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가야산 사자후]
새해의 불법
페이지 정보
성철스님 / 1997 년 12 월 [통권 제8호] / / 작성일20-05-06 08:33 / 조회12,040회 / 댓글0건본문

수시
‘이(以)’자도 이루지 못하고 ‘팔(八)’자도 옳지 않나니
까마귀 머리에 뱀 꼬리요, 뱀 꼬리에 까마귀 머리로다.
섣달 그믐 날이요 정월 초하루니
푸른 하늘에 빛나는 해요, 한밤중에 된 서리로다.
중니(仲尼)는 망연하여 입을 열지 못하고
싯달(悉達)은 빙그레 웃으며 가슴을 가리키네.
송
천길 물결 밑에서 고기는 달을 물고
만길 절벽 위에서 범은 휘파람 분다.
고칙
경청스님(주1)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새해에 불법(佛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느니라.”
“어떤 것이 새해의 불법입니까?”
“새해에 복 많이 받아라.”
“스님께서 대답해 주신데 감사합니다.”
“경청이 오늘 실수하였노라.”
착어
불이 벌건 화로에 찬 얼음이 얼었구나.
고칙
또 명교스님(주2)에게 어떤 중이 물었다.
“새해에 불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느니라.”
“해마다 좋은 해요 날마다 좋은 날이거늘 어째서 없다 하십니까?”
“장서방이 술을 마시는데 이서방이 취하네.”
“늙고 점잖은 이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다.”
“명교가 오늘 실수하였노라.”
착어
눈 덮인 산이 맹렬한 불꽃을 토한다.
해설
두 늙은이가 한 사람은 남섬부주(주3)를 향해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타고,
한 사람은 북구로주(주4)에 있으면서 햇빛 속에서 칼춤을 춘다. 문득 한 방에서 서로 만나 손뼉 치며 크게 웃으니, 상서로운 빛은 푸른 하늘 밖을 바로 뚫고, 자줏빛 구름은 온 세계를 두루 덮는다.
송
심문 분선사(주5)가 송하였다.
“칠보 보배 잔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금화지(金華紙) 위에다 청평사(淸平詞)(주6)를 쓴다.
봄바람 고요한 집에 보는 사람 없으니
한가한 임금이 옥피리 부네.”
착어
이 일은 그만두고 섣달이 다함에 송구영신(送舊迎新)하니
한마디 말을 어떻게 이르겠는가?
(한참 묵묵한 후에 말하였다.)
송
부자는 천 명 식구도 적다고 싫어하고
가난한 사람은 한 몸도 많다고 한탄하느니라.
주
1) 경청도부(鏡淸道 :864∼937): 설봉 의존(雪峰義存)의 법제자.
2) 명교사관(明敎師觀:1143∼1217): 임제종 양기파 스님. 대홍조증(大洪組證)의 법제자.
3) 남섬부주(南贍部洲): 고대 인도의 우주설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고, 그 아래로는 지륜(地輪) 수륜(水輪) 풍륜(風輪)이 겹쳐 있고, 산의 주위에는 구산팔해(九山八海)가 교호(交互)하며, 제일 바깥 바다 가운데 사대주가 있는데 인간이 산다고 하는 남쪽 섬을 말한다.
4) 북구로주(北俱盧洲): 수미산의 사대주 가운데 중생의 수명이 천년이라고 하는 북쪽 섬을 말한다.
5) 심문담분(心聞曇賁): 생몰연대 미상. 임제종 황룡파 스님, 육왕 개심(育王介心)의 법제자.
6)청평사(淸平詞): 당 현종이 양귀비와 침향정에서 모란을 감상하며, 이태백에게 명하여 악부의 하나인 청평조에 맞추어 지은 삼장으로 된 시이다.
<사자후원문 : 鏡淸新年>
以字不成이요 八字不是니 烏頭蛇尾오 蛇頭烏尾로다 臘月三十이요 新正元旦이니 靑天白日이요 夜半濃霜이로다 仲尼는 茫然不開口하고 悉達은 莞爾笑點胸이로다
千尋浪底에 魚啣月이요 萬 崖頭에 虎嘯風이로다 鏡淸이 因僧問호대 新年頭에 還有佛法也無아 淸이 云 有니라 僧云 如何是新年頭佛法고 淸云 元正啓祚로다 僧云 謝師答話니이다 淸云 鏡淸이 今日에 失利로라하니 師云 紅爐에 結寒氷이로다 又明敎因僧問호대 新年頭에 還有佛法也無아 敎云 無니라 僧云 年年是好年이요
日日是好日이어늘 爲什 無오 敎云 張公이 喫酒에 李公醉니라
僧云 老老大大가 龍頭蛇尾로다 敎云 明敎가 失利로라하니
師云 雪岳이 吐猛焰이로다 兩箇老漢이 一人은 向南贍部洲하야 月下에 彈琴하고 一人은 在北俱盧洲하야 日裏에 舞劒이라 忽然一室에 相會하야 撫掌大笑하니 瑞光은 直透靑 外하고 紫雲은 遍覆塵沙界로다 心聞賁이 頌曰 七寶盃酌葡萄酒하고 金華紙寫淸平詞로다 春風靜院에 無人見하니 閑把君王玉笛吹라하니 師云 是事는 且置하고 臘月이 已盡에 送舊迎新하니 一句를 作麽生道오 良久云 富嫌千口少하고 貧恨一身多니라 卓 杖一下하고 遂下座하시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인도 데라둔 민될링 닝마빠 사원
3년 전 『고경』 연재를 시작하면서 티베트 불교에 관련된 걸출한 인물과 사찰 그리고 종단을 고루고루 섞어 가려고 기획은 하였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연재 목록을 살펴보니 더러 빠진 아이템이 있었는데…
김규현 /
-
출가자와 사원 감소에 직면한 일본 불교
사토 아쯔시_ 도요대학 강사 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큰 문제 중 하나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고경 필자 /
-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에서 발견한 소중한 자료
무관심이 오히려 보물을 지켜낸 힘 지난 6월 5일과 6일, 황금연휴임에도 불구하고 백련불교문화재단의 사무국장 일엄스님과 성철사상연구원 서재영 원장 그리고 동국대 불교학술원 서수정 박사와 김…
원택스님 /
-
사찰음식, 축제가 되다
사찰음식이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불교 전래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오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과 불교의 불상생 원칙과 생명존중, 절제의 철학적 가치를 음식으로 구현하여 고유한 음식…
박성희 /
-
운문삼종병雲門三種病
중국선 이야기 52_ 운문종 ❼ 운문종을 창시한 문언의 선사상은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그의 선사상은 남종선과 그 이전에 출현한 조사선의 사상적 근거인 당하즉시當下卽是…
김진무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