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도자기]
천년 발우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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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20 년 3 월 [통권 제8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9,416회 / 댓글0건본문
태안 앞바다에는 마도라는 섬이 있다. 보물선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작은 섬이다. 고려는 바닷길을 통해 이웃나라 사신이 오갔고 국제 무역이 성했으며 각 지방에서 생산된 물자를 수도 개경으로 운송하여 왕실과 귀족의 수요를 충당했다. 서해바다는 가장 중요한 해상로였고 그중 마도에서는 해상 사고가 잦았다. 지금까지 수중 발굴된 마도1,2,3,4 호까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배가 많은데 바다 속이 가장 안전한 수장고라고 한다!)에는 고려인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태안 마도 앞바다는 빠른 조류, 안개, 암초 등의 악조건 때문에 많은 배들이 개경까지 가지 못하고 침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고로 침몰한 배와 그 안에 실린 물자는 그 위로 쌓이는 개흙 덕분에 진공상태로 보존되어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신상들이다. 주꾸미 낚시배 그물에 올라온 고려 청자. 주꾸미는 고려청자를 집삼아 살고 있었다. 이런 바다 속의 유물을 태안해양유물박물관에서 볼 수가 있었다.

사진 1. 그릇이 엮여 있는 사진. 배에서 도자기는 이런 형태로 운반됨.
내가 느끼는 고려청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래서 도자기를 하면서도 청자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가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도자기를 보노라면 내 발걸음이 오래 머무는 곳은 청자 앞에서였다.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은 이를 두고 하는 거구나 늘 마음속으로 흠모를 하고 있었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여 바다 유물을 전시한다기에 별 기대 없이 가 보았다. 대부분이 도자기였고 생선뼈까지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재미난 것은 목포에서 배를 그대로 복원하여 바닷길로 오로지 바람과 파도와 돛으로 태안까지 옮겨왔는데 16일이 걸렸다고 한다.
느낌일까?
내가 알고 있던 고려청자는 너무 완벽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릇이었는데 여기서 본 고려청자는 왠지 편안한 느낌이었다. 그중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청자발우였다. 발우는 승려들이 공양할 때 썼던 그릇인데 크기가 다른 4점이나 2점이 포개진 상태로 167점이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고품질 발우는 고려시대 불교 사원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발우뿐만이 아니라 연꽃무늬 사발 접시 등 고급스러운 문양과 형태가 많았다.
도대체 고려는 어떤 나라이기에 이런 미감美感을 가질 수 있었을까.
고려 왕실은 최대 미술 후원자가 되어 그들의 미감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새로운 물품제작에 도전하기도 하고 다른 민족의 장인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다고 한다.
고려 왕실에서 주목한 신소재 물품 중 하나가 바로 자기磁器(자기는 1300도 고온에서 구운 것을 말한다)였다. 그릇 표면에 유약을 입혀 고온에서 구워 만든 자기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제작되었다. 표면의 유약이 녹으면서 코팅 역할을 하여 음식을 담아도 스며들지 않아 도기陶器(낮은 온도인 1000도로 구운 그릇으로 자기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되었다)에 비해 기능성이 강화되었다.
중국 제작 기술이 도입되었지만 고려에서 자기를 생산한 것은 일대 혁신이었고 고려 왕실은 곧 고려만의 빼어난 자기 문화를 꽃필 수 있도록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을 갖추었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도기의 푸른빛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 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거나 송대 태평노인이 저술한 『수중금』은 “고려비색이 천하제일”이라고 평하였다. 정말 그랬다! 천하제일天下第一 비색청자翡色靑磁!

사진2. 고려청자 발우

사진3. 필자가 만든 발우
청자 발우를 보면서 나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나는 대로 찾아가 내 마음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도록 보고 또 봤다. 색감이나 형태가 완전한 비색은 아니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느껴지고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 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청자와 분청은 불때기와 가마의 구조도 약간 다르다. 청자는 환원염번조로 가마 안으로 최대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소성한다. 소성을 하면서 필요한 산소의 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장작이 탈 때 발생하는 탄소는 흙이나 유약의 산소를 끌어 내여 결합한다. 따라서 철분은 산소를 뺏기면서 푸른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비색이 바로 이런 환원 불때기의 절정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간간이 노란빛이 보이는 것은 산소의 맛을 약간 본 그릇들이다.
나는 마음에 크게 담고 크기와 형태 등을 스케치했다. 내 가마 구조는 환원염구조는 아니어서 철분 성분이 있는 사과나무재 유약을 쓰면 비슷한 색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발우와 연화형 접시, 대접, 찻잔 등을 만들어 보았다. 되도록 크기와 형태를 원형 그대로 만들어 보았는데 세심한 부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공정에서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사과나무재 유약으로 푸르스름한 색은 나타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청자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였다.
고려의 청자 발우가 있다면 나는 나의 사과나무재 발우가 있을 뿐.
나름 소득은 있었다. 청자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내 방식의 색감의 그릇을 얻을 수 있었고 다양한 변화를 응용할 수가 있었다. 도자기를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나의 모든 모티브는 전통 도자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와도 같다. 나는 이제 첫발을 들여 놓았을 뿐이다. 생각이 막히면 나는 박물관에 간다. 그곳은 나의 곳간과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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