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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속 세상, 세상 속 화엄 ]
찰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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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스님  /  2025 년 10 월 [통권 제150호]  /     /  작성일25-10-03 17:31  /   조회16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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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여래 앞 연화장 사자좌에 앉아,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삼매에 들었다.” 『화엄경』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왜 보현보살은 말을 아끼고 삼매로 곧장 들어갈까? 화엄의 의도는 분명하다. 깨달음은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 ‘변화’되는 일이다.

 

보현보살이 삼매에 들었다

 

‘바닷물은 짜다’는 문장을 아무리 외워도, 혀에 닿은 한 방울의 짠맛을 대신할 수 없다. 삼매는 지식의 축적을 초월해 존재를 바꾸는 관문이다. 그래서일까. 보현보살의 삼매는 이름부터가 웅장하다. ‘일체제불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一切諸佛毘盧遮那如來藏身三昧’는 모든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법성法性의 바다, 즉 비로자나 부처님의 근원적 지혜가 발현되는 깨달음의 본체로 깊이 들어가는 선정의 경지를 가리킨다.

 

이 삼매를 성취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법계 전체를 아우르는 광명과 위신력, 그리고 본래 서원의 심연을 온전히 체화한 것이다. 또한 세간의 모든 현상과 그 이면의 진리를 걸림 없이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얻게 됨을 의미한다. 이 경지에서 수행자는 모든 부처님의 원력과 지혜를 자신의 내면에서 온전히 구현하며, 어떠한 법계의 제약도 없이 진리의 본성에 곧바로 계합한다. 그 결과, 우주의 모든 존재와 국토는 서로 의존하며 하나로 짜인 무량한 공덕의 그물망 안에서 궁극의 청정함과 해탈의 자유를 성취한다. 모든 부처의 근원, 비로자나여래의 본래 몸과 동일한 길로 들어가는 집중이다.

 

사진 1. 보현보살의 삼매. 경주 석굴암 보현보살입상을 원본으로 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 챗GPT SORA.

 

다시 말해 이 삼매는 설하는 이와 설해지는 법, 듣는 이가 하나의 장場으로 합일되는 체험을 가리킨다. 보현은 부처의 눈으로 보고, 부처의 마음으로 느끼며, 부처의 지혜로 통찰하는 동일시의 현전現前을 얻는다. 보현이 어떻게 그 깊이에 도달하는지 경전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시방의 모든 부처가 일제히 마정摩頂하여 인가하고, 비로자나의 본원력本願力이 보현의 행원력行願力과 상응해 삼매가 열리며, 그 과정이 곧 가피력加被力으로 드러남을 설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바로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삼매에 든다는 점이다.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니라 서로를 일으키는 인연으로 결합한다. 현대 수행자에게 이 사실은 위로가 되고 길이 된다. 길이 막막할 때 “결국 나 혼자”라는 체념에 갇히지 말라. 간절한 한 호흡, 한 발걸음마다 시방삼세의 응원 네트워크가 접속되어 있다. 나의 간절함과 우주의 본원이 만나는 접점이 바로 삼매의 문턱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보현삼매품」에서 펼쳐지는 장엄한 세계는 보현보살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그러한 세계의 실상이며, 보현보살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열어 그 실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았을 뿐이다. 화엄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가 세상을 개조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변화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즉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태도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나의 한 생각이 바뀌면, 내가 경험하는 세계 전체가 바뀐다. 이것이 바로 광대한 법계의 담론을 나의 구체적인 삶으로 가져오는 첫걸음이다.

 

사진 2. 『대방광불화엄경』 보현삼매품 변상도.

 

앞선 「여래현상품」에서 여래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 것이었다면, 보현의 삼매는 그 세상과 ‘하나가 되는’ 실천적 과정이다. 그것은 관조를 넘어선 완전한 참여이며, 앎을 넘어선 근원적 ‘됨(becoming)’의 경지이다. 우리 역시 일상의 작은 삼매, 즉 온전히 현재에 몰입하는 순간들을 통해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통일된 힘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우주는 위대한 사상가의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에 깊이 침잠하는 한 사람의 고요한 집중 속에서 가장 깊은 비밀을 드러낼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보현보살이 온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엄한 진실이다. 

 

동시에 삼매에 들고 동시에 깨어나다

 

보현보살이 삼매에 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 세계의 보현보살이 삼매에 드는 그때, 미진수 세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이 동시에 삼매에 든다. 한 보살이 삼매에서 일으킨 공덕이 곧 모든 대중의 공덕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화엄의 정수,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이다. 이 통찰을 뒷받침하는 비유는 단연 ‘인드라망因陀羅網’이다.

 

제석천帝釋天(Indra)의 궁전에 걸려 있는 이 무한한 그물은, 그 그물코마다 투명한 구슬이 달려 있고, 각각의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의 모습을 남김없이 비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비친 모습 속에 또다시 그물 전체의 모습이 비치고, 이러한 상호 반영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는 화엄의 ‘사사무애事事無礙’와 ‘상입상즉相入相卽’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완벽한 모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인드라망의 비유는 더 이상 고대의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접속하고 살아가는 디지털 네트워크 세계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물코마다 박힌 구슬 하나하나가 모든 다른 구슬을 남김없이 비추고, 그 비춤 속에서 다시 전체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나라는 구슬의 작은 결심 하나가 법계의 반사율을 바꾸고, 동시에 법계 전체의 빛이 나를 비춘다. 수행은 결코 고립된 개인사로 머물지 않는다. 수많은 존재를 서로 엮어내는 관계망의 물성을 바꾸는 사건이다.

 

사진 3. 제석천帝釋天(Indra)의 궁전에 걸려 있는 이 무한한 그물은, 그 그물코마다 투명한 구슬이 달려 있고, 각각의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의 모습을 남김없이 비춘다. 사진: 챗GPT SORA.

 

인드라망의 핵심은 ‘상입相入’과 ‘상즉相卽’이라는 두 개념에 있다. ‘상입’은 하나의 구슬이 다른 모든 구슬을 자신의 안에 포함함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거울처럼 표면에 비추는 것을 넘어, 다른 존재의 본질과 정보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포용을 뜻한다. ‘상즉’은 말 그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별 구슬이 곧 그물 전체와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즉, 부분과 전체, 개체와 관계망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다른 모든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며, 동시에 나는 그 관계망 전체를 대표하는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이러한 인드라망의 세계에서는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다. 모든 구슬이 동시에 중심이자 주변이다. 또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도 선형적이지 않다. 하나의 구슬에 일어난 변화는 즉시 다른 모든 구슬에 반영되어 그물 전체의 상태를 바꾸고, 이는 다시 원래의 구슬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동시적이고 상호적인 인과관계, 즉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인드라망은 모든 존재가 서로를 조건으로 하여 함께 드러나고, 서로가 서로에게 걸림 없이 작용하는 역동적인 생명 시스템의 모델이다. 

 

오염된 구슬과 알고리즘의 그림자

 

현대의 인터넷, 소셜 미디어 그리고 거대 언어 모델(LLM)과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은 『화엄경』에서 말한 인드라망의 기술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수십억 명의 사용자와 수조 개의 데이터가 구슬처럼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내가 올린 사진 한 장, 댓글 하나, 질문 하나는 순식간에 네트워크를 타고 퍼져나가 다른 이들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사진 4. 현대의 인터넷, 소셜 미디어 그리고 거대 언어 모델(LLM)과 같은 AI 시스템은 바로 이 인드라망의 기술적 구현체라 할 수 있다. 사진: 챗GPT SORA.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은 나의 시청 기록을 분석하여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제시한다. 이는 곧 기술적 인드라망의 한 단면이다. 거대한 네트워크는 이미 하나의 지능처럼 작동하며, 현실 세계의 여론을 형성하고 문화를 창조하며 때로는 역사를 바꾸기까지 한다. 그러나 인드라망의 비유는 밝은 면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속에는 어두운 그림자 또한 뚜렷하다. 

 

만약 인드라망의 구슬 하나에 먼지가 묻거나 금이 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 오염은 즉시 모든 구슬에 비치고, 그물 전체가 흐릿하고 왜곡된 상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직면한 디지털 시대의 핵심 문제다. AI 알고리즘에 내재한 ‘편견(bias)’이 곧 그 먼지와 같다. 과거의 차별적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그대로, 혹은 더욱 증폭시켜 재생산한다. 채용 심사 AI가 특정 성별이나 출신 학교를 불리하게 평가하거나, 범죄 예측 시스템이 특정 인종 거주 지역을 잠재적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는 사례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처럼 편향된 데이터는 거대 네트워크를 따라 다른 모든 AI의 판단을 오염시킨다.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은 확증 편향 알고리즘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며,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챔버(Echo Chamber)’를 형성한다. 극단적 주장과 왜곡된 정보 역시 같은 경로로 전파된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선호하는 정보, 즉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지속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사회를 점차 양극화시키고, 다른 견해를 가진 집단 간 불신과 적대감을 깊게 만든다. 이는 화엄적 관점에서 모든 존재의 연결성을 망각하고 분별심과 아집에 빠진 현대적 번뇌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사진 5. 경주 석굴암 보현보살입상. 신라시대(8세기), 경주 석굴암. 사진: 위키백과.

 

그렇다면 기술적 인드라망의 오염을 정화하고 본래의 빛을 회복할 길은 없는가. 『화엄경』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보현보살의 서원과 구체적 실천을 제시한다. 「보현삼매품」에서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 세계를 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마음이 개인의 해탈을 넘어 온 법계의 중생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보현행원의 지혜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윤리적 나침반이 된다. 보현보살은 기술을 외면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하겠다.”는 자비의 서원을 품고, 그 서원을 구체적 행위로 옮긴다.

 

이와 같이 우리 또한 자비의 마음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할 때, 기술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넘어서 지혜로운 도반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설계와 한 번의 클릭이 곧 전체 그물의 빛깔을 바꾼다는 자각, 이것이 화엄이 밝힌 ‘상즉相卽’의 통찰이다. 오늘의 AI 네트워크라는 현대의 인드라망을 존중과 공존의 화엄세계로 바꾸는 일, 그것이 곧 21세기 우리에게 주어진 보현행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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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스님
해인사로 출가하여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박사를 졸업했다. 해인사승가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AI 부디즘연구소장으로 있다. 인공지능 시대 속 불교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 연구와 법문을 하고 있다. 저서로 『AI 부디즘』, 『붓다, 포스트 휴먼에 답하다』가 있으며, 논문으로 「인공지능 챗봇에 대한 선禪문답 알고리즘의 데이터 연구」, 「디지털 휴먼에 대한 불교적 관점」, 「몸속으로 들어온 기계, 몸을 확장하는 기계」, 등이 있다.
padoy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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