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흙이 변하여 황금이 되다
페이지 정보
원철스님 / 2016 년 4 월 [통권 제36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8,857회 / 댓글0건본문
금사(金沙)를 만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운남성 여강(麗江,리짱)이다. 시방세계를 마실 다니듯 돌아다닌 진짜 운수납자 스님이 추천한 곳이니 어련하겠는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몇 년 사이에 입소문과 방송을 타면서 널리 알려진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다. 지금은 인파에 시달리면서 떠밀려 다니지만 오래 전에 우리가 찾았을 무렵에는 비교적 한가한 고성(故城, 전통마을)이었다. 게다가 비수기에 갔는지라 팔자걸음으로 기와의 처마와 처마가 서로 이어진 골목골목을 느긋하게 어슬렁거릴 수 있었다.
그날 밤, 신시가지의 전통민속 공연장인 ‘금사(金沙)극장’을 찾았다. 이 지역에는 ‘금사’라는 고유명사가 흔하다. 오는 길에 잠깐 트래킹했던 호도협(虎跳峽, 호랑이가 건너 뛸 수 있는 좁은 협곡)은 금사벽류(金沙劈流, 깎아지른 절벽의 급류)로 불렸다. ‘금사’라는 별명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일 것이다. 굳이 금모래를 우리식 표현으로 바꾼다면 사금(沙金)이 된다. 물론 생산지는 강물 혹은 냇물이다. 황금의 나라로 불렸던 신라는 경주 인근에 금광이 없다. “형산강 주변에서 사금을 채취하여 왕관과 팔찌・허리띠 등을 만들었을 것”(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이라고 추정한다. 알고 보면 양과 질에서 가성비가 훨씬 높은 채굴방식이기도 하다.
고대의 황금은 주로 사금이었다
선종 제17조 승가난제는 서천(西天, 인도) 실라벌성 금수(金水)라는 강변 출신이다. 『보림전』 권4에 「판금하품(辨金河品)」’이 나온다. 금하(金河)는 금을 생산할 수 있는 하천일 것이다. 금수(金水)와 같은 지명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제련기술이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광산에서 나오는 금은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이 제련한 금은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면서도 그 품질은 훨씬 높았다. 금광에서 나오는 금덩어리보다도 물에서 건져낸 사금의 품질이 훨씬 뛰어난 이유이다. 자금색(紫金色)으로 불리는 가장 뛰어난 금인 염부단금(閻浮檀金)도 알고 보면 사금이다. 울창한 염부나무 숲속을 흐르는 강물에서 산출되기 때문이다.

인도 기원정사 터 모습
진짜 금은 법보와 승보를 말한다
토지의 공시지가가 비싼 지역을 금싸라기 땅이라고 부른다. 정말 그 땅값만큼 금을 사서 그 위를 덮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최초의 사찰 기원정사를 건립할 때도 그 토지의 소유주가 동산의 면적만큼 금을 깔아달라는 요구로부터 창건설화는 시작된다. 그래서 사찰을 금지(金地)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그 금은 외형적인 물리적 금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금값보다 더 비싼 가르침(法寶)과 금보다도 더 빛나는 인재(僧寶)들이 모이는 공간인 까닭이다.
제10조 협(協) 존자의 예언은 이런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 땅이 변해서 금색이 된다면 성인께서 이 자리에 나타날 것이다”(『보림전』 권3)라는 수기를 내렸다. 얼마 후 땅은 금색으로 바뀌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던 것처럼 제11조 부나야사 존자가 그 자리로 찾아온다.
금바루를 들고서 천상세계로 탁발을 떠나다
탁발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승단은 한 끼 한 끼 해결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구성원의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한 공간에서 수백수천 명의 대중이 모여 산다는 것은 무소유를 표방하는 승가로서는 엄청난 물질적소비가 함께 했다. 지역승단의 지도자들은 법력도 법력이지만 ‘복력’이 함께 따라주어야만 했다.
제18조 라후라다의 일화에서 그런 일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존자는 왼손에 빈 금바루를 쥐고서 나타났다. 그날따라 대중들의 탁발성과가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굶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이 계속 올라가더니 범천(梵天)까지 이르렀다. 그곳은 언제나 모든 것이 풍족했다. 하늘세계의 먹거리를 금바루에 가득 담아와 땅 위에 있던 모든 대중들에게 나누어 먹일 수 있었다. 혹여 법력이 부족하여 천상세계를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면 사금이 많이 나는 물가에 수행도량을 짓는 것도 임시방편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히말라야를 넘나들었던 신라의 순례승들
2001년 케룽현에서 4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종까마을에서 국보급 가치가 있는 고대석각古代石刻이 발견되어 중국 고고학계를 흥분시켰던 일이 있었다. 바로 〈대당천축사출명〉이란 비문(주1)이다. 이 …
김규현 /
-
대화엄사의 약사여래 마하연
화엄華嚴은 ‘꽃 화華’와 ‘엄숙할 엄嚴’이 만나 이루어진 말로, 온 세상이 한 송이 거대한 꽃처럼 피어나는 진리의 장엄함을 뜻합니다. 직역하면 이러하지만 화엄이라는 말 속에는 존재의 우주적 깊이와 …
박성희 /
-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光陰莫虛度]
중국선 이야기 56_ 법안종 ❸ 법안종을 세운 문익은 청원계를 계승한 나한계침羅漢桂琛의 “만약 불법을 논한다면, 일체가 드러나 있는 것[一切現成]이다.”라는 말로부터…
김진무 /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 강설 ⑦ 파환향곡破還鄕曲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11 파환향곡破還鄕曲이라. 앞에서 환향곡還鄕曲이라 해서 지금 고향으로 돌아오는 판인데, 이번에는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부숴 버린다는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온다고 하니…
성철스님 /
-
금목서 피는 계절에 큰스님을 그리며
예로부터 윤달이 들어 있는 해는 일반 달보다 여유가 있어 우리 선조들은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일들을 처리하거나 마음을 정리하는 데 적합한 해로 여겨 왔습니다. 평소에는 꺼렸던 일도 윤달은 ‘귀신도 쉬…
원택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