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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심리학의 만남]
마음과 심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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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1:01  /   조회1,26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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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까지 불교의 존재와 연기, 인식과 세계, 진리와 인간을 다루었다. 이번 호부터는 이를 토대로 인간의 마음 가운데 심心을 다루고자 한다. 불교심리학은 결국 마음을 주제로 하는 학문이므로 마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본령이 될 것이다. 마음과 관련된 유의어 네 가지를 살펴보면서 ‘불교마음학’에서 마음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고자 한다. 심心·의意·식識·성性을 순차적으로 살펴본 이후 이들을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마음학

 

전통적으로 불교는 심心·의意·식識을 동의어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심·의·식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마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징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다른 측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선 마음과 나머지 심·의·식·성을 구분하고자 한다. 심·의·식·성이 마음의 구체적인 특징을 가리킨다면, 마음은 심·의·식·성 각각이 가지는 특징을 전체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라는 용어 자체가 ‘모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다음으로 필자는 심·의·식에 성性을 추가하고자 한다. 심·의·식 이외에 마음의 본래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용어로 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정의를 통해서 심·의·식·성의 특징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마음을 심·의·식·성의 특징을 포함하여 정의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마음과 심·의·식·성의 관계를 파악하는 동시에 심·의·식·성 각각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의 의미

 

심心의 빨리어는 찟따(citta)이다. 찟따의 어근 찟(√cit)은 쩨따띠(cetati)라는 ‘생각하다(think, 想)’는 동사와 찌노띠(cinoti)라는 ‘축적하다(accumulate, 積)’는 동사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생각하다’는 마음의 대표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인 상想에 해당하고, ‘축적하다’, ‘집적하다’는 모으는 기능 즉 머금는 기능으로 심心의 또 다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머금다’는 의미는 ‘유지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유지하다(hold)는 법(dhamma)의 어근인 드리(√dhṛ)의 의미이기도 하다.

 

한자로 보면 심心은 심장이 피를 머금고 있으면서 피가 움직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피침 별丿, 숨을 은乚, 점 주丶, 점 주丶는 심心의 네 가지 획의 이름이다. ‘숨을 은’은 그릇에 피가 모여 있는 모습을 형상하고 있고, 그 위에 별, 주, 주는 피가 다른 방향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심장心腸은 피가 모여 있는 동시에 피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빨리어로 심장(hadaya)은 심의 토대(hadaya vatthu)로 마음의 물질적 기반을 의미한다. 심장은 머금는 동시에 매순간 움직이고 있으므로 이를 토대로 하는 심心도 머금는 동시에 매순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축적하다’는 것이 단순한 축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머금고 있으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심장은 머금는 동시에 매순간 움직인다.

 

몸적으로는 피를 머금고 피가 움직이고 있다면, 마음적으로는 무엇을 머금고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의意와 식識은 하나의 세트를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수많은 업들을 만든다. 

의와 식은 업을 만드는 역할을 중심으로 하는 반면, 이러한 업이 들고나고 머물고 축적하는 역할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심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축적되고 움직이는 것은 신구의身口意 세 차원에서의 업業이다.

 

먼저 의意의 차원에서 축적되는 것은 기억(memory, remembrance)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기억에는 기억을 하는 것과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있다. 전자는 메모리, 후자는 리멤버런스 또는 회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전자는 의와 식이 세트가 되어서 의업意業을 만들고 이것이 심에 기억의 형태로 축적되는 것이다. 이때 범부는 좋고 나쁨에 의해서 왜곡되게 기억할 수 있다. 

 

탐진치가 없는 경우는 왜곡 없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회상하는 기억 자체는 좋고 나쁨의 구분이 없지만, 회상하면서 탐진치에 의해서 물들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도 범부는 탐진치와 함께 회상하기 때문에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범부의 경우는 탐진치에 의해서 왜곡되게 기억하고 왜곡되게 회상한다. 그러므로 기억할 때와 회상할 때 각각이 모두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을 의미하는 단어로 염(sati, 念)이 있다. 산스크리트어 어근 스므리(√smṛ)는 기억, 재인식, 알아차림의 의미를 가진다. 재인식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 즉 회상을 의미하므로 기억과 재인식은 기억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염은 기억과 알아차림이라는 크게 두 가지 용어로 번역할 수 있다. 기억과 알아차림이라는 두 측면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억념憶念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 한자로 보면 염은 현재[今]의 마음[心]이 아니라 마음[心]을 모으는 것[亼]을 말한다. 마음을 모으는 것이므로 기억이라는 의미가 가능하고, 알아차린다는 의미가 가능하고, 나아가서는 집중한다는 의미도 가능하다.

 

다음으로 구口의 차원에서 보면 언어는 기억을 잘 하게 하는 수단이다. 기억은 변화하기 쉽고 소멸하기 쉽다. 이러한 변화와 소멸을 극복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언어이다. 언어는 고정성(rigidness)을 특징으로 한다. 이로 인해서 언어는 완결되는 동안 그 사이에 실재는 이미 생멸하여 다른 것으로 변해 버리므로, 그 실재 자체는 표현할 수 없다. 언어는 고정성으로 인해서 실재를 표현할 수 없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언어를 사용한 축적으로서의 심心은 생각하다(think)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축적하다’와 ‘생각하다’가 심心의 어원으로 함께 사용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축적하다와 생각하다는 두 단어가 심心과 연결되는 방식은 생각 즉 언어에 의해서 축적한다는 것이 된다.

 

세 번째로 신身의 차원에서 심心은 몸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감각정보가 축적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몸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감각기능을 한다. 의意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과 병렬적으로 감각기능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이들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식識을 통해서 처리한다. 신체는 감각정보를 수집하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이는 심장이 심心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자체에서 식識이 개입되므로 몸은 감각정보의 축적장소라고 할 수 있다.

 

오온이라고 할 때 온(aggregate, 蘊)은 ‘쌓다’, ‘축적하다’는 의미가 있다. 오온에서 온蘊은 매순간의 색수상행식이 서로 결합되는 것을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각각의 색수상행식이 축적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에는 몸과 마음 두 가지 차원에서 모두 축적된 것을 말한다. 오온에 의한 인간관은 몸과 마음의 두 가지 차원에서 모두 축적된 것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다. 

 

팔식의 관점에서 심

 

심心의 축적하는 기능은 유식불교의 팔식八識에서도 볼 수 있다. 팔식은 식의 차원이 아니라 심의 차원에 해당된다. 유식불교에서는 팔식을 심心, 칠식七識을 의意, 육식六識을 식識에 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팔식의 다양한 기능은 동의어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팔식의 동의어로 알라야식, 이숙식, 유지식, 종자식, 장식, 심 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용어는 동의어라기보다는 팔식의 다양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심·의·식을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실제 용례에서 각각의 용어가 마음의 다양한 기능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알라야식(ālaya-vijñāna)은 범부의 탐심에 의해서 축적된 마음을 말한다. 이는 팔식으로 기억될 때 범부의 좋고 나쁨에 의해서 축적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심心의 쌓고 머물고 축적하는 기능을 대표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이숙식(vipāka-vijñāna)은 식의 결과로서 기억이 저장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팔식은 이러한 저장의 기능으로 인해서 장식藏識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식의 역할 가운데 유지하는 기능은 유지식(ādāna-vijñāna)에서 볼 수 있다. 유지하는 것에는 신체까지도 포함된다. 유지식은 신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식으로 팔식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언어의 형태로 저장되는 것은 종자식(bīja-vijñāna)의 기능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언어는 명언종자의 형태로 저장된다. 의意와 식識은 매순간 생멸하면서 업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기억의 형태로, 언어의 형태로, 신체의 형태로 저장된다. 그리고 이렇게 저장된 기억, 언어, 신체는 유지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심心의 축적하는 기능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의 차원에서 보면 의는 기억, 구는 언어, 신은 감각기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집적하면서 변화하는 기능을 동시에 한다. 기억을 통해서 축적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기억과 회상을 할 수도 있고, 왜곡된 기억과 회상을 할 수도 있다. 언어도 고정성을 통해서 축적하지만 종자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몸의 차원에서는 감각기관에 의한 정보의 축적과 변화로 인해서 유지식이 축적과 동시에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장은 심의 물질적 토대이지만 나아가서는 몸 전체가 심의 물질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심心은 의意와 식識이 활동한 결과를 머금는 기능을 하는 동시에 축적된 것이 변화하는 기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불교심리치료적 함의

 

심心은 의·식이 세트로 만들어 내는 다양한 산물들을 축적하면서 변화하는 기능을 동시에 한다. 먼저 불교의 의식과 서구심리학의 의식은 구분된다. 불교의 의식은 의와 식의 합성어이고, 서구심리학에서 의식은 단일어로 컨셔스니스(consciousness)를 말한다. 서구심리학에서 보면 의식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고, 무의식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인식유무가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서구심리학에서 의식과 무의식은 이미 만들어진 마음의 산물 가운데 인식유무에 따라서 구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불교에서 의식은 의와 식 둘의 작용에 의해서 감각, 느낌, 의도 등과 같은 색수상행의 영역에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기능을 말한다. 불교의 의식과 서구심리학의 의식은 이처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불교심리학은 의와 식에 의해서 만들어진 산물들이 심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구의身口意 삼업 가운데 어떤 형태로 심心에 축적될지라도 들고남에 왜곡 없음을 강조한다. 왜곡을 없애기 위해서 정념을 강조하는 것이고, 정어를 강조하는 것이고, 육근청정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신구의 삼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고 변화하고 현행한다. 들어간 것은 반드시 나온다는 것이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라도 반드시 심에서 나온다. 이를 인지한다면 의와 식에서 함부로 축적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다양한 산물을 만드는 기능을 하는 의와 식, 이러한 산물을 축적하는 기능을 하는 심, 마음의 본래적 기능을 하는 성의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심이 가지고 있는 축적하는 기능은 현재 의와 식의 작용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의와 식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그대로 축적되므로 항상 신구의 차원에서 업을 만드는 것을 중요시한다. 또한 만들어진 업이 심으로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을 중요시한다. 마지막으로 심에 축적된 업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유익한 방향으로 변화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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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ㆍ석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석ㆍ박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불교상담학전공 지도교수. 한국불교상담학회 부회장, 슈퍼바이저. 한국불교학회 부회장. 저역서로 『불교심리학연구』, 『불교의 언어관』, 『불교심리학사전』 등이 있다.
heecho12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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