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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및 특별기고]
성철 법맥의 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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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21:25  /   조회76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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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성철 대종사 열반 30주기 추모 학술대회 : 제3주제

 

김광식•동국대 교수

 

한국 현대불교사에 불멸의 큰스님이 있었으니 그는 성철이었다. 그의 행보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어 생존 당시와 입적 이후에도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 필자는 그간 소홀하게 인식한 ‘성철 법맥’에 대한 문제를 설명한다. ‘성철 법맥’은 성철의 사상, 위상을 집약한 개념이다. 성철 법맥은 성철의 ‘법’이 한국 현대불교사, 조계종단사, 해인사 및 범어사 등의 ‘시공간’에서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즉 성철의 법은 누구에서 받은 것이고, 누구에게로 전해졌는가이다. 성철의 법맥은 법의 계승 및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 이와 같은 법의 전수傳受에 대한 것을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사진 1. 성철의 법맥을 발표하는 김광식 동국대 교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성철 법맥에 대한 문제는 현대불교사, 조계종단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상으로 본다. 필자는 성철의 법맥 중에서 성철이 받은 법의 문제만을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성철의 법맥은 용성–동산–성철로 계승되었다는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성철의 법맥 인식

 

불교사와 선종사에서 법맥의 인식 및 계승의 문제는 중요하다. 법맥에 대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법을 주고받은 당사자 간의 문헌인 ‘전법게문’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전법게문은 없었지만 구술과 유품의 전달을 전법으로 고려한다. 셋째, 전법을 받은 당사자의 계승의식을 고려해야 된다. 넷째, 전법의 증거는 부재하지만 스승의 사상을 실천하려는 행보를 하는 사례이다. 다섯째, 법맥과 전법은 승단의 공론화 및 역사가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이 전제에서 성철은 법맥 계승을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살핀다. 성철은 1976년, 해인사 방장 시절 『한국불교의 법맥』(해인총림)을 발간하였다. 그는 그 책의 ‘사법전등嗣法傳燈’에서 승가에서의 스승을 득도사와 사법사로 구분하면서도, 사법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법을 이은 스승의 계통인 법맥·종통을 사법전등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법맥의 전승을 법을 전해주고 받는 당사자가 ‘친승기별親承記莂(수기 및 게문 등)’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생명으로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법맥 종통은 제3자가 관여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철 법맥의 연원, 용성 법맥

 

성철의 법맥 계승에 대한 의미를 유의하면서 논지를 전개하겠다. 성철의 법맥은 존재하는가? 전해 받았다면 누구에게서 전해 받았는가의 문제이다. 필자는 용성–동산의 법맥을 성철이 받았다고 주장한다. 용성은 성철의 노스님이고, 동산은 성철의 은사이다. 이 전제에서 필자는 용성의 법맥이 동산에게 전수되었음을 제시한다. 용성(1964~1940)은 근대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이었다. 그는 3·1운동의 민족대표, 선교율의 대종장이란 행적을 갖고 있다.

 

사진 2. 용성龍城(1864∼1940) 스님.

 

용성의 상수제자인 동산의 내용은 용성의 비문(범어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용성 비문은 3·1운동의 민족대표인 오세창이 지은 것이다. 동산은 용성의 입적 직후 문집(『용성선사어록』)을 간행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오세창 비문에 나온 문도질의 은법제자 명단의 첫 번째로 동산이 나오고, 용성 1세 동산문도질의 은법제자 첫 번째에 성철이 나온다는 점이다.

 

지금부터는 동산이 용성에게 전계와 전법을 받은 사실을 제시한다. 동산은 1936년 11월 18일 범어사에서 용성의 계맥을 전수받았다. 용성은 그가 수지하였던 조선 후기의 자생적인 서상수계瑞祥受戒의 자주적인 계맥을 동산에게 전수하였다. 용성은 자신의 생명과 같은 계맥을 자신의 후계자 지정 및 유훈 전달로 동산에게 전했다. 그래서 동산은 용성 사상을 계승하여 다양한 행적을 남길 수 있었다. 또한 용성은 전법게문을 동산에게 주었다. 1939년에 전달한 그 게문에서 조계 정법을 동산에게 준다고 했다. 즉 용성의 법맥은 동산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성철의 봉암사 결사(1947~1950)는 용성의 만일참선결사회(1925~1927)의 사상, 정신을 계승하였음도 유의해야 한다.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두 결사의 공통적인 지향이었다. 이런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동산 법맥의 전승, 성철 법맥의 계보

 

성철 법맥은 용성–동산으로 이어진 것이 성철에게로 전승되었다. 여기에서는 동산 법맥이 성철로 이어졌음을 살펴보겠다.

동산 법맥에 대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1965년 5월이었다. 그 당시 동산은 1965년 4월 30일(음, 3.23)에 범어사에서 입적하였다. 범어사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조계종단 기관지인 <대한불교>에 동산문도를 충격시킨 글이 기고되었다. 1965년 5월 16일 <대한불교>의 지면에 기고되었는데, 오대산인으로 자칭한 법연의 글이다. 근대기 선불교의 중흥조인 용성에게서 받은 법맥이 동산에게서 단절되었고, 동산은 전법제자를 한 명도 두지 못하고 입적했기에, 용성의 법은 동산에게서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3. 동산東山(1890~1965) 스님.

 

그 무렵 성철은 법연의 글을 반박하는 글을 집필하고, 그를 <대한불교>에 실으려 했다. 그러나 게재되지는 않았다. 성철이 쓴 그 글은 해월정사(부산)에 보관되어 있다. 필자는 그것을 『동산대종사와 불교정화운동』(영광도서, 2007)에 수록하였고, 천제스님은 『시월록示月錄』(뜨란, 2022)에 게재하였다. 성철은 법연 글에 매서운 비판을 가하였다. 성철은 용성이 동산에게 행한 전법은 분명하고, 동산의 법력이 없다는 지적은 수긍할 수 없는 망언이라고 단정했다.

 

용성은 선의 중흥조이기에 명안종사였고, 득법을 한 동산은 용성의 상수제자라고 했다. 때문에 용성에서 동산으로 이어진 전법은 분명한 사실로 보았다. 이는 동산의 법맥이 자신에게 있음을 표방한 것이다. 이런 논리에서 성철이 동산에게 받은 전법게문의 유무가 문제가 된다. 현재 그에 관련된 직접적인 문건은 부재하다. 성철의 서술을 신뢰하면 ‘당사자의 이심전심의 밀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관련 사례를 제시한다.

 

첫째, 동산은 성철을 범어사 조실로 초빙하였다는 내용이다. 동산은 범어사에서의 그의 후계자로 성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동산 입적 2년 전인 1963년 성철이 파계사의 성전암에 주석할 때의 비사이다. 동산이 성철을 범어사 조실로 초빙, 동산의 후계자로 내정했는데 이는 전법의 뜻이다. 동산은 성철의 범어사행을 권유하는 편지를 썼는데, 이는 전법의 성격이다. 성철은 동산의 편지를 받았지만, 독자적인 수행에 더욱 전념하였다.

 

둘째, 동산의 영결식 직후 문중회의에서 용성문중 승려들이 동산의 후계자로 성철을 지목하였다. 문도들은 동산 이후의 범어사 조실로 성철을 추대하였거니와 이는 동산의 전법, 성철 위상을 공인한 것이다.

셋째, 성철 법맥의 전달자인 동산의 비문의 내용이 주목된다. 동산 비문은 1966년에 성철이 지은 문장으로, 1967년에 범어사에 세워졌다. 비문에서 성철은 동산 법맥은 비밀리에 전해졌고, 자신을 ‘(동산)문인 성철’이라고 하였다. 

 

사진 4. 1966년 성철스님이 비문을 쓴 동산대종사 사리탑. 사진: 오마이뉴스.

 

넷째, 성철의 도반인 향곡이 성철을 운봉문도로 편입시키려고 하자 그를 거부한 내용이다. 1977년 향곡은 자신의 은사인 운봉의 문집을 만들면서 성철을 운봉의 제자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성철은 이를 거부하였다.

 

다섯째, 성철이 입적 직전에 범어사의 동산 부도전에 참배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자신의 법맥 정체성에 대한 재확인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와 법맥을 확인한 것이다.

이로써 필자는 성철이 동산에게서 받은 법맥을 인식하였음을 강조한다. 전법 이것은 동산과 성철 당사자 간의 밀기이였다. 그 밀기의 뜻이 담긴 문헌이 전하는 유무에 관계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용성-동산-성철로 이어지는 법맥은 존재하였다. 성철은 그것을 인식하였고, 자부하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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