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사형 원융 스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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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6-19 14:03 / 조회10,681회 / 댓글0건본문
벌써 세월이 그렇게 훌쩍 지나갔나 봅니다. 소납이 출가한 세월 말입니다. 입문을 위해 백련암 ‘영자당影子堂’에서 7일 동안 새벽·오전·오후에 각 1000배씩 해야 하는 기도는 법열이 아닌 고통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힘든 시련 끝에 소납은 1972년 1월, 음력 섣달 보름에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삭발하였습니다. 9월엔가 큰 절에 있던 말쑥한 행자가 큰스님 시자 하러 백련암으로 올라오게 되었다면서, 원주 스님이 소개 해주었습니다. 소납은 7월 달인가 사미계를 받고 행자 시절을 졸업했는데, 방금 온 행자님은 아직 사미계를 받기 전이었는데, 얼마 안 있어 사미계를 수지하고, 앉는 순서는 소납이 먼저 앉고 올라온 스님은 ‘원융’이라는 불명을 큰스님께서 주셔서 소납 다음 좌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6년이나 세수가 많았으나, 백련암에는 제가 먼저 출가했다는 이유로 사형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당시 절에서는 과거에 대해 묻지도 않았고, 굳이 자기 이력을 밝혀야 할 의무가 없어 얼굴만 알고 지냈지, 서로의 경력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온 원융 스님은 매사에 빈틈이 없고 모든 일에 열심이었으며 하루 24시간을 큰스님을 본받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듯 했습니다. 몇 개월 지나 ‘큰스님께서 깨치신 후 10여 년 용맹정진의 세월을 가지셨다’는 말씀을 원융 스님이 듣고는, 사미 신분으로 용맹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저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하며 저녁 9시 취침시간에 우리는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면, 원융 스님은 혼자서 좌복 위에 가부좌하며 날 밤을 새며 참선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납들은 원융 스님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멀리서 큰스님이 나타나시기라도 하면 우리들은 무슨 큰 죄나 짓고 사는 곰 새끼처럼 움츠러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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