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의 뒷골목]
물이 몸속 어디로 갔든, 시원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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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6 년 4 월 [통권 제3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047회 / 댓글0건본문
출가열반절이었다. 출가(出家)의 1차적 의미는 집을 나오는 일이다. 사람에게 집은 재산이고 쉼터이며 책임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벌어먹이려면 가족 아닌 것들로부터 무엇이든 자꾸 빼앗아야 한다. 치사해지고 비루해진다. 편견이 비뚤어진 집이라면, 고집은 불타는 집이다.
그리하여 출가는 사사로움과의 결별. “세상의 즐거움이 훗날의 괴로움이거늘 어찌하여 탐착하는가. 한번 참는 것이 오래도록 즐거움이거늘 어찌 닦지 않는가. 도인의 탐심은 수행자의 수치이고, 출가자의 부(富)는 군자들의 비웃음거리다.” (『초발심자경문』) 오직 자기 자신만으로 일생을 견디는 것이다.
수행의 시작이 출가라면 수행의 끝은 열반(涅槃)이다. “자비로운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게 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노여움을 끊게 되며 자기를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 차별하는 마음을 끊게 된다.”(『열반경』) 결국 ‘나’로부터의 자유가 궁극적인 행복임을 일러주는 대목이다.
이제 막 출가자의 길에 들어선 행자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모습
돈이든 연인이든 아랫사람이든 인기든, 세상의 행복은 내 쪽으로 가져와야만 채워진다. 움켜쥐려면 싸워야 하고 정작 움켜쥐면 불안하거나 싫증난다. 그래서 옛 선지식들은 온갖 더께와 기름기를 걷어낸 채 그저 살아있음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한다. 자족과 절제가 열반의 길이다.
누구나 그 자리에서 출가를 할 수 있다. 비록 집에 머물더라도 집이 유발하는 오욕칠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어엿한 수행자다. 열반도 가깝다. “모든 것은 덧없어서 생겼다 없어지는 법이니 생멸에 집착하지 않으면 적멸이 곧 즐거움이 된다”(『열반경』) 내려놓음의 완성이다.
제45칙
원각경의 네 구절(圓覺四節, 원각사절)
『원각경』에 이르되 “무엇을 보더라도 망념을 일으키지 말며, 망념을 없애려고도 하지 말며, 망념에 대해 알려고도 말며,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진실이라 여기지도 말아라.”
꽃밭에서 나비가 난다. 더구나 화창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인간에겐 눈도 있지만 손도 있다. 아름다움을 감상한다는 건, 소유하기 위한 예비동작이다. 그러나 나비를 잡아버리면 풍경은, 무너진다.
아울러 나비의 유연한 비행은 사실 제 뱃속을 채우기 위한 걸행이다. 정신건강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모른 척 하는 게 낫다. 그렇다고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넋 놓고 바라보는 일 역시 바보 같은 짓이다. 번뇌를 다루는 방식이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증오’든 ‘사랑’이든 ‘정의’든…. 봄날을 스쳐가는 나비일 뿐이다. 그 봄날조차, 오래 못 간다.
나비를 가까이서 살펴보면, 송충이나 지네 못지않게 징그러운 짐승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커다란 날개는, 위선이고 두려움이다. 적당히 떨어져서 관조할 줄 안다면 어떠한 망념도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진리 이전에, ‘거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망상이 망념이듯 희망도 망념이다. 때로는 망상 속에서 우리는 즐겁다. 망념은 사람다움의 증거이기도 하다. 망념이 민주화를 앞당기고 망념이 벌거벗은 여인들에게 옷을 입힌다.
망념은 정말 유용하다. 어떤 망념이 자신을 괴롭힐 때 또 다른 망념을 만들어 거기에 숨으면, 한동안 쉴 수 있다. 화두에 집중하면 화병(火病)이 뚝 떨어지는 이치다.
망념(妄念)은 ‘있다 없다’ ‘살았다 죽었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등등의 허망한 생각. 마치 흐르는 물을 움켜쥐려는 꼴이다. 그냥 마시면 된다. 실체는 없으나 묘용(妙用)으로서 빛나는 공(空). 물이 몸속 어디로 갔든, 시원하구나.
제46칙
덕산이 배움을 마치다(德山學畢, 덕산학필)
덕산원명(德山圓明)이 대중에게 일렀다. “공부를 마칠 무렵에 이르면 삼세(三世)의 부처님들이 당장에 입을 벽에다 건다. 오직 한 사람만이 깔깔거리며 웃나니, 만일 이 사람을 안다면 공부는 끝난 것이다.”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근본적인 전제다. 으레 이웃을 향한 자비의 수사(修辭)로 활용되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존재의 독자성을 가리킨다. 단도직입적으로, 불성은 자기 자신이다. 누구든 간에 거둬 먹여야 할 또는 상처받아야 할 ‘나’를 갖는다.
불성을 직시한다는 건 나를 대신할 자는 없음을 아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자못 허탈하지만, 절대적인 사실이다. 아무리 위대한 성현이라도, 심지어 부처님이라도, 나를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행복을 원한다면, ‘나’를 살아야 한다.
“남들처럼만 남들만큼만 살라.”는 훈계는, 따지고 보면 죽으라는 저주다. 나답게 살게 되면 공부는 끝난다. 부처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무엇이 나답게 사느냐’는 건데, 역설적으로 ‘나’를 내버려둘 때에 비로소 ‘나’를 지킬 수 있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그렇다. ‘나’를 돋보이려는 마음이 모략을 일삼고 추태로 허송세월한다. ‘나’를 날 세우려는 힘이 끝내는 ‘나’를 향한 칼끝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나의 운명임을 깨닫게 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 어떤 군더더기 없이 ‘그냥’ 사는 게, 부처의 삶이다.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직장에 붙어있어야 한다. 나의 밥벌이는, 굴욕적이어도 주체적이다.
※ 덕산 연밀(德山緣密, ?~?) : 송대(宋代) 스님. “도는 호떡” “ 날마다 좋은날” 등의 화두를 남긴 운문 문언(雲門文偃)의 법을 이었다. 시호가 원명이다.
제47칙
조주의 잣나무(趙州柏樹, 조주백수)
“불법(佛法)의 대의(大義)는 무엇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다.”
점심 먹고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 공원에서 혼자 담배를 피운다. 아름드리나무는 아름답기에 앞서 불쌍하다. 도망갈 발이 없고 변명할 입이 없다. 저렇게도 사는데 못 살 것 뭐 있나…. 싶기도 하다.
※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 검소하게 생활하는 동시에 시주를 권하지 않아 고불(古佛)이라 불렸다. 남전 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이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뜰 앞의 잣나무’ ‘차나 마시게’ 등등 수많은 화두를 남겨 그의 선법은 구순피선(口脣皮禪)이라 회자된다. 입으로 선을 가지고 놀았다는 뜻이다. 한국 나이로 120세까지 살았으며 이는 선가(禪家)에서 최고령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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