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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무참無. 무괴無愧 역시 중대한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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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1 년 9 월 [통권 제101호]  /     /  작성일21-09-06 11:03  /   조회3,85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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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101

중수번뇌中隨煩惱

 

소위 ‘나 세대Me Generation’ 시대인 요즘은 어딜 가나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한다. 물론 불교의 기본은 내 속에 무한한 보배 창고가 있음을 자각하고, 그와 같은 자성自性을 깨닫고 주인공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자신감과 당당함이 지나쳐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그것은 또 다른 번뇌가 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부끄러움

 

그래서 『열반경』에서는 부끄러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부끄러움이 없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하며, 부끄러움이 있어서 부모와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다.”고 했다.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지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시인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꿈꾸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자연히 제 멋대로 행동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무도한 사람이 되고 만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처음에는 자유로 느껴지겠지만 자신을 둘러싼 타인의 불편한 시선들이 쌓여 가면 오히려 마음의 굴레가 되는 법이다. 이처럼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사람됨의 중요한 요소이므로 맹자도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於人]”을 군자삼락 중의 하나로 꼽았다.

 

맹자는 부끄러워해야할 대상에 대해 하늘과 사람이라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늘에 부끄럽지 않음이란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는 양심의 문제로 볼 수 있음으로 결국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음이란 사람들 눈에 어긋남 없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인륜과 도덕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열반경』에서도 맹자와 같이 두 가지 부끄러움에 대해 설하고 있다. 즉 하늘을 향해 부끄러움을 아는 ‘괴愧’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아는 ‘참慙’이 그것이다. 

 

『열반경』에 따르면 “참이란 안으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이고[慙者內自羞恥], 괴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드러내는 것이다[愧者發露向人]. 참은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고[慙者羞人], 괴는 하늘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다[愧者羞天].”고 했다.

맹자의 말씀처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불교에서는 ‘참괴심慙愧心’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참.과 괴愧를 한데 묶어 ‘부끄러워함’이라는 뜻에서 ‘참괴.愧’라고 한다. 경론에서도 무참無.과 무괴無愧에 대해 자신이 범한 잘못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不恥]’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참괴를 부끄러워함으로 해석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을 알고,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같지만 『열반경』에서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드러냄’에 대한 내용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 부끄러운 일을 했다면 그것을 숨기지 않고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부끄러운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다. 『선가귀감』에서도 “부끄러워한다[.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責於內],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愧發於外].”고 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사람은 말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알게 되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기에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과 윤리 도덕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부끄러움이란 일종의 도덕적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적 감수성이 없으면 양심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절제할 줄 모르고, 타인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못된 일을 되풀이 하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부정성을 극복하고 삶을 바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노력이다. 그래서 서산 대사는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이 있으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대장부의 기상”이라고 했다. 남의 시선이나 윤리 도덕을 생각하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면 점점 악행이 자라나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면 악행은 줄어들고 선행은 점차 늘어난다.

 

무참, 잘못해도 부끄러움 없는 것

 

부끄러움을 아는 참과 괴, 그리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참과 무괴는 유식학에서도 등장하는 개념이다. 참과 괴는 자신의 그릇됨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긍정적 마음작용이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참과 무괴는 부정적 심소이자 번뇌로 규정하고 있다. 51가 심소 중에 부끄러움을 모는 무참無慚과 무괴無愧는 20가지 소수번뇌 중에 중수번뇌中隨煩惱로 불린다.

 

참과 괴가 부끄러워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참과 괴의 내용을 살펴보면 차이가 있다. 『대승오온론』에 따르면 참.이란 “계정혜의 공덕이 있는 이를 공경하는 것이며, 또 스스로 반성한 결과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羞恥.性].”이라고 했다. 여기서 참이란 삼학에 대한 덕이 높고 존경할 만한 어른들을 공경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공경하고 따라야할 스승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렇게 부끄러움을 알면 “여러 가지 죄를 짓지 않고[不作.罪] 악행을 방지하게 된다[防息惡行].”고 했다. 따라서 공경할만한 어른의 가르침을 어긴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면 삶은 평탄해지고 마음은 고요해 진다.

 


이경미 작, 석등

 

이와 같은 부끄러움을 아는 참의 반대 개념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참無. 심소이다. 바른 법과 공경할만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가볍게 여겨 잘 따르지 않고, 잘못을 범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음 작용이 무참이다. 『성유식론』에는 무참심소에 대해 “자신과 법을 돌아보지 않고 현인을 가볍게 여기고 선법善法을 거부하는 것이 본성이다[不顧自法 輕拒賢善.性]. 참심소를 가로막아 악행을 증장하는 것을 작용으로 한다[能障.. 生長惡行.業].”고 설명했다. 따라야할 정법을 마음에 담지 않고, 공경해야할 어른들의 가르침을 귀담아 듣지 않고, 그릇된 행동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不恥過惡]이 무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모르고 행동하면 참심소의 긍정적 역할을 가로막아 악행을 계속 키우게 됨은 물론이다.

 

『구사론』에서도 ‘온갖 공덕과 공덕 있는 이에 대해 공경하지 않고’, ‘제자로서 예의가 없는 것을 무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부끄러워함이 없다는 것은 바른 법과 공경해야할 덕 있는 스승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반성할 줄 모르는 마음을 말한다.

 

무괴, 꾸지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괴愧 역시 부끄러워함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대승오온론』에 따르면 괴란 계정혜 삼학에 대한 수행과 이해가 깊고, 공경할 만한 이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자신이 범한 불선不善에 대해 “꾸지람과 벌 및 그에 대한 의논 등을 두려워함[責罰及議論等].”이라고 했다. 즉 자신이 범한 허물에 대해 공경할만한 어른들의 질책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스스로 지은 죄와 허물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羞恥於他]이 바로 괴심소라고 했다.

 

반면 공경할만한 스승의 꾸짖음이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마음작용과 자신이 범한 허물을 두렵게 여기지 않는 마음작용이 무괴이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무괴에 대해 “세간을 돌아보지 않고 포악함을 받들어 중히 여기는 것이 본성이다[不顧世間 崇重暴惡.性]. 능히 부끄러워함[愧]을 방해하여 악행을 일으키고 키우는 것을 작용으로 삼는다[能障.愧 生長惡行.業].”고 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허물과 포악함이 대단한 것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죄과에 대해 부끄럽게 여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방해하여 여러 가지 악행을 일으키는 심소가 무괴이다.

 

『구사론』에 “모든 선사善士가 꾸짖고 싫어하는 법[訶厭法]을 일컬어 죄라고 하는데, 이러한 죄에 대해 두렵게 보지 않는 것[不見怖畏]을 무괴라고 한다.”고 나온다. 이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자신을 절제하고, 나쁜 행동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방종하고, 악업을 키우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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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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