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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부터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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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4:34  /   조회1,0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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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 

는 가난타 말하나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라

窮釋子口稱貧 實是身貧道不貧.

 

‘궁색한 부처님 제자’라 하니 무엇이 궁색하다는 말인가? 돈이 없고 옷이 없고 쌀이 없고 또 무슨 물건이 없다는 말인가?

 

예전 스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함부터 먼저 배워라[學道先須學貧]’고 하였습니다. 중생이란 그 살림이 부자입니다. 8만4천 석이나 되는 온갖 번뇌가 창고마다 가득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고마다 가득 찬 번뇌를 다 쓰지 못하고 영원토록 생사윤회를 하며 해탈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답게 도를 배우려면 8만4천 석이나 되는 번뇌의 곳집을 다 비워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때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8만4천 석이나 되는 번뇌를 다 버리고 나면 참으로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텅텅 빈 창고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 1. 「증도가」를 지은 영가현각 스님.

 

이 뜻은 실제로 진공眞空을 먼저 깨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주 가난한 진공眞空, 이것은 가난한 것도 없는 데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도를 닦음에 있어서는 가난부터 먼저 배우라는 것인데 그것은 번뇌망상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생이 망상의 살림살이를 버리면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진공眞空임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참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일체 번뇌망상이 다해서 영원히 가난하면 한 물건도 거기 설 수 없어서 ‘몸은 가난하나 도는 가난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 스님들이 가난한 것을 말할 때, “작년에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마저도 없다[去年無錐地러니 今年錐也無로다].”고 하였습니다.

 

작년에는 번뇌망상을 버리고 또 버려서 송곳 세울 땅도 없을 만큼 모든 망상이 끊어져 가난해졌지만 끊어졌다는 그놈, 송곳이라는 물건은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 송곳마저도 다 버려서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상人相과 아상我相이 끊어지고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절대인 진여묘용眞如妙用이 현발顯發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정각正覺이라 하고 중도中道라 합니다.

 

사진 2. 성철스님의 『신심명 증도가강설』(장경각, 2001) 표지.

 

그러면 우리가 마음속에 있는 번뇌망상만 버리면 그만이지 금은보화는 도 닦는 이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하고 혹 이렇게도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도 참 좋은 말이지만 금은보화라는 패물을 지니고 있으면 재물에 대한 욕심이 늘 붙어 있어서 마음속의 탐심을 버릴 수 없게 됩니다. 내 마음속의 탐심을 버리려면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금은보화 같은 물건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당唐나라의 방거사龐居士는 자기의 그 많은 모든 재산을 배에 싣고 가서 동정호洞庭湖에 버리고는 대조리를 만들어서 장에 갖다 팔아 나날의 생계를 이어 갔다고 합니다.

 

사진 3. 방온龐蘊(? ~ 808) 거사. 당나라 때 호남성湖南省 형양衡陽 사람이다.

 

이와 같이 밖으로는 모든 물질까지도 다 버리는 동시에 안으로는 번뇌망상을 다 버리게 되면 안팎이 함께 가난하게 됩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가난뱅이가 된다면 모든 것이 공해서 거기에는 항사묘용이 현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이 곧 견성이며 성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안팎으로 가난부터 먼저 배워야 합니다.

 

가난한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도를 얻은즉 마음에 무가보를 감추었도다

貧則身常披縷褐 道則心藏無價珍

 

‘가난한즉 몸에 누더기를 걸친다’고 하는 것은 안팎이 함께 가난함을 말합니다. 안으로 번뇌망상이 다 떨어져서 탐심과 구하는 마음이 없어지니 밖으로야 무슨 금은보화가 필요하겠습니까?

안과 밖이 함께 가난하면 어떻게 되느냐? 

 

안과 밖이 함께 가난해서 철두철미하게 진공眞空을 성취하면 거기서 항사묘용의 다 쓸 수 없는 보고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도를 얻은즉 마음에 값할 수 없는 보배’를 지니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아무리 크고 넓다 하지만 설사 그것을 억천만 개를 합한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진장의 ‘값할 수 없는 보배’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들 마음속에 천상천하에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보배를 가지고 있으니만큼 하루빨리 개척해서 그것을 마음대로 써야 할 것입니다.

 

사진 4. 가야산 해인사 설경. 사진 박우현.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난부터 배워서 밖으로는 물질을 버리고 안으로는 번뇌망상을 버려야 합니다. 만약 욕심을 부려서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말로는 동으로 간다고 하면서 몸은 서쪽으로 가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자는 ‘도를 배우려면 먼저 가난부터 배워야 한다’는 고불고조古佛古祖의 말씀을 철칙으로 삼아 공부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수행하여 안팎이 가난해진다면 참으로 무진장의 값할 수 없는 보배를 얻어서 천하에 둘도 없는 큰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꼭 믿고 명심하여 대중들은 열심히 정진합시다.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중생 이익 하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無價珍用無盡 利物應時終不悋

 

이것은 우리 진여자성의 쓰임[用]을 말합니다. 일체 만물을 이롭게 하고 일체시一切時에 응하여 쓰더라도 끝내 아끼는 것이 없어 영원토록 다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가?

 

삼신·사지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팔해탈·육신통은 마음 땅의 인印이로다

三身四智體中圓 八解六通 心地印

 

삼신三身이란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 또는 화신化身을 말하고, 사지四智란 대원경지大圓鏡智·평등성지平等性智·성소작지成所作智·묘관찰지妙觀察智를 말합니다.

 

삼신三身과 사지四智를 성취하면 이를 부처라 하는데, 우리가 마니주를 완전히 알아서 자성을 바로 깨치면 삼신·사지가 원만구족해서 다시는 더하려야 더할 것이 없고 덜려야 덜 것이 없는 구경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값할 수 없는 보배는 써도 다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 어떤 사람은 ‘깨쳤다고 해서 삼신·사지가 그대로 원만구족할 수 있나’ 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증지證智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깨친 것, 곧 돈오頓悟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돈오頓悟를 한 사람은 삼신·사지가 원만구족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좋은 마니보주를 사람사람이 다 가지고 있건만 이것을 모르고 깨쳐서 쓰려고 하지 않으니 이보다 한심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진 5. 해인사 백련암의 설경. 사진 박우현.

 

삼신·사지가 원만구족하면 팔해탈과 육신통이 그 가운데 다 갖추어 있다는 것입니다. 팔해탈은 진여해탈의 경계를 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인데 각각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여의 대용인 줄 알면 됩니다. 육신통六神通이란 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신족통神足通·숙명통宿命通·타심통他心通·누진통漏盡通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마음에 체득을 해야 아는 것이지 말로만 해서는 모르는 것이니 밥 이야기만 아무리 한들 배고픔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항상 ‘이것이 무엇인고’를 부지런히 깨쳐서 자성을 하루빨리 깨쳐야 합니다. 금강산이 좋다고 아무리 말해 주어도 ‘어디 그런 좋은 산이 있을라고! 거짓말이다’ 하면서 가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금강산을 보지 못하고 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삼신·사지와 팔해탈·육신통이 구족한, 값할 수 없이 귀한 마니주가 사람사람에게 다 있어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이 모두 다 개발하여 다함이 없이 썼는데도, 이것을 믿지 않고 거짓말이라고 의심하다가는 영원토록 성불하지 못하고 미래겁이 다하도록 중생 그대로 남게 됩니다.

 

- 성철스님의 『신심명 증도가 강설』(장경각, 2001)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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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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