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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단박에 여래의 땅을 밟는 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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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3 년 8 월 [통권 제124호]  /     /  작성일23-08-04 23:49  /   조회1,33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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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0지의 제현諸賢들이 설법하기는 여운여우如雲如雨(주1) 하여도 견성은 나곡羅縠을  

장격障隔함(주2)과 같느니라.” - 『전등록』 

 

견성했다는 이들의 경지

 

구경각 즉 여래지만이 견성이지 10지보살도 견성한 것이 아니라는 게 모든 조사스님들의 정설이다. 견성하려면 10지·등각을 넘어서야 된다고 하면 혹자는 ‘너무 높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러서는 마음을 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하기만 하면 누구나 다 되는 것이다. 몽중일여夢中一如가 되면 화엄칠지보살이고, 잠이 깊이든 상태에서도 여여한 숙면일여熟眠一如가 되면 팔지보살이라 하였다.

 

사진 1. 성철스님의 승려증 

 

요즘은 몽중일여는 고사하고 동정일여動靜一如도 되지 않고서 견성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근래에도 어떤 이가 하도 깨쳤다고 떠들어대기에 시자를 시켜 물어보게 한 일이 있었다. 미친 소견이 충천衝天해 부처고 조사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소리쳐대지만 실제로는 동정일여도 되지 않은 자였다. 몽중일여는 물론 숙면일여까지 넘어서야 견성인데 동정일여도 되지 않는 그것이 무슨 견성이겠는가?

견성했으니 인가해 달라고 찾아오는 이가 일 년에 수십 명이 넘는데 태반이 견성은커녕 몽중일여도 되지 않은 자들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견성이란 동정일여·몽중일여를 넘어 숙면일여가 되고 나서 얻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면 “아, 견성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습니까?” 하고 순순히 돌아가곤 한다.

간혹 막무가내로 고함을 치며 법담法談을 해보자고 달려드는 이들도 있다. 또 자기는 몽중일여·숙면일여를 넘어 완전한 무심경계에 들었다고 억지를 쓰는 이들도 있는데, 그건 완전 거짓말이다. 천하 사람을 다 속인다 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그렇게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간혹 숙면일여를 지나 묘각妙覺을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엔 이런 이들을 물리치지 않고 일일이 만나줬지만 아무리 일러줘 봐야 소용이 없다. 그래서 근간엔 시자를 시켜 만나보게 하는데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 도처에 가득하다. 10지보살·등각보살의 경계마저 미세망념이 남아 있는 제8마계라 하여 온 힘을 다해 배격하였는데 그 나머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수행하다 기특한 경계가 나타나고 소견이 생겼다 해서 경솔하지 말라. 불생不生은 즉 무생無生이니 미세한 번뇌망상까지 멸진한 대무심지大無心地요, 대열반은 무심지인 무여열반이니 즉 구경각이다. 그리하여 견성은 즉 무심無心이요 구경각이며 대열반인 것이다.

 

시절인연을 기다린 혜능대사

 

① “오직 무여의열반계 중에서만 모든 망심이 다 소멸하니 무심지無心地라 부른다. 여타의 제위諸位는 모든 전식轉識이 단무斷無(주3)한 고로 무심이라 가명假名하나 제8아뢰야식이 아직 멸진치 못하였으므로 유심지有心地라고 이름한다.” - 『유가석』

 

② “오조五祖가 육조六祖에게 말하였다. 만약 자심自心을 통식洞識하고 자성을 명견明見하면 곧 천인사불天人師佛(주4)이라 이름하느니라.”- 『단경』 

 

부처님 말씀과 보살들의 논에 이어 선종의 33조사들은 견성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검토해 보자. 견성하면 곧 성불이라고 일러주면 “육조스님도 16년 동안 보임하셨는데 무슨 가당치 않은 말씀입니까?” 하고 반박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단경』을 살펴보면 오조도 육조를 인가할 때, 견성하면 곧 천인사불天人師佛이라고 말씀하셨지 견성했으니 더욱 부지런히 갈고 닦아 다음에 성불하라고 말씀하진 않으셨다. 

 

사진 2. 하남 정심사 전경. 사진: 현봉 박우현.

 

육조 혜능대사가 오조 홍인대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16년 동안 숨어 산 일을 두고 “오조 회하에서 견성하고 16년 동안 보임한 것이다.” 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망설이다. 당시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은 혜능을 시기 질투한 무리들은 육조를 시해하려고까지 했었다. 그들을 피해 법을 펼 적절한 시절이 도래하기를 기다린 것이지 부족한 공부를 무르익게 하려고 숨어 지낸 것이 아니다.

 

또 혹자는 달마스님이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면벽한 일까지도 보임한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럼 달마스님이 동토로 넘어올 때는 아직 성불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것 역시 때를 만나지 못해 숨어 지낸 것이지 남은 공부가 있어 숨어 지낸 건 아니다. 여러 전적들이 증명하다시피 달마스님이 동토로 넘어오기 전에 스승으로부터 인가받고 성불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견성은 돈증이고 원증이다

 

① “견성하면 즉시에 여래가 되느니라. 불성을 명견明見한 고로 즉각에 대열반에 현주現住(주5)하느니라. 만약에 진성眞性을 돈견頓見하면 일념에 성불하느니라.” - 『종경록』

② “만약에 심성心性을 체관諦觀(주6)하면, 즉시 불성을 철견徹見한 것이며 대열반에 현주現住한 것이니 여래와 동일하니라.” - 『종경록』 

③ “제불의 경계는 광대무변하여 3세 6추의 정식情識(주7)으로서는 부지不知하고, 오직 견성하여야만 능히 요달了達하느니라.” - 『종경록』 

 

『법성게法性偈』(주8)의 ‘증지소지비여경證知所知非餘境’이란 구절에서 ‘증지證知’를 ‘모르던 이치를 요해하고 소견이 분명해지는 정도의 지혜를 얻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의상스님께서 직접 상술하시기를 증지란 부처님의 지혜, 곧 여래지如來智라고 했다. 여래지만이 법성을 알 수 있지 여래지 전에는 법성을 모른다. 의상스님께서도 증지를 불지佛智라 했으니 증지를 내용으로 하는 견성이 곧 불지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견성은 곧 증지證知·증오證悟이다.”라고 할 때 ‘증證’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재삼 밝혔다. 증에는 분증分證과 원증圓證이 있다. 3현위의 성인들은 지위점차에 따라 조금씩 깨달음을 얻어 나아가지만 부처님과 조사들은 진여법계를 단박에 완전히 깨닫는다. 따라서 견성은 곧 돈증이고 원증임을 알아야 한다.

 

해오와 증오의 차이

 

① “만약에 오상悟相(주9)을 설명하면 이종二種을 불출不出한다.(주10) 일一은 해오解悟니 성리性理와 법상法相(주11)을 명백히 요지了知함이요 이二는 증오證悟니 오심심현悟心深玄(주12)하여 궁극에 도달함을 말함이다. 만약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말하면 이는 해오이니 심성心性을 활연요지豁然了知(주13)하고 후에 점점 수학修學하여 계합契合(주14)하게 함이다.” - 『행원청량소』

② “활연豁然히 성상性相을 요지하니 곧 해오인 시오始悟(주15)가 되고, 수행하여서 현극玄極(주16)에 계합실증契合實證함은 증오證悟인 종입終入(주17)이다.” - 『청량초』

③ “오문悟門에 해오와 증오가 있다. 시초에 해오를 얻어 그 해오를 의지 수행하여 수행이 원성圓成(주18)되고 공과功果가 만료滿了(주19)하면 즉시에 증오를 얻는다.” - 『원각소초』

 

오悟에도 해오解悟와 증오證悟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돈오점수의 오는 해오이다. 얼음이 본래 물인 줄 알았어도 얼음덩어리가 여전한 것처럼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 알았어도 망상이 여전한 것이 해오이다. 증오란 얼음이 녹아 자유자재한 물이 되듯 중생의 모든 번뇌망상이 사라져 부처가 된 것을 말한다. 견성은 곧 증오를 그 내용으로 하므로 해오를 견성이라 해서는 안 된다.

 

교와 선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보조국사는 선종의 종지를 바로 이은 분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은 교가의 설이지 선종의 설은 아니다. 10신 초위에 깨달음을 얻어 3현 10지의 계위를 거쳐 성불한다는 것은 화엄사상이다. 육조 혜능대사로부터 바로 이어온 선문의 종지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이다. 한번 깨치면 3현 10지의 지위점차를 초월해 곧장 여래의 지위로 들어가는 그것이 조계선曹溪禪이다. 어찌 지위점차를 밟는 것하고 지위점차를 단박에 뛰어넘는 조사선을 같다 하겠는가? 지위점차를 내세워 단계적인 수행과 깨달음을 논한다면 그건 화엄선華嚴禪이지 육조로부터 바로 이어온 선종은 아니다. 

 

사진 3. 성철스님의 좌상이 봉안된 정심사 조사전. 사진: 현봉 박우현

 

보조국사가 육조스님을 추종하긴 했지만 그 말씀을 살펴보면 사실 화엄선이지 조사선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떻게 보조국사의 가르침이 선종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화엄선과 조사선을 구분해 설명하면 더러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술 더 떠 교와 선이 어떻게 다르냐고 덤비듯 따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엄연히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삼랑진, 대구, 김천, 역이란 역은 다 거쳐 서울 가는 것하고, 부산에서 비행기 타고 곧장 서울로 가는 것을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혹자는 ‘3현 10성의 지위를 거치는 데에도 3아승지겁의 세월을 경과한다고 했는데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단박에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며 믿으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비행기를 생각해 보라. 부산에서 타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서울이다. 아마 100년 200년 전 사람이 비행기 얘길 들었으면 미친 소리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옳니 내가 옳니 이렇다 저렇다 말씨름할 것 없이 직접 비행기를 타 보면 안다. 자기 경험과 소견에 맞지 않는다고 이런저런 의심으로 믿질 않는데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 하면 된다.

 

단박에 여래의 땅을 밟는 이런 묘방이 있음을 알고 속는 셈 치고라도 한번 해보라. 해보면 부처님 말씀이 거짓이 아니고 역대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고 해인사 노장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고불고조의 분명한 말씀을 확실히 믿고 화두를 부지런히 들어 비행기 타고 서울 가듯 자성을 확연히 깨쳐 단박에 다 같이 성불하자.

 

- 성철스님의 책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장경각, 2007) 중에서 발췌 -

 

<각주> 

(주1) 구름이 일고 빗발치듯.

(주2) “얇은 비단으로 가림”

(주3) 완전히 끊어져 없음.

(주4) ‘천인사’는 천상계와 인간계의 스승이라는 의미. 부처님을 달리 부르는 10가지 호칭 중의 하나이다.

(주5) 지금 이 자리에서 머뭄.

(주6) 자세히 살펴봄.

(주7) 번뇌가 있는 중생의 알음알이.

(주8) 신라의 의상義湘( 625~702)이 중국에 유학하며 『화엄경』을 연구하면서 그 뜻을 요약한 게송. 

(주9) 깨달음의 종류와 모습.

(주10) “두 가지 종류를 벗어나지 않는다.”

(주11) 성性은 평등하고 절대인 진리의 본체, 상相은 차별적이고 상대적인 현상의 모습. 

(주12) 깊고 깊은 진리의 경계를 마음으로 깨달음.

(주13) 의문을 완전히 깨쳐 분명하게 앎.

(주14) 진리와 정확하게 딱 들어맞아 하나가 됨.

(주15)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다가 비로소 깨달음.

(주16) 궁극의 진리.

(주17) 가장 마지막인 궁극의 경지에 깨달아 들어감.

(주18) 완전하게 모든 것을 다 이룸.

(주19) 완전하고 충분하게 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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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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