 탐욕의 불이 되지 않도록 생명을 태우지 않고 살리는 불이 되도록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조왕님은 ‘삶의 중심’이자 ‘조화의 신’입니다.

마하연 보살님과 조왕님은 이렇게 서로 다른 이름으로 같은 자비를 실천하신 점에서 많이 닮아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밥을 지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올리는 일은 곧 생명을 공양하는 일이고, 불을 살피는 일은 마음의 불씨를 가꾸는 일이므로 이 모든 것들은 스스로를 반추하며 수행해 나가는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됩니다.
수행의 음식, 치유의 음식
이른 아침, 평소에 존경하던 마하연 보살님을 뵈러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껏 들떴습니다. 화엄사 홍매를 유난히 좋아해서 해마다 홍매 소식을 기다리며 새벽을 달려 친견하곤 했는데 지금은 홍매보다 마하연 보살님입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정갈한 자연스러움이 눈길을 사로잡았고, 인자하신 모습 속에 부드럽게 자리하고 있는 카리스마는 눈 푸른 운수납자를 보는 듯 청아하고 단정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공양간이라도 서두르는 법이 없고 번다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마치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어수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 스님들께서 공양주를 살면 지혜의 문이 트인다고 하셨나 봅니다. 마하연 보살님의 모든 일상은 불법을 만난 인연과 부처님의 도량에서 대중이 함께 살면서 축적된 수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참회하고, 원력을 세우면서 머리가 하얗게 서리도록 부처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음식 수행을 이어오셨습니다.

마하연 보살님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음식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먹고 자란 대로 기본에 충실하며 불가의 전통을 살려 이어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마하연 보살님의 음식에서는 엄마의 향기가 있고 추억의 맛이 깃들어 있습니다. 궁중음식이 오직 임금님만을 위해 정성을 들인 음식이라면 마하연 보살님의 음식은 오직 수행하시는 스님들의 건강을 생각하시는 수행 음식입니다. 그래서 사찰의 공양간은 단순한 일상의 공간이 아니라, 자비가 익어가는 또 다른 도량이 되는 셈입니다. 공양주 보살님의 정성스런 손길이 음식에 기운을 담고, 조왕님의 따뜻한 불길이 그 기도를 세상에 전해 줍니다.
인드라망의 가르침
보랏빛 맥문동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던 날, 노랗게 물든 들녘을 따라 마하연 보살님을 만나러 구례 화엄사로 향했습니다. 마침 산사의 밥상 가을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사찰음식체험관에는 수강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체험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를 연발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분단마다 이름과 지역이 표시되어 있는 이름표가 놓여져 있었는데 그야말로 전국 팔도에서 다 모였습니다.
문득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드라망因陀羅網’이 떠올랐습니다. 인드라망은 끝없이 이어진 그물처럼, 그물코마다 구슬이 달려 있고, 이 그물의 특징은 모든 마디마다 보석이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석 하나하나가 다른 모든 보석을 비추며 서로를 반사한다는 것입니다. 인드라망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변화가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깨달음의 비유입니다. 이처럼 화엄사 공양주 소임을 살면서 사찰음식체험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수행의 음식, 치유의 음식을 전하고 계시는 마하연 보살님이야말로 삶 속에서 인드라망의 의미를 그대로 표현해 주신 보살의 화신이었습니다.

남은 시간을 오직 수행에만 집중하시기로 원력을 세우신 마하연 보살님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인연에 의한 것이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아름답게 회향하는 것이 당신의 소임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은 공양주로서의 삶을 회향하며 업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마음공부이며, 마음챙김이라는 말씀을 강조하시며 봉사하는 삶 속에서 복과 덕이 풍요러워짐을 깨달으니 우리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봉사하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공양주를 회향하는 날, 이제 산문 밖으로…
참관 수업을 위해 찾아간 저에게 기회를 주시고자 앞쪽에 따로 테이블을 준비하고 예쁘게 다과 상차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토록 사소한 상황 속에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정성을 들이시는 보살님의 깊은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서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마하연 보살님의 따스한 성정을 보다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고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사람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 긴 시간 동안 스님들을 위해 노력해 오셨고 애쓰셨기에 공양주를 회향하는 시점에서는 수행력을 바탕으로 산문 밖에서 치유 음식을 나눌 수 있기를 발원하고 계십니다. 30년 산중 생활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과 함께 남은 여생은 다음 생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정진하고 계시는 마하연 보살님. 치유 음식을 통해 많은 이들을 구제하는 일이 당신의 업장소멸 방편이라시며 아주 분명한 기도와 원력을 세우셨습니다.

공양주를 회향하고 시작하는 삶은 다음생에 수행자로 태어나기 위한 기도라는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맴돕니다. 언제라도 달려가면 두 팔 벌려 따스하게 안아 주실 것 같은 마하연 보살님의 원력이 모두 성취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약사여래의 화신 마하연 보살님께서 일러주신 가을 산사음식 중 맑은 토란국과 고들빼기 장무침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맑은 토란국
【 재료 】
알토란 300g, 감자 100g, 우엉 100g, 무 100g, 표고버섯 80g, 단호박 100g, 배추 80g, 채수 8컵, 국간장 4T, 건다시마, 들기름 2T.
【 만드는 법 】
1. 알토란 껍질을 벗긴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끓는 물에 넣고 10분 정도 삶아 아린 맛을 뺀 후 찬물에 헹궈 주세요.
2. 감자, 표고버섯, 무, 단호박을 정사각형으로 도톰하게 썰어 주세요.
3. 우엉은 어슷하게 썰고 배추는 3cm 길이로 썰어 줍니다.
4.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감자, 표고, 무, 우엉을 볶아 준 다음 건다시마와 채수 3컵을 넣은 뒤 간장 1T를 넣어 간을 맞춰 10분 정도 끓입니다.
5. 위에 알토란, 단호박, 배추, 간장 3T, 채수 5컵을 넣어 10분 정도 끓여서 마무리합니다.

TIP.
- 절기음식으로 가을을 대표하는 식재료입니다.
- 알토란이 터지지 않고 뭉개지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 가을을 담은 보양식으로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고들빼기 장무침
【 재료 】
고들빼기 500g (절이기–물 6컵, 소금 50g), 양념-고추장 130g, 된장 60g, 매실발효액 3T, 간장 3T, 고춧가루 50g, 조청 80g, 생강가루 1T, 유자청 50g, 통깨 2T.
【 만드는 법 】
1. 고들빼기를 깨끗이 손질하여 씻은 다음 절임물에 담가 1시간 절입니다.
2. 절인 고들빼기를 건져서 수분을 꽉 짜주고 햇살 좋고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1시간 정도 건조해 줍니다.
3. 양념 재료를 모두 넣고 혼합하여 건조된 고들빼기를 버무린 다음 통깨를 뿌려 줍니다.

TIP.
- 고들빼기는 절인 후 물에 헹굼하지 않습니다.
- 약간의 단맛이 쓴맛을 잡아 줍니다.
- 된장을 넣으면 깊은 맛을 냅니다.
- 고들빼기는 수분을 건조하여 사용하고 남은 물기는 고춧가루를 넣어 주면 고슬고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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