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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부지런함을 실천하는 5단계[근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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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0 년 7 월 [통권 제87호]  /     /  작성일20-07-20 15:00  /   조회7,68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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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성균관대 초빙교수 

 

 

불교하면 흔히 방하착放下著과 무위無爲를 떠올리곤 한다.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욕망도 모두 버리고 평온하고 유유자적한 삶이 곧 불자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맞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잘못된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지 무조건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는 원동력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꿈꾸는 바를 이루려면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지런함은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불법에 있어서도 불교가 꿈꾸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한 구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원적산圓寂山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언덕을 오르고, 무위사無爲舍에 들어가기 위해 고난의 여정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교에서도 한결같이 성실과 근면을 강조한다. 부처님은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이에 따라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등 모든 불교전통에서는 한결같이 부지런함을 핵심적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초기불교는 팔정도를 통해 정정진正精進을 제시한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노력하라는 것이다. 대승불교 역시 육바라밀에서 정진精進을 빼지지 않고 제시하고 있다.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나아가는 끈기와 노력은 불자에게도 중요한 덕목이자 꼭 필요한 마음가짐인 것이다. 그래서 유식의 선심소善心所에서도 ‘부지런함[勤]’을 포함하고 있다.

 

스스로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으면 삶이 개선되거나 성취되는 일이 없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지만 그 책임을 세상 탓으로 돌리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불교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행위의 종교이다. 나의 삶은 누가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하는 것이다. 나의 삶과 운명은 자신의 노력과 실천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스스로 부지런히 노력하고, 바른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노력한 결과에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불자의 바른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근심소勤心所의 세 가지 특징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따라가면서 육위심소六位心所 중에서 세 번째 범주에 해당하는 11가지 선심소를 고찰하고 있다. 지난 호까지 믿음과 참괴慚愧, 삼선근까지 살펴보았고, 이번호에는 7번째 항목인 ‘근심소勤心所’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근(勤, vīrya)’이란 게으름을 물리치고 성실하게 선법善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유식문헌에 나타난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글자 그대로 ‘부지런함[勤]’이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게으름을 다스려[對治懈怠] 착한 일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滿善為業].”고 정의했다. 부지런함이란 게으름을 물리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이 훌륭하고 그럴 듯해도 성실하게 추진하지 못하면 한낱 춘몽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업성공과 같은 세속적 일은 물론 해탈과 열반이라는 종교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부지런해야 한다. 내가 세운 꿈과 목표, 바른 방향을 향해 자신을 독려하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 근심소의 역할이다.

 

근심소는 『대승아비달마집론』,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성유식론』에서는 부지런함을 뜻하는 ‘근勤’으로 표기하고, 11개 선심소 중에 일곱 번째로 제시하고 있다. 게으름은 내가 가야할 목적지로 갈 수 없게 하는 내면의 방해물이다. 그래서 근심소의 기본적 역할은 게으름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그런데 목표한 바를 성취하려면 한두 번 부지런을 떤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밀고 나가는 지속성이 요구된다. 그래서 『대승백법명문론』과 『대승오온론』,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근이라는 말 대신 ‘정진精進’으로 표기하고 있다. 특히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에서는 순서도 믿음 다음인 두 번째 항목으로 제시한다. 바른 믿음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꾸준하게 전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용맹함이다. 근면은 게으름이라는 내면의 적과 싸움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10분만 더 자자고 유혹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인데 내일도 날이니 미루자고 속삭인다. 그런 내면적 갈등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단호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달콤한 게으름의 속삭임을 뿌리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성유식론』은 근심소에 대해 “용맹과 단호함을 특성으로 삼는다[勇悍為性].”고 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나태함은 그럴 듯한 명분과 이유를 들이대며 게으름으로 나를 유도한다. 단호하게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않으면 나태함의 소굴로 끌려가고 만다. 『성유식론』에서는 “용맹은 이기고 나아감을 나타내며[勇表勝進] 온갖 것에 오염되는 것을 가려냄[簡諸染法].”이라고 했다. 부지런함이란 유혹을 뿌리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이며, 옆으로 빠지고 싶은 대상에 물듦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다는 것이다.

 

셋째, 착한 일에만 해당한다는 점이다. 흔히 ‘무엇이든 열심히 잘하면 된다!’는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바르고 선한 일을 향해서 부지런히 나아가야지 악한 일이나 나쁜 방향으로 부지런히 정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성실함이란 용맹스러운 힘의 세기보다 방향이 중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나쁜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무것 하지 않는 게으름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유식론』에서도 근은 “오직 착한 성품만을 포함한다[唯善性攝].”고 했다. 부지런함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 선법에만 해당하는 마음작용인 것이다.

 

다섯 단계

 

유식문헌에 따르면 근면과 정진을 실천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의 순서를 제시하고 있다. 즉, 피갑被甲, 가행加行, 무하無下, 무퇴無退, 무족無足이다.

 

첫째 피갑被甲은 마치 ‘갑옷 입은[甲被]’ 장군이 적진을 향해 용맹을 떨치며 진군하는 것처럼 당당한 위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름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유혹이므로 나를 가장 잘 알고, 나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그런 유혹을 떨치려면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장수처럼 용맹스러운 기세와 결단이 필요하다.

 

둘째 가행加行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게으름의 유혹을 떨치기 위해서는 끈기 있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는 한결같은 자세가 요구된다. 끊임없이 스스로 독려하며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분발하고 노력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셋째 무하無下는 '낮추지 않음'이다. 성취해야 할 선법善法과 목표에 대해 스스로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 가다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고생해서 이룰 가치가 있는가?”라는 회의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 순간 자신의 목표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게으름에 굴복 당하고 만다. 따라서 자신의 꿈,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늘 소중하게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넷째 무퇴無退는 ‘물러서지 않음’이다. 자신이 꿈꾸는 목표의 성취는 물론이고 해탈이라는 종교적 목표를 이루려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추위나 배고픔 같은 육체적 고통도 이겨내야 하고, ‘이만하면 됐다’라며 나약한 타협심도 물리쳐야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 싫증내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력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섯째 무족無足은 '만족하지 않음'이다. 소[牛]에게 멍에를 씌우면 소는 옆길로 빠지지 않고 밭갈이에 열중한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도 ‘선의 멍에를 벗어버리지 않음[不捨善軛]’이 필요하다. 기꺼이 선법善法의 멍에를 쓰고 열반을 향해 꾸준하게 나아가며, 정진의 멍에를 벗어서는 안 된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멍에처럼 지고 가야 한다.

 

우리는 쉽게 ‘성실해라’, ‘부지런해라’라는 말을 하지만 근면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부지런함에 대해서 이처럼 세세하게 단계를 나눠 설명하고 있다. 근심소의 다섯 단계는 수행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조계사 도량을 장엄한 연꽃  사진=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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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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