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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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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4 년 11 월 [통권 제1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39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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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큰스님 열반 21주기가 지났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큰스님 열반 후 해인사 연화대 다비장으로 밀려드는 수많은 인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다비장 옆에 새길을 닦아 놓았기에 망정이지 평소 오르내리던 외길뿐이었다면 다비장은 아마 아수라장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아찔한 생각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큰스님 다비식 당시의 인산인해 조문행렬을 회고해 봅니다. 또, 하도 차가 막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인사IC 근처에서부터 걷고 걸어서 그렇게들 다비장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때 드물게 월간 「해인」지가 진보적 논조로 인해 스님들은 싫어하고 진보계의 사회지식인들은 좋아해서 편집실에는 많은 인사들이 드나들곤 했습니다. 그때 「해인」지 편집실에 들르곤 하던 한 신부님께서 “가톨릭은 200년 동안 400만 명의 신도를 선교했는데 성철 큰스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열흘 동안 300만 명을 포교하셨다.”고 농담을 하실 정도로 큰스님의 열반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감격과 ‘텅 빈 마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지난 10월 16일에 열린 중앙종회의원 선거 모습 

 

그 후 ‘성철 신드롬’이라 할 만큼 한국 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높아졌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49재를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와 부정부패 척결을 기치로 한 개혁운동이 일어나 조계사 마당이 투쟁의 현장이 되고 폭력이 난무하면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게 되었습니다. “성철 큰스님이 떠나시면서 모처럼 남기신 불교의 큰 자긍심은 한꺼번에 다 날리고 오히려 더 불교가 국민들에게 볼썽사납게 되었다.”는 개탄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수습과정에서 개혁안이 수립되고 조계종 종헌과 종법이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도입된 총무원장, 교구본사주지, 중앙종회의원 선거제도가 오늘날 어떠한 모습으로 종단에 해악을 끼치는지 되돌아보는 반성은 별로 없었던 듯합니다.

 

1962년에 마련된 조계종 종헌·종법도 승가의 율장 기준이 아닌 세속의 삼권분립 헌법 기준을 종헌에 도입한 선례가 있고, 1994년 개혁입법 수립 시에는 고위직 선출에 세속의 자유, 평등, 비밀선거를 도입한 것을 획기적인 민주방식으로 생각하였던 듯합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의 종단 현실은 어떠합니까?
지난 10월 16일에 제16대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선거에 제 사제가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하안거 결제 중에 선방에 있는 상좌나 조카상좌들로부터 여기저기서 전화가 쇄도하였습니다.

 

“스님! 해인사 종회의원에 출마한 아무개, 아무개 스님들이 다녀갔습니다. 사숙스님은 출마도 늦은데다가 선거운동도 많이 안하신 것 같습니다. 결제기간이 얼마나 선거운동하기 좋은 시기인데, 사숙스님께서도 제방선원을 빨리 다니셔야 하지 않습니까?”

 

고위직 선출에 있어 선거제도 도입으로 인한 여러 가지 폐해를 몇 가지 적어봅니다.

첫째는 선거의 평등성을 내세우다 보니 수계 1년 된 비구도 한 표, 40년 50년이 넘는 대덕스님들도 한 표입니다. 이러니 산중 어른스님들의 권위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본사주지가 대중의 선거로 뽑히다 보니 기대와는 반대로 주지 ‘원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주지스님이 대중적으로 선출됐으니 민주적으로 절 살림을 살고 말사의 자주성을 살려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실은 다음 주지선거를 대비하는 주지 ‘독재’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셋째는 1994년 처음 선거에는 후보자가 사판으로 비판받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유권자가 더 비판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넷째는 일찍 출가한 스님은 30대 후반이면 벌써 종회의원에 뜻을 두고 선방이나 대중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얼굴 익히기에 나서니 수행은 언제 할 수 있겠습니까? 수행보다는 정치에 전념하는 모습이 한심할 뿐입니다.

 

다섯째는 산중 선원의 귀중한 수행풍토는 점점 어지럽혀지고 고위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스킨십 장소가 되어가고 있는 비극적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여섯째는 본사주지의 연령이 젊어짐으로써 타종교 수장과 지역사회의 원로들과의 교류에 문제가 없다하지만 그 간격은 존재합니다.

 

많은 분들의 더 많은 의견이 있을 것입니다만 지금의 고위직 선출제도는 보이지 않게 조계종의 종지 종통을 더 없이 추락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승려의 수행화가 되어도 모자란데 전 승려의 정치화로 치닫고 있으니 우리 모두의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달라이라마의 인도 다람살라 망명정부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티베트불교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서 불교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만큼 티베트 스님들의 교학과 수행력이 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티베트에서는 출가하여 단계별로 공부한 후 시험을 거쳐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서품식을 갖는데 보통 20년에서 25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시험은 경지가 높은 장로스님과 토론형식으로 문답을 통과하여 교리검증을 거친 후에야 고위직 승려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의 조계종처럼 교학과 선수행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과정도 없이 세월이 지나면 무조건 승납 자격이 인정되어 선출직에 출마하는 경우는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제도를 갖추어가는 초입에 있지만 장래는 아득합니다. 이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자연히 가톨릭의 교황 선출 방식인 ‘콘클라베’에 눈이 멈추게 됩니다.

 

콘클라베의 역사를 살펴보면 4세기부터 로마황제와 귀족, 독일 제왕들이 교황선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동로마 황제는 교황선거의 승인권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외부 정치권 등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1059년 교황 니클라우스 2세는 추기경 주교들에게만 국한시키는 교황 선거법을 결정하였고, 1179년 교황 알렉산드러 3세에 의해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하는 다수결 선출방식이 성문화되었습니다.

 

그러나 3분의 2를 획득해야 하는 다수결 방식은 선거의 지연과 아울러 교황의 긴 공석기간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 되니 교황선거의 신속함과 안정성을 위해 새로운 요소가 첨가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콘클라베입니다. 선출기간이 길어짐을 방지하고 좀더 지혜롭게 신속한 결정을 하도록 추기경들을 한 곳에 모아 ‘열쇠로 문을 잠가 버리고’(콘클라베의 원래 뜻)는 빵과 물만을 공급하였습니다. 이렇게 새로 교황으로 선출된 그레고리우스 10세 교황이 이 제도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1274년 이 콘클라베를 제도화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콘클라베 제도가 750여 년 동안 존속해 오면서 오늘날의 가톨릭 존립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보면서 “여기에 모인 120여 명의 추기경님들은 누구나 다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들이구나! 세계 12억 가톨릭 교도들의 최고 어른이 될 수 있는 지도자가 120명이나 되는 조직이 세계 어느 곳에 있겠는가?”하는 부러운 생각을 하였습니다.

 

교계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조계종 내외의 사부대중들이 존경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제도는 전 대중의 선거에 의한 투표가 아닌 율장의 ‘장로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혁명적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로회의’를 신설하여 소임직을 선출하고, 모든 선거제도는 파기해야 조계종이 중흥의 터를 닦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 조계종만의 ‘콘클라베’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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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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