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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산책]
허공의 달을 보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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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제원  /  2018 년 6 월 [통권 제6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45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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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은 산문(散文)과 운문(韻文)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이 살아있을 땐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노트없는 현장강의’만 했다. 당시는 ‘문자 없는 구전(口傳)’이 전통이었다. 오히려 말씀을 남긴다는 그 자체가 불경스럽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들은 말씀’을 한마디도 틀림없이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강의 줄거리만 기억할 따름이다. 기록은 부처님(기원전 563~483) 입멸 직후 이뤄졌다. 최초의 경전결집인데, 합송(合誦)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내용이 모두 전하진 않고 있다.

 

天上天下(천상천하)
唯我獨尊(유아독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그 스스로가 존귀하도다.
三界皆苦(삼계개고)
我當安之(아당안지).
삼계가 모두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내 기필코 편안케 하리라.

 

부처님 탄생게(誕生偈)다.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담고 있다.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추구했던 삶의 방향이다. 지금도 유효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역설하며 평등한 존재임을 선언했다.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아(我)는 부처님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다.

 

뭇 생명을 가르친다. 독(獨) 역시 타인을 부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독립된 주체임을 강조한다. 모든 존재는 자유자재(自由自在)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생사윤회하는 3계는 고통의 연속이다. 이런 가운데 부처님은 모든 생명과 존재가 ‘본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 사바세계에 오셨다.

 

게송(偈頌)은 범한어(梵漢語), 즉 범어(Sanskrit)와 한자의 합성어다. ‘범어Gatha 한자발음’인 게타(偈陀) 가운데 ‘게(偈)’와 그 뜻인 운문체(韻文體)의 하나인 ‘송(頌)’을 합쳤다. 시게(詩偈)와 가송(歌頌) 등으로도 번역한다. 번역 용례를 보면, 북미 로키산맥을 림락(林+rock)으로 부르거나, 포크 커틀릿(pork cutlet)을 돈가스(豚かつ)로 이름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晃然後胎現(황연후태현)
猶如日初昇(유여일초승)
환하게 태에서 나타나 마치 처음 오르는 태양 같아라,
觀察極明耀(관찰극명요)
而不害眼根(이불해안근)
살펴보면 지극히 밝고 빛나지만 바라보는 눈동자 해치지 않고,
縱視而不耀(종시이불요)
如觀空中月(여관공중월)
아무리 보아도 눈부시지 않는 것 마치 공중의 달을 보는 것 같네.
- 마명(馬鳴, 100~160), 『불소행찬(佛所行讚)』 「생품(生品)」

 

사상가이자 천재시인 마명(아슈바고사)이 쓴 『붓다차리타(Buddhacarita)』, 즉 ‘부처님 행적에 대한 시적 가르침’이다. 제1권에 해당하는 「출생품」의 한 대목이다. 부처님 탄신을 태양이 떠오르고 공중에 달이 뜬 것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부처님오신날’의 ‘여섯 자’를 붙여 쓴다. 고유명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50년 전 1968년 봉축위원회가 ‘불탄일(佛誕日)’ 또는 ‘석탄일(釋誕日)’을 한글 명칭로 바꾸었다. 그러나 법정용어는 ‘석가탄신일’이었다. 2018년 올해 처음 ‘부처님오신날’이 법정용어가 되었다.

 

불교계 요청을 반영해,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2017년 10월 10일 개정했다. 음력 4월 8일이 부처님오신날인데, 양력으로는 주로 5월에 해당된다. 5월 초순과 상순 사이다. 양력과 음력 주기(週期) 차이 때문이다. 여기엔 윤달 등이 개입된다. 지난해(2017년)엔 5월 3일이었지만 올해는 22일이다. 통상 3년 단위로 ‘20일 내외’의 일차(日差)가 발생한다.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西域) 만리(萬里)ㅅ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옛절(古寺) 1

 

선시는 한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형식은 물론 언어도 구별하지 않는다. 선나(禪那)의 세계가 담겨 있으면 된다. 현대 선시의 대표는 조지훈과 만해선사이다. 조지훈은 본명이 조동탁(趙東卓)이다.

 

동탁은 19세(1939년) 등단했다. 『문장(文章)』에 시(詩)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되었고, ‘승무(僧舞)’와 ‘봉황수(鳳凰愁)’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21세(1941년) 오대산 월정사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고, 경전과 당시(唐詩) 등을 탐독했다.

 

시(詩) 「옛절[古寺] 1」을 보면, 초여름 햇살 속에 고요한 풍경이 감돈다. 특히, 목어소리가 허공으로 떠나간 자리엔 졸음에 겨워 잠이 든 ‘상좌아이’ 모습이 선하다. 산중 옛 절엔 어느덧 한낮이 지나고, 노을 지는 이미지와 더불어 ‘5월의 꽃 모란[牡丹]’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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