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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론학 강설]
고구려 승랑 사상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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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  2019 년 1 월 [통권 제6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84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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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1. 삼론학三論學은 구마라집(Kumārajīva. 344~413)이 장안에 도착해 5세기 초엽 한역漢譯한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 세 논서의 교의敎義를 중심으로 성립된 중국불교 초기의 대승학파이며, 이 삼론에 『대지도론大智度論』을 더하여 사론四論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론』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로 씌여진 범본梵本을 409년(弘始11년)에 한역하였으며, 인도불교 대승학파인 중관학파中觀學派의 시조 나가르쥬나(Nāgārjuna. 용수龍樹. 약150~250)의 대표적 저술이다. 구마라집이 한역한 『중론』은 약 450게송과 그 게송을 해석한 장행석長行釋으로 되어 있는데, 게송의 원래 작자는 용수이고, 장행석은 바라문 출신 학자 청목(靑目. piṅgala)이 해석한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중론』 주석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중국 한국 일본의 동양 삼국에서 말하는 『중론』은 이것을 의미한다.

 


 

『중론』은 반야경般若經에서 설하는 공(空. sūnya)의 사상을 교리적, 논리적으로 해명한 최초의 대승불교 논서論書이다. 사부대중이 염송하는 유명한 『반야심경』에도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는 말이 등장하지만, 사실 이 경전 어디에도 공의 의미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실은 방대한 분량의 다른 반야경에서도 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면 반야경의 공사상에 대하여 교리적 설명을 시도한 『중론』이 왜 인도뿐 아니라 중국에서 주목을 받았는지 실감할 것이다. 이 『중론』이 등장으로 말미암아 향후 천여 년간 지속된 인도 중관학파의 근간이 마련되었으며, 삼론학의 주요 교의들도 대부분 이 논서에 의거하여 촉발되었다.

 

『백론』은 용수의 제자 제바(提婆. Arya-deva)의 저작으로 404년에 한역되었다. 그 내용은 『중론』의 공사상에 근거하여 불교 내부에 대한 비판보다, 인도 고대 철학 가운데 논리학을 주장한 니야야학파[정리파正理派], 정신적인 푸루샤와 물질적인 프라크리티의 이원론二元論을 논의한 상키야학파[수론파數論派], 현상의 세계를 실재론적으로 논의한 바이세시카학파[승론파勝論派] 같은 다른 학파의 주장에 대한 논파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파사破邪적 측면에 의하여 삼론학의 소의 논서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십이문론』은 『중론』의 저자 용수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 내용은 『중론』의 주제를 12부문으로 선출하여 비교적 평이하게 서술한 논서이다. 『중론』과 같이 409년 한역되었다. 『대지도론』은 2만 5천송 반야경인 『대품반야경』의 주석서로서, 『십이문론』과 마찬가지로 용수의 저술로서, 402년 번역을 시작하여 405년에 말기에 완료하였다.

 

이상의 삼론 · 사론은 현재 한역만 남아 있고, 산스크리트 원본도 발견되지 않고, 티베트역도 없다. 다만 『중론』의 경우 청목이 해석한 장행석을 제외한 본문의 게송 대부분이 현존하는 유일한 범본 주석서 찬드라키르티(Candrakīrti. 月稱)의 『명구론(明句論. Prasanna-padā)』에서 동일하게 확인되고 있어, 구마라집역 『중론』의 게송은 본래 용수의 저작임이 파악되었다. 『백론』의 범본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티베트역으로 전해지는 제바의 저서 『사백론(四百論. Catuḥ-śataka)』가 한역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십이문론』과 『대지도론』은 순수 한역뿐이라, 연구자에 따라 용수의 진찬이라 보기도 하고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 삼국은 이들 삼론과 사론에 근거하여 용수의 중관사상과 반야사상을 연구하여 삼론학을 수립하였다는 것이다.

 

중국 및 한국에서 성립된 십 수가지 불교의 학파 또는 종파를 바라보는 시각은 근현대 이후 많이 바뀌고 있다. 인도에서 대승불교로는 중관학中觀學이 최초로 성립되었고, 그 이후 유식학唯識學이 보강되었으며, 나중에 밀교密敎가 등장한 정도에 불과하다. 선종 · 정토종 · 화엄종 · 천태종 같은 것은 인도에서 성립된 적이 없고, 모두 후대에 중국에서 성립되고, 한국과 일본에 전파된 종파들이다. 물론 삼론학도 마찬가지다. 중국불교만 놓고 교학적으로 논하자면 삼론학은 천태종天台宗이나 화엄종華嚴宗의 원융무애한 교학에 저만치 밀려나 있고, 실천 수행적으로 말하자면 선종禪宗의 투철한 가풍 앞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삼론학은 중국의 여타의 학파에서 볼 수 없는 중요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삼론학은 인도 초기 중관학파의 세 가지 네 가지 논서와 『대품반야경』 등을 중심 경론으로 삼아 대승의 공사상과 반야사상을 연찬한 점에서, 인도의 중관학을 계승하여 중국적으로 전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 중국 장안에 도착한 구자국龜玆國 출신 구마라집은 삼론 사론을 한역하였고, 삼론학의 소의 경전에 해당하는 『소품반야경』과 『대품반야경』, 그리고 『금강경』도 역출하였다. 그 전에도 다른 역경승에 의하여 이 계통의 반야경들이 한역되었지만, 번역문이 충실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중국인들의 반야와 공사상에 대한 견해가 분분하여, 위진남북조 시대에 노장사상 같은 것을 차용하여 이해하는 이른 바 격의불교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많은 학자들이 구마라집의 삼론 번역에 힘입어 그러한 병폐를 고치고 바르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토로하였으니, 그 공적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새로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구마라집이 삼론과 반야경을 한역하자, 그를 추종한 수 많은 문도들 중에 삼론을 학습하고 저술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후대에 삼론학자 길장吉藏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구마라집의 3천명 문도 중애 (가장 뛰어나) 입실入室한 사람은 오직 8명으로, 그 중에 승예僧叡가 수령이었다(주1)고 하였는데, 8명 가운데 연장자인 승예는 『중론』과 『십이문론』 등의 서문을 지었고, 연소자인 승조는 유명한 『조론肇論』을 저술하였으며, 담영曇影은 전하지 않지만 『중론소中論疏』 2권을 저술하였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중론』에 주론註論한 이들이 70가家에 달했다고(주2) 한다. 일찍이 중국에서 『중론』에 대한 열기가 그토록 뜨거웠다는데, 현재 전하는 주석서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니, 그 간의 사연을 어찌 알겠는가.

 

3. 중국 삼론학파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다 보면, 여기에 수반되는 곤란한 사항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중국불교 초반기에 형성된 삼론학파의 역사가 오래되어 수많은 삼론학자들의 생애를 추적하기도 어렵고, 중국은 물론 한국 삼국시대의 여러 삼론학자들의 저술이 거의 다 없어지고 소수만 남아 있어 학설의 전모를 밝혀내기도 곤란하다. 다행히 삼론학 문헌이 다수 전해지는 일본에서 먼저 삼론학파의 계보설이 제기되었다, 초조 구마라집부터 수당 시대에 활약한 길장까지 7대설 혹은 8대설을 제시한 것으로서, 서너 가지 계보설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학파의 역사가 유구하고 중간의 계보가 혼란하여, 어느 것도 완벽하다고 보기 곤란한 점들이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럼에도 중국 삼론학의 계보를 더듬어보는 데에 필요한 사항이라, 그 대체적인 요점을 소개하여 장래 더 온전한 계보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남아 있는 불충분한 자료 속에서 학파의 속성을 구분짓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구마라집 문하 삼론학 연구자들의 학설을 고古삼론학이라 부르고, 이후에 등장한 승랑僧朗을 시조로 삼아 길장에게 전해진 학설을 신新삼론학이라 명명한 것은 근래 일본 학자들의 한 가지 공로이다. 고삼론학자들의 삼론학 학습과 주석서 저술은 문헌의 기록과 인용문이 더러 남아있어 의심할 바가 없고, 승랑 이후 신삼론학자들의 삼론 연구와 강남 지역에서 활약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4. 삼론학의 교의敎義를 추구하다보면, 이 학파의 계보 못지않게 지난至難한 과제로 다가온다. 어떤 삼론학의 교의나 학설의 전모를 설명하는 것이 그렇게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아 있는 저술이라고는 길장의 삼론학 관계 문헌이 거의 전부이다. 저술 분량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삼론학 교의들의 대부분은 길장 자신이 창안하여 설한 것이 아니라, 승랑 이후 이전 스승들로부터 전수받아 듣고 배운 것을 그대로 전하거나, 혹은 그것을 길장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다른 학파의 유명 학승들의 저술과 많이 다르다.

우선 그것이 고삼론학으로부터 유래한 경우, 대개 ‘관하구설關河舊說’ 같은 명칭 하에 인용하는데, 그게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학자들에게 지명地名의 혼란을 불러왔다. 지금은 일본 학자들과 중국의 탕용동湯用彤(1893~ 1964) 등의 해명을 통해 구마라집 문하의 팔준八俊 등의 옛 삼론학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고 본다.

 

그 다음 신삼론학으로부터 전수받은 경우, ‘섭령상승攝嶺相承’ ‘흥황상승興皇相承’이라는 명칭 하에 인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신삼론학은 섭산攝山 서하사捿霞寺의 승랑僧朗(남조 송나라 말기~제나라 초기)→섭산 지관사止觀寺의 승전僧詮→경도京都 흥황사興皇寺의 법랑法朗(507~581)→가상사嘉祥寺의 길장(549~623)으로 계승되었다. 그 때문에 승랑 이후의 스승들로부터 전수받은 경우, ‘섭령흥황상승’이라는 명칭 하에 인용한 것이다. 그 중에는 분명하게 구별되어 이미 해결된 교의도 있지만, 세 스승 가운데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5. 그런데 여기에 미싱 링크가 발생하여 삼론 연구에 애로사항이 되고 있다. 고삼론학자와 신삼론학자의 연결이 명료하게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흐르던 한 줄기 강물이 일관되지 못하여 이리 갈라지고 저리 흘러가면, 그 주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승랑이 신삼론학의 시조라는 것까지 일본학자들은 규명하였지만, 승랑이 구마라집 문도들 중에 누구에게 수학했다는 것인지, 종래의 삼론학 연구자들은 길장의 저술에 나오는 대답만으로는 확신을 갖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삼론학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신삼론학의 시조가 고구려 출신 승랑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이도 일본학자였지만, 그 승랑이 은둔자 주옹周顒을 가르쳤다는 길장의 기록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승랑대사가 은둔자 주옹에게 배웠을 것이라고 의심한 일본학자들도 있었다. 일부의 중국학자도 승랑의 구마라집 문하의 삼론 수학을 의심하였다. 고구려 출신 승랑이 신삼론학의 시조로 인정되고 나자 다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단 말인가?

 

그러한 견해가 무리한 것임을 처음으로 제기하여 반박한 것이 바로 필자筆者였고, 중간의 초록 발표를 제외하고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 지도 벌써 십 수년이 지났다. 두 번의 발표 때 논평자 2명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는데, 이후 국내를 제외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더 들어보지는 못했다. 승랑의 사승師承문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6. 그렇게 승랑대사의 사승문제가 일단락 되면 다음 문제가 발생한다. 승랑이 제시한 삼론 교의는 어떠한 것이 있었으며, 그것은 승랑이 고삼론학자에게 수학한 것인가, 아니면 승랑이 비로소 창안한 것인가? 한국의 삼국시대 신라의 원효元曉를 비롯한 여러 고승들의 삼론학 관련 저술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지금, 고구려 승랑의 삼론학설 몇 가지만이라도 접촉한다면 적지 않이 위로 되지 않을까. 고故 김인덕 교수는 먼저 승랑학설에 대한 원문의 한문 자료를 길장의 여러 저술에서 발췌하여 발표하였고, 나중에 승랑의 삼론학설에 대한 논문을 따로 발표하였다.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제자였던 내 입장에서 승랑대사의 학설을 다시 검토하는 기회가 오리라곤 짐작 못했다.

 

7. 수나라와 당나라 초기에 활약한 가상嘉祥 대사 길장은 삼론학을 대성하였다. 가상사嘉祥寺를 거쳐 나중에 수나라 장안 일엄사日嚴寺에 거주하며 삼론학을 강습하고 저술하였다. 현존하는 길장의 저술은 24부部 112권. 고일서古逸書는 약11종이며, 이 가운데 순수 삼론학 관련 저술만도 6부 25권이 남아 있는데, 삼론학 개론서격인 『삼론현의三論玄義』는 1부 1권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연구 발표된 국내외의 논저들을 합해보면, 스승들로부터 전수받아 주장한 길장의 삼론교의에는 대략 일치하는 부분들이 나타난다. 학설로서 종결된 것도 있고, 더 궁리할 것도 남아 있지만, 우선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정의의 깃발 아래 다른 종파를 척파한 것을 제외하더라도, 길 은 삼론학설로서 무의무득정관無依無得正觀에 투철하여, 자파自派의 어교이체於敎二諦, 약교이체約敎二諦를 제기하고, 사종석의四種釋義를 통하여 사 론의 대의를 표방하고, 팔부중도八不中道에 대한 삼종방언三種方言을 주장하였으며, 이장삼륜二藏三輪에 입각하여 당시의 오시교판五時敎判을 비판하였다.

 

만약 삼론학이 성립되지 않았다면, 중국의 다른 많은 학파나 종파의 형태와 내용이 지금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삼론학파에서 『중론』 등에 근거하여 반야와 공사상을 나름대로 정립하지 못했다면, 선종 · 화엄종 · 천태종 같은 다른 종파들의 종지나 교학 같은 것이 원활하게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논구하여 해명하기 어려운 분야지만, 중요성은 그에 반비례하여 더욱 증대될 법하다. 연구 발표된 것은 적고, 풀어야 할 것은 많다.

 

주)

(주1) 길장吉藏, 『중관론소中觀論疏』 제1권본本, “門徒三千, 入室唯八, 睿爲首領, 老則融睿, 少則生肇.” (T42-p1a)

(주2) 길장吉藏, 『중간론소中觀論疏』 제1권서소序疏, “此出注論者, 非復一師. 影公云凡數十家, 河西云 

凡七十家.”(T42-p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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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동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용수龍樹의 화엄사상華嚴思想 연구」로 박사 학위 취득. 동국대 불교학과 강사 역임. 동국대에서 『한국불교전서』 제13권과 제14권(『유가사지론기』) 공동 교정 편찬. 고려대장경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돈황불교문헌 공동 연구. 번역서로 『삼론현의三論玄義』와 고려대장경의 한글 번역본 몇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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