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불교]
간다라, 교역과 만남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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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 2020 년 2 월 [통권 제8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9,016회 / 댓글0건본문
한지연 철학박사
간다라(Gandhara)는 서북인도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고대 동서교역을 언급할 때에도 중심부 역할을 했던 곳이면서 동시에 불교를 논할 때 역시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이 동시에 거론되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물질과 사상이라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등한시되는 양쪽의 개념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곳인 셈이다. ‘끌어안는’ 개념은 불교사 측면에서도 보이고 있다. 대승과 소승이 동시에 거론되는 장소가 흔치않음에도 불구하고 간다라는 소승의 최고번영지로서, 그리고 대승의 시발지(始發地)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물론 대승과 소승을 상반된 개념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색깔이 다른 것임은 분명하기에 두 개념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념을 좀 더 확대시켜보면 그 원인을 찾아가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신(神)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신과 인간의 접점지라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잠시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색깔이 다른 대소승이 왜 이곳에 등장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교류, 화폐, 그리고 그리스 신
동서 교역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고대 경제 네트워크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 서북인도라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서북인도에서도 도시학의 의미로 보나, 경제교류의 의미로 보나, 문화학의 의미로 보나 간다라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 근거는 간다라에서 발견되는 화폐를 들 수 있다.

시르캅 유적지
간다라에서 발견된 화폐(사진 2)에는 그리스 신의 모습이 종종 발견되는데, 대표적으로 제우스(Zeus), 헤라클레스(Herakles), 아테나(Athena), 아르테미스(Artemis), 승리와 평화의 신(Victory and Peace Deities), 에로스(Eros), 아폴로(Apollo), 헬리오스(Helios), 유로파(Europa), 팬(Pan) 등을 볼 수 있다. 물론 화폐를 신의 모습으로만 채운 것은 아니다. 그리스어, 간다리어, 산스크리트어, 카로슈티어, 브라흐미어 등의 글자도 볼 수 있고, 남성 혹은 여성의 인물상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화폐를 살펴보는데 있어 인물, 글자는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지 않다. 적어도 ‘간다라’에서 발견된 화폐라면 말이다.
서북인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도리어 그리스 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매혹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화폐 발견 장소가 그들의 고향인 그리스가 아닌 말 그대로 서북 ‘인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신들이 이곳까지 온 데에는 알렉산더의 침략이 그 원인일 것이다. 침략을 통해 서북인도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신(神)을 함께 모셔와 그리스에서 하던 대로 신상(神像)을 존숭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살던 곳과 동일한 방식으로 도시도 건립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르캅(Sirkap)’ 유적(사진 1)이다. 그리스인들은 군대가 서북인도에 도달할 때까지 페르시아(Persia) 인도 함께 이곳에 자리잡고 살았다. 간다라에서 발견된 인장(印章, Seals) 중에는 불의 제단 앞에서 숭배자와 사제가 제를 올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의 의식으로 파악한다.(주1)

사진2. 간다라 출토 화폐
침략 당시 그리스인, 페르시아인들을 이곳까지 이주시킨 것은 대단히 영리한 계획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의 신만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대표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숭배물도 함께 들어왔으니 그야말로 대대적인 문화이식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문화이식과 더불어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그리스까지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교역 수단의 하나였던 화폐에 그들의 신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금화 혹은 은화의 진위여부를 신들이 보장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라는 지역에 갇혀 있던 신들은 이곳 간다라에서 서로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은 역할을 인간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더 많은 역할’ 중에는 ‘대승’ 발원지의 하나로 꼽히는 간다라에서 불상(佛像)과 보살상(菩薩像) 등이 처음 등장하게 된 원인도 포함되지 않을까? 대승사상의 일부를 조로아스터와 연관시키는 학자들의 시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속(成俗)의 만남을 이끌어 낸 금화
불교는 ‘돈’을 번뇌를 야기시키는 물건의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까지 연대기상 최고最古의 불상, 다시 말해 부처님 모습이 상像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쿠샨제국시대 카니쉬카왕의 치세 기간에 만들어진 사리함과 화폐에서다. 사리함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화폐에 붓다가 등장하는 것은 왜일까?
물론 화폐에 불상이 등장하는 것이 이상할 만큼 불교와 돈, 불교와 경제가 동떨어진 관계는 아니다. 농업보다 상업사회에서 불교가 성행했고, 상업사회에 기반한 장로들의 활동은 불교 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아쇼카왕 시대, 상가의 매일 수입은 50만 금金이 넘었다. 그 가운데 10만 금은 니그로다 비구에게 주었고, 10만 금은 불단에 향과 꽃을 공양하는 데 바쳤고, 10만 금은 설법사들에게 지불되었고, 10만 금은 상가에 분배되었고, 나머지 10만 금은 의약품을 사서 대중이 사용할 수 있게 도시의 사대문에 비치하도록 했다.(주2)
이와 같은 상황으로 짐작해본다면, 오히려 화폐에 불상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당시 인도 외의 신들이 화폐 · 인장 등에 등장하는 문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아쇼카 시대부터 이미 교단과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출가자 개인 소유의 사유재산이 있었던 점, 더욱이 ‘의약품’으로 대표되는 사회복지활동에 교단이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이미 불교와 자본이 사회를 향해 긍정적 면모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간의 상황이 화폐에 부처님을 등장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비록 성속聖俗의 다른 경계이지만 화폐를 통해 불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신들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그 사상을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새로운 전법사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측면으로 본다 면 화폐 속 부처님의 모습은 중생들의 먹고 사는 문제도 함께 고민하고, 항상 친근하게 내 옆에 계시는 분으로 인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를 논함에 돈, 자본, 경제 등의 용어는 거리가 멀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종교라는 단어 곁에 따라오는 것 자체가 거북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 페르시아의 신들이 정복전쟁의 등에 엎여 간다라까지 온 것처럼, 또 실크로드를 오가는 캬라반들과 길을 함께 하며 전파된 불교처럼, 속세에서의 일상 더 나아가 역사의 한 장면이 종교를 더 단단하고 발전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배경을 인지하지 않고는 힘겹게 실크로드의 사막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전법승들과 실크로드 각 고대 국가가 불교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간다라에 위치한 그리스식 고대 도시 시르캅. 그곳에는 여러 종교 사원의 흔적이 남아있다. 겉모습은 그리스인데 내용은 많은 종교를 안고 번성했던 것이다. 지금은 풀이 무성하게 자랐지만 여전히 저 멀리 마을을 내려다보며 속세의 안정을 기원하듯 서 있는 쿠나라 태자 탑이 있다. 쿠나라 태자 탑이 외롭게만 느껴지지 않고 굳건하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당시 서로의 고됨과 서로의 번영을 함께 나누었던 정서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1. 시르캅 유적지.
사진 2. 간다라 출토 화폐.
(주1) Aman ur Rahman & Harry Falk, “Seals, Sealings and Tokens from Gandhāra”, Germany:Reichert Verlag Wiesbaden, 2011, p.22
(주2) 에띠엔 라모뜨 지음, 호진 옮김, 『인도불교사』, 서울: 시공사, 2006, p.48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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