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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경을 떠나서 해석하면 마설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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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3 년 12 월 [통권 제128호]  /     /  작성일23-12-04 15:47  /   조회82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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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란? 

 

“『금강경』에 이르기를,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無法可說 是名說法]’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반야의 체[般若體]는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 수 없음[無有一物可得]이 설할 법이 없다고 함이요,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般若空寂體中]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서 알지 못할 일이 없음이 법을 설한다고 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고 하느니라.”

 

반야의 본체가 청정하여 한 물건도 없다고 함은 심청정心淸淨을 말하며,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 삼신사지三身四智가 원만히 구족하고 팔해육통八解六通이 원만구족하며 육도만행六度萬行이 구족할 뿐 아니라 항사묘용을 구족하지 않음이 없어서 모르는 것이 없는 것을 법을 설한다고 하는 것이며, 이는 심광명心光明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진 1. 청빈의 상징인 낡은 누더기와 석장을 짚고 계시는 성철스님.

 

그러면 우리 불법佛法만 구족하고 외도법은 구족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 중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는 외도법이고 불법이고 할 것 없이 전체가 원융무애해서 중도로 회향하는 것입니다. 전체가 모두 진여묘용이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세법世法도 나누지 않고 불법佛法도 나누지 않고 마구니도 세우지 않으며 부처도 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법 아님이 없고 모든 것이 진여묘용 아님이 하나도 없으니 이것을 항사묘용이라고 합니다. 거듭 강조하면 일체 분별이 모두 떨어진 필경 청정한 진공眞空을 말하여 설할 것이 없다 하고, 일체가 원만구족해서 무애자재한 묘유를 말하여 법을 설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설한 경멸과 천대의 뜻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若爲人輕賤]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과 천대를 받음으로 해서[以今世人輕賤故]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되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三毒無明所覆]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이 나지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며[本心明朗 更無亂念], 모든 악이 영원히 없어져 버림으로써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않으면[無明滅盡 亂念不生]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自然解脫]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 곧 발심할 때가 금세요 격생이 아니니라.”

 

사진 2. 1967년 비구계 수계식을 마치고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서 대중들과 함께 한 성철스님.

 

이 경문을 생멸 견해로써 피상적으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근본 뜻을 모르고 맙니다. 경멸과 천대의 내용이 다른 것임을 지적하기 위하여 대주스님이 이렇게 인용하신 것입니다.

위의 내용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는 것과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라고 하는 것은 해석이 정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함은 자기의 진여본성이 무명업식에 가려서 진여본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함이지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고 구박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무명이 진여를 덮어서 진여를 보지 못함을 말합니다.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라 하는 것은 발심 구도하여 무명을 경멸하고 천대하여 진여가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결국 앞에서는 진여자성을 무명이 경멸하고 천대하였으며, 뒤에서는 무명을 경멸하고 천대하여 진여본성이 드러난 것이니 이것을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선가禪家에서는 글을 이상하게 해석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해석해야만 경멸과 천대의 뜻을 바르게 아는 것이지 문자대로 해석하면 부처님 뜻은 모르고 맙니다. 우리가 참으로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불법을 바로 알면 이렇게 해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은 항상 “글자를 의지해서 해석하면 삼세 부처님들의 원수이다[依文解 三世佛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피상적인 글자에 구애되지 말고 법문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글자는 볼 것도 없이 뜻만 알아야 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선가에서는 “경을 떠나서 해석하면 곧 마설과 같다[離經說卽同魔說].”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만 부처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있느냐는 것도 참 곤란한 일입니다. 문자에 집착하면 삼세 부처님의 원수가 되고, 문자를 떠날 것 같으면 마설이라고 했으니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는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지 않았습니까?

 

마설이 되어도 안 될 것이고 삼세 부처님의 원수가 되어도 안 될 것이니 여기서는 이것이 모두 양변입니다. 마설도 버리고 부처님 원수도 버릴 것 같으면 중도정견이 나옵니다. 분명히 문자에 의지해서 설명하는데 문자를 떠나고 문자를 떠나서 설명하는데 분명히 문자에 의지해 있어서, 아무리 문자에 의지해서 설명하지만 조금도 문자에 구애되지 않고 아무리 문자를 떠나서 설명한다고 해도 문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참으로 무애자재하게 바른 견해를 가지고 부처님 뜻이나 조사들의 뜻을 옳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이런 자유자재한 해석을 가지지 못하면 영원토록 불법을 매몰해 버리고 그 뜻을 모르고 맙니다. 여기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경멸과 천대의 해석을 두고서 사람들의 생각과 대주스님의 생각하는 바가 틀리기 때문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내가 이런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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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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