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깊은 산 속에서 흰구름 벗삼아
페이지 정보
편집부 / 1997 년 3 월 [통권 제5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8,298회 / 댓글0건본문
인간은 복잡할수록 도시를 떠나고 싶고, 때로는 이름없는 산사에서 질박한 노스님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오늘은 고려 후기 나옹화상의 「산거(山居)」 시를 통하여, 스님이 생활한 산사의 담박한 맛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白雲堆裏屋三間 흰구름 겹겹이 쌓인 곳에 초가집 하나
坐臥經行得自閑 누워보고 앉아보고 거닐다 한가로움 터득했네
磵水冷冷談般若 바위 틈의 차가운 물 반야(般若)를 설하고
淸風和月遍身寒 청풍(淸風)은 달과 어울려 온 몸을 서늘케 하는구나
이 시의 소재로는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정성이 짙은 사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흰구름’은 속세와 진계(眞界)를 갈라놓고 있는 사물이다. ‘셋간 초가’는 그 속세에 있지만 외딴 곳에 있는 집이다. 흰구름 속에 사는 노승(老僧)의 세계를 이 초가 한 지점으로 집약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노스님은 고답적인 법문을 설하시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은 그저 앉았다 누웠다 하는 평범한 행동일 뿐이다. 산사에서 지내는 스님은 이러한 일상적인 행동에서 ‘스스로 마음의 자유를 얻고 자신의 한가로운’〔自閑〕의 경지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자연의 모든 것이 자신과 합일되는 것을 알게 된다. 차가운 시냇물은 자연의 일상적인 사물이지만 마치 반야경의 깊은 이치를 설하는 듯하고, 시원한 바람과 달빛도 이러한 한가로움을 확산시켜 자신과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것은 도를 깨우쳐 가는 경지를 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사의 스님은 일상의 생활에서 마음의 자유를 얻고, 나아가서 자연의 평범한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이루는 것이다. 즉 자연물의 서정성과 스님의 일상성이 합쳐져 한정(閑情)의 보다 높은 경지를 이루고 있으니, 우리 모두 산사로 달려가 보지 않으시렵니까.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히말라야를 넘나들었던 신라의 순례승들
2001년 케룽현에서 4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종까마을에서 국보급 가치가 있는 고대석각古代石刻이 발견되어 중국 고고학계를 흥분시켰던 일이 있었다. 바로 〈대당천축사출명〉이란 비문(주1)이다. 이 …
김규현 /
-
대화엄사의 약사여래 마하연
화엄華嚴은 ‘꽃 화華’와 ‘엄숙할 엄嚴’이 만나 이루어진 말로, 온 세상이 한 송이 거대한 꽃처럼 피어나는 진리의 장엄함을 뜻합니다. 직역하면 이러하지만 화엄이라는 말 속에는 존재의 우주적 깊이와 …
박성희 /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光陰莫虛度]
중국선 이야기 56_ 법안종 ❸ 법안종을 세운 문익은 청원계를 계승한 나한계침羅漢桂琛의 “만약 불법을 논한다면, 일체가 드러나 있는 것[一切現成]이다.”라는 말로부터…
김진무 /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강설 ⑦ 파환향곡破還鄕曲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11 파환향곡破還鄕曲이라. 앞에서 환향곡還鄕曲이라 해서 지금 고향으로 돌아오는 판인데, 이번에는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부숴 버린다는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온다고 하니…
성철스님 /
-
금목서 피는 계절에 큰스님을 그리며
예로부터 윤달이 들어 있는 해는 일반 달보다 여유가 있어 우리 선조들은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일들을 처리하거나 마음을 정리하는 데 적합한 해로 여겨 왔습니다. 평소에는 꺼렸던 일도 윤달은 ‘귀신도 쉬…
원택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