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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속 성철 큰스님]
성철스님의 법문과 법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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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  2017 년 10 월 [통권 제54호]  /     /  작성일20-07-31 11:20  /   조회5,13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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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께서는 1967년 역사적인 해인총림의 최초 방장으로 취임하신 이래 많은 법문을 하십니다. 그리고 성철스님의 법문은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잘 보존되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법어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성철스님의 법어집의 근본이 되는 몇 가지 법문 기사를 살펴봅니다. 먼저 해인총림의 첫 안거를 맞아 해인총림 방장 성철스님의 상당 결제법문이 있었습니다. ‘덕산탁발’ 화두를 거론하시는 이 법문이 성철스님의 개당설법(開堂說法)입니다. 성철스님의 상당법문집 제목은 『동쪽 산이 물 위로 간다』,『본지풍광』,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로 바뀌었습니다만, 이 법문은 상당 법문집의 제1칙의 자리를 차지하는 대표 법문입니다. 성철스님은 매월 보름과 말일에 진행하는 상당법문과 별도로 대중을 상대로 일반적인 불교 법문을 백일 가까이 하시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백일법문’입니다. 백일법문을 전하는 신문 기사를 읽어봅니다. - 정리 : 최원섭

 


 

 

<대한불교> 224호, 1967년 11월 26일 3면

16일 겨울

안거결제(安居結制)

 

지난 16일은 음력으로 시월 보름. 이날부터 승가에서는 정진을 위한 겨울 안거가 시작되었다. 해인, 통도, 범어사와 무문관을 비롯한 전국 각 사암에서는 일제히 결제법회를 갖고 안거에 들어갔다. 해제는 이날부터 90일이 되는 명년 음력 정월 보름이다.

 

【합천】 겨울 안거가 시작되는 지난 16일 해인사에서는 고암(古庵) 종정스님을 비롯하여 본당의 총림 대중과 산 안의 열두 암자에 있는 사부대중들 3백여 명이 대적광전에 모여 결제 의식을 엄숙히 가졌다.

 


 

 

특히 이번 결제는 해인총림이 개설된 뒤 첫 번째로 맞이하는 안거이기 때문에 그 의의가 컸다. 멀리 석남사(石南寺)를 비롯하여 각처에서 결제에 참례하는 대중들도 있어 이채를 띄우면서-.

 

결제 의식이 끝난 후 궁현당(窮玄堂)과 관음전 두 큰방에서 ‘산중공양’이 있었고 오후 두 시부터는 성철 방장스님의 상당(上堂)법문이 궁현당에서 연설되었다.

 

금생에 처음 법상에 올라, 그리고 많은 대중을 향해 설법한다는 방장스님은 순전히 참선하는 대중을 상대로 비교적 짤막하게(30분 동안에 걸쳐) 말씀하였다. 그것은 완전무결한 ‘재래식’ 상당법문이었다. 그 요지는 2면 <금주의 설법>에.

 

<대한불교> 224호, 1967년 11월 26일 2면

금주의 설법

결제법어초(結制法語抄)

 

상당(上堂)하여 염주장(拈拄杖)하고 양구(良久)에 운(云)하되, “야임마(也恁麽) 야임마(也恁麽)하니 천붕지괴일월흑(天崩地壞日月黑)이요 불임마(不恁麽) 불임마(不恁麽)하니 조비토주추국황(鳥飛兎走秋菊黃)이로다. 와력(瓦礫)이 개생광(皆生光)하고 진금(眞金)이 변실색(便失色)이라, 황두(黃頭)는 퇴삼천(退三千)하고 벽안(碧眼)은 암점두(暗點頭)로다. 회득즉칠전팔도(會得則七顚八倒)요 불회즉삼두육비(不會則三頭六臂)니 자마자마(作麽作麽)오. 홍하(紅霞)는 천벽해(穿碧海)하고 백일(白日)은 소수미(繞須彌)로다.

 


 

 

어차(於此)에 구정문정안(具頂門正眼)하면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이라, 변견불조(便見佛祖)의 전기대용(全機大用)이어니와, 기혹미연(其或未然)이면 갱유제이표악수(更有第二杓惡水)하여 살재제인두상(撒在諸人頭上)하리라.”

 

고래(古來)로 조석(祖席)의 영웅은 임제(臨濟) 덕산(德山)이라 하는데 임제 덕산은 실로 천고(千古)의 대안목(大眼目)임은 총림의 정론(定論)이다. 그중의 덕산이 양대 제자를 두었으니, 그는 유명한 암두(岩頭) 설봉(雪峰)이다. 

 

덕산회상에서 일일(一日)은 공양이 늦었는데 덕산이 발우를 들고[托鉢(탁발)] 나왔다. 반두(飯頭)인 설봉(雪峰)이 그것을 보고 대성(大聲)으로 “종미명(鐘未鳴) 고미타(鼓未打)어늘 탁발향십마처거(托鉢向什麽處去)오” 하니, 덕산이 무일언반사(無一言半辭)하고 저두귀방장(低頭歸方丈)하였다.

 

암두가 그것을 전문(傳聞)하고 “대소덕산(大小德山)이 불회말후구(不會末後句)라”고 갈파하였다. 덕산이 암두를 불러 문책하기를, “이불긍노승야(爾不肯老僧耶)아” 하니, 암두가 밀계기의(密啓其意)하였다.

 

덕산이 명일(明日) 상당(上堂)에 과여심상(果與尋常)으로 부동(不同)이었다. 암두가 무장대소운(撫掌大笑云) “차희노한(且喜老漢)이 회말후구(會末後句)나 지득삼년(只得三年)이라” 하니 과연 덕산이 3년 후에 천화(遷化)하였다.

 

이것이 종문(宗門)의 향상아조(向上牙爪)인 유명한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이다. 여기에 사개난점(四箇難點)이 있으니 첫째, 조석(祖席)의 영웅이라는 덕산이 어찌 설봉의 일언(一言)에 저두귀방장(低頭歸方丈)하였는가? 실로 덕산이 대구(對句)할 능력이 없었을까, 또한 타의(他意)가 있는가? 둘째, 덕산이 과연 말후구(末後句)를 몰랐을까? 말후구도 모르고 어찌 조사 노릇을 하였을까? 셋째, 밀계기의(密啓其意)라 하였으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넷째, 덕산이 암두의 지시로 말후구를 알고 암두의 수기를 받은 것일까? 그러면 암두는 덕산보다 몇 배 더 나은 대조사가 아닐까?

 

이 공안은 짐독(鴆毒) 비상(砒霜)과 같아서 불문여하약하(不問如何若何)하고 변상신실명(便喪身失命)하는 것이니,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여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하라. 사량분별(思量分別)인 유심경계(有心境界)는 고사(姑捨)하고 허통공적(虛通空寂)한 무심심처(無心深處)에서도 그 진의는 절대로 모르는 것이요, 오직 말후뇌관(末後牢關)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여야만 고인(古人)의 입각처(立脚處)를 아는 것이다.

 

이 공안을 바로 알면 모든 불조(佛祖)의 공안을 일시투득(一時透得)하여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로서 금강보검(金剛寶劒)을 높이 들고 횡행천하(橫行天下)하여 살활자재(殺活自在)하는 것이니 기불쾌재(豈不快哉)아!

승문허당(僧問虛堂)하되 “탁발귀방장의여하(托鉢歸方丈意如何)오?”

 

답 “귀매천매(貴買賤賣)니라.”

문 “불회말후구차여하(不會末後句且如何)오?”

답 “요시장(閙市裏)에 타정추(打靜椎)니라.”

문 “밀계우자마생(密啓又作麽生)고?”

답 “귀도곡불도장(鬼搗穀佛跳墻)이니라.”

문 “차일부동차희회말후구여하(次日不同且喜會末後句如何)오?”

답 “도창(刀瘡)은 이몰(已沒)이어니와 악언(惡言)은 난소(難消)니라.”

승문도림(僧問道林)하되 “저두귀방장의여하(低頭歸方丈意如何)오?”

답 “분전변화(奔電迸火)니라.”

문 “불회말후구의여하(不會末後句意如何)오?”

답 “상수래의(相隨來也)니라.”

문 “나리시타(那裏是他)의 밀계처(密啓處)오?”

답 “만년송재축융봉(萬年松在祝融峰)이니라.”

문 “과연삼년후천화(果然三年後遷化)하니 환단적야무(還端的也無)아?”

답 “옴 마니다니 훔바탁.” 

 

이 양대노(兩大老)의 문답이야말로 탁발화(托鉢話)의 골수를 관철하였으니 실로 금고한문(今古罕聞)이라, 절수참상(切須叅詳)하며 절수참상(切須叅詳)이어다. 

 

또한 설봉이 주암시(住庵時)에 양승(兩僧)이 내례(來禮)하니봉(峰)이 탁문출운(托門出云) “시심마(是什麽)오?” 승(僧)이 역운(亦云) “시심마(是什麽)오?” 하니 봉(峰)이 저두귀암(低頭歸庵)하였다. 승(僧)이 거이암두(擧似岩頭)하니 두운(頭云) “희(噫)라. 아당초(我當初)에 회불향타도말후구(悔不向他道末後句)니 약향이도(若向伊道)런들 천하인(天下人)이 불내설노하(不奈雪老何)니라.” 승(僧)이 청익(請益)한대 두운(頭云) “설봉(雪峰)이 수여아동조생(雖與我同條生)이나 불여아동조사(不與我同條死)니 요지말후구(要識末後句)인댄 저시(這是)니라.” 

 

이것도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와 양맥상통(兩脈相通)이라,

조이불영(祖禰不靈)하야 앙급아손(殃及兒孫)이로다. 

 

후래(後來)에 운문적손(雲門嫡孫)인 설두(雪竇)가 송(頌)하기를, “말후구를 위군설(爲君說)하노니 명암쌍쌍저시절(明暗雙雙底時節)이라, 동조생야공상지(同條生也共相知)요 부동조사환순절(不同條死還殊絶)이니, 환순절(還殊絶)이여 황두벽안(黃頭碧眼)도 수견별(須甄別)이어다. 남북동서귀거래(南北東西歸去來)하니 야심(夜深)에 동간천암설(同看千岩雪)이로다.”

 

차등공안(此等公案)을 천하총림(天下叢林)에 상량호호지(商量浩浩地)이지만, 산승견처(山僧見處)로 점검장래(點檢將來)하니, 덕산삼부자(德山三父子)가 말후구(末後句)는 미몽견재(未夢見在)요, 설두사족(雪竇蛇足)은 입지옥여전사(入地獄如箭射)니라. 연즉(然則) 여하시말후구(如何是末後句)오?

 

양구운(良久云) “서인완월문생각(犀因翫月紋生角)이요 상피뇌경화입아(象被雷驚花入牙)라.” 하고 주장(拄杖)으로 격법좌삼하(擊法座三下)하고 하좌(下座)하다. -녹음취재-

 

<대한불교> 226호, 1967년 12월 10일 1면

해인총림 청법대법회(聽法大法會)

성철 방장스님 백일대설법

 

11월 16일 겨울 안거를 결제한 해인총림에서는 지난 2일(음11월 1일)부터 1백일동안 방장 화상 성철스님의 특별법문 청법 대법회가 열리고 있다. 

 

1백일간 매일 한 시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설법을 하게 되는 성철 방장 화상은 지난 7월 해인총림에 취임한 이래 총림을 본 궤도에 올리기 위하여 심혈을 쏟고 있다. 

 

성철 방장 화상의 법문 내용은 ①총림의 지도이념 ②조계종지 ③불교 근본교리 해설(禪敎를 통한 사상의 체계화) ④현대사상과 불교 진리 등이다. 

 


 

 

이와 같은 설법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을 감안, 해인총림에서는 뜻있는 불자들의 동참을 허용하고 있다. 

해인총림에서 이처럼 장기 청법대법회를 갖기는 근래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해인총림에는 1백 50여 납자들이 모여 겨울 안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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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의 불교 주제구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원과 금강대학교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외래강사. 대중문화를 통해 불교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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