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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사막이 숨긴 불교미술관 ]
막고굴의 열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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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  2025 년 10 월 [통권 제150호]  /     /  작성일25-10-03 18:48  /   조회1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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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거의 불상이나 불화를 감상하는 것은 예술 조형의 미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 조형을 통해서 당시 사회사상의 흐름을 명확히 하고 아울러 문화 발전의 맥락을 살피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는 “철학은 지식을 재료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의 정감을 재료로 나타나게 된다.”(주1)라고 말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시각예술’은 그 바탕이 철학 관념의 미적 감정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상이나 불화를 통해서 그 제작자의 신앙심과 조형 이념을 살필 수 있으며, 그 출현의 문화적 배경이나 철학·사상 역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 

 

사진 1. 막고굴 제158굴 서벽 〈열반상〉 두부 부분. 중당中唐, 平凡社..

 

그렇다면 우리는 불교미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해야 할 것인가? 불교미술의 감상은 대략 주관적 관점에서는 유미적唯美的, 서정적抒情的 감상이 있을 수 있고, 객관적 관점에서는 고증적考證的 감상이라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유미적, 서정적 감상은 불교미술품을 서정시抒情詩를 감상하는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불화나 불상을 대하게 되면 마음속으로부터 모종의 감정이 용솟음친다. 그 감정은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으나 거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불심’이다. 정말로 사람들의 개성은 아주 복잡하다. 사람들의 처지와 인과관계는 서로 다르며 한 사람이 대하는 불상에 대한 감정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그러므로 심미적 입장에서 불교미술을 논의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불교미술의 미美는 시대, 지역 풍토에 따라 그 표현의 미의식이 서로 다르므로 그것을 어떤 하나의 미적 개념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사회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사람들의 미적 향수 또한 천차만별이며, 개인 애호의 감성 문제이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 불상 조형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다 같이 고구려의 불상을 논하면서도 어떤 학자는 ‘고졸의 미’라 단정하며, 또 다른 학자는 다른 견해를 밝힌다. 그리고 통일신라 시대 석굴암 불상의 장엄함과 엄숙미를 찬탄하기도 하며 조선시대 투박한 미륵불상에 매료되는 이도 있다. 

 

사진 2. 막고굴 제158굴 남벽 서측 〈열반변상〉 벽화 부분. 보살과 거애제자.

 

이런 주관적 감동을 통해서 자기의 불상 감상의 목적에 도달했다고 만족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인 감동은 왕왕 불상이 객관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의의를 소홀히 할 수 있다. 더욱이 관광지 사찰의 고불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불상을 대할 때에는 안치된 환경으로 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불상 고유의 사상이나 교의를 소홀히 하게 하고 다만 달콤한 옛 정서에만 도취하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불상의 미소’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불상의 미소는 신비스러운 상징미로 여겨지거나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찬탄하게끔 한다. 혹자는 불상의 미소와 모나리자의 미소를 비견하기도 한다. 또 이를 ‘명상 중 순수한 자비심 표현의 미소’ 혹은 ‘해탈 순간의 그윽한 미소’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와 같은 감상의 방법은 ‘낭만적’ 감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 3. 막고굴 제158굴 서벽 천왕天王 부분.

 

다른 한 방법으로는 ‘고증적’ 감상법이 있다. 이를 미술 ‘양식론’ 연구라고도 한다. 이 감상법은 근거자료를 연구하여 그것을 통해 제작연대 및 원래의 설치 장소 등을 밝히는 것이다. 미술사학 대부분이 이 연구 방법을 따르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과거의 미술품을 대하게 되면 우리는 거기서 거리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불교미술이 불교의 상징물, 불교의 형상임을 우선해서 인식해야 한다. 역대 미묘한 조형의 변화 과정에는 불교사상의 변화가 묻어 있다. 그러므로 서양미술 조형 개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서양미술 역시 종교적 내용이거나 인간 생활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불교미술은 다만 형상의 표현만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사진 4. 막고굴 제158굴 서벽 천룡팔부天龍八部 부분.

 

종교미술에서 최고로 중요시하는 것은 신앙심이다. 그러므로 형상의 변천에는 사상의 변화가 숨겨져 있으며, 사상의 변화에는 시대인의 생활과 바람이 담겨 있다. 그래서 헤겔(G, Hegel, 1770∼1831)은 인류가 창조한 문화를 ‘정신의 객관화’라고 말한 것이다.(주2) 그는 역사가 절대적으로 정신의 지배를 받으며, 그 ‘정신’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형상으로 드러낸 것이 바로 문화라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당대의 불교미술은 당대의 정신을 객관화한 산물이다. 돈황의 당대 불교미술은 당대 사람들의 삶의 표현이다. 우리는 이러한 미술품들을 통해 미술창조의 문화정신, 불화의 표현형식, 미술발전의 역사과정 등등의 문제를 탐구하고 이해하여 미술문화의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기원전 2세기 인도 스투파에 조각된 열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열반 도상은 인도의 고대 스투파(stupa, 塔)에서 볼 수 있는데, 기원전 2~1세기경에 조성된 스투파에는 사리舍利를 봉안하는 스투파와 입멸 장소인 사라쌍수沙羅雙樹 등 상징을 통하여 석가의 열반을 묘사하였다. 이후 불상의 탄생지인 간다라에서는 상징이 아니라 직접 사라쌍수 아래 오른팔을 베고 누워 열반에 든 석가모니의 모습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2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의 〈석가열반상〉은 현존 최초의 〈열반상〉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5. 막고굴 제158굴 서벽 상부 공양비천 부분.

 

붓다의 열반도상, 중국식 회화로 그려지다

 

열반涅槃(Nirvana)은 육신의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등불이 바람에 꺼지듯 미혹迷惑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즉 열반은 미혹과 집착을 완전히 끊고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해탈의 경지이며, 깨달음이 완성된 최고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열반은 단순히 생명이나 삶의 불길이 꺼진 상태가 아니라 고통과 번뇌의 불길이 꺼진 상태로 이해된다. 이는 생명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자 영원하고 완전한 평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열반은 불교의 목표이자 불교미술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열반도〉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중국 남송대의 화가 육신충陸信忠이 그린 〈열반도〉이다. 두 그루의 사라쌍수 아래 부처님이 오른팔을 베고 편안히 누워 계신 침상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서운瑞雲, 그 앞에서 춤을 추는 두 인물, 침상을 둘러싸고 깊은 슬픔에 잠긴 10대 제자들, 석가의 열반 소식을 듣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마야부인과 일행 등 부처님의 열반이라는 극적인 순간을 아름다운 채색과 짜임새 있는 구도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육신충의 〈열반도〉이다.

 

사진 6. 막고굴 제438굴 〈열반도〉 부분.

 

당대 전기(초기, 성당)의 수대의 〈열반도〉에 기초하여 서역의 영향을 완전히 제거하고 새로운 면모로 변화하였다. 중국의 연환화 형식을 따르며 그 어느 때보다 규모가 큰 〈열반도〉로 발전한 것이다. 중당中唐 시기에는 토번吐蕃(티베트족) 귀족 통치의 영향으로 인해 서역의 다른 민족의 과도한 장례 풍습이 반영되어 나타나기도 하였다. 예를 들자면 가슴을 찌른다거나 귀를 베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막고굴 제158굴 남벽에 그려진 가섭이 우는 장면을 보면, 그의 눈은 깊이 들어가고 코가 우뚝한 인도 승려로 그려져 있다. 그는 장도에서 돌아와 사라쌍수 아래 붓다의 관을 보고 두 손을 높이 들고 몸을 앞으로 숙여 곧 쓰러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섭의 좌우로 두 비구가 그를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하고 있다. 가섭 앞에는 또 한 명의 비구가 그려져 있는데, 그를 가리지 않도록 손을 아래로 뻗고 있다. 그리고 가섭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입은 크게 벌리고, 혀도 약간 내밀고 있다. 가섭의 오른쪽 아래에는 아난존자가 웅크리고 앉아 한 손으로 귀를 가리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고 있다. 몇몇 제자들도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화면 상부에 다섯 명의 보살을 나란히 그려놓았는데, 숙연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제자들의 침통하고 애잔한 모습과 대비되고 있다. 

 

사진 7. 막고굴 제158굴 북벽 서측 〈열반변상〉 벽화 부분, 중당中唐.

 

이에 반해 벽면에는 〈왕자거애도王子擧哀圖〉가 그려져 있다. 화면의 맨 앞에는 토번인이 애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토번이 돈황을 지배하는 동안 나타난 막고굴 벽화 구성의 특징 중 하나로 이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화면 앞줄에 있는 몇 사람의 동작을 보면, 화면 중간의 한 사람은 칼로 귀를 베고 있으며, 그 옆 사람은 칼로 가슴을 찌르고 있다. 어떤 이는 칼로 코를 베고 있으며, 맨 앞 사람은 큰 검으로 심장을 찌르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과거 중앙아시아 민족의 특이한 애도 관습인데, 화면에서 이를 현실감 있게 잘 반영하고 있다.

 

당대에 많이 그려지던 큰 폭의 변상도는 귀의군시기歸義軍時期(848∼1036)에 이르러 그 세력이 약화되었는데, 유독 〈열반경변상도〉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 원인은 아마도 ‘열반’의 의미가 아무리 신비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사람들의 선호도가 옅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각주>

(주1)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 책세상(2003)

(주2) 장상호, 『학문과 교육(상): 학문이란 무엇인가』,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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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동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수료,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동국대학교 연구교수, 창원대학교 외래교수, 경상남도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경상남도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 창원민속역사박물관 자문위원, 한국불교미술협회 회장, 한국교수불자연합회 감사 및 불교미술 작가로 활동 중이다.
seonhi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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