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빛의 말씀]
시비와 선악이 본래 공하니 발밑을 잘 살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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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2 년 6 월 [통권 제110호] / / 작성일22-06-07 11:27 / 조회4,812회 / 댓글0건본문
진리를 사모하고 참답게 삽시다
│1984년, 종정법어│
생명이 약동하는 봄입니다. 영겁의 윤회 속에서도 여린 싹은 어김없이 언 땅을 헤집고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잉태합니다. 그러나 태어난 존재는 없어져야 한다는 평범한 현상은 우주의 변할 수 없는 섭리입니다. 무상한 관계 속에서 일체 만물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합니다. 인연이라는 매듭에 얽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모든 생명은 상의상자相依相資의 연기성緣起性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기와 독선이 뿜어대는 공해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어둡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나’만의 이윤을 탐하고 ‘나’만의 안일을 추구해 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연기라는 사상성의 토대 위에 선다고 하면 결코 다른 이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명은 결코 서로를 학대할 권리를 지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연민과 조화 위에 서로를 아끼는 공존의 지혜를 밝히는 일이야말로 생명의 당위當爲일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닫혀진 편견의 다툼은 다른 이를 미워하며 해치고자 하는 무서운 몰이해의 장벽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 시대의 지배적 경향으로 전개되어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불자된 이의 책무이며 긍지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점을 가르치고자 오셨으며, 영원의 미래에서도 그것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평화와 자유는 결코 반목과 질시로 얻어질 수 없습니다. 대립은 투쟁을 낳고 투쟁은 멸망을 낳습니다. 미움은 결코 미움으로 지워질 수 없습니다. 지극한 자비의 도리가 실현되어야 할 소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명의 물결이 그윽한 마음의 원천에서 비롯되었다는 믿음, 그리고 그 마음이라는 동질성 위에 모든 생명이 하나일 수 있다는 확신이 우리를 희망에 용솟음치게 합니다.
지금 우리는 지구라고 하는 정류소에 머물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나 그곳을 아름답게 가꾸느냐 아니면 파경으로 이끄느냐 하는 자유 선택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우리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무명의 사슬에 얽혀 덧없는 유전을 거듭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어둡게 하는 일입니다. 반면에 슬픔의 예토를 장엄정토로 승화시키는 간곡한 의지의 집약은 희망의 내일을 기약하게 하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진리를 사모하고 참답게 살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그 분께 묻고 가르침을 구할 때,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아프고 그늘진 곳에 그 분의 크신 자비광명이 두루 하시기를 간곡히 기원합니다.
나무 시방삼세 무량제불
시비와 선악이 본래 공하고
│1986년, 서의현 총무원장 취임식 법어│

시비와 선악이 본래 공空하고
마군魔軍과 제불諸佛이 원시동체元是同體입니다.
생사열반生死涅槃은 꿈속의 꿈이요
이해득실利害得失은 거품 위의 거품입니다.
진여眞如의 둥근 달이 휘황찬란하여
억천만 겁 변함 없이 일체를 밝게 비추니 사바가 곧 정토입니다.
물거품인 이해득실을 단연斷然히 버리고
영원한 진여의 둥근 달을 항상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만법이 청정하여 청정이란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가없는 이 법계에 거룩한 부처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들판의 괭이소리 공장의 기계소리 함께 같이 태평가를 노래하니
푸른 언덕 잔디 위에 황금빛 꽃사슴이 즐겁게 뛰놉니다.
발아래를 보고 발아래를 보라
│1988년 11월 23일, 해인사 겨울수련회│

만길 봉우리 앞에 들말 달리고
천길 바다 밑에 진흙소 소리치니
산호가지 위에 햇빛이 밝고 밝으며
흰 학이 허공에 높이 나는도다.
발 아래를 보고 발 아래를 보라.
달마의 한 종파가 땅을 쓸어 다하고
기이하고 기이하니
공자의 삼천 제자가 다 염불하는도다.
이가 낭군과 박가 아씨는 서울 거리에서 춤추고
개미와 모기는 연화대 위에 있는도다.
가을바람이 불어 단풍잎을 흩으니
울타리가 누런 국화는 맑은 향기를 토하는도다.
훔훔
임제가 놀라서 입을 크게 벌리니
늙은 호랑이 사슴왕의 머리를 깨물어 부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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