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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방과 할을 모두 사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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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3 년 7 월 [통권 제123호]  /     /  작성일23-07-04 11:04  /   조회3,03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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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祖師禪에서는 학인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다양한 제접법提接法을 설시設施하고 있다. 때로는 자상하게 법을 설하지만, 그 법에 계합契合하지 못했을 때는 몽둥이[棒]나 할喝과 같은 과격한 행위를 통하여 학인들을 깨우치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바로 마조도일馬祖道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조의 방할棒喝

 

마조는 돈오頓悟를 중심으로 ‘즉심즉불卽心卽佛’ 등의 선사상을 제창하였으므로 학인들을 가르치는 데 필연적으로 다양한 제접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돈오의 견지에서는 교학과 같이 차제次第와 계위階位를 시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본격적인 제접법은 바로 마조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어떤 학인이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고 묻자 바로 두들겨 패면서 말하기를, “내가 너를 때리지 않았다면, 제방諸方에서 나를 비웃을 것이다.”(주1)라고 한 바와 같이 때리는 사례는 다양하게 보인다.

 

사진 1. 마조도일 선사.

 

그리고 ‘할’의 용례도 다양하게 보이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백장회해百丈懷海가 마조를 재참再參하는 다음과 같은 일화이다. 백장이 마조를 다시 참알하여 곁에 서 있는데, 마조는 승상繩牀 모서리의 불자拂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백장이 “이 불자에 즉卽하여 작용합니까? 이 불자를 떠나서[離] 작용합니까?”라고 물었다. 마조는 “네가 향후 주둥이[兩片皮]를 열 때, 무엇으로 사람을 만들겠는가?”라고 묻자 백장은 불자를 잡아 세웠다.

 

마조가 “이 불자에 ‘즉’하여 작용할 것인가? 이 불자를 떠나서 작용할 것인가?”라고 하자 백장은 불자를 원래 있던 곳에 걸었다. 마조가 크고 위엄 있게 할喝을 한 번 하였고, 이 때문에 백장은 바로 사흘 동안 귀머거리가 되었다.(주2) 이는 선가에 상당히 유명한 일화로써 이를 통하여 백장이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여기에는 이른바 ‘작용즉성作用卽性’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숨어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외에 마조는 다양한 ‘방할’의 선범先範을 행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으로부터 ‘방할’은 이미 마조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

 

의현의 시기에도 이러한 방할은 중요한 제법의 방법으로 상용되고 있는데, 흔히 ‘덕산방 임제할’이라고 칭한다. 이는 염상念常의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에서 “이른바 덕산의 문에 들어가면 바로 방棒이요, 임제의 문에 들어가면 바로 할喝을 베푼다. 대저 방할을 어찌 함부로 베풀겠는가!”(주3)라는 문구가 보인다. 또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실린 임제종 계열의 수산성념首山省念의 전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어떤 승려가 “‘임제할, 덕산방’은 어떤 일을 밝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수산은 “네가 한번 말해 보라.” 승려가 할을 하니, 수산은 “이 눈먼 놈아!”라고 하였고, 승려가 다시 할을 하니, 수산은 “이 눈먼 놈이 이렇게 시끄럽게 할을 해서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승려가 예배하자 수산은 바로 때렸다.(주4)

 

사진 2. 덕산선감 선사.

 

이처럼 ‘임제할 덕산방’은 후대에 수많은 선전禪典에서 마치 정형구처럼 형성되어 상당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임제와 관련된 일은 잠시 뒤로 미루고, ‘덕산방’의 덕산선감德山宣鑒은 청원계靑原系의 석두희천石頭希遷-천황도오天皇道悟-용담숭신龍潭崇信의 법계를 계승하였으며, 의현과 동시대에 활동한 인물이다. 덕산이 행한 ‘방’의 사례는 상당히 많지만 여기에서는 『경덕전등록』의 덕산의 전기에 실린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보겠다.

 

(덕산)선사가 상당上堂하여 설했다. “오늘 밤에는 묻지 말라. 말을 거는 자는 주장자로 30번 때리겠다.” 그때 어떤 승려가 나와 예배를 하고자 하니, 선사는 바로 그를 때렸다. 승려가 “저는 아직 아무 말도 묻지 않았습니다. 화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때리십니까?”라고 하였고, 선사가 “너는 어디 사람인가?”라고 묻자 “신라국新羅國 사람입니다.”라고 하자, 선사는 “네가 아직 배를 타기 전에 주장자로 30번 때렸어야 했다.”라고 하였다.(주5)

 

(덕산)선사가 상당하여 설했다. “물으면 바로 허물이 있고, 묻지 않는다면 또한 어그러진다.” 어떤 승려가 나와 예배를 하자, 선사는 바로 때렸다. 승려가 “저는 다만 예배를 했을 뿐인데, 무엇 때문에 때리십니까?”라고 하자 선사는 “네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린다면 능히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주6)

이와 같은 까닭으로 덕산은 방으로 유명하였는데,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의현도 이를 듣고서 덕산을 감변하는 기사가 『임제어록』에 실려 있다.

 

(의현)선사가 제2대 덕산이 수시垂示에서 말하기를, “말을 해도 30방, 말을 하지 않아도 30방이다.”라고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선사는 시자인 낙보樂普에게 “‘말을 했는데, 어째서 30방입니까?’라고 묻고, (덕산선사가) 너를 때리면, 그 주장자를 잡아 던져버리고, (덕산선사가) 어떻게 하는가를 보아라.”라고 시켰다. 낙보는 그곳에 가서 시키는 대로 물었더니, 덕산선사는 바로 때렸고, 낙보가 주장자를 잡아 던져버리자 덕산선사는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낙보가 돌아와 의현선사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의현선사는 “내가 예전부터 그놈을 의심하였다. 그건 그렇고 너는 덕산을 보았는가?”라고 묻자 낙보가 주저하니, 선사는 바로 때렸다.(주7)

 

사진 3. 덕산정사. 후에 건명사乾明寺로 개명되었다.

 

이는 『조당집祖堂集』에도 실려 있는 기사지만, 조금 차이가 있고 끝부분에 낙보를 때렸다는 내용은 없다.(주8) 여기에서 ‘제2대’라는 말은 무릉武陵 태수 설정망薛廷望이 총인總印이 세운 덕산정사德山精舍를 수리하여 고덕선원古德禪院으로 개명하고, 덕산선밀을 모셨기 때문에 ‘제2대’라고 한 것이다.(주9) 이로부터 의현과 덕산은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서로 교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임제의 방할제시棒喝齊施

 

그런데 임제할이라고 하지만 위와 같은 사례로부터 본다면, 의현은 결코 할만 운용한 것이 아니라 방할을 모두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당집』의 임제전에는 “비록 황벽의 법을 이었으나 항상 대우를 찬양하였고, 교화하는 방편문에 있어서도 방할을 많이 베풀었다.”(주10)라고 하듯이 의현은 방할을 고르게 베푸는 ‘방할제시’의 입장이었고, 이는 남악계의 마조로부터 계승된 제접법이라고 하겠다. 『조당집』의 임제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인다. 

 

사진 4. 덕산 건명사 탑.

 

(의현)선사가 낙포落浦에게 물었다. “위로부터 어떤 한 사람은 방을 행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할을 행한다면, (이 두 사람은) 친함[親]과 소원함[疏]이 있겠는가?” 낙포가 대답했다. “저의 소견으로는 두 가지가 전혀 친하지 않습니다.” 선사가 “친한 곳은 어떠한가?”라고 묻자 낙포가 ‘할’을 하였고, 선사는 바로 그를 때렸다.(주11)

 

이로부터 명확하게 방할제시의 풍모를 보인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임제할이 더욱 많이 알려진 것일까? 그것은 의현이 할에 더욱 많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임제의 네 가지 할

 

『임제어록』에는 할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선사가 승려에게 물었다. “어느 때 한 번의 할은 금강왕보검金剛王寶劍과 같고, 어느 때 한 번의 할은 금빛 털을 가진 사자[金毛師子]가 땅에 웅크리고 있음과 같으며, 어느 때 한 번의 할은 물고기를 탐색[探竿]하거나 창문에 그림자를 비춤[影草]과 같고, 어느 때 한 번의 할은 할의 용用이 아니다. 너는 알겠는가?” 승려가 머뭇거리자 선사는 바로 할을 하였다.(주12)

 

이로부터 할은 대체로 네 가지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바로 아주 예리한 보검으로 인혹人惑을 잘라버림과 같이 곧바로 망집을 타파시키는 것이요, 둘째는 마치 위엄 있는 사자가 먹이를 노리고 웅크리고 있는 것과 같은 경책警責이요, 셋째는 어부가 물고기가 있나 없나 탐색하거나, 혹은 도둑이 사람이 잠들어 있는지 창문에 대나무와 같은 것으로 비추어 봄과 같이 상대방의 근기를 탐색하는 경우이고, 넷째는 정말 하릴없이 할을 흉내 내는 경우라 하겠다. 이처럼 의현은 할을 구분하고 있고, 그로부터 학인의 제접에 세밀하게 운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할의 주빈

 

또한 『임제어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날, 양당兩堂의 두 수좌首座가 서로 보고 동시에 할을 하였다. 어떤 승려가 선사에게 물었다. “그 할에 손님[賓]과 주인[主]이 있습니까?” 선사가 “손님과 주인이 분명하다.”라고 하고 다시 “대중들아, 임제의 빈주구賓主句를 알고 싶으면 승당僧堂의 두 수좌에게 물어보아라.”라고 하고 자리에서 내려갔다.(주13)

 

이로부터 할에 ‘주빈’이 존재하고 있음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이후 『벽암록碧巖錄』 등의 선전에 조금씩 변용되어 많이 인용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지월록指月錄』에 인용된 구절을 소개하겠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할을 배우고 있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물으니, 어떤 한 사람이 동당東堂에서 나오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서당西堂에서 나와 두 사람이 함께 할 일성一聲을 하였다. 여기에서 손님과 주인을 나눌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또한 분별하라. 만약 분별하지 못한다면, 이후 노승의 할을 배울 수 없을 것이다.(주14)

 

이로부터 후대에서는 할에 주빈의 구분이 상당히 중요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상 ‘주빈’은 임제선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설법에서도 ‘주’가 등장하고 있고, 이어서 논하겠지만 ‘사빈주四賓主’에서는 ‘주’와 ‘빈’의 관계를 극도로 중시하고 있다. 이렇게 의현은 방도 많이 사용하지만 할을 더욱 중요시하는 까닭에 ‘덕산방 임제할’로 알려진 것이 아닐까 한다. 이에 이어서 ‘사빈주’와 ‘사료간四料簡’ 등의 제접법을 고찰하고자 한다.

 

<각주>

(주1)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卍續藏69, 4c), “問: 如何是西來意? 祖便打曰: 我若不打汝, 諸方笑我也.” 이는 『景德傳燈錄』 卷6(大正藏51, 246b) 등에도 실려 있다.

(주2) 『洪州百丈山大智禪師語錄』(卍續藏69, 6a), “師再參侍立次, 祖目視繩牀角拂子. 師曰: 卽此用離此用. 祖曰: 汝向後開兩片皮, 將何爲人? 師取拂子竪起. 祖曰: 卽此用離此用. 師挂拂子於舊處. 祖振威一喝. 師直得三日耳聾.”

(주3) [元]念常集, 『佛祖歷代通載』 卷22(大正藏49, 720c), “所謂德山入門便棒, 臨濟入門便喝. 夫棒喝者, 豈徒施也哉!”

(주4)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3(大正藏51, 304b), “問: 臨濟喝德山棒, 未審明得什麽邊事? 師曰: 汝試道看? 僧喝. 師曰: 瞎! 僧再喝. 師曰: 遮瞎漢只麽亂喝作麽? 僧禮拜, 師便打.”

(주5)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5(大正藏51, 317c), “師上堂曰: 今夜不得問話. 問話者三十拄杖. 時有僧出方禮拜, 師乃打之. 僧曰: 某甲話也未問. 和尙因什麽打某甲? 師曰: 汝是什麽處人? 曰: 新羅人. 師曰: 汝未跨船舷時, 便好與三十拄杖.”

(주6) 앞의 책(大正藏51, 318a), “師上堂曰: 問卽有過, 不問又乖. 有僧出禮拜, 師便打. 僧曰: 某甲始禮拜, 爲什麽便打? 師曰: 待汝開口, 堪作什麽?”

(주7)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 47, 503c), “師聞第二代德山垂示云: 道得也三十棒, 道不得也三十棒. 師令樂普去問: 道得爲什麽也三十棒? 待伊打汝, 接住棒送一送, 看他作麽生? 普到彼如敎而問, 德山便打, 普接住送一送, 德山便歸方丈. 普回擧似師. 師云: 我從來疑著這漢, 雖然如是, 汝還見德山麽? 普擬議, 師便打.”

(주8) 靜筠編著, 『祖堂集』 卷19(補遺編25, 661a), “因德山見僧參愛趁打. 師委得, 令侍者到德山: 打汝, 汝便接取柱杖, 以柱杖打一下. 侍者遂到德山, 皆依師指. 德山便歸丈室. 侍者卻歸擧似, 師云: 從來疑這個老漢.”

(주9)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5(大正藏51, 317c), “武陵太守薛廷望再崇德山精舍, 號古德禪院 … 堅請居之, 大闡宗風. … 總印禪師開山創院鑒卽第二世住也.”

(주10) 靜筠編著, 『祖堂集』 卷19(補遺編25, 662a) “雖承黃蘗, 常讚大愚, 至於化門, 多行喝棒.”

(주11) 앞의 책(補遺編25, 661a), “師問落浦: 從上有一人行棒, 有一人行喝, 還有親疏也無? 落浦云: 如某甲所見, 兩個總不親. 師云: 親處作摩生? 落浦遂喝, 師便打之.”

(주12) [唐]慧然集,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大正藏47, 504a), “師問僧: 有時一喝如金剛王寶劍, 有時一喝如踞地金毛師子, 有時一喝如探竿影草, 有時一喝不作一喝用, 汝作麽生會? 僧擬議, 師便喝.”

(주13) 앞의 책(大正藏47, 496c), “是日, 兩堂首座相見, 同時下喝. 僧問師: 還有賓主也無? 師云: 賓主歷然. 師云: 大衆要會臨濟賓主句, 問取堂中二首座. 便下座.” 

(주14) [明]瞿汝稷集, 『指月錄』 卷14(卍續藏83, 558a), “汝等總學我喝. 我今問汝, 有一人從東堂出, 一人從西堂出, 兩人齊喝一聲. 這裏分得賓主麽? 汝且作麽生分. 若分不得, 已後不得學老僧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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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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