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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현대 지성인을 위한 사도 폴 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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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5 년 8 월 [통권 제148호]  /     /  작성일25-08-05 12:51  /   조회34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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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종교의 길을 밝혀준 사람들 8   

 

이번에는 불교의 기본 가르침과 아주 가까운 신학자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입니다. 틸리히는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과 함께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신학자였습니다. 1990년대 미국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장 큰 영향을 준 신학자로 틸리히가 꼽혔습니다. 필자의 경우도 종교학의 한 분야로 그리스도교를 연구할 때 성서 해석학 분야에서는 불트만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신학 사상에 있어서는 틸리히의 영향이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진 1. 20세기 들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대학교 저학년 때 사촌 형의 책꽂이에 꽂힌 틸리히의 영어로 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을 펼쳐보았습니다. 하얀 것은 종이이고 까만 것은 글자라는 사실 이외에는 전혀 알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학원 학생이 되었을 때 틸리히의 사상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유학하며 불교를 전공할 때도 틸리히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틸리히 때문에 불교사상을 더욱 친근하게, 더욱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폴 틸리히의 생애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 동부의 조그마한 도시 슈타르체델(Starzeddel)에서 보수적인 루터교 목사였던 아버지와 자유주의적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18세가 되던 1904년 베를린 대학에 입학하여 몇 대학을 거쳐 1911년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셸링(Schelling)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12년 할레 대학에서 역시 셸링 연구로 신학 전문직 학위를 취득, 루터교 목사로 안수도 받았습니다.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 사상가들은 셸링 외에 니체, 헤겔,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등이었습니다. 

 

사진 2. 폴 틸리히를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으로 초청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1914년 9월 결혼한 데 이어 10월부터 4년간 제1차 세계대전 군목으로 복무해 제1급 십자훈장도 받았습니다. 제대 후 1919년부터 베르린 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가르치는 동안 전국을 다니며 한 그의 강연이 나치 정책과 갈등을 빚게 됐고,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그 후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초청으로 미국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원으로 옮겼습니다. 47세의 나이에 새롭게 영어를 배우고, 그 이후 모든 저작을 영어로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영어로 말하거나 글을 쓸 경우 독일어보다 쉽고 부드럽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사진 3.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 전경.

 

1933년 종교철학을 가르치기 시작, 1955년까지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철학적 신학 교수’로 알려졌고, 그 가까이 있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도 방문 교수로 철학 강의를 할 정도로 명강의를 했습니다. 그가 유니온 신학대학원에 있을 때 영어로 쓴 『프로테스탄트 시대』 등의 논문 모음집, 『흔들리는 터전』 등의 설교 모음집, 특히 그의 대표작 『조직신학』 제1권 등의 저작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에 힘입어 1953년에는 영예로운 스코틀랜드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 강사로 초대되고, 1955년에는 하버드 대학교 신학대학으로 초빙되어 강의에 구애받지 않는 최우대 특별교수가 되었습니다. 1962년까지 하버드에 있으면서 『조직신학』 제2권과 그 유명한 『신앙의 역동성』 등을 출판하였습니다. 1962년 시카고 대학으로 옮겨가 2년 동안 그 당시 시카고 대학 종교학의 대가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와 공동 세미나를 이끌면서 그와 학문적 교분을 두텁게 했습니다. 여기서 『조직신학』 제3권이 완성되었습니다. 

 

사진 4. 하버드 대학교 신학부의 앤도버 홀(Andover Hall) 전경.

 

1965년 10월 12일 저녁 시카고 대학 종교사학회에서 그의 동료들의 요청으로 ‘조직신학자를 위한 종교학의 의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가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그의 조직신학을 동양 종교를 포함하여 세계종교들의 통찰과 대화하면서 다시 쓰고 싶다는 그의 염원을 말하고, 이런 식으로 세계종교의 맥락 속에서 쓰여지는 신학이 “신학의 미래를 위한 나의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오랫동안 박수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4시에 심장마비를 일으킨 그는 그 후 10일 만인 10월 22일 7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미국 인디애나주 뉴하모니에 있는 폴 틸리히 공원에 안치되었습니다. 조지아 하크니스(Georgia Elma Harkness)는 틸리히를 두고, “미국 철학을 위해 화이트헤드(Whitehead)가 있었다면 미국 신학을 위해 틸리히가 있다.”는 말로 틸리히의 신학적 공헌을 찬양했습니다.

 

상징의 신학자

 

틸리히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재해석하는 것이 신학의 임무이라고 하고, 이 일을 하는 데 일생을 바친 신학자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가르침은 모두 ‘상징(symbol)’이었습니다. 그의 주저인 『조직신학』 목차만 보아도 ‘타락의 상징’, ‘그리스도의 상징’, ‘십자가의 상징’, ‘천국의 상징’ 등등의 용어가 등장합니다. 타락, 그리스도, 십자가, 천국 등의 개념이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라 “그 자체를 넘어서는 다른 무엇을 가리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상징적인 개념들을 대할 때 우리는 그런 것들 자체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그 너머에 있는 의미를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적 용어로 하면 이런 상징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사진 5. 폴 틸리히의 책 『조직신학』의 번역본 표지(새물결플러스).

 

그는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무시하고 어느 한때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여 주어진 ‘과거’의 해석 자체를 붙들고 있겠다는 미국의 근본주의적 태도나 유럽의 정통주의적 자세는 ‘과거의 정황’에서 형성된 특수 해석 자체를 절대화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악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각 세대를 위해 그때그때 새롭게 해석하는 이른바 ‘응답하는 신학’으로서의 신학적 소임을 망각한 신학은 신학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틸리히의 경우 그리스도교 상징을 해석하는 틀은 주로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었습니다. 

 

깨어진 신화

 

그는 성경이나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나오는 이런 상징들을 무조건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모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심각하게 읽으려면 문자적으로 읽을 수 없고, 문자적으로 읽으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루돌프 불트만이 ‘비신화화(demythologizing)’라는 용어로 신화의 재해석을 강조했다면 틸리히는 그 용어가 신화를 없애야 한다는 말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므로 그 대신 ‘비문자화(deliteral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신화나 상징은 견과류 호두가 깨어져야 그 속살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깨어져야’ 그 깊은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른바 “깨어진 신화(broken myths)”여야 신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라는 뜻입니다. 

 

상징으로의 신과 궁극 실재로의 신

 

틸리히에 의하면, 종교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궁극 관심(ultimate concern)’입니다. 그 궁극 관심의 대상은 결국 궁극적인 것, 곧 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신’이라는 말도 상징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신’이라는 말 너머에 있는 궁극 실재로서의 신에 주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신의 상징으로서의 신(God as the symbol of God)’이라든가 ‘신 너머에 있는 신(the God beyond God·the God above God)’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는 궁극실재로서의 신은 ‘상징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틸리히는 신(God)과 신성神性(Godhead)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은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 경험에서 이해된 대로의 신이고, 신성은 언어나 상징 체계 너머에서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궁극실재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궁극실재는 ‘하나의 존재(a being)’일 수가 없습니다. 궁극 실재가 ‘하나의 존재’라면 우리가 아무리 ‘위대하다’, ‘전능하다’, ‘전지하다’ 등의 현란한 수식어를 붙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존재들 중의 하나’로서 여전히 존재의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다른 존재와 특별하게 다르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절대적이고 ‘조건 지워지지 않는’ 궁극실재로서의 신은, ‘존재 자체(Being-itself)’라 하든가 ‘존재의 힘(the Power of Being)’ 혹은 ‘존재의 근거(the Ground of Being)’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존재의 근거’라는 용어는 가히 화엄 불교에서 말하는 ‘법계法界(dharmadhātu)’를 연상하게 하는 말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계인

 

틸리히는 스스로를 ‘경계인(a man on the boundary)’이라 하였습니다. 1960년 일본을 방문, 불교 사찰에서 선불교 스님들과 대화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받은 감명을 1961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행한 「그리스도교와 세계종교들과의 만남(Christianity and the Encounter of the World Religions)」이라는 강연을 통해 발표하고 그 후 작은 책자로 출판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와 불교에서 가르치는 니르바나를 비교하고, 종교 간의 관계는 ‘개종(conversion)’이 아니라 ‘대화(dialogue)’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명언으로 그 책의 끝을 맺었습니다. 

 

사진 6. 1960년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한나 아렌트(Hannan Arandt)와 함께.

 

모든 종교의 심층에는 종교 자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지가 있다.

 

틸리히는 신학자였지만, 이처럼 모든 종교의 심층을 꿰뚫어 보고 우리를 그리로 인도한다는 의미에서 생각하는 모든 종교인들, 특히 현대 지성적인 종교인들을 위한 스승, 그리하여 심층 종교의 길을 밝혀준 스승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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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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