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불교는 지금]
현대불교가 잃어버린 사문 전통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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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준 / 2025 년 10 월 [통권 제150호] / / 작성일25-10-03 19:01 / 조회155회 / 댓글0건본문
베트남의 거리 수행자 틱민뚜에[釋明慧]가 남긴 질문들
어느 종단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걷고, 탁발하는 모습을 통해 대중에게 발견된 한 수행자가 베트남 불교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의 이름은 틱민뚜에(Thich Minh Tue, 釋明慧, 44세). 그의 본명은 레 안 뚜안(Le Anh Tuan)으로 1982년생이다. 그는 후에의 한 사찰에서 출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기 전 절에서 나왔다. 그리고 사찰에 머물지 않은 채 오직 걷고, 탁발하며 거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부터 SNS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2024년 초 베트남 유튜버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소개되면서 큰 화제가 됐다.

그가 관심을 모은 것은 하루에 한 끼 공양만 하며, 헝겊 조각을 엮어 만든 누더기 가사와 발우 하나만을 갖고 수행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오직 길 위에서 밤을 보내며 최소한의 소지품만을 지닌 채 거리를 순례하는 그의 모습은 화려한 의복과 거대한 사찰에 익숙해진 베트남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모습은 처음에 몇몇의 관심에 머물렀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의 소박하고 진실된 모습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는 몇 달 사이에 베트남 전역에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셀럽이 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길가에 모여들었다.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절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들에게 어떠한 가르침이나 설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합장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대중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더욱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의 왜소한 체구를 덮은 누더기와 까맣게 굳은살이 배긴 발바닥이 가장 큰 가르침이 되었다. 틱민뚜에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사진들이 순식간에 베트남 사회를 휩쓸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서 잃어버렸던 불교 수행자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발견했다.
교단에 속하지 않지만 두타행자를 자처하다
틱민투에 스님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두타행頭陀行(Dhutanga)을 실천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두타행은 불교 수행법 중 하나로, 세속적인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 고행을 의미한다. 두타행은 범어 ‘dhuta’를 음역한 것으로, ‘버리다’, ‘떨어뜨리다’, ‘닦다’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두타행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떨쳐내고 소욕少欲과 지족知足을 실천하는 생활 수행법이고 부처님께서 금했던 육체적 고행이 아니다.

하지만 두타행은 매우 고된 수행이다. 수행자에게 뛰어난 의지와 강한 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극소수의 수행자만이 이 방법을 따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부처님께서도 마하가섭 존자가 평생 두타 수행을 한 것을 칭찬하신 바 있다.
틱민뚜에 스님은 남방 상좌부 불교의 논서인 『청정도론』에 나오는 13가지 두타행을 강조했다. 그는 두타 수행이 탐욕과 번뇌를 줄이고, 마음을 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낡은 천을 기워서 만든 세 가지 가사만 지니고 있으며, 하루 한 번 오전에만 공양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집을 가리지 않고 차례대로 탁발하며, 초대에 의한 공양은 받지 않으며, 숲속이나 나무 아래에서 지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틱민뚜에 스님은 이러한 두타행을 통해 물질적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두타 수행은 대중들에게 불교가 어떤 종교였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단순한 실천, 순수한 걸음은 잃어버린 종교적 경외감을 다시금 불러일으킨 것이다.
베트남 사회의 뜨거운 반응과 불교계의 엇갈린 시선
베트남 국민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다. 오랜 기간의 전쟁을 끝내고 정치,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베트남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님의 행보를 통해 잊고 지냈던 정신적 가치를 되찾으려는 듯했다. 정부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일군 경제성장을 통해 물질적 풍요는 조금씩 늘어가고 있지만, 그런 경쟁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던 이들은, 스님의 청빈한 삶을 보며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스님을 ‘현대의 붓다’라 부르며 존경심을 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누더기를 걸친 틱민뚜에 스님의 모습이 새겨진 티셔츠를 만들고, 피규어를 자발적으로 제작했다. 이들은 날개 돋친 듯 판매됐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파문은 그의 이름을 베트남을 넘어 전 세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트남 불교계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베트남 불교계의 주류인 베트남불교 승가회(VBS: Vietnam Buddhist Sangha)는 틱민뚜에 스님을 정식 승려로 인정하지 않았다. 승가회는 스님의 행보가 “베트남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 방식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들은 틱민뚜에가 소속된 사찰이 없고, 정식 절차를 거쳐 출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행보가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팟꽝 사원(phat Quang Temple)의 주지이자 베트남불교승가회 재정위원회 위원인 틱찬꽝(Thich Chan Quang) 스님은 온라인에 게시된 설법에서 틱민뚜에를 “누더기 옷을 입고 밥솥을 든 깡패”라고 비난해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반발이 너무 거세지자 찬꽝스님의 설법은 오프라인으로 전환됐다. 찬꽝스님은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의 친조카다.
반면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해외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활동하는 베트남 통일불교승가회(Unified Buddhism Sangha)는 틱민뚜에를 스님으로 인정하고, 그가 불교 승려에게 걸맞은 덕목을 갖추고 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그에게 감동했을까?
틱민뚜에 스님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단순히 종교적 경외심을 넘어서는 사회현상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불교는 거대한 의지처였다. 베트남 전쟁의 와중에 남베트남 정부에 의한 불교 탄압과 민간인 학살 등에 항의하며 스스로를 소신공양했던 틱꽝득[釋廣德] 스님은 베트남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던 분이었다. 전쟁 이후에는 틱낫한[釋一行] 스님이 베트남 사람들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시대와 함께하며 대중들의 큰 믿음 속에 불교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던 스님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베트남 불교는 국가 불교화하면서 국가정책에 순응하며 불교를 사찰 안에 가두고, 대중들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던 대중들이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두타행을 하는 틱민뚜에 스님에게 매료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중들은 그에게 현대불교가 잃어버린 ‘슈라마나(Śramaṇa)’ 전통, 즉 사문沙門의 정신을 발견했다. 사문은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진리를 찾아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현대불교는 거대한 사찰과 화려한 의례, 그리고 복잡한 조직 구조를 갖추게 되면서, 때로는 본래의 청빈하고 소박한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틱민뚜에 스님은 이러한 현대불교의 모습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오직 진리를 향해 걷는 ‘길 위의 수행자’ 그 자체였다. 그의 모습은 ‘소유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 “불교는 사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고, 우리의 삶 속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의 순수한 행위는 어떠한 설법보다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현대 불교계에 던지는 울림
틱민뚜에 스님은 현대 베트남 불교계, 나아가 세계 불교계에 큰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그의 존재는 현대불교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거대한 사찰을 짓고, 복잡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과연 붓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청빈과 소박함을 강조하는 불교가 세속적 욕망과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틱민뚜에 스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가장 명확한 답이 되었다. 그의 모습은 현대불교가 잃어버리고 있는 ‘슈라마나’ 정신, 즉 진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청빈한 삶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어쩌면 틱민뚜에 스님은 ‘현대불교’라는 거대한 건물이 잊고 지냈던 ‘기초 공사’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의 행보는 마치 연못의 잔잔한 수면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처럼, 현대 불교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파문은 단순히 한 개인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교의 본질을 되찾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불교의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간절한 외침이다. 길 위에서 피워낸 틱민뚜에 스님의 연꽃이 앞으로도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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