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나무에 뜻을 새기는 각자刻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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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7 월 [통권 제111호] / / 작성일22-07-05 11:02 / 조회5,298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7 /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 고원 김각한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는 조선시대의 궁궐 경복궁이 심장처럼 자리 잡고 있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거닐고 싶은 장소 1순위이며, 요즘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산책과 문화를 즐기는 명소이다. 경복궁 정문의 오른편에는 궁중의 유물을 전시하고 해설해 주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자리한다.

각자刻字의 이해
궁궐의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시즌별로 열리는 특별전은 세련되고 볼거리가 많아서 인근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일부러 찾는다고 한다. 현재 박물관에서는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이라는 주제로 특별한 현판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동안 건축의 일부로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현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궁궐의 현판은 건물의 위계와 용도에 따라 크기, 형태, 색상, 제작 기법 등에 차이가 있었다. 사대부가에 걸린 현판, 자연과 더불어 있는 정자의 현판 그리고 사찰에 걸린 현판들은 공간의 이름일 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마음속에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역할도 겸하고 있다. 현판을 만든다는 것은 나무에 이름을 새기는 작업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그 공간이 지닌 뜻과 의미를 담아내어 그 공간의 주인뿐만 아니라 그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가짐을 신중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공예를 각자刻字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새기는 장인을 각자장刻字匠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목판인쇄물의 최고봉은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장경판고藏經板庫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 전체를 집대성한 총서를 말한다. 현판과 목판인쇄를 위한 대장경 등은 모두 나무에 글을 새기는 작업이니 총칭하여 각자라고 부르고 있다. 불교 경판, 유교 책판, 각종 건물의 현판이나 기문, 기둥에 그리는 주련 등이 모두 각자이다.


현판용으로 글자를 목판에 그대로 붙여 새기는 것은 정서각正書刻이라고 하고, 인쇄를 목적으로 글자의 좌우를 바꾸어 새기는 것은 반서각反書刻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목판본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만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이러한 신라의 목판인쇄술을 바탕으로 하여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경전이나 고승들의 문집과 저술의 간행이 성행하여 목판인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목판인쇄술은 그대로 전래되어 『훈민정음』을 비롯하여 많은 목판인쇄물이 간행되었다.
각자장과 나무
국가무형문화재 각자장 고원故源 김각한 선생은 평생을 나무와 함께하였다. 나무를 고르고 선별하고, 때로는 오랜 시간을 곁에 두고 각자의 바탕이 되는 좋은 나무가 되기를 기다린다. 거친 면을 다듬고 마치 종이처럼 편편하고 고르게 준비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본 바탕이 잘 마련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방배동에 위치한 선생의 고서각연구원을 찾았을 땐 얼마 전 궁중현판전의 현판을 완성한 후였고,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각자하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금빛 찬란한 글씨들이 양각되어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각자의 모든 과정이 섬세하고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지만 특히 나무를 잘 선별하고 다루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한다.

고서에 의하면 잣나무와 피나무로 현판을 제작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 특별히 귀하고 의미 있는 곳에 이 나무들을 사용했다. 은행나무도 사용했으며, 기본적으로는 모든 나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의 단단하기에 따라서 용도에 맞게 구분되니 만약 나무가 너무 무른 것과 단단한 게 있다면 무른 것보다는 단단한 것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한다.


건조가 잘 되었다고 금방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5~6년에서 10년 가까이 나무가 원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갈라질 것은 모두 갈라지고, 터질 것은 모두 터진 이후에야 나무를 고른다. 그래야 단단하고 오래간다. 물론 나무이기 때문에 까다롭게 선별해도 갈라지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르는 나무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판별을 할지가 궁금해졌다.
“어떤 나무를 처음 만났을 때 첫 번째는 육안으로 살펴봅니다. 그 다음 나무결을 보고, 냄새를 맡아 봅니다. 그리고 맛을 봅니다. 물론 나무 특유의 향도 있지만 나무에 따라서 맛도 다르기 때문이지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무의 맛을 보다니 역시 각 분야의 장인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목판에는 단단하며 결이 곧고 눈매가 작은 나무를 사용해야 하고, 현판에는 잘 갈라지지 않고 틀어지지 않는 나무를 골라야 한다. 자리를 옮긴 나무보다는 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자란 나무가 좋다. 옮겨 심은 나무는 틀어지기 쉽고, 울창한 나무숲에서 한 자리를 오래 지켜 자란 나무는 나무결이 곧고 고와서 각자하기 좋다고 한다.

수많은 나무 중에서 각자 하기 가장 좋은 나무는 무엇일까? 각자장은 돌배나무도 좋고 산벚나무도 좋다고 하였다. 이들 나무는 내구성이 좋고 견고하며 물이나 습기에 매우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 오랜 시간을 견디어 온 팔만대장경의 70% 이상이 산벚나무로 되어 있다고 한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좋은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도 급속하게 오르고 있어서 각자장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늘어났다고 한다. 큰 나무를 만나기 어려우니 예전처럼 큰 사이즈의 현판을 나무 한 판으로 만들기 어려워지고 여러 판을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김각한 각자장은 1984년 스승 고故 오옥진 장인과 인연이되어 1986년 함께 독립기념관 현판을 제작하고, 이후 숭례문, 광화문 등의 현판과 『백운화상직지심체요절』 목판본과 『훈민정음 언해본』 등 다양한 문화재를 복원했다. 하나같이 역사를 새기는 의미 있는 작업들이었다. 명필로 새겨진 각자는 하나의 작품이다. 보는 아름다움과 마음에 뜻을 새기는 과정을 통한다면 여느 예술품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 각자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각자 감상을 함께 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상점에서 나무현판을 쓰기도 하고, 옛 선조들이 그러했듯 가정집 거실이나 서재에 작고 의미 있는 현판을 붙여도 좋겠다. 현대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생활공간은 아파트이다. 하나같이 찍어낸 듯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아파트 현관문에 작고 사랑스러운 현판을 걸어 보면 어떨까. 아이들 방엔 ‘꿈꾸는 방’, 서재에는 ‘지혜의 방’ 등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이름을 방마다 지어주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를 통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한 바 있다. 우리들도 방이나 거실 등의 공간에 이름을 붙여 불러주면 일상적 삶의 공간에는 새로운 생동감이 되살아날 것이다. 옛것에서 얻은 전통문화로 각자의 집과 방에 각자刻字를 붙여 보자. 단순히 머무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삶의 가치가 풍기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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