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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임제의 종풍과 법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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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11:31  /   조회2,20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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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34 | 임제종 ⑨ 

 

임제종을 창립한 임제의현은 혜능慧能으로부터 시작된 남악계南岳系의 회양懷讓-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의 법을 계승하고 있으며, 그 선사상도 명확하게 『육조단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의현의 핵심적인 법요法要라고 할 수 있는 진불무형眞佛無形·진도무체眞道無體·진법무상眞法無相은 바로 『단경』에서 제창한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를 염두에 두고 제창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현의 『임제어록』에서는 『단경』에서 강조하는 ‘자성自性’을 부정하고, 나아가 스승인 황벽이 핵심적으로 제창한 ‘일심一心’ 등을 부정하는 문구가 나타난다. 더욱이 『단경』에서 지극히 중시하는 ‘돈오頓悟’에 대해서는 그의 어록에서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월조분등선越祖分燈禪의 임제종

 

그러나 『임제어록』에서 제시하는 선사상은 ‘돈오’를 배제한다면 결코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돈오돈수頓悟頓修’를 근본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의현은 어째서 ‘자성’이라든가 ‘일심’ 등을 부정하는 표현을 하는가? 그것은 임제가 처한 당말唐末의 혼란했던 시대상황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불佛·조祖의 가르침조차도 인혹人惑으로 보는 자신의 선사상으로부터 나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임제어록』의 선사상을 엄밀하게 분석한다면 『단경』이나 마조, 황벽 등의 선사상과 절대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른바 ‘끊임없는 초월의 길[向上一路]’이라고 하는 조사선의 성격에 따라 표현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논해서 『단경』이나 마조, 황벽 등이 부처를 초월하여 인심人心으로 돌아오는 ‘초불超佛’을 이룬 조사였다고 한다면 앞에서 논한 위앙종과 임제종 이후는 다시 조사를 뛰어넘는 ‘월조越祖’를 실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명확하게 앞의 부분을 초불조사선超佛祖師禪 혹은 전기 조사선, 위앙종 이후의 오가五家는 월조분등선越祖分燈禪 혹은 후기 조사선이라고 칭명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술은 오가를 모두 소개한 이후에 종합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후대에 ‘오가’의 성쇠를 흔히 ‘임천하臨天下 조일각曹一角’이라고 칭하는데, 임제종이 중국 선종의 대부분을 장악하였고 조동종曹洞宗이 일부분을 차지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임제종이 선종의 주류를 차지했던 까닭에 후대에 임제종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많이 나타난다. 역사 속에 남은 임제종 이후의 선사들이 대부분 임제종의 종풍이나 가풍을 언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를 모두 논할 수는 없는 까닭에 가장 대표적인 임제종의 종풍과 가풍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천안목人天眼目』의 임제종풍臨濟宗風

 

우선 송대 대표적인 오가의 종풍과 제접법을 소개하고 있는 『인천안목』 권2에서는 다음과 같이 임제종의 종풍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임제종은 대기대용大機大用으로, 나롱羅籠(대나무로 만든 새장)에서 벗어나 둥지[窠臼]에서 나오기를, 호랑이가 달리듯 용이 날아가듯 하고, 유성이 흐르듯 번개가 치듯 하였다. 천관天關(하늘의 빗장)을 옮기고, 지축地軸을 돌리며, 하늘을 찌르는 의기意氣를 안고, 격외格外를 사용하여 제접提接한다. 권서卷舒(부정과 긍정)와 종금縱擒(놓아줌과 잡아들임), 살활殺活(죽임과 살림)이 모두 자재自在하였다.”(주1)

 

사진 1. 임제종의 출발지 임제사.

 

여기에서 ‘나롱’이나 ‘둥지’는 모두 인혹人惑인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주처住處를 가리키는 것인데, 임제종은 그를 과감하게 벗어나 대기대용을 실현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호랑이와 같은 용맹함으로 격외의 방법으로 학인들을 제접하였다는 평가이다. 『인천안목』에서는 이에 이어서 삼현삼요, 사빈주, 사료간, 사조용 등의 제접법을 소개하고서 마지막으로 “대체로 임제의 종풍은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임제를 알고 싶은가? 푸른 하늘에 뇌성벽력이 치고, 육지에 파도가 인다.”(주2)라고 마무리하였다.

 

임제는 백염적白拈賊

 

원대元代 천여유칙天如惟則의 『천여유칙선사어록天如惟則禪師語錄』에 실린 ‘종승요의宗乘要義’에서는 임제종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임제종은 방할棒喝이 서로 치달리고 번개가 맹렬하여 천둥이 크게 울리며, 탈인탈경奪人奪境과 조용照用이 함께 행해지고, 하나의 할喝에 삼현삼요三玄三要를 스스로 갖추고, 두 가지 주인[主]과 두 가지 손님[賓]이 있어서 나롱羅籠을 타파하고 둥지[窠窟]를 비우게 이끄니, 사람들이 백염적白拈賊이라고 칭한다.”(주3)

 

이로부터 임제종이 방할제시, 사료간, 사조용, 삼현삼요, 사빈주 등의 제접법을 종풍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앞의 『인천안목』에서 평가한 바와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서 ‘백염적’이라는 말은 『경덕전등록』 권12에 실린 임제의 전기에서 의현이 “무위진인이 무슨 마른 똥 막대 같은 것인가!”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설봉雪峰이 “임제는 백염적과 대단히 비슷하다.”(주4)라고 평가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된다.

 

사진 2. 임제의현 선사가 입적한 대명부 흥화사興化寺.

 

‘백’이란 아무런 흔적도 없다는 말이고, ‘염’은 손으로 들고 간다는 의미이니, ‘백염적’은 도둑질을 했는데 어떠한 흔적도 없으며, 심지어 도둑맞은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르는 아주 뛰어난 도둑을 의미한다. 이는 선가에서 기봉機鋒이 예리한 선사의 수법을 논할 때 자주 비유하는 용어이다. 이렇게 유칙은 임제종을 평가한 후에 “임제는 통쾌하다.”(주5)라고 결론을 내린다.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의 임제 가풍

 

청대淸代 대표적인 오가의 종풍을 논한 『오가종지찬요』에서는 임제종의 가풍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임제의 가풍은 전기대용全機大用, 방할제시棒喝齊施로 호랑이가 달리듯 용이 날아가듯 하고, 유성이 흐르듯 번개가 치듯 하였다. 하늘을 찌르는 의기를 안고 격외를 사용하여 제접한다. ‘권서’와 ‘종금’, ‘살활’이 모두 자재하였다. 정견情見을 제거하여 없애고 미세한 (망집妄執)을 벗어나게 한다. 무위진인無位眞人을 종宗으로 삼고, 혹은 방棒을, 혹은 할喝을, 혹은 불자拂子를 세워 종지를 밝힌다.”(주6)

 

이는 앞에서 언급한 『인천안목』에서 임제종을 논한 것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며, 뒷부분에 무위진인을 종으로 삼았다는 점이 추가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임제종의 종풍과 가풍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임제종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외에 역대로 임제종의 종풍에 대한 평가와 임제가 제시한 ‘임제삼구’, ‘삼현삼요’ 등 각 선설禪說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나타난다.

 

임제종의 법맥

 

그렇다면 임제의현의 법맥은 어떻게 계승되는가? 임제종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법맥이 단절됨이 없이 유지된다. 따라서 그를 모두 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이후 각 시대에 활동하는 임제종 선사들을 논해야 하므로 상세한 언급은 피하고자 한다.

 

임제의현이 법을 얻은 후에 진주鎭州(지금의 河北省 正定市) 호타하滹沱河 변상의 작은 선원인 임제원臨濟院에 주석하였기 때문에 ‘임제’라고 칭하였고, 그 후에 대명부大名府(현 河北省 邯鄲市 大名縣)의 흥화사興化寺에 주석하다가 입적하였으므로 주로 하북河北에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강남과 북방 등 다양한 지역으로 널리 퍼져 활동하였으므로 임제종이 점차 천하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덕전등록』에서는 임제의현의 법사法嗣를 22인을 거명하고 있고,(주7) 『전법정종기』에서는 24인을 들고 있다.(주8)

 

사진 3.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종고 선사.

 

그렇지만 임제종의 법맥은 모두 흥화존장興化存奘의 문하에서 이어진다. 그의 문하에 남원혜옹南院慧顒-풍혈연소風穴延沼-수산성념首山省念으로 계승되는데, 수산성념이 활동한 시기는 송대宋代로 진입하게 된다. 송대에 이르러서는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채택하고 과거를 통해 관직에 등용된 문인사대부가 주류를 이룬 시대이다. 그에 따라 문인사대부를 조사선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른바 문자선文字禪이 출현하게 되는데, 그 첫 시작이 바로 수산성념의 법을 이은 분양선소汾陽善昭이다. 선소는 ‘공안公案’에 주석을 달아 『송고백칙頌古百則』을 찬술했고, 이로부터 운문종雲門宗의 설두중현雪竇重顯과 조동종曹洞宗의 천동정각天童正覺, 투자의청投子義靑, 단하자순丹霞子淳 등이 모두 ‘공안’에 주석을 달기 시작하여 이른바 본격적인 문자선 시대를 열었다.

 

분양선소의 법을 이은 자명초원慈明楚圓의 문하에서 황룡혜남黃龍慧南과 양기방회楊岐方會가 출현하여 임제종은 황룡파黃龍派와 양기파楊岐派로 양분되어 드디어 조사선은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성립되고, 양기파는 백운수단白雲守端-오조법연五祖法演-원오극근圓悟克勤-대혜종고大慧宗杲로 계승된다. 이 가운데 원오극근은 문자선의 최고봉이라고 평가받는 『벽암록碧巖錄』을 찬술하였고, 그의 법을 이은 대혜종고大慧宗杲는 스승의 『벽암록』을 불사르고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문자선의 출현과 간화선의 제창에 이르기까지 임제종의 작용은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선의 사상사에서 문자선의 출현과 간화선의 제창은 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임제종을 건립한 의현의 중요성을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宋]智昭集, 『人天眼目』 卷2(大正藏48, 311b), “臨濟宗者, 大機大用, 脫羅籠, 出窠臼. 虎驟龍奔, 星馳電激. 轉天關, 斡地軸, 負冲天意氣, 用格外提持. 卷舒縱擒, 殺活自在.”

2) 앞의 책, “大約臨濟宗風, 不過如此. 要識臨濟麽? 靑天轟霹靂, 陸地起波濤.”

3) 善遇編, 『天如惟則禪師語錄』 卷9, ‘宗乘要義’(卍續藏70, 833b), “臨濟宗, 棒喝交馳, 雷奔電激, 奪人奪境照用並行, 或於一喝之中自具三玄三要, 二主二賓, 妙在打破羅籠摟空窠窟, 被人喚作白拈賊.”

4) [宋]道原, 『景德傳燈錄』 卷12(大正藏51, 290c), “無位眞人是什麽乾屎橛.(後雪峯聞乃曰: 臨濟大似白拈賊.)”

5) 앞의 책(卍續藏70, 833c), “臨濟痛快.”

6) 淸]性統編, 『五家宗旨纂要』 卷上(卍續藏65, 255c), “臨濟家風, 全機大用, 棒喝齊施, 虎驟龍奔, 星馳電掣. 負冲天意氣, 用格外提持. 卷舒縱擒, 殺活全在. 掃除情見, 迴脫廉纖. 以無位眞人爲宗, 或棒或喝, 或竪拂明之.” 

7)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2(大正藏51, 289b), “鎭州臨濟義玄禪師法嗣二十二人.”

8) [宋]契嵩編, 『傳法正宗記』 卷7(大正藏51, 754a), “其所出法嗣凡二十四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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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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