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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온후하고 웅숭깊은 월동배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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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  작성일24-01-05 10:54  /   조회8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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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한국전통음식연구가 

 

우리는 현존하는 고조리서를 통해 옛 음식을 알아내기도 하지만 그림을 통해서도 우리 전통음식문화 또는 식재료를 유추하기도 합니다. 특히 옛 그림을 통해 당시 식문화를 알아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지요. 조선시대 풍속화와 기록화를 통해서 한식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보자면 글로 남겨진 자료보다도 훨씬 사실적인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1. 점심(김홍도, 18세기).

 

풍속화와 기록화에서는 식재료를 생산하는 일과 음식을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일상식, 식생활, 통과의례, 왕실의 연회상 등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옛 그림을 통해 알아보는 옛 음식에 관한 내용은 책에도 소개되어 있으니 흥미롭게 찾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농가월령가」 12월령 속 음식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 12월령을 보면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 쌀 만두 빚소. 깨강정 콩강정에 곶감 대추 생률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강정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엿기름을 삭히고 고아서 만든 조청과 엿입니다. 이는 설탕이나 꿀 대신 고소한 단맛을 내는 중요한 조미료가 되어 주었고, ‘묵은 설’이라고 하는 섣달그믐에 반드시 준비해 두어야 하는 식재료였던 것이지요.

19세기 말에 그려진 김준근의 <엿 만들기>는 보리를 수확해서 엿기름을 만들어 섣달그믐에 쓰일 재료를 만드는 작업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농가월령가」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듯이 우리 조상들은 가장 첫 번째로 농사일을 인생에 비유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길 당부했고, 시절음식의 소중함을 노래했습니다.

 

사진 2. 엿 만들기(김준근, 19세기).

 

MZ세대의 키워드 ‘할매니얼’

 

이와 같은 이야기를 그림책을 보듯 풍속화와 기록화를 보다 더 자세히 알아 갈 수 있어서 그 의미가 새롭습니다. 식재료의 전래 과정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식문화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그림도 많습니다. 특히 당시 부엌에서 사용되는 조리도구나 다양한 살림살이를 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특히 MZ 세대들 사이에서 생겨난 신조어 ‘할매니얼’ 문화와 함께 풍속화를 현대화하여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진 3. 밥 푸고 상 차리기(김준근, 19세기).

 

할매니얼은 할머니를 사투리로 한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의 ‘밀레니얼’을 합성한 신조어입니다. 이는 할머니들이 선호하는 옛날 음식이나 살림살이, 또는 옛날 옷을 재연출해서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를 의미하는데요. 젊은이들이 옛 그림을 통해 문화를 살피고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들이 매우 흥미롭기만 합니다. 할매니얼 열풍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운데 템플스테이에 참여해서 접하게 된 사찰음식 또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불가의 내림음식이자 유밀과 중 하나인 약과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니 반갑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 4. 두부짜기(김준근, 19세기).

 

음력 12월을 ‘섣달’이라고 부릅니다.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음력 12월을 일컫는 말로 극월極月 또는 납월臘月이라고 하는데 이 달의 풍습을 살펴보면 바빠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어찌 보면 농번기보다 더 바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섣달그믐날엔 부지깽이도 꿈틀 거린다’는 속담은 섣달그믐에는 설맞이 준비로 아주 바쁘다는 의미이고, ‘섣달이 열아홉이라도 시원치 않다’는 속담 역시 너무 바쁜 일상을 표현한 말입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거 같습니다. 

 

섣달그믐 묵은 설에 먹는 시절음식

 

섣달그믐은 ‘묵은 설’이라고 합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일가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데 이를 ‘묵은세배’라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저녁 식사 전에 하기도 하는데 이날은 만두를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했습니다. 저녁에 만둣국을 올려 차례를 지내며, 이를 만두차례饅頭茶禮, 만두차사饅頭茶祀, 국제사라고 불렀습니다.

 

사진 5. 요리에 사용할 배추(숭채).

 

한 해 동안 잘 보살펴주신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의식으로 해질 무렵에 만둣국, 동치미, 삼실과三實果, 포脯 같은 음식을 차려서 조상에게 올렸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재미난 문화 중에 만두 속에 엄지손톱만 한 작은 만두를 여러 개 집어넣어 복만두福饅頭(보만두)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차례를 지낸 후에 만둣국을 먹을 때 복만두가 들어간 그릇을 받는 사람이 신년의 복을 가져간다고 점치기도 했습니다.

 

섣달그믐을 묵은 설이라고 불릴 만큼 이달은 설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이고, 지금은 1월 1일로 설이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섣달에 먹는 제철음식을 소개하면서 만두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고 사찰에서 즐겨 먹는 채소와 식물성 단백질을 염두에 두었을 때 두부를 알차게 넣어 만든 ‘숭채만두’는 겨울철 영양식이었음에 틀림이 없고, 도토리가루와 메밀가루로 반죽해 만든 배추적은 겨울철 별미였습니다. 올해 첫 번째로 소개해 올릴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메뉴는 달고 고소한 겨울 배추와 파릇한 봄동을 활용한 음식입니다. 

 

숭채만두 만들기

 

『동의보감』에는 건강음식으로 ‘숭채만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숭채는 배추의 옛말이고, 만두소는 두부를 위주로 하여 다양한 채소들이 하모니를 이뤄 맛을 더해 줍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진말(밀가루)이 없어서 배춧잎으로 만두를 빚었던 대목이 나오기도 했었지요. 겨울이 제철인 월동배추를 활용하여 영양가도 높고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숭채만두를 함께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진 6. 숭채만두.

 

재료

월동배추, 두부, 건표고버섯(간장), 무, 묵은김치, 참기름, 소금.

 

만드는 법

1. 배춧잎은 소금물에 살짝 데치고 찬물에 헹궈 물기를 빼 줍니다.

2. 두부는 으깨어 물기를 빼 주고, 묵은지는 썰어서 물기를 빼 줍니다.

3.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 잘게 다지고 간장으로 양념하여 볶아 주세요.

4. 무는 채 썰어 소금에 절인 다음 물기를 빼고 살짝만 볶아 줍니다.

5. 위 재료를 모두 섞어 마지막 간을 맞춰 주세요.

6. 배추 한 장을 깔고 소를 넣은 뒤 말아 주세요.

7. 끓는 찜기에 올려 5분간 쪄 줍니다.

 

TIP

- 배춧잎을 넉넉히 준비해서 데친 다음 반은 만두소로 사용하면 좋습니다.

- 무를 대신해서 계절에 따라 애호박이나 미나리를 넣어도 좋습니다.

- 만두소를 흐트러짐 없이 하고자 할 때는 감자전분이나 밀가루를 활용하세요.

- 묵은김치를 넣어 주면 감칠맛이 더합니다.

- 마지막 간은 한식 간장 또는 소금으로 합니다.

- 취향에 맞게 들기름과 참기름을 적절히 사용합니다.

 

배추적 만들기

 

세월의 흐름 속에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음식이 많습니다. 먹을 것에 관해선 아쉬울 게 없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추억의 음식을 먹을 겨를이 없이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 늘 아쉽기만 합니다. 추억을 함께 먹는다는 건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정을 쌓아 가는 과정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서령의 책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는 제목부터 끌리는 책이었습니다. 

 

사진 7. 배추적.

 

그중에 작가의 어린 시절, 엄마와 할매들이 겨울밤에 해 먹던 배추적은 ‘조금씩 속이 썩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것’이었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고, 그래서 배추만 보면 그녀가 생각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배추적은 깊은 맛을 가진 음식이었다.”라고 표현합니다. 얕은 맛이 혀가 느끼는 맛이라면 깊은 맛은 위가 느끼는 맛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8. 봄동만두.

 

김서령 작가의 책에는 화려한 음식 사진 한 장 없고 치장하는 글귀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내가 글을 먹고 있는지 음식을 읽고 있는지 헛갈릴 만큼 음식을 통해 깨달은 인생 선배의 삶이 녹아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사람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을 소개하고 있는 저의 글도 수수하고 담백해지기를 고대하며 웅숭깊은 맛의 배추적을 소개합니다. 흙내음이 폴폴 나는 싱그러운 배추를 준비하고 메밀가루나 도토리가루로 반죽을 해서 두툼한 번철 위에 기름을 두르고 배추적을 구워 보겠습니다.

 

재료

배추잎, 메밀가루(도토리가루), 한식간장, 포도씨유, 들기름, 물, 양념장(청장, 고춧가루, 참기름).

 

만드는 법

1. 메밀가루나 도토리가루를 묽게 반죽해 주고 간장으로 간을 합니다.

2. 배추에 반죽을 가볍게 적셔서 기름을 두른 번철에 구워 주세요.

3. 양념장을 만들어 심심한 간을 보충해서 먹습니다.

 

TIP

- 반죽은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하시면 됩니다.(통밀·메밀·도토리가루)

- 반죽이 흐르듯 묽게 하고 재료에 얇게 묻혀 지집니다.

- 포도씨유와 들기름을 섞어서 사용하고 오래 굽지 않습니다.

- 배추잎을 살짝 찌거나 데쳐서 사용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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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한국전통음식연구가.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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