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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큰스님의 저작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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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4 년 7 월 [통권 제1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47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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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의 『백일법문』 출판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본지풍광』의 출판 인연을 회고해 볼까 합니다.

 

백련암의 뒷방에서 ‘백일법문’ 테이프를 들으면서 녹취를 몰래하다가 큰스님께 들켰다는 말씀을 지난번에 드렸습니다.
“뭐? 상당법문 듣고 있다고? 뜻도 알지 못하는데 말인들 옳게 들리겠나? ‘덕산탁발화’는 첫 칙이니까 정리되겠지? 내일 새벽예불 마치고 정리한 원고 가져와 봐라!”

 

큰스님 명령이 떨어졌으니 어쩌겠습니까? 녹음을 듣고 또 듣고 하면서 녹취록을 확인하고 한 문구를 해석하신 것을 한 자도 빼먹지 않고 정리해서 새벽예불을 마친 뒤 큰스님을 찾아뵙고 원고를 올렸습니다. 10여분동안 보시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시면서 “누가 이렇게 번역했나?” 하시더니 원고들을 제 앞으로 휙 던지시면서 “내일 예불마치고 다시 가져와라.”고 하셨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번역문을 녹취록과 녹음과 비교하면서 들어도 큰스님 법상에서 말씀한 것을 한글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첨삭도 할 수 없는 일이니 다음날 새벽에도 똑같은 원고를 할 수 없이 큰스님께 올렸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어제 원고하고 똑같잖아 이놈아! 이것 내가 법문한 것 아니다 이놈아!” 하시며 그 원고를 다시 제 앞으로 던지셨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저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큰스님께서 한문 번역하신 것을 한자도 틀리지 않고 한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정리해 드렸는데, 무엇이 마음에 드시지 않을까?”하는 생각만 맴돌 뿐, 딱히 다른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도 없어서 다음날 새벽에도 똑같은 원고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똑같은 원고를 받아든 큰스님께서 “니도 어지간한 놈이네. 뭘 좀 고쳐보든지 해야지 똑같은 원고만 갖다 주면 어쩌노 이놈아! 문장은 간결하게 정리해야지, 이렇게 늘어져서 누가 읽겠노? 안되겠다. 내일부터 새벽예불 마치고 오너라. 내가 구술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철 스님의 저서 <본지풍광>과 <본지풍광 평석>을 재출간하면서 제목을 바꾸어 발간한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 시리즈

 

그때서야 방으로 돌아와서 큰스님의 마음속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법상에서 법문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겨놓으니 말하자면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가 되어서 큰스님께서는 번역 원고가 영 마음에 드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새벽 예불 마치고 매일 큰스님 방에 들어가 한 시간씩 구술을 받아 적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저에게 속기술(速記術)이 없으니 우선 빠른 말씀을 옳게 받아 적지 못해 야단맞고, 어려운 단어들을 알아듣지 못해서 어물거리다가 또 야단맞고 하여 3개월간 여간 고역을 치르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그때는 제 입장만 생각하고 저만 힘든 줄 알았는데, 큰스님 열반에 드시고 세월이 지나고 오늘에 이르고 보니, 그때 큰스님께서도 또 곰새끼하고 씨름하시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런데 녹음테이프로 들은 구어체 문장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새벽에 들어가 큰스님께서 구술해 주시는 문어체는 제가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운 문장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월운 큰스님께서 『선문염송』 번역서를 출판하셔서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큰스님께서 상당법문하신 녹취록과 큰스님께서 직접 구술하신 번역문과 염송을 대조해 가면서 한 칙, 한 칙 정리해서 갖다 드리면 큰스님께서 퇴고를 마치셨습니다.

 

그렇게 양장본으로 만든 『본지풍광(本地風光)』은 법보시용으로, 일반보급판으로는 『동쪽 산이 물위로 간다』는 제목으로 서점에 배포되었습니다. 어려운 선문의 책이니만큼 시장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세월이 흘러 미국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 비교종교학과에서 연구 중이던 조성택 교수님을, 같은 학교 박성배 교수님을 통해서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조성택 교수께서 고려대 철학과 교수로 오시게 되고 그런 인연으로 하여 ‘근현대 한국불교사상의 재조명 : 퇴옹성철의 불교관과 현실 인식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2004년 11월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상연구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예문서원에서 2006년 3월에 『퇴옹성철의 깨달음과 수행 : 성철의 선사상과 불교사적 위치』라는 제목으로 조성택 교수가 엮어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다시 당시 논문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고 조성택 교수님에게 새삼 감사를 드립니다.

 

책에 실린 논문 중에서 김영욱 박사의 ‘퇴옹의 간화선’을 인용하여 몇 말씀 드릴까 합니다. 말하자면 성철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10여 년 동안 매년 열반일을 전후해서 1년에 한 번씩 학술회의를 개최해왔습니다. 그러나 성철 큰스님의 『본지풍광(本地風光)』에 대하여 처음으로 “간화선사로서의 성철의 면모를 드러내고 선종사의 큰 틀에서 성철을 조망하는 최초의 논문”이 실려서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후 아직까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언급하는 논문은 발표되지 않고 있으니, 지금까지는 유일무이한 논문이 되고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그 논문에 실린 몇 대목을 인용해 봅니다.

 

“퇴옹(성철) 스스로 격외(格外)의 도리를 시적형식으로 제창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공안과 그 공안에 대한 대표적인 평가를 다시 화두로 제기하는 안목은 조사선의 세계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간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흉내 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여기서 퇴옹은 교학적 이론을 제시한 경우가 거의 없으며,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안목을 펼쳐 보이거나 선대 조사들의 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간화선의 정수를 쏟아내고 있다. 하나의 구절마다 드러나는 안목은 선문헌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자신의 선체험 뿐만 아니라 조사어록 등에서 그것을 점검하고 교감한 흔적이 구절마다 드러난다. 그만큼 조사어록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선체험을 드러내는 도구로 그것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는 법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부분에서의 글이고 『본지풍광(本地風光)』에 실린 여러 공안들을 김 박사의 박식한 지식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결론부분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한문을 자유롭게 구사하여 자신의 생각을 펼친 마지막 세대의 한 인물로써 남긴 유산이기도 하며, 문화적 또는 문학적 평가에 제한시켜도 그 가치는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간화선의 보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앞으로의 번역과 상세한 주석 없이는 퇴옹 선사상 연구는 공허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문헌을 짚어내지 않고 퇴옹의 선법을 논한다면 사소한 것을 천착하여 침소봉대하는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다.

 

 『본지풍광(本地風光)』의 상당법어는 선대 문헌의 다양한 맥락을 자유롭게 구성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여기에 인용된 말들이 원초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퇴옹은 어떤 방법으로 재구성하여 활용했는지를 세밀하게 파헤쳐야 그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질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에 대한 기초작업으로써 엄밀한 검토에 입각한 번역과 주석을 이루어야 한다. 이 일을 도외시하고 성철선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는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 후 성철 스님께서 상당하셔서 한 구절 한 구절 설법하신 것을 정리하여 2007년 10월과 2009년 2월에 『무엇이 너의 본래 면목이냐 1, 2』를 출간하였습니다.

 

“원택 스님!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처음 읽고서 왜 이리 틀린 글자가 많은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그건 틀린자가 아니라 큰스님께서 스스로 한 두자씩 바꾸어 당신의 뜻을 표시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깊이 연구해야 될 어록입니다.” 하던 김영욱 박사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감사한 인사를 전합니다.

 

성철 스님께서 보조 국사보다 『수심결』에 의지해 점수(漸修)를 하는 수좌스님들을 비판하셨습니다. 보조국사의 『간화결의론』이 나온 지 900년이 되었어도 그 많은 보조 연구자들 중에서도 이에 대해 제대로 연구되지 않는 것이 한국선학계의 현실이라면 성철 스님의 『본지풍광(本地風光)』 연구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방의 선학자들께서 『본지풍광(本地風光)』 연구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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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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