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스스로 곡기를 끊는 단식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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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2:11 / 조회287회 / 댓글0건본문
다소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존엄(안락)사의 문제는 이제 이론적으로만 ‘말할 때’가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모색할 때’가 되었다는 개인적 입장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다. 얼마 전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국민의 84%가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자발적 죽음인 ‘존엄(안락)사’에 찬성한다고 대답했다.(주1)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인식의 흐름도 그런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의사조력사(physician assisted death, PAD)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존엄(안락)사(euthanasia)를 실정법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그만큼 인간의 생명을 둘러싼 도덕적 논쟁은 본성상 어떤 공동체에서도 쉽게 합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안규백 의원이 2022년 6월 ‘의사조력자살 및 안락사’란 이름으로 발의했다가 종교계와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폐기됐던 법안을 수정, 보완하여 2024년 7월 5일에 다시 ‘조력존엄사 제정법(의안번호 제1412호)’을 발의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 입법 활동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전통적으로 가족 간의 유대감을 중시하는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로 존엄(안락)사법이 발효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곡기穀氣를 끊었다는 말의 의미
돌이켜 보면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 중에 누구네 집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가 “곡기를 끊으셨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요즘의 ‘자발적(또는 비자발적)이면서 적극적(또는 소극적)인 존엄(안락)사’에 딱 들어맞는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그분들이 온전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스스로 먹고 마실 것을 거부했다면 ‘자발적이면서 적극적인’ 존엄(안락)사를 선택했던 것이고, 이미 임종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자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섬망을 겪는 단계) 자신의 힘으로 먹고 마실 수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비자발적이면서 소극적인’ 존엄(안락)사를 수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는 말이다.

당시 이러한 모습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 학습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生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강제로 유지, 통제당하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인은 최근 생명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는 ‘자율성(autonomy)’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곡기를 끊는다.”는 것과 같은 우리의 전통적인 죽음 문화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심리적 거부감이 덜한 존엄(안락)사 유형이 이른바 ‘단식 존엄사(voluntary stopping of eating and drinking, VSED)’(주2)이다.
그것은 존엄(안락)사의 일종이면서도 의료진의 개입이나 약물의 도움 없이 말기 환자가 스스로 음식물의 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원하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환자의 선택은 말 그대로 자율성이 전제된 ‘의식적인 선택(conscious choice)’이 된다. 이 단식 존엄사 역시 다른 존엄(안락)사와 마찬가지로 사회학적, 의학적, 윤리학적, 법률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허용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주3) 개인적으로는 단식 존엄사가 정서적으로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향후 불교적 존엄(안락)사의 기본모델로 수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이나교의 단식 존엄사 살레카나
단식 존엄사의 종교적 원형은 자이나교의 살레카나(sallekhaṇ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살레카나는 자아나교 신자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삶의 마지막 단계를 스승의 허락하에 명상과 단식으로 마무리하는 의식을 말한다. 다만 살레카나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율적 결정과 스승의 객관적 판단에 따른 임종 수행의 하나일 뿐 종교적 의무 사항은 결코 아니다.(주4) 자이나교도들은 이런 형태의 죽음을 최상의 아름다운 죽음으로 생각하며 신성한 종교 행위의 하나로 간주해 왔다. 불교의 역사에서 몇몇 고승들이 고요한 선정에 든 채 좌탈입망坐脫立亡하는 사례와 사상적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이나교의 살레카나는 무엇보다도 생명을 파기하기 위한 의도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살레카나는 영혼의 더 나은 환생과 해탈을 추구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실제로 살레카나의 서원자로 낙점받은 사람들은 삶과 죽음 양자 모두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요구받는다. 이 지점에서 일반적인 단식 존엄사와 자이나교의 살레카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종교성의 유무에 따라 단식 존엄사와 살레카나는 같은 행위를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함축하게 된다는 말이다.
살레카나의 서약에 따르면, 서원자가 빨리 죽고 싶은 욕망으로 이를 행하는 것은 살레카나 서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죽음은 살레카나의 직접적인 목적이 아니며, 서원자는 살레카나를 통해 몸과 마음의 정화를 도모하는 가운데 죽음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바르게 통과하고자 할 뿐이다.(주5) 그렇다면 살레카나는 죽음을 촉진하는 단식 존엄사와 달리 영적인 고양과 함께 더 높은 단계의 윤회와 완전한 깨달음을 지향하는 자이나교 고유의 종교의례로 봐야 할 것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자이나교 이민자인 니틴 샤(Nitin Shah)는 살레카나야말로 오늘날 기계음만 요란한 병실에서 질 낮은 죽음을 맞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바람직한 임종 과정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대안적 존엄(안락)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살레카나가 웰다잉(well- dying)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많은 말기 환자들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비효율적이면서도 값비싼 치료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살레카나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존엄한 죽음의 한 유형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주6) 양영순도 이 살레카나야말로 오늘날 거의 예외 없이 어둡고 침울한 죽음을 맞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밝고 아름답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주7)
비류잉畢柳鶯의 선택과 불교적 존엄(안락)사의 제안
타이완의 저명한 재활의학 전문의이자 종합병원 교수인 비류잉은 『단식 존엄사: 의사 딸이 동행한 엄마의 죽음』(주8)이란 책을 통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는 ‘단식 존엄사’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비류잉은 소뇌실조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친정 어머니의 단식 존엄사를 구체적으로 돕는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한 이 책에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그것은 환자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의료진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오래된 미래’에 불과한 존엄(안락)사의 한 유형을 제안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병이 발현된 지 20년쯤 되었을 때 비류잉의 어머니는 존엄(안락)사를 결심했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단식 존엄사를 선택했다. 책에서는 비류잉이 단식 존엄사를 다룬 책을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 필요한 호스피스 교육을 받는 등 어머니의 단식 존엄사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류잉의 어머니는 단식 11일째부터 모든 식사를 중단하고, 오일 한 스푼과 연근 달인 물 한 컵만 마시기 시작했다. 이후 환자는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보였다. 잠깐 동안의 TV 시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단식 13일째부터는 연근 달인 물조차 끊고 면봉으로 입술을 적셔주는 방식으로 수분을 공급했다. 15일째가 되자 입 냄새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으며, 잠자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16일째부터는 배변 장애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17일째에는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생전 장례식을 치르었다. 18일째가 되자 재택 의료센터 의사와 호스피스 간호사가 집을 방문해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다. 이후 19일째가 되자 호흡이 희미해지고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으며, 21일째 새벽에 부정맥과 함께 호흡이 더욱 가늘어지면서 마침내 사망에 이르렀다.(주9)
비류잉과 그의 어머니가 신중하게 결정하고 과감하게 실행한 단식 존엄사는 타이완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고, 이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것이 단식 존엄사의 법률적·윤리적 쟁점뿐만 아니라 종교적 차원의 비판제기를 불러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길(slippery slope)’ 논증을 동원한 단식 존엄사의 위험성에 대한 의료 관계자들의 지적은 많은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비류잉이 어머니의 단식 존엄사를 돕는 동안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을 끊임없이 읽어주며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지극정성으로 발원해 드렸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49재 동안에도 『불설아미타경』과 『금강경』, 『반야심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 등을 독송하면서 진심으로 영가靈駕가 가는 길을 축원했다. 이것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독실한 불자였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주10)
살레카나와 비류잉의 사례에서 필자는 단식 존엄사를 둘러싼 논란을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권의 포기라는 보수적인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말 그대로 숭고한 선택이라는 시선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녀의 어머니가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게 된 배경과 진행 과정 및 결과는 필자와 같은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 머지않아 직면하게 될 상황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어떤 종교 전통보다도 개인의 주체적 결정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불교 전통에서 살레카나와 단식 존엄사는 고려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임종 문화의 하나로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불교적 존엄(안락)사에 대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확산시킬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각주>
(주1) 《주간 조선》(2863호), 2025년 6월 15일 자.
(주2) 단식 존엄사(VSED)에 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양영순, 「불교, 안락사를 말하다-자기 결정권에 의한 깨어 있는 죽음을 위하여」, 『불교평론』(2025년 여름 제27권 제2호), pp.58〜61 참조.
(주3) 양영순, 『살레카나-자이나교의 자발적 단식 존엄사』(서울:씨아이알, 2025), pp.130〜144 참조.
(주4) 살레카나의 전제조건과 실행방법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언급은 양영순, 「불교, 안락사를 말하다-자기결정권에 의한 깨어 있는 죽음을 위하여」, 『불교평론』(2025년 여름 제27권 제2호), pp.61〜67 ; 양영순, 『살레카나-자이나교의 자발적 단식 존엄사』(서울:씨아이알, 2025), 1, 3, 5, 6장 등 참조.
(주5) 양영순, 『살레카나-자이나교의 자발적 단식 존엄사』(서울:씨아이알, 2025), pp.132〜135.
(주6) 같은 책, pp.136〜141.
(주7) 같은 책, p.144.
(주8) 비류잉 저, 채안나 역, 『단식 존엄사: 의사 딸이 동행한 엄마의 죽음』(서울:글항아리, 2024). 원제는 畢柳鶯, 『斷食善終-送母遠行, 學習面對死亡的生命課題』(麥田, 2022). ; 김의, “畢柳鶯의 『斷食善終』에 나타난 타이완의 단식 존엄사 논의”, 『가족과 커뮤니티』(제11집,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25), pp.251〜253 참조.
(주9) 비류잉(2024), pp.139〜163. ; 김의(2025), pp.257〜258에서 재인용.
(주10) 비류잉(2024), p.174 및 p.215. ; 김의(2025), pp.264〜265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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