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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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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4 년 7 월 [통권 제135호]  /     /  작성일24-07-05 09:41  /   조회1,28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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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7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약 100년이 지나 불교 공동체 안에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크게 분류하면 전통을 고수하는 상좌부上座部(Theravāda)와 전통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중부大衆部(Mahāsańghika)의 분열이었습니다. 그 이후 상좌부도 분열은 계속되어 18개 부파로 나뉘어지고 대중부도 몇 분파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원전 1세기경 인도 서북부를 중심으로 대승불교大乘佛敎(Mahāyāna Buddhism)가 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살 사상의 출현

 

대승불교는 초기 부파 불교의 소수 엘리트 중심적 성향에 반대하는 진보적 승려들이 일으킨 일종의 혁신 운동의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대승’이라는 말은 여러 사람들을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실어나르는 ‘큰 수레’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상좌불교를 상대적으로 작은 수레라는 뜻으로 ‘소승小乘(Hīnayāna)’이라 불렀는데, 여기에는 경멸의 의미가 들어있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 1.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아름다운 관음보살상. 사진: 서재영.

 

대승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보살菩薩(bodhisattva)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승이라는 말과 함께 ‘보살승菩薩乘’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대승불교 신자들은 상좌불교가 자신들의 개인적 구원에만 관심이 있어서 개인적 수행을 통해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데 반하여 자기들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구원받는 보편적 구원을 위해 희생하는 ‘보살’이 되는 것을 종교적 이상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보살은 열반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지만 중생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는 자비慈悲(karuņā)의 마음 때문에 나보다 남들을 모두 피안으로 보내려고 자원해서 이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분들과 고통을 함께하며 그들을 돕기로 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철처히 ‘남을 위한 존재(being for others)’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보살은 남들을 부처로 만드는 일을 하는 붓다 메이커(Buddha-makers)이기 때문에 부처보다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보살의 길

 

누구나 보살이 되려면 보살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대승불교 나름대로의 새로운 구원론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나타난 사제팔정도를 시대의 요구에 맞도록 정교하게 확장한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게 여섯 단계입니다.

 

사진 2. 아미타여래삼존도. 고려(14C). 리움미술관 소장. 사진: 서재영.

 

첫째, 부처님이나 다른 보살이나 친구에게서 교훈을 듣는 것입니다. 일종의 마음에 선한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둘째, 깨우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 이른바 ‘발보리심發菩提心(bodhicitta-upāda)’입니다. 위로는 자신의 깨우침을 구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교화함[上求菩提 下化衆生]을 목표로 합니다. 

 

셋째, 서원誓願(pranņdhānā)입니다. 일종의 맹세나 결의決意 같은 것으로 앞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보살에 따라 12서원, 18서원 등이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서원은 법장法藏(Dharmakara)이라는 비구가 세운 48서원, 그중에서도 자기가 서방 정토의 부처가 되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이들은 모두 서방 극락 정토로 옮겨주겠다고 한 제18 서원이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법장 비구는 후에 아미타불이 되었기에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을 믿는 사람들은 ‘나무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입니다.

 

넷째, 자기의 소원을 앞세우고 수많은 부처님 중 어느 한 분에게 그 서원을 공표하고 그 부처에게서 언제 부처가 될 것이라는 확약을 받는 것입니다.

 

다섯째, 위의 단계를 거친 다음에는 여섯 가지, 혹은 열 가지 바라밀波羅密(pāramitā)이라는 실천사항을 밟아갑니다. 그것은 ① 보시, ② 지계, ③ 인욕, ④ 정진, ⑤ 선정, ⑥ 지혜 등이 육바라밀입니다. 후에 여기에 ⑦ 방편, ⑧ 원願, ⑨ 역力, ⑩ 지智를 덧붙여 십바라밀이 되었습니다. 『화엄경』에 따르면 보살도의 전 과정이 모두 52계단이라고 합니다. 제41 단계에서 제50 단계를 십지十地라고 하는데, 환희지歡喜地에서 시작하여 법운지法雲地로 끝이 납니다.

 

사진 3. 12개의 팔을 가진 관세음보살, 인도 나란다고고박물관소장. 사진: 유근자.

 

이 모든 단계를 거치는 데는 삼아승지겁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는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이런 식의 숫자는 달력으로 계산하는 연대기적 시간이 아니라 보살도에 이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상징적 시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불교에 오면 이런 보살의 길이 한 생애 안에, 심지어는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이런 긴 여정을 완성한 특별한 보살들이 있는데, 이들을 ‘마하살摩訶薩(Mahāsattva)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우주적 보살’로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보살피고 도와줄 목적으로 열한 개의 얼굴과 천 개의 손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십일면 천수 관세음보살(Avalokitśvara)과 말법 시대가 되면 도솔천에서 지상으로 오길 기다리는 자애의 미륵보살(Maitreya), 지옥에서 고생 당하는 이들을 위해 지옥까지도 가는 지장보살(Kșitigarbha), 지혜 제일의 문수보살(Maňjuśri), 흰 코끼리를 탄 모양으로 나타나는 보현보살(Samantabhadra) 등입니다.

 

남을 위한 존재

 

보살이 ‘남을 위한 존재’라고 하니 독일 신학자로서 히틀러 암살 모의에 참가했다가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가 생각납니다. 본회퍼는 예수님의 가장 큰 특징을 ‘남을 위한 존재’로 규정했습니다. 최근에 타계한 길희성 교수도 『보살 예수』라는 책을 통해 보살 정신에 가장 가까운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서울기독대학교 손원영 교수는 2018년 열린선원의 크리스마스 기념법회에서 예수님이 불교적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님으로 볼 수 있다는 설법을 하여 이단 시비에 휘말린 일이 있었습니다.

 

사진 4. 고 길희승 교수(1943〜2023). 사진: 삼도학사.

 

무엇보다 보살정신을 훌륭하게 구현한 그리스도인 중 한 분은 마더 테레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더 테레사는 알바니아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뒤로 하고 인도 콜카타 빈민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쳐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분입니다. 이분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이 있습니다. 이분이 지금 천국에 있을까 혹은 지옥에 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평소 그렇게 선한 일을 한 분이니 당연히 천국에 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하기 쉬우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평소 고생당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천한 분으로 천국에 가는 것을 마다하고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지옥행을 자원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농담 비슷한 말이기는 하지만 뼈있는 농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신앙의 단계

 

‘보살의 길’과 관련하여 흥미 있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전통 중 중세 신비주의자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신앙의 발전 단계를 ‘신비의 길(Mystical Path)’이라고 하고,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구분합니다. ① 자기를 자각하는 단계(self-awareness), ② 자기의 모자람을 자각하고 자기를 정화하는 단계(prification), ③ 내적 빛을 보는 단계(illumination), ④ 절대자와 합일하는 단계(unity)입니다.

 

사진 5. 마더 테레사(1910〜1997) 수녀.

 

중국 도가道家 사상가 장자莊子도 득도의 단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① 세상을 잊음, ② 사물을 잊음, ③ 삶을 잊음, ④ 아침 햇살 같은 밝음을 얻음, ⑤ ‘하나’를 봄, ⑥ 과거·현재가 없는 무시간을 경험함, ⑦ 죽음도 없고 삶도 없는 경지에 들어감입니다. 힌두교 전통의 요가 학파의 『요가경』에도 궁극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덟 가지의 단계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에서 자라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종교사에서 거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이른바 ‘처음 믿음’은 덜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계속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의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고도 하고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기를(살후1:3)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사진 6. 종교심리학자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 1940~2015).

 

현대 종교심리학자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 1940~2015)도 신앙의 발달 과정을 관찰한 결과 신앙에 여섯 단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1단계에서부터 제3단계는 기본적으로 문자주의에 얽매인 상태이고 제4단계부터 불립문자를 경험하고 제6단계에 이르러 성인으로 완성된다고 했습니다.(주1)

 

나가면서

 

보살 사상은 종교에서 말하는 두 가지 최고의 이상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을 위한 순수한 희생적 사랑이 무엇인가 가르쳐주고, 둘째는 종교적 구도의 길이 힘들다 하더라고 그 이상을 꾸준히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보살 정신을 가진 진정한 종교인들, 적어도 그 이상을 추구할 마음이라도 있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답고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각주>

(주1) 여기에 대해서는 졸저 『예수는 없다』 (현암사, 2016 개정판), 60~6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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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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