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서유기 ]
저팔계의 혼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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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5 년 10 월 [통권 제150호] / / 작성일25-10-03 17:55 / 조회209회 / 댓글0건본문
저팔계의 혼인사건 얘기를 하는 중이다. 예쁜 세 딸을 데리고 사는 과부 여인이 삼장 일행에게 단체결혼을 제안한다. 삼장이 이것을 단호하게 거절하자 과부가 따진다. 세 제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제자들이 대답한다.
손오공: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오정: 나는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습니다.
저팔계: 나에게 떠넘기지 말고 긴 안목으로 상의해 봅시다.

『서유기』의 서천여행단에서 손오공은 눈의 역할을 한다. 팔계를 비롯한 모든 것을 관찰하여 그 공성空性을 알아차리는 방식으로 길을 열어나간다. 그러므로 대상에 집착할 일이 없다. 사오정은 심층의 무의식(아뢰야식)이다. 무명의 어둠으로서 밝게 비추는 작용이 없어서 그렇지 번뇌를 증장하는 작용이 희박하다. 그런데 팔계는 문제가 된다. 그는 대상 집착적 자아의식(말나식)의 화신이다. 그런 그가 긴 안목을 가지고 이 혼인 제안을 상의해 보자는 것이다. 만약 깨달음이 어떤 실체적 목적지로 정해져 있다면 긴 안목의 고려와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유기』에서는 목적지에 대한 갈망적 추구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여정을 제시한다.
불재영산막원구佛在靈山莫遠求
영산지재여심두靈山只在汝心頭
인인유개영산탑人人有個靈山塔
호향영산탑하수好向靈山塔下修
부처님이 영산靈山에 계신다고 해서 먼 곳에서 찾지 말라
영산은 오직 그대들의 마음에 있을 뿐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영산의 탑을 갖추고 있으니
바로 그 영산의 탑 아래에서 닦도록 하라
높고 험한 산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내는 삼장에게 손오공이 들려준 노래다. ‘영산의 노래’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영산’이라는 단어가 모든 구절에 들어가 있다. 세상에 영산 아닌 곳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수사에 해당한다. 지극한 마음만 있으면 당장의 이 현장이 부처님이 머무는 성지임을 알게 될 것이지만, 지금의 이 현장을 극복해야 할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부처님의 땅은 점점 멀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 최상승의 노래에 의하면 수행은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과정이 곧 목적지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수행이라면 눈앞의 당장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긴 안목으로 생각해 보자.”는 팔계의 말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 팔계는 아름다운 대상을 찾아 그에 집착하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아왔다. 수차에 걸친 데릴사위의 이력이 그것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는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숲속의 대저택, 아름다운 과부, 어여쁜 세 딸이라는 집착의 대상을 발견한다. 거듭 확인하는 바이지만 여색에 대한 집착과 수행의 경계에 대한 집착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팔계 또한 이 일이 옛날의 아내(취란)를 버리고 새 아내를 구하는 일과 다름없다고 고백하기까지 한다.
말을 먹이러 가는 팔계, 감시하러 가는 손오공
그렇게 집착의 대상을 포착한 팔계는 말을 먹이러 간다는 핑계로 과부를 찾아간다. 그런데 팔계는 말에게 먹일 풀이 있는 풀밭을 지나 저택의 후문으로 가서 과부를 만난다. 자신이 사위가 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을 고추잠자리로 변한 손오공이 따라가서 지켜본다.
수행은 소와 말을 먹이는 일과 유사하다. 사찰 외벽의 벽화로 자주 그려지는 「십우도」가 소 기르기[牧牛]를 테마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중 억지로 잡아끄는 단계에서 자유롭게 놓아먹이는 단계로 발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말이 스스로 알아서 풀을 뜯도록 방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팔계처럼 정해진 목적지가 따로 있다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끌고 다니고, 재촉하고, 과중한 짐을 실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들이 묵는 곳이 숲속이라서 곳곳이 풀밭이었지만 팔계는 말을 끌고 풀밭을 떠나 저택의 후문으로 과부를 찾아간다. 당장의 풀밭을 버리고 별도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상황이다. 이래서는 말을 잘 먹일 수 없다.

이것을 손오공이 고추잠자리가 되어 미행하며 관찰한다. 고추잠자리는 머리 전체가 눈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거대한 겹눈을 갖고 있다. 생물학적 지식에 의하면 그것은 3만여 개의 홑눈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잠자리는 이 눈으로 전후좌우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자아의식의 작동에 대한 주도면밀한 관찰의 비유로 이만한 것이 없다.
팔계의 긴 입, 큰 귀
결혼에 자원한 팔계는 과부에게 자기의 입이 너무 길고 귀가 커서 딸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물어본다. 팔계의 긴 입과 큰 귀는 감각기관(6근)에의 과도한 경도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6근, 6경, 6식에 지배되는 삶을 산다. 수행은 그 18계의 공함을 보는 반야 관조의 실습과 체화를 핵심으로 한다. 이때 모든 것이 한마음의 다양한 모습일 뿐이며, 한마음의 다양한 이름일 뿐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서천여행의 기본내용이다. 그런데 팔계는 아직 긴 입과 큰 귀의 지배하에 있다.
원래 팔계의 정식 이름인 오능悟能은 자기의 공성을 깨달으라는 뜻이다. 능할 능能자가 주관성, 능동성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팔계는 자아와 대상, 즉 능能과 소所를 나누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미래의 장모 앞에서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팔계는 자신이 소 대신 밭을 가는 능력, 비를 내리게 하고 바람을 부르게 하는 능력, 집을 짓는 능력, 도랑을 치는 능력 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부잣집 데릴사위가 소 대신 밭을 갈고, 집을 짓고, 도랑을 치겠다는 자세가 문제가 된다. 머슴이 되기를 자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을 나누어 자기를 내세우고 대상에 집착하는 일이 그렇다. 대상을 세우는 순간 그 노예가 되어 버린다. 팔계는 그것을 모르고 자신이 “얼음을 비벼 불을 일으키고, 눈을 짜서 기름을 얻겠다.”는 자세로 수행에 임한다고 자부한다. 주체 의식의 과잉과 그에 따른 억지 수행이 일어나는 현장에 팔계가 서 있다는 뜻이다.
배필 정하기 숨바꼭질
혼인을 하기로 한 팔계는 장모를 따라 내실로 들어간다. 급한 마음에 서두는 걸음이 되어 문지방마다 걸리고, 부딪치고, 넘어지며 낭패한 꼴을 당한다. 왜 서두는 걸음이 되는가? 도의 성취에 정해진 모양이 있다고 생각하는 팔계에게 과정은 의미가 없다. 서둘러 그 과정을 통과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지금의 이 발밑을 돌아보는 일[照顧脚下]이 불교 수행의 생명이지만 팔계는 그럴 여유가 없다. 어여쁜 세 딸과의 결혼이라는 목적지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팔계는 낭패에 낭패를 거듭한 끝에 겨우 내실에 도착한다. 그런 팔계에게 과부 여인은 숨바꼭질을 통해 배우자를 정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다. 하늘의 운명에 맡겨 배우자를 정하는 천혼天婚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진실[眞眞], 사랑[愛愛], 예쁨[憐憐]으로 불리는 세 딸과 눈을 가린 팔계 간에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딸들이 오갈 때마다 패옥 소리가 울리고 사향 향기가 풍겨온다. 그런데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다. 팔계는 그렇게 허우적거리다가 벽과 기둥에 부딪혀 주둥이와 머리에 온통 멍이 들어 버린다. 팔계가 헉헉대며 하소연한다.
장모님! 따님들이 너무 미끄러워서 좀체 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마 따님들이 저를 남편으로 맞이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차라리 장모님이 저에게 시집오시지요.
마음, 자성, 불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별도의 모양을 갖지 않는다. 패옥 소리, 사향 냄새와 같은 뚜렷한 작용으로 나타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진리라 하든, 진·선·미라 하든 언어로 표현된 그것에 별도의 실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으로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딸들은 모래처럼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만약 모양으로 부처를 보고자 하거나[若以色見我], 소리에서 나를 찾는다면[以音聲求我], 그는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是人行邪道], 여래를 볼 수 없다[不能見如來].”는 『금강경』의 가르침이 주제 의식으로 깔린 장면이다.

그렇다면 모양과 소리의 밖에서 찾는다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팔계는 장모라도 자기와 혼인하자고 말한다. 과부는 세 딸들을 낳은 근원적 존재다. 과부와 혼인하려는 팔계의 행위는 진·선·미의 현상을 낳은 하나의 근원을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의 형상화에 해당한다. 그것 역시 억지임은 물론이다. 과부는 인륜적으로 팔계에게 장모가 되므로 부부로 만날 수 없는 관계다. 이치적으로는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므로 상대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차원이다.
이렇게 세 딸을 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면서 장모라도 자신에게 시집오라는 팔계의 말에 과부가 세 벌의 진주 속옷을 내어준다. 세 딸이 지은 옷 가운데 몸에 맞는 것이 있다면 그 주인과 혼인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팔계가 옷을 입자마자 옷에서 밧줄이 나와 팔계를 묶어 버린다.
진리를 잡아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팔계의 행위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은 딸들이 지은 진주 속옷과 같다. 진주 속옷은 깊은 내면의 어딘가에 고귀한 본질이 따로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비유한다. 속옷에 진주가 박혀 있을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깊은 심층의 어딘가에 진리가 숨겨져 있을 리가 없다. 진주 속옷과 같은 귀한 무엇이 깊은 속 어딘가에 따로 숨어 있다는 생각으로 그것에 집착하면 결국 그것에 구속되어 버린다. 더구나 진주를 박아넣은 비단 속옷처럼 그 그림이 화려하고 완전할수록 구속의 위험성도 더 커지게 됨은 물론이다.
잠에서 깨어 보니
다음날 일행이 일어나 보니 저택은 간 곳이 없고 자신들은 숲속에 누워 있었다. 일행은 측백나무에 시가 적힌 종이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산노모黎山老母와 관음, 문수, 보현보살이 과부와 세 딸로 변해 일행의 도심을 시험해 보았다는 내용이었다. 팔계를 찾아보니 나무에 묶여 구해달라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일행은 팔계를 구해 보살들에게 사죄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불교적 주제 의식을 담고 있는 『서유기』에 관음, 문수, 보현보살이 세 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국의 문화에서 보살들은 여인의 형상으로 묘사되는 일이 많다는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산노모黎山老母일까? 중국의 도교 신앙에서 여산노모는 세상을 창조한 여왜女媧를 신격화한 존재다. 스토리의 전개상 대저택의 과부 여인은 여성 형상인 동시에 본질과 근원을 상기시키는 신의 현신일 필요가 있다. 여산노모는 바로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신격이다. 그러니까 여산노모와 세 보살은 어머니와 딸, 뿌리와 가지의 관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의 나라가 특별한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생각,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생각을 교정한다.
팔계가 체험한 일이 그것이다. 팔계는 깊이 참회하면서 앞으로는 짐을 무겁다고 투덜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그것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만약 지금 당장 걸음을 떼는 이 자리가 부처님의 나라임을 확인하는 입장이 되면 『서유기』의 고난과 모험이 끝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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