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걸어간다
페이지 정보
최재목 / 2020 년 4 월 [통권 제84호] / / 작성일20-05-28 16:09 / 조회10,117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 영남대 교수

지옥에 동백이 피었습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손 들고 찬송합니다
지옥에도 목련화가 집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팔 걷고 내다버립니다
봄이 끝나면 그곳으로 주소를 옮길까 합니다
땅값이 오르기 전, 집 한 채를 사서
지옥을 잘 지키겠습니다
설마 그곳에도 불성이 있겠지요
제가 출가를 하겠습니다
뒷산에다 절을 짓고, 철새에게 백팔배를 가르칠 겁니다
돌들에겐 목탁 치는 법을, 밭 가로 흩날리는 비닐들을 끌어 모아,
참선에 몰두토록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지옥도 불국토라 할 만 하겠죠?
아, 그러면
저 극락이 설 자리는 또 어디인가요?
청도 운문사 내원암 가는 길에
도랑가로 내려가, 물고기 스님 세 분에게 묻는다
물속을 왔다 갔다, 금새 돌 밑으로 숨고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불멸의 침묵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구름도 몸이 무거워 밑바닥으로 내려와 눕는다
지옥도 짐이고, 극락도 짐이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란다
들 것에 실려 떠나는 생각을 본다
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떠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삭발한 허망을 붙들고 우는 신발을 쳐다보았다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터벅터벅 천국으로 걸어간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히말라야를 넘나들었던 신라의 순례승들
2001년 케룽현에서 4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종까마을에서 국보급 가치가 있는 고대석각古代石刻이 발견되어 중국 고고학계를 흥분시켰던 일이 있었다. 바로 〈대당천축사출명〉이란 비문(주1)이다. 이 …
김규현 /
-
대화엄사의 약사여래 마하연
화엄華嚴은 ‘꽃 화華’와 ‘엄숙할 엄嚴’이 만나 이루어진 말로, 온 세상이 한 송이 거대한 꽃처럼 피어나는 진리의 장엄함을 뜻합니다. 직역하면 이러하지만 화엄이라는 말 속에는 존재의 우주적 깊이와 …
박성희 /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光陰莫虛度]
중국선 이야기 56_ 법안종 ❸ 법안종을 세운 문익은 청원계를 계승한 나한계침羅漢桂琛의 “만약 불법을 논한다면, 일체가 드러나 있는 것[一切現成]이다.”라는 말로부터…
김진무 /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강설 ⑦ 파환향곡破還鄕曲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11 파환향곡破還鄕曲이라. 앞에서 환향곡還鄕曲이라 해서 지금 고향으로 돌아오는 판인데, 이번에는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부숴 버린다는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온다고 하니…
성철스님 /
-
금목서 피는 계절에 큰스님을 그리며
예로부터 윤달이 들어 있는 해는 일반 달보다 여유가 있어 우리 선조들은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일들을 처리하거나 마음을 정리하는 데 적합한 해로 여겨 왔습니다. 평소에는 꺼렸던 일도 윤달은 ‘귀신도 쉬…
원택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